#3
첫 연주
지인이 가게를 새롭게 오픈했다는 말에 이해진은 기꺼이 그 가게를 찾았다.
친분을 쌓아둬서 나쁠 게 없는 사이였고, 그가 새로 오픈한 가게에 ‘오픈 마이크’라는 이름의 이벤트까지 한다는 말도 들었으니까.
가게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 손님들이나 초청된 가수들이 올라 공연을 할 수 있는 작은 이벤트.
음악가로서 새로운 무대를 본다는 건 기꺼이 반길 일이었고, 기획사 대표로서 재능 넘치는 신인을 발견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간 가게.
좋은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 적당한 술까지.
나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이벤트만 빼고.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온 걸까?
성에 차는 가수가 없었다.
못 부른다는 뜻은 아니었다.
괜찮은 실력자들이었다.
섭외를 미리 한 건지, 연습생으로도 뽑힐 만한 사람들도 몇 있었다.
이름을 들어본 인디밴드도 몇몇 있었고.
다만 거기까지.
‘비슷한 창법에 똑같은 사랑 타령. 질린다 질려.’
한 가지 음식만 자꾸 먹으면 질리는 법.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개성 없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해진이 원하는 인재는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
하지만 오늘 자신이 원하던 인재를 찾긴 힘들어 보였다.
‘슬슬 갈까.’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비우고, 일어나려고 할 때.
막, 무대 위로 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평범한 얼굴. 긴장한 건지 설레는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
크게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가 눈에 밟혔다.
그가 들고 올라온 커다란 악기.
‘가야금...?’
시끄러운 술집에서 가야금이라.
묘하게 어울렸다.
조선 시대 술집인 요정(料亭)에선 가야금으로 풍류를 즐기지 않았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해진은 손을 올려 맥주 한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어떤 연주를 하려나?’
낯설지만, 익숙한 악기.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가야금 소리 한 번 안 들어본 인간이 얼마나 있겠나.
이해진은 양손을 비비며 무대를 기다렸다.
***
무대 위로 올라가는 김세준은 자신을 흥미롭게 보는 손님들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느꼈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들고 있는 악기인 가야금에 꽂히는 그들의 시선이.
“나 가야금 실제로 처음 본다?”
“나도. 신기하게 생겼다.”
“난 라이브로 들어본 적 있는데, 소리가 되게 깔끔해.”
몇몇 이들이 말을 내뱉으며 적지 않은 호기심을 김세준에게 내비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맥주를 홀짝거리는 이해진.
방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눈빛이 보였다.
지금까지 무대를 했던 가수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해진은 그들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던 이해진이었고, 김세준의 전 무대가 끝나자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김세준이 무대에 올라오자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이해진의 행동을 김세준은 똑똑히 봤다.
‘일단 관심은 끌었다.’
기획사 사장인 이해진의 관심.
가수를 꿈꾸는 아마추어들에겐 적지 않은 기쁨이리라.
하지만 김세준은 달랐다.
그의 작은 관심 하나로 만족할 수 없었다.
‘관심 정도가 아니라 나한테 홀딱 빠지게 만들어야지.’
김세준이 가야금을 받침대에 올려놓고, 가게에 있는 앰프와 연결했다.
김세준의 손짓 하나하나에 설레는 눈으로 바라보는 관중들.
그들을 보며 김세준이 피식 웃곤, 현을 뜯어 간단한 코드 하나를 연주했다.
그러자 가게에 울리는 청명한 가야금 소리.
대부분이 난생처음 듣는 가야금의 라이브 소리였다.
그 청명함에 김세준에게 집중하던 관객들이 일순 감탄을 터트렸다.
“안녕하세요.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이런 좋은 이벤트에 참가하게 돼서 기쁘네요.”
단순한 소리만 들려줬음에도 손님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가 어떤 연주를 보여줄지에 대한.
그건 이해진도 마찬가지.
방금 시켰던 맥주를 순식간에 비운 그가 맥주 한 잔을 추가했다.
“제가 오늘 연주할 악기는 가야금이고요, 노래 제목은 ‘술과 함께’입니다.”
김세준의 말에 관중들이 박수와 함께 그의 무대를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
그들의 모습에 미소지어 화답한 김세준이 깊게 심호흡을 하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처음엔 빠르게.’
생각과 동시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의 손톱으로 선을 튕겼다.
가야금연주에선 겹튕기기라고 불리는 주법.
빠르고 부드럽게 여러 변 연주하면 단음으로 연주하는 선율보다 음색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었다.
게다가 음악을 긴박감 있게 몰아가 선율의 흐름을 고조시키기도 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긴박감 있게 고조되는 강렬한 선율에 청중들의 얼굴에 흥분이 휘몰아쳤다.
그들은 가야금이란 악기에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악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부수듯 김세준의 노래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가야금의 매력이 그런 것만은 아니지.’
한 방 먹었다는 듯 벙찐 표정을 짓는 관객들.
그런 관객들을 보며 김세준이 속으로 웃은 후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술기운은 깊어져만 가는데...”
이미 가야금연주에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던 이해진이 김세준의 목소리를 듣자 동공이 커졌다.
상당히 독특한 음색.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허스키하고 톡톡 튀는 매력적인 음색.
‘잘 어울린다.’
이해진뿐만 아니라 그의 노래를 감상하던 모두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빠르게 몰아치는 가야금의 선율과 약간은 거친 김세준의 목소리가 술집 가득 울려 퍼졌다.
‘여기서는 콘 소르디노(Con Sordino).’
