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경이로운 군주 (1)
“공주! 살아생전에 공주를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이렇게 공주를 보는구나.”
오로지 공주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고 온 황후는 마침내 스코틀랜드로 향해 경혜 공주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황후는 공주의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공주를 이렇게 직접 보게 되었으니 황후는 이젠 눈을 감아도 될 것 같았다.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공주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찌 이렇게 먼 길을….”
몸이 나약한 황후가 오로지 공주를 만나기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고 왔다는 사실에 공주는 더욱 눈물이 났다.
“공주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겠느냐….”
“어마마마! 그래도 그 험난한 길을….”
공주는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무탈하게 잘 왔으니. 그래. 지아비를 잃고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황후는 졸지에 남편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공주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공주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황후와 공주는 오래간만에 만나 모녀의 다정한 정을 나누었다.
공주는 황후의 걱정과 달리 남편을 잃을 슬픔을 잘 이겨내고 스코틀랜드의 모든 권력을 틀어잡고 통치하고 있었으며 이를 직접 본 황후는 이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공주가 낳은 귀여운 외손자를 바라보며 황후는 공주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이스탄불에 도착한 대한제국의 70만 대군은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부대를 정비한 후 이제 본격적으로 스페인 침공을 준비했다.
전쟁 준비를 모두 마친 대한제국 육군은 본격적으로 부대를 이동시켰다.
육군 총사령관 신립 장군이 직접 이끄는 1군과 곽재우 장군의 2군, 정발 장군의 3군, 누르하치가 이끄는 정예기병으로 이루어진 7군은 포르투갈에 상륙했고, 나머지 병력은 함선에 탑승해 이순신의 지중해 함대와 함께 스페인 본토 상륙을 준비했다.
황제는 직접 신립 장군이 이끄는 1군에 합류하였다.
이균은 마지막으로 스페인 국왕에게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스페인군은 묵묵부답이었고, 결국 황제는 스페인을 침공하라는 명을 내렸다.
황명이 떨어지자,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접경지역에 대기하고 있던 대한제국 육군은 지체 없이 국경을 돌파해 스페인을 침공했다.
그리고 바다를 봉쇄하고 있던 이순신이 이끄는 지중해 함대와 함대에 승선한 육군 병력은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에 상륙하여 펠리페 2세가 있는 마드리드로 향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군, 영국, 네덜란드군까지 함께 상륙하여 스페인을 침공하니 그 기세를 누구도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한제국군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이 대규모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스페인을 침공하자, 스페인군 허둥지둥하며 병력을 보내 이들을 막고자 하였으나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벌써 돈을 주고 데려온 용병들 상당수는 대한제국군의 엄청난 위용을 보고 승산이 없는 전쟁이라 여기고 도주하였다.
스페인 육군은 사력을 다해 대한제국 육군의 전진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병력의 규모와 무기의 질에 있어서도 대한제국 육군에 밀리는 스페인 육군의 방어선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신립 장군은 국경을 넘어 바다호스에서 스페인군 2만을 단숨에 격파하고 카세레스, 플라센시아를 점령한 후 톨레도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마드리드를 사수하기 위해 온 스페인 결사대 8만여 명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다소 고전하였으나, 결사대는 결국 대한제국 육군의 강력한 포격을 받고 큰 손실을 보았다.
이를 놓치지 않은 신립은 기마대를 보내 스페인 결사대를 도륙하였고, 펠리페 2세가 마지막 희망이라 믿었던 결사대 8만은 전멸하고 말았다.
스페인의 결사대를 전멸시킨 신립은 마드리드를 통하는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 헤타페에 무혈 입성했다.
한편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에 상륙한 지중해 함대는 그라나다, 사라고사 등을 차례로 함락한 후 마드리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전진했고 어느덧 신립이 먼저 당도한 헤타페에 도착했다.
“장군! 고생이 많았소이다.”
신립이 이순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장군이 서반아 결사대를 전멸시킨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올 수 있었소이다.”
“하하하. 아니요. 이 제독이 서반아 함대를 격퇴한 순간 이미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소. 이 제독의 공이 크오.”
대한제국의 두 전쟁 영웅 이순신과 신립은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헤타페에 당도한 육군과 해군은 정비를 하며 마드리드 침공을 준비했다.
그리고 황제가 호위 부대를 이끌고 헤타페에 당도했다.
이균이 헤타페에 도착하자 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 제독과 신 장군 덕분에 서반아 정벌을 목전에 두게 되었소.”
이균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이순신과 신립 등 장수들을 격려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장수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황제에 예를 표시했다.
“이제 마드리드만 점령하면 오만방자한 서반아 국왕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준비는 모두 마친 것이오?”
이균이 신립과 이순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황명만 내려 주시면 지금이라도 당장 저 마드리드를 폐하께 받칠 것이옵니다.”
신립이 자신감이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좋소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하니 더 지체할 필요가 있겠소! 당장 마드리드를 침공해 전쟁을 끝내시오!”
이미 승기를 잡았기에 이균은 마드리드 침공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황명이 떨어지자 70만이 넘는 대군이 마드리드를 향해 진격했다.
