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픈 마이크
김세준은 세이렌의 노래에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건 가녀린 체형을 가진 미녀 앞이었다.
생김새와 달리 허스키한 목소리로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여자.
‘이때도 잘 불렀네.’
김세준의 얼굴이 마치 아련한 옛 여인을 만난 듯 미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가 정말 좋아했던 노래. 그리고 그를 처음 덕질의 세계로 인도했던 가수.
“이예은...”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그가, 아직은 풋풋한 그녀의 버스킹을 구경했다.
‘데뷔하기 전이구나.’
김세준을 포함해 그녀 앞에 있는 사람들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훗날 콘서트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는 그녀의 위상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가수도, 시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예은의 무대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평생에 술안주가 생긴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그녀의 노래를 감상할 때, 머릿속을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정보.
‘이예은 나중에 아레스 뮤직에 소속되지?’
아레스 뮤직.
실력파 뮤지션만 갖춘 기획사로, 그 대표인 이해진은 음악 천재라고도 불리는 사람이었다.
예능에선 망가지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여주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
그가 좋아하던 뮤지션이 대거 소속되어있던 대형 기획사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맘때쯤에 그가 진지하게 오디션을 볼까 고민했던 기획사.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옮기려고 했었다.
‘아마, 그 정보를 알려준 게 세훈이형일 거야.’
재빨리 핸드폰을 열어, 메신저를 확인했다.
그리운 이름과 익숙한 이름이 적힌 연락처 사이에서 사촌 형의 이름을 찾았다.
김세훈.
그의 사촌 형이자,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김세준의 고민을 알던 사람.
곰처럼 듬직하면서도, 진지할 땐 한 없이 진지해서 고민 상담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됐던 친형 같은 존재.
평소 소소한 연락을 자주 한 탓에 오래전에 했던 연락까지 찾은 뒤에야 그가 원하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준아. 내 친구가 홍대에 새로운 가게 하나 오픈했는데, 다음 달에 오픈 마이크 한 대. 혹시 너 참가할 생각 없음?]
[친구 말로는 아레스 뮤직 대표 이해진도 온대. 뭐 친분이 있대나?]
[너한테 좋은 기회일 거 같아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봐. ㅇㅋ?]
삼 주 전에 나눈 연락.
이때 당시 김세준의 답장은 괜찮아라는 짤막한 답장.
하지만 직접 보낸 당사자로서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는지 뼈저리게 안다.
그 고뇌가 지속된 시간이 일주일.
일주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간신히 보낼 수 있던 답장이었으니까.
[형. 저번에 말한 오픈 마이크 아직 참가 받아? 나 참가해도 될까?]
재빨리 메시지를 남겼고, 김세훈은 바쁜지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카톡을 무시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김세준은 핸드폰을 닫고 시선을 이예은에게 돌렸다.
신선한 날씨와 라이브로 듣는 제일 좋아한 노래.
회귀한 첫날 밤치곤 너무 좋은 날이었다.
***
이예은의 공연이 끝나자 김세준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콜라를 사들곤.
마음 같아선 그녀에게 다가가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괜한 부담을 줄 거 같아 관뒀다.
그녀는 전생에도 개복치로 유명했다. 사소한 것 하나로도 감동을 잘 받는 스타일.
차라리 무덤덤하게 넘어가 주는 편이 그녀의 멘탈에 도움이 되리라.
“난장판이네.”
집을 나오기 전엔 정신이 없어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자취방이 돼지우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더럽다는 걸.
오선이 위로 콩나물 대가리가 가득한 악보가 책상과 바닥에 수북했고, 구석엔 컵라면 용지도 겹겹이 쌓여 있었다.
맥주 캔 따위도 찌그러져 쓰레기통 주변을 꾸미고 있었고.
“뭐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였으니.”
이때의 김세준은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려 있었다.
기대감과 책임감이 짓눌렀고, 꿈에 대한 욕망은 꿈틀거리며 그의 심장을 터트릴 듯 간질거렸다.
두 개의 저울추는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고, 나중엔 불면증까지 생겼다.
결국, 정신과에서 우울증약까지 복용 받아서 먹을 정도였지.
자세히 보니, 쓰레기통에 복용하던 약의 봉지가 보이기도 했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자, 괜히 마른 미소가 지어졌다.
