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야금 뜯는 천제가수-1화 (1/148)

#1

명인 김세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대규모 오케스트라도 감당 가능한 규모다.

그만큼 이 무대는 그들의 자리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평소에는 외국의 내로라하는 지휘관들이 주인공이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무대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한 남자.

희끗희끗한 흰 머리를 가지고 순백의 개량 한복을 입은 40대 후반의 남자.

거문고와 가야금을 비롯한 국악 현악기 연주자들 사이에선 전설이라고 불리는 인물.

대한민국 국악계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김세준이었다.

조용히 숨을 가다듬던 김세준이 자신의 무릎 위에 있는 가야금의 좌단에 오른손을 올렸다.

김세준이 연주를 시작하려고 하자, 관객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 그에게 몰입했다.

숨 막힐 거 같은 침묵.

이내 김세준의 손이 가야금의 현을 뜯었다.

개량된 가야금의 금속 현이 아닌, 명주실로 만든 전통적인 현.

그 현을 김세준의 손가락이 뜯자 개량 가야금보다 약간은 탁한, 하지만 누군가는 자연의 소리라고 주장하는 선조 가야금 특유의 소리가 콘서트홀에 울려 퍼졌다.

잔잔한 소리가 관객들의 마음에 스며들었고, 그들은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정작 연주하는 김세준의 속마음이 타들어 가는 건 모른 채.

***

“선생님! 진짜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오늘 초청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자네도 와줬군.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공연이 끝나고, 콘서트홀 바깥 로비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리고 그 중심엔 방금 공연을 끝마친 김세준이 있었다.

꽃다발과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된 축하를 받으면서.

‘크흠...’

웃는 얼굴로 답하지만, 김세준은 초조한 기색이 자꾸만 들었다.

기껏 공연을 보러 와준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이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왜 하필 오늘일까.

오늘은 자신의 공연 날이기도 하지만, 이드레스의 첫 단독콘서트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이드레스.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뜨거운 걸 그룹.

데뷔 3년 차인 그녀들의 생애 첫 단독콘서트가 바로 오늘이었다.

그리고 김세준은 그녀들이 데뷔할 때부터 지켜 보며 응원하던 골수 진성 삼촌 팬.

자신의 공연 날짜와 이드레스의 단독콘서트 날짜가 겹쳤다는 걸 확인한 그는 공연을 취소할지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그의 공연은 4시에 끝났고, 이드레스의 콘서트는 7시 시작.

지금 당장 출발한다면 여유 있게 도착하리라.

출발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김세준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마음 같아선 레둥이들 콘서트 보러 가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내뱉고 싶다.

이미지만 아니라면 말이다.

국악계의 전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이 타이틀은 행동 가짐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아.'

그의 지인들이 입에 발린 말로 자신을 붙잡고 더이상 늘어지지만 않는다면.

공연을 보러 와 준 고마운 자들이기에 김세준은 차마 그런 티를 내진 못하고 웃는 낯짝으로 인사말을 받을 뿐이었다.

‘이러다 늦어서 콘서트 못 가면 내가 은퇴하리라.’

속으로만 전전긍긍할 뿐.

“선생님! 공연 정말 좋았어요! 잔잔하면서도 마음속에 파문이 일어나는 진짜 감동 있는 연주였어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도 독보적으로 울리는 쨍한 목소리.

김세준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엔 사람들을 해치며 김세준에게 다가오는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하얀 분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고, 입술은 빨간 립스틱으로 뒤덮은 여자.

큼지막한 진주로 만들어진 귀걸이와 목걸이가 인상적인 여자의 얼굴을 보자 김세준의 입이 씰룩거렸다.

저 여자는 여기 왜 왔어?

지인이 신세 진 여자였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자신의 딸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자꾸 조잘거리는 귀찮은 아줌마였다.

“오셨군요. 좋게 들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비록 국악의 기역 자도 모르고 어디서 주워들은 걸 적당히 내뱉는 거겠지만, 어찌 됐든 오늘 공연을 들어준 관객이다.

속과 다르게 김세준이 웃으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런 김세준의 모습에 여인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호호. 아니에요. 당연히 와야죠. 제가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진짜 선생님의 공연이 최고 라니깐요. 왜 대중들이 못 알아보는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인터넷이 죄다 이드레스 콘서트로 도배 됐더라고요. 하여간 진짜 그렇게 고래고래 악이나 지르는 노래가 뭐가 좋다고.”

이 여자가 지금 뭐라고 말한 걸까.

독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김세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은 지금 절대 그녀가 이드레스를 폄훼해서 화가 난 게 아니다. 저 여자의 독한 향수 냄새가 마음에 안 들어서 화가 난 거다.

그렇게 자기최면을 계속 속으로 되뇌였다.

“맨 뒷자리에 계셨죠?”

“네! 선생님. 알아봐 주셨구나~”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여자가 양손을 모으며 기뻐했으나 이내 이어진 김세준의 말에 그 상태로 굳었다.

“주무시는 모습이 무대에서도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예?”

“괜찮아요. 피곤하면 잘 수도 있죠. 국악이 좋긴 좋아요? 시끄러운 가요에 비해 잠도 잘 오고. 그쵸?”