노래를 부르면서도 엄지부터 약지까지 현란하게 움직이던 그의 손.
김세준이 그런 자신의 오른손 손바닥을 현침에 얹었다.
그 상태로 울림을 반 정도 막고 연주를 잇자, 빠르고 화려하던 연주가 신비롭고 분위기 있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게 아마추어의 실력이라고?’
그리고 그런 김세준의 연주를 이젠 넋 놓고 보던 이해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야금의 큰 조화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려하고 힘이 넘치는 그의 연주는 절대 초보자의 실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과 창법.
어느덧 이해진의 표정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짓는 특유의 표정으로.
전생에 가야금 명인이자 전설이라 불리던 김세준.
그런 김세준의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손님이 턱을 괴곤 나지막하게 말했다.
“잘하네.”
“응. 노래 좋다.”
눈을 감은 채 발을 까닥거리며, 감상하는 그들의 얼굴엔 흡족함이 가득했다.
초반엔 강렬한 사운드를 내뿜던 가야금이 지금은 신비롭고 부드럽게 변했다.
가야금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며 노래 부르는 김세준의 모습은 그들의 혼을 빼놓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손님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김세준도 속으론 미칠 지경이었다.
단순한 작은 이벤트.
하지만 난생처음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대중가요 연주,
미칠 듯이 즐거웠다.
자신의 연주와 노래에 빠져드는 관중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길고양이도 나를 비웃고 가는데...”
점점 고조되는 노래.
점점 노래의 끝이 다가오고, 김세준은 힐끗 이해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됐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다른 무대는 심드렁하게 쳐다보던 그의 표정이 변했다.
음악천재라고 불리던 이해진을 음악 변태라고 불리게 만든 그 표정.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그가 마음에 드는 참가자를 발견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짓던 얼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헤벌쭉하게 벌리며 스스로 모르게 목을 앞으로 쭉 내밀며 탐욕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이해진 특유의 표정.
‘아차차.’
이해진의 표정을 보며 좋아하던 김세준이 순간 손이 꼬일 뻔했고, 가까스로 추슬렀다.
하마터면 다 된 밥에 재 뿌릴 뻔한 김세준이 설레는 마음을 다잡은 후 차분히 연주를 이었다.
***
“아. 미치겠네.”
김세준의 무대를 바라보는 이해진의 눈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탐이 난다.
미칠 정도로.
저런 가수가 아직도 무명이라니.
‘당장 데뷔해도 부족할 게 없어.’
곡의 퀄리티. 노래. 개성.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다.
다른 세션없이 연주했기에 조금 비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세션을 추가하면 될 뿐.
음색도 독특하고.
가야금이란 시그니처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지.’
김세준의 노래가 끝나기도 전, 이해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세준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즉시, 그에게 캐스팅 제의를 할 참이었다.
그렇게 일어나,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뭐야? 이건?’
부재중 전화 10통과 수십 개의 메시지.
“...!”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한 이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 왜 하필 지금!’
회사 소속의 가수인 백현아가 얽힌 폭행 시비.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그 사건이 다시금 대중들의 이목에 사로잡혔다.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고, 수십 개의 기사가 떴으니 서둘러 회사로 오라는 연락.
“얼마나 걸리지?”
고개를 들어 무대 위를 쳐다봤고, 김세준의 노래는 거의 끝나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시간.
그 시간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이해진은 고개를 저었다.
1분 1초가 급한 이 상황에서 김세준에게 차분히 자신의 제안을 말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쯧. 제기랄.”
혀를 차며 욕설을 내뱉던 이해진이 아쉬움에 고개를 들며 사방을 쳐다봤다.
무언가 해결할 방안이 없을까 하고.
그리고 그때, 한 사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대 옆 구석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김세준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얼핏 닮은 얼굴이 그의 가족처럼 보였다.
‘혹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서둘러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기요. 혹시 지금 무대에 오른 사람이랑 지인입니까?”
“어? 이...이해진?”
“네. 아레스 뮤직 사장 이해진입니다.”
“아이고. 팬이에요 진짜로! 그 지금 쟤는 제 사촌 동생인데요.”
김세훈의 말에 이해진이 속으로 빙긋 웃곤 서둘러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잘됐네요. 저분. 무대에서 내려오면 말씀 좀 전해주세요. 아레스 뮤직에서 관심 있다고 꼭 연락 달라고요. 마음 같아선 직접 전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가봐야 하거든요.”
“... 아... 아레스 뮤...뮤직에서요?”
명함을 건네는 이해진을 보며 김세훈이 헛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레스 뮤직.
흔히 말하는 3대 기획사보단 작은 기획사지만, 그렇다고 네임드가 없는 곳은 아니다.
예능이나, 방송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인지도는 작지만, 내실은 튼튼한 회사.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해진을 비롯해 권진수, 장재희, 페이티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가수들도 대거 포진해 있는 레이블.
그런 곳에서 김세준을 원한다고?
이해진의 말은 김세훈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망상은 했었다.
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이 있던 김세준과 다르게, 김세훈은 그저 요새 힘들어하는 사촌 동생의 힘을 돋아주려고 했던 것뿐.
상상 속에서 생각하던 일이 막상 눈앞에 일어나니 기겁할 지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 듣던니만..’
김세준을 보며 난 놈이라고 생각하던 김세훈에게 이해진이 손을 내밀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이해진의 손엔 명함이 있었고, 슬그머니 웃으며 강조하는 그에게 김세훈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내 이해진이 몸을 돌리며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며 멀어졌다.
이해진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무대에 있는 김세준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준아. 네가 내 생각보다 더 천재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