안쓰러워하던 것도 잠시, 그가 어지럽던 바닥을 대강 치우곤 컵라면과 콜라를 해치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김세훈에게 온 답장이었다.
[생각 바뀌었어?]
[엉. 한번 해보고 싶어. 혹시 늦었어?]
[아니야. 안 그래도 친구가 계속 몇 명 더 없냐고 물어보더라. 잘됐다, 바로 친구에게 말해둘게.]
[고마워. 형.]
[힘내라.]
힘내라고?
힘 넘치는데?
자신을 걱정하는 김세훈의 답장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우울증약을 복용하던 사실까지 알던 사람이니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갔다.
근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한테 힘내라는 말은 금지어나 마찬가진데.
이럴 때 보면 참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어찌 됐든, 힘내라는데 열심히 해봐야지.”
더러운 방에서도 그나마 깨끗한 곳에 가지런히 있던 가야금.
그 가야금을 꺼내든 김세준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오픈 마이크는 당장 2주 뒤.
넉넉하다면 넉넉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음악가에게 있어선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시간이지.
게다가 그가 이번에 오픈 마이크를 참가하려는 목표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이해진.
천재 뮤지션이자, 아레스 뮤직의 대표.
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야 했다.
음악에 있어선 한없이 진지한 이해진.
웬만한 공연으론 꿈쩍도 하지 않으리라.
“게다가 난 딱 한 곡만 부를 수 있을 거야. 더 신중해야 한다.”
그가 오픈 마이크에서 연주할 악기는 25현 개량 가야금.
평균율로 조율할 수 있어서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물건이지만, 매번 곡을 연주할 때마다 새롭게 조율해야 하는 꽤 귀찮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매번 연주할 때마다 간격이 길었고, 다양한 사람이 무대를 꾸미고 준비하는 오픈 마이크의 특성상 여러 곡을 부르는 건 불가능했다.
“한 곡으로 천재 뮤지션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라...”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터. 하지만 김세준의 만면엔 자신만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자신이 좋아했던 아레스 뮤직의 가수들.
그 가수들엔 당연히 이해진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는 이해진이 어떤 취향의 가수들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해진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원하지 않는다.
“이해진이 중요하게 여겼던 건 개성.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채로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원했지.”
그리고 김세준이 생각했을 때 자신은 제법 특색 있는 가수였다.
가야금.
가야금을 베이스로 하는 가수.
기타나 피아노를 자신의 시그니처로 삼는 사람들이야 차고 넘쳤지만, 가야금이 시그니처라니?
먼 훗날 미래에서 온 그도 본 적 없는 개성이었다.
“나쁘지 않아. 게다가 이때 진짜 진지하게 작곡 하나 했었지. 이해진의 취향을 노려서.”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던 만큼 진지하게 곡을 하나 만들었다.
“그게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분명 버리진 않았어. 이사할 때에도 발견했던 악보였으니까.”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보물 같은 악보들을 뒤적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악보들은 제법 그럴듯했다.
자신이 좀만 더 다듬는다면 충분히 좋은 노래로 재탄생할 수 있을 정도로.
한참을 뒤적거리던 김세준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한 악보를 집어 들었다.
이 악보.
자신이 찾던 종이였다.
이해진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할 곡.
악보를 살펴본 김세준이 케이스에서 가야금과 조율기를 꺼내고, 천천히 가야금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제법 귀찮은 일이지만 즐거운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
김세준은 그 뒤로 연습에 빠져 살았다.
완벽하고 빈틈없이 연주하려면 2주라는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오픈 마이크를 하기로 한 당일이 되자, 김세준은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젊음의 거리라는 명칭의 맞게 많은 사람이 홍대입구역을 찾았고, 김세준은 사람들 사이에 끼면서도 가야금에 흠이라도 갈까 케이스를 조심히 품에 안았다.
복잡했던 역 근처를 간신히 빠져나오자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김세훈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형 어디야?”
“나 지금 뉴발린이랑 디다스 건물 사이에 골목. 어딘지 알지? 그쪽으로 와.”
그의 말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흡연하고 있는 김세훈이 보였다.