대한제국과 연합군이 마드리드를 향해 진격하자 남아 있는 스페인군은 마드리드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요새를 정비하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였으나 그들은 이미 승산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었다.
마드리드를 지키는 스페인군은 그나마 정예 병력으로 펠리페 2세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한 이들이기에 비록 사기가 저하 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오로지 국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강대한 대한제국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한제국군은 저항하는 스페인군 육군을 차례차례 격파하며 펠리페 2세가 있는 궁으로 향했다.
-퍼퍼퍼 펑!-
-타타타 탕탕-
천지를 진동하는 포 소리와 조총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펠리페 2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궁 안에 있는 성당에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폐…. 폐하! 대한제국군이 코앞에 왔습니다. 어서 자리를 떠나셔야 합니다.”
포성의 점차 가까워지자 마테오 바스케스가 눈물을 글썽이며 펠리페 2세를 찾아왔다.
“마테오! 지금 왕성을 버리고 어디로 도주한다는 것이냐. 나는 여기서 마지막 운명을 맞이할 것이니, 그대는 대한제국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서 자리를 떠나거라!”
마테오 바스케스의 재촉에도 펠리페 2세는 마드리드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폐하! 이곳 스페인을 떠나 기회를 찾으시옵소서. 신성로마제국으로 가시면 분명 복수할 기회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마테오는 평생을 모셔 온 주군을 버릴 수 없었다.
“하하하. 모든 것이 끝났다! 천주께서 이렇게 우리 제국을 버리실 줄이야. 참으로 허망하구나!”
펠리페 2세는 자신의 말로가 이렇게 치욕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자결해 자신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천주교에서 자결은 죄악이기에 그러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폐…. 하!”
펠리페 2세가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하자, 마테오 바스케스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뿐이다.
“드디어 궁이다! 펠리페 2세를 잡아라!”
“포격하라!”
“공격하라!”
대한제국군은 드디어 펠리페 2세가 기거하는 궁까지 진격했고, 곧바로 궁을 향해 엄청난 포격을 개시했다.
-쿠쿠쿠 쿵-
-퍼퍼퍼 펑-
마지막 남은 펠리페 2세의 충직한 스페인군은 대한제국군의 엄청난 포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다.
“국왕 폐하를 위하여!”
“스페인 제국을 위하여!”
궁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오르고, 벽은 허물어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동료들은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러나 스페인 육군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고 대한제국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그들은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었다.
70만이 넘는 대군을 맞아 일주일이나 버틴 것은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서반아 군의 저항이 대단하구려! 이미 기운 전쟁인데, 저렇게 끝까지 항전을 하다니….”
이균도 스페인군의 처절한 저항에 감동했다.
비록 적군이지만, 국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그들의 처절한 항전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허나 이제 얼마 버틸 수 없을 것이옵니다.”
신립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러겠지요. 살아남은 자들의 목숨은 보전해주시오. 저렇게 주군을 위해 항전하였으니 마땅히 살아 돌아가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소이다.”
“알겠사옵니다. 폐하!”
스페인군은 기적처럼 일주일을 버티었으나, 거기까지였다.
대한제국군의 막강한 화력과 끝도 없이 밀려드는 군세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가장 취약한 서문이 뚫렸다.
“문이 열렸다.”
“돌격하라!”
“대한제국 만세!”
궁으로 통하는 문이 뚫리자, 대한제국군은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펠리페 2세가 거처하는 궁 안으로 몰려들었다.
“막아라!”
“끝까지 싸워라!”
“국왕 폐하를 위하여!”
살아남은 스페인군은 끝까지 대한제국군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지만, 수적으로 압도하는 대한제국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스페인군은 점차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이제 그들은 펠리페 2세가 머무는 성당 앞까지 퇴각했다.
그들은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더는 싸울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치열했던 교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성당 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펠리페 2세는 제국군의 병사들에게 끌려 나와 옥좌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황제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네놈이 서반아의 왕이냐?”
한때 대제국을 호령하던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했다.
“그렇소!”
“네놈의 죄를 아느냐?”
이균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펠리페 2세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내 죄가 무엇이라는 말이오?”
펠리페 2세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려는 듯 이균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의 죄를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냐?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고 감히 황족의 가족을 시해하고 번번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느냐!”
“그것이 죄라! 하하하! 죽이려면 어서 죽이시오.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이오.”
펠리페 2세는 자신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 여기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균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펠리페 2세를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었으나, 한나라의 국왕이었던 자이기에 그의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했다.
간신히 목숨을 보전한 펠리페 2세는 왕권을 박탈당한 채 그의 가족들 그리고 충직한 비서 마테오 바스케스와 함께 그의 함대가 지중해 함대에 대패했던 아조레스 제도로 귀향을 떠났다.
전쟁에 압승한 대한제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스페인을 나누어 분할 통치하기로 조약을 체결했다.
물론 전쟁에서 가장 공이 큰 대한제국이 스페인 제국의 영토와 식민지 절반을 가지기로 했고 나머지를 오스만 제국, 영국, 네덜란드 등이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