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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202화 (완결) (202/202)

202화. 경이로운 군주 (2)

스페인마저 장악한 대한제국은 명실공히 전 세계를 아우르는 패권 국가가 되었다.

대한제국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는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신대륙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가 대한제국의 것이 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의 영광은 대한제국의 것이었다.

이균은 경혜 공주를 그리워하는 황후를 위해 1년간 더 유럽에 머물렀다.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이균은 유럽의 각 제국을 순방했고, 각 국가의 왕들은 황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성대하게 황제를 맞이했다.

한편 병세가 완연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유언으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왕국의 후계자를 경혜 공주의 아들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영국의 일부 귀족들은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엄청난 숫자의 대한제국군이 유럽에 주둔하고 있기에 대다수 영국 귀족들은 경혜 공주의 아들인 프레드릭이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결국 스코틀랜드 국왕 프레드릭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까지 되었다.

대한제국군 일부가 공주의 섭정을 돕기 위해 런던에 주둔하였고, 경혜 공주는 영국의 모든 군권과 행정권을 휘어잡고 성공적으로 섭정을 이어가게 되어 영국은 사실상 대한제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유럽에 1년여 동안 더 머무르던 황제는 다시 황도로 돌아왔다.

황제가 돌아오자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하는 성대한 개선식이 진행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나와 황제와 대승을 거둔 대한제국군을 환영했다.

이균은 황도에 돌아온 이후 이제 커다란 전쟁을 벌이지 않고 내치에 힘을 쏟았다.

변방에 이민족들의 작은 반란이 종종 일어나기는 했으나, 별다른 전쟁 없이 대한제국은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1621년 10월 18일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이균이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전망이 보이는 정자에 올라 비단처럼 하늘을 수놓은 석양을 바라보았다.

“황후! 석양이 참으로 아름답구려!”

이균은 함께 늙어간 황후의 손을 꼭 잡았다.

“폐하! 그러하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은 오래간만이옵니다.”

황후가 빙그레 웃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후. 참으로 세월이 빠르구려. 어느새 우리 부부가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으니…. 인생이 참으로 덧없는 것 같소.”

이균은 어느덧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과 황후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폐하! 만백성이 태평성대를 이룩한 폐하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폐하는 제국을 반석에 이루게 한 만백성의 어버이시옵니다.”

황후가 울적해하는 이균을 위로했다.

“하하하. 만백성의 어버이라…. 참으로 오랜 시간을 앞만 보고 달려왔구려. 황제라는 것이 참으로 무거운 자리인 것 같소이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구려.”

이균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회상했다.

팔자에 없었던 조선의 왕이 되어 조선 땅이 지옥이 되어 버리는 왜란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이균의 노력 때문인지 조선은 대한제국이 되어 명, 스페인 등을 정벌하고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신대륙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제 이균은 힘겹게 달려온 걸음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고단한 황제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폐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갑자기 그런 말씀을….”

황제가 그동안 전혀 하지 않던 말을 하자, 황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황후! 이제 기력이 쇠한 늙은이가 되어버렸는데, 물러날 때가 되었지요. 황태자가 이렇게 장성하였으니 황태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줄까 하오.”

“폐하…! 아직도 백성들은 폐하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황태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이 더 많이 배워야 할 것이옵니다.”

“아니요. 황태자는 성군이 될 것이오. 이제 나 같은 늙은이는 뒷방으로 물러나 있어야 할 것이오. 황후! 거추장스러운 황제의 자리를 훌훌 집어던지고 우리 남은 여생 유랑이나 떠나며 함께 지냅시다.”

이균이 다시금 황후의 손을 잡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폐…하!”

이균이 뜻이 확고한 것을 알게 된 황후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황제를 바라볼 뿐이다.

그녀도 평생을 왕의 자리에 올라 고단한 일생을 보낸 이균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균은 오랫동안 정자에서 석양을 바라보다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한 후 같이 이부자리에 누웠다.

“황후! 그동안 고생이 참으로 많았소이다.”

이균은 자리에 누운 황후의 손을 꼭 잡았다.

“폐하! 몸이 불편하신 것은 아니 옵니까?”

이균의 체온이 느껴져 싫지 않았으나, 황후는 황제가 어디에 가려는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하하! 아니요. 이렇게 황후와 함께 이부자리에 누우니 참으로 편하구려.”

이균은 지그시 눈을 감고 황후를 감싸 안았다.

“폐하!”

이균과 황후는 잠시 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이균은 눈을 뜨지 않았다.

먼저 눈을 뜬 황후는 인자한 표정으로 반드시 누워 있는 황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황제가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그제야 다급히 황제의 몸을 흔들었으나 황제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폐…. 폐하! 어찌 이렇게….”

황후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는 그렇게 황후를 홀로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제국은 커다란 슬픔에 잠겼다.

대신들과 환관 그리고 황실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커다란 궁궐을 가득 메웠고, 백성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염없이 통곡했다.

거대한 제국을 이룩한 황제가 그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지, 백성들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를 전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으로 만든 국부와 같은 황제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고 남명, 왜 등 제국의 제후국들의 사절단은 다급히 황도를 방문해 황제의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

2021년 10월 19일 현재

“이 녀석이 지금 뭐 하는 것이야?”

한 노인이 황제의 초상화 앞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균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어…. 어느 놈이냐. 감히 황제의 뒤통수를….”