싱긋 웃는 미소.

하지만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여자가 빨개진 얼굴로 거친 숨만 내뱉었다.

“고마워요. 제가 덕분에 많이 반성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엔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잖아요.”

김세준의 얼굴은 계속해서 웃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분위기는 한겨울의 풍파가 몰아친 듯 얼어붙었다.

김세준에게 대놓고 면박을 들은 여자의 거칠어진 숨소리만 들렸고, 여자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겠는지 사람들을 해치고 밖으로 급히 빠져나갔다.

삭막해진 분위기지만 김세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순간이었다.

그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김세준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넌지시 운을 띠었다.

“다들 즐겁게 봐줬다니 고마워요. 내가 여러분과 같이 저녁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필 오늘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그런 김세준의 모습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세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김세준의 심기가 상했다고 생각한 주변인들은 그를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김세준은 설레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차로 향했다.

이대로 콘서트장에만 늦지 않게 도착한다면 완벽한 하루다.

공연도 완벽했고, 이어서 관객으로 즐길 공연은 얼마나 설레며 기다리던 것인가.

그때 들뜬 마음을 가진 채 걸어가던 그의 귀에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가 들렸다.

빠아아아앙!

그리고 이내 몰아친 고통.

생각을 멈출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허공을 날고 있는지 시야가 180도 바뀌어 하늘과 땅이 거꾸로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덕심은 대단했다.

어지러운 시야에서도 똑똑히 보였으니까.

그의 지갑에 고이 모셔둔 한 장의 종이가 흐물흐물 공중을 날고 있는걸.

“안...안돼... 레...레둥이 콘서트...”

간신히 손을 뻗었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고, 하늘을 날던 그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

김세준이 국악을 처음 접한 건 7살 때였다. 국악을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김세준 또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모님의 소매를 잡은 채 국악에 빠져들었다.

재밌었다.

어린 나이에도 국악의 인기가 많지 않다는 건 인지했지만, 상관없었다.

어릴 땐 재밌는 게 장땡이니까.

재미와 재능. 두 가지를 다 가진 그는 순식간에 국악계의 기대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모두에게 관심받는 기대주가 됐을 때, 그의 불행이 시작됐다.

“누가 그랬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늦바람이라고.”

김세준은 그 말에 뼛속 깊이 공감했다. 자신이 그랬으니까.

20대 초반에 우연히 듣게 된 한 대중가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가요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노래였다.

하지만 왜 그 노래는 자신의 뇌리에 그리 깊게 꽂힌 걸까.

그때부터였다. 가요에 지대한 관심이 생긴 건.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감과 나름대로 느끼고 있던 책임감.

그 모든 감정마저 희석시킬 정도였다.

어느새 자신은 가야금으로 정악과 산조가 아닌 가요를 연주했고, 오선지엔 가야금으로 편곡한 대중가요를 끄적거렸다.

“재밌었지.”

처음 국악에 빠질 때보다 훨씬 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던 그때의 김세준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나, 이내 그 빛을 잃었다.

국악계에서 자신에게 보내는 기대감. 그리고 그런 국악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협회 어른들은 자신만 보면 국악을 살릴 인재라고 불렀다.

저 시끄러운 가요 말고 국악이 국민에게 더 사랑받을 날이 너로 인해 올 거라면서.

그들의 기대는 자신의 행위가 국악계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멈췄다. 그리고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한 책상에 가득 쌓인 종이들을 보며 김세준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20대 초중반이 녹아 있는 악보들이었다.

***

“확실하네.”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끼며 말한 김세준의 표정은 미묘했다.

슬프지만 기쁜, 복합한 감정이 새겨진 그의 얼굴은 현재 심정을 대변했다.

“과거로 회귀하다니.”

익숙한 방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바깥으로 나왔다.

수십 년 뒤 미래에서 온 자신이 보기엔 제법 촌티 나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건물들.

촌티 나지만 더없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터트리며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커플들을 보며 김세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과거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한번 국악에 헌신해야 할까. 아니면 이번만큼은 자신의 욕심을 조금 더 부려 봐도 되는 걸까.

찰나의 고민이었고, 답은 금세 나왔다.

“하자."

미친 듯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 지난 몇십 년간 얼마나 가요를 만지작거리고 싶었던가.

다짐한 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생은 한 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보자고.

해가 지기 시작하자, 번화가인 이곳엔 많은 인파가 몰렸다.

불금과 좋은 날씨는 집 안에만 박혀 있던 청춘들이 집 밖으로 나갈 좋은 핑계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킹.

서울에서 제법 유명한 버스킹 거리로 꼽히는 곳이니만큼 벌써 인적 좋은 자리는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싸구려 엠프와 마이크만 들고 자신의 개성을 내뿜는 그들을 바라보며 김세준의 눈빛이 번뜩였다.

엄청 좋은 실력은 아니지만,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음악.

김세준이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음미했다.

제법 널찍한 공터라면 어디서든 들려오는 소리.

수많은 장소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뒤섞여 김세준의 귓가에 들려왔고, 순간 김세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여기서는 들릴 수 없는 노래.

정확히는 아직은 들려선 안 될 노래가 자신의 귓가에 들렸기 때문에.

“뭐야? 이 노래가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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