“세훈이 형!”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김세준을 발견하자 김세훈이 담배를 털어 껐고, 다가와 김세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까이에서 본 김세훈의 젊은 시절을 보자 괜히 코끝이 찡했다.
이때 김세훈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고 도와줬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항상 자신을 응원하고 믿어주던 사람.
이번 계획도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마음 바꾼 거야?”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더라고.”
실제로 평생 후회했다.
한 번쯤은 도전해볼 걸 하고.
“그래. 잘 생각했어.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좋은 거야. 그렇다고 또 무조건 하고 싶은 거 해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건 버리고.”
“알겠어. 형 덕분에 이런 기회도 잡았네. 고마워.”
“됐어 임마. 일단 가자. 아직 너 공연까진 시간 남았지?”
그의 말에 김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공연은 2시간 뒤.
“가서 밥 먼저 먹고 있자. 다른 사람들 공연도 구경하면서.”
그의 말에 김세준이 흔쾌히 응했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친구가 운영한단 가게는 홍대 놀이터에 가까운 2층짜리 술집.
테라스가 환히 열려 있어 제법 운치 있었고 내부 인테리어도 트랜드에 맞게 꾸며놨다.
“가게 분위기 좋은데?”
“인테리어에 공을 많이 들였다더라.”
어두운 조명. 벽면엔 네온사인으로 오글거리는 말들을 붙여놨고, 가게 한편에는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었다.
“일단 먹자. 두 시간이면 먹기 충분할 거야.”
“알아서 시켜줘. 근데... 이해진은?”
가게를 둘러보던 김세준이 자신의 목표가 안 보이자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그가 오지 않는다면 김세준은 헛걸음 한 거랑 다를 게 없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그의 동공을 본 김세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눈동자 흔들리는 거 봐. 크크킄. 걱정하지 마, 한 시간 반 정도 뒤에 온대. 친구한테 수없이 물어봤다. 그래서 일부로 네 차례도 그때 맞춰 놓은 거야.”
후우우...
김세훈의 말에 김세준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고, 그런 그를 보며 김세훈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 밥이 나왔고 밥을 해결하자 넉넉했던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김세준이 무대 옆 구석으로 향했고 가야금을 꺼내어 들었다.
혹시 음이 틀어지진 않았을까 확인하고, 간단하게 목도 풀고 있을 때, 김세훈이 그에게 다급히 다가왔다.
“야야야. 세준아. 이해진 왔어.”
무대 바로 앞 식탁. 그 식탁을 가리킨 그의 손가락 끝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깔끔한 올백 머리. 마른 체구와 긴 얼굴. 잘생기진 않았으나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
“티비랑 똑같네.”
이해진을 보며 짧은 소감을 내뱉었고, 김세훈이 그런 그를 타박했다.
“뭐야. 안 떨려? 너 오늘 쟤 눈에 띄어야 하는 거야. 보니깐 지금 다른 가수들도 이해진 온 거 알고 난리 났다더라.”
“떨려. 겁나.”
솔직히 좀 떨린다.
공연이야 수두룩하게 했지만, 이런 무대는 처음이니까.
게다가 천재 뮤지션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 있는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그인 만큼,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형.”
“응?”
“이게 쫄려서 떨리는 건지, 설레서 떨리는 건지 모르겠다.”
수십 년을 기다려온 순간.
미친 듯이 설렜다.
그의 말에 김세훈이 허탈한 듯 웃더니 그의 등을 툭 쳤다.
“잘해봐. 응원할게.”
그의 말에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사회자가 그의 이름을 호명했다.
사회자의 말에 맞춰 김세준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야금을 받침대에 올려놓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 안녕하세요. 김세준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박수.
간단하게 고개를 숙여 답한 후 그가 가야금에 손을 올렸다.
“제가 연기할 악기는 가야금이고요, 노래 제목은 술과 함께입니다.”
그의 소개에 다시 한번 박수가 터졌다.
괜찮아. 침착하게 하자.
떨리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기 위해 김세준이 깊게 심호흡했다.
그리곤 천천히 그의 손가락을 움직여 가야금의 현을 뜯었다.
그의 가야금에서 나온 선율.
그리고 가게를 가득 채우는 김세준의 목소리.
“...!”
무미건조하게 무대를 구경하던 이해진의 표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