이균은 감히 황제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자가 누구냐고 소리를 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놈이 무슨 황제야. 황제는…. 차라리 아버지랑 오기 싫다고 솔직히 말해라! 이놈아! 그렇게 미친 척하지 말고….”

“아…. 아버지!”

이균은 자신 앞에 아버지가 있자 화들짝 놀랐다.

“아…. 아버지 맞죠? 지금 여기가 어디예요? 어디?”

분명 커다란 궁에서 황후와 함께 잠이 들었는데, 황후는 온데간데없고 자신 앞에 호통을 치는 아버지가 있자 이균은 다시금 충격에 빠졌다.

“이놈이 진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이야 뭐야? 여기가 어디긴 어디야 제국 박물관 아니냐!”

“제…. 제국 박물관?”

이균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저건? 광무제 서거 400주년 전시회?’

현대식으로 꾸며진 박물관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글씨로 ‘광무제 서거 400주년 전시회’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아…. 아버지. 그럼 지금 2021년이에요?”

“이 녀석이 정말 실성했구나. 그래, 2021년이다. 21년.”

이균의 아버지는 혀를 차며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다시 현재로 돌아온 것인가?’

졸지에 선조의 어진에 빨려들어 조선으로 돌아가 선조가 되어 온갖 노력 끝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자신이었는데, 다시 이렇게 자신이 빨려 들어갔던 박물관에 오자 이균은 정신이 없었다.

자신은 황제의 옷이 아닌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박물관은 온통 광무제에 대한 전시품으로 가득 차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가득 메운 채 광무제의 업적에 감탄사를 날리고 있었다.

‘명, 일본, 스페인 정복하고 광대한 식민지를 건설한 위대한 황제 광무제!’

박물관은 광무제의 업적을 찬양하는 전시품으로 가득했다.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조선의 문호를 과감히 열고 도자기 수출하여 이를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 중원과 왜를 정벌하고 광대한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유럽의 패권국이었던 스페인까지 정벌한 위대한 황제를 칭송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조선으로 돌아가 이룬 것과 같은 것이었다.

‘선조가 아닌 광무제? 그럼 내가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조선으로 돌아갔었던 것이…. 분명하구나...’

이균이 이룩한 제국의 영광은 계속되었다.

대한제국에 속했던 식민지 일부가 독립을 이루었으나, 남미의 3분의 1 그리고 지금 미국의 절반에 이르는 땅이 여전히 대한제국에 속해 있으며, 독립한 국가들도 대한제국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원과 왜의 상당 부분 또한 여전히 대한제국의 영토가 되어 있었으며, 스페인의 절반과 나폴리 또한 대한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패권 국가로 연방제 형태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국은 입헌군주국으로 황제가 여전히 국가 원수였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황제의 권한은 유명무실해져 내각의 수상이 통치하는 의원내각제 국가가 되었다.

허나 황제는 여전히 시민들의 존중을 받고 있었고, 수많은 시민이 황제가 거처하는 궁을 찾아와 황제를 보려 했다.

당연히 제국의 기반을 다진 광무제의 인기는 최고였다.

제국의 시민들은 알렉산더나 칭기즈칸보다 광무제를 더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했다.

광무제 서거 400주년을 맞이해 제국은 곳곳에서 성대한 행사와 축제를 열었고, 수많은 시민이 기념식과 축제에 참여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 녀석아 이제 정신이 좀 드냐?”

이균이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아 보이자, 아버지는 다시 이균에 말을 걸었다.

“아…. 네…. 오늘이 광무제의 서거 400주년인 거죠?”

“그래! 이 녀석아! 황제께서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느냐? 얼마나 대단하냐.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니냐! 즉위하자마자 척신들을 다 몰아내고 금세 이렇게 대제국을 만드시지 않았느냐! 광무제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알겠냐?”

‘참나. 아버지! 제가 광무제예요. 광무제.’

이균은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광무제가 자신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아버지한테 또 미친 사람 취급받을까 입을 꾹 다물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균은 아버지와 함께 광무제의 업적을 담은 전시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모두 자신이 이룩한 것들이기에 신기하면서도 황제가 되어 백성의 추앙을 받고 전장을 누비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균은 아버지와 함께 황제의 초상화 앞에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참으로 우리 황제 폐하께서 잘도 생기셨구나. 어찌 이렇게 호쾌하게 생기셨는지…. 영웅호걸이야! 호걸!”

아버지는 두툼한 갑주를 입고 백마에 타 지금이라도 말을 달릴 것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있는 황제의 초상화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 그런데 황제의 얼굴이 저랑 완전히 닮지 않았어요?”

“그래! 이 녀석아! 그거야 황제 폐하의 후손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 하하하. 보는 사람들마다 그렇지. 네놈이 광무제 황제를 쏙 빼닮았다고.”

아버지는 이균의 말이 싫지 않은 듯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제 전시회도 다 본 것 같은데, 식사나 하러 가세요.”

“그래…. 이제 출출하구나. 아들 녀석이 사는 밥이나 얻어 먹어보자꾸나!”

전시회를 모두 둘러본 이균은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헤치고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박물관이 있는 광장에는 말 위에 올라타 칼을 빼 들고 있는 광무제의 커다란 동상이 있었다.

이균은 뒤를 돌아 황제의 동상을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말 위에 올라탄 광무제가 그를 보고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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