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200화 (200/202)

200화. 나폴리 해전 (6)

오스만 제국의 깃발을 단 함대가 나타나자 거북선에 고전하고 있던 스페인 함대의 수병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반겼다.

이제 그들은 오스만 제국의 함대와 연합해 지중해 함대를 격침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제독! 오스만 놈들이 왔소이다!”

이교도 집단인 오스만 제국이 약조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을 욕하던 알바 공작도 오스만 제국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나타나자 가슴 벅차하며 루이 고메스를 바라보았다.

“그렇소이다. 이제 오스만 제국의 함대와 연합해 이순신의 지중해 함대를 치면 되는 것입니다.”

루이 고메스도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총애하는 사령관 엔베르 파샤가 이끄는 일천여 척의 함대가 서서히 스페인 함대를 향해 다가왔다.

두꺼운 콧수염을 기르고 배가 나온 엔베르 파샤는 망원경을 꺼내 서서히 다가오는 스페인 함대를 바라보았다.

“제독님! 스페인 함대가 보입니다.”

“흐음. 드디어 스페인 놈들에게 당했던 치욕을 갚을 기회가 왔구나!”

엔베르 파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제독님! 사정거리 안으로 스페인 함대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오스만 제국의 함대는 함포를 스페인 함대를 향해 정렬했고 어느덧 스페인 함대는 오스만 제국 함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발포하라! 스페인 놈들의 함선을 모조리 불태워라!”

-퍼퍼퍼 펑-

엔베르 파샤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일제히 불을 품었다.

“으악!”

“오스만 군이 왜 저러는 것이야!”

오스만 함대가 자신들을 겨냥해 화포를 발포하자, 스페인 함대는 큰 혼란이 빠졌다.

“제독! 이것이 무슨 일이오. 오스만 놈들이 우리 함대를 공격하고 있소이다.”

알바 공작이 사색이 되어 루이 고메스를 바라보았다.

“이.......런! 오스만 놈들이 배신한 모양입니다.”

루이 고메스도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들과 연합하여 지중해 함대를 격파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런 믿음을 깨버리고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스페인 함대를 공격하니 그 배신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참으로 딱하게 되었소. 국왕 폐하께서 어찌 이교도 놈들은 믿으신 것인지….”

알바 공작은 이교도 오스만 제국과 손잡으려 한 펠리페 2세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

“제독님! 오스만 함대가 서반아 함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스페인 함대의 배후를 공격하자 송여립 장군이 신이나 이순신 장군에게 보고했다.

“흐음! 참으로 적당한 때에 오스만 제국 함대가 나타났구려!”

거북선으로 인해 스페인 함대의 진영이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침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나타나 스페인군을 공략하자 이순신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오스만 제국과 약조된 일이었다.

학익진을 펼치고 스페인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진행하다, 거북선이 스페인 함대의 전열을 흩어 놓은 후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스페인의 배후를 공략하기로 한 것인데,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믿었던 오스만 제국의 함대에 배신당한 스페인 함대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지중해 함대를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던 오스만 함대가 자신들을 향해 불벼락을 날리니 스페인 함대는 이를 당해낼 수 없었다.

-퍼퍼퍼 펑!-

스페인 함대는 지중해 함대와 오스만 함대에 둘러싸여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수천 발의 포탄을 그대로 맞았고, 스페인이 자랑하는 함대의 함선들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선체가 파손되어 하나, 둘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사라져 갔다.

“살…. 살려줘!”

“으…. 으악!”

곳곳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스페인군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왔고, 어느덧 바다는 둥둥 떠다니는 스페인군 시체들로 가득했다.

“공격하라!”

“서반아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황제 폐하 만세!”

“대한제국 만세!”

스페인 함대가 무너져 내리자,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지중해 함대의 수병들은 황제를 연호하며 더욱 매섭게 몰아붙였다.

“제독님! 서반아 놈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승기를 잡았습니다.”

송여립 장군이 밝게 웃으며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진중한 성격으로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이순신의 얼굴에도 어느덧 미소가 번졌다.

“흐음. 틈을 주면 안 될 것이오. 더욱더 강하게 서반아 함대를 공략하시오!”

“알겠습니다. 제독님!”

이순신은 더욱더 강하게 스페인군을 공략하라 명을 내렸고, 지중해 함대는 화포를 쏘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 갔고, 스페인 함대가 조총의 사거리 안까지 도달하자, 조총병들이 화망을 구성해 조총을 쏘고 궁병들이 활까지 쏘자 스페인 군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게다가 뒤늦게 영국과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함대까지 합류에 스페인 함대를 공격하니 스페인 함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제…. 제독님! 함대가 포위되었습니다. 벌써…. 절반 이상이 침몰했습니다.”

루이 고메스의 부관이 울먹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 이런. 오스만 놈들을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루이 고메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오스만 제국을 믿고 있던 자신을 원망했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제…. 제독님! 이제 버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서 퇴각을….”

함대가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자 부관은 퇴각을 종용했다.

“제기랄! 또다시 이순신에 당하다니….”

별다른 도리가 없는 루이 고메스는 눈물을 머금고 퇴각을 명했다.

그러나 이미 지중해 함대와 오스만 제국의 함대에 포위되어 퇴로가 막힌 그들은 퇴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루이 고메스는 지중해 함대에 비해 전략이 약한 오스만 함대를 뚫기로 했다.

스페인 함대는 방향을 오스만 함대가 있는 곳으로 틀어 화포를 그들을 향해 발포하며 전속력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서반아 놈들이 도주한다. 추격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스페인군이 퇴로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해 오스만 제국 함대를 집중 공략하자, 지중해 함대는 그들을 추격해 오스만 함대와 함께 집중 포격을 가했고, 함대가 접근하자 조란환과 비격진천뢰를 쏘며 스페인군을 학살했다.

스페인군의 비명 소리는 더욱 커졌고, 온몸에 불이 붙어 고통스러워하던 스페인군은 바닷속에 몸을 던졌다.

이미 함대의 3분의 2 이상이 침몰했고, 바다는 스페인군의 피로 물들었다.

살기 위한 치열한 교전 끝에 스페인군은 오스만 군의 진영을 뚫는 데 성공했고, 살아남은 함선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맹렬한 속도로 도주했다.

“이제 됐다! 추격을 멈추거라!”

살아남은 스페인 함대가 먼바다로 도주하자 이순신은 더 이상의 추격이 의미 없다고 여기고 추격을 멈추라는 명을 내렸다.

“와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함대의 수병들은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압도적인 대승이었다.

스페인의 주력함대는 한나절도 안 되어 대부분이 침몰했고, 퇴각한 함선도 온전한 것은 얼마 없었다.

스페인군 7만여 명이 전사하여 바다를 떠도는 시체가 되었다.

이번 해전으로 스페인의 주력함대는 완전히 괴멸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순신은 피로 물든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제독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이겼어요!”

송여립 장군이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중해 함대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흐음. 다행이구려!”

이순신도 만족스러웠다.

이번 전투로 스페인 해군은 괴멸되었기에 지중해의 제해권은 이제 완벽하게 대한제국으로 넘어갔고 스페인군은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다.

***

스페인 주력함대가 지중해 함대에 대패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들은 펠리페 2세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게다가 스페인과 동맹을 맺은 오스만 제국이 동맹을 깨고 지중해 함대와 연합해 스페인 함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필리페 2세는 충격에 빠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펠리페 2세뿐만 아니라 스페인 왕국의 귀족들도 크게 동요했다.

지중해 함대를 격파하여 통쾌한 복수전을 펼 것이라고 기대했던 스페인의 주력함대가 또다시 이순신의 지중해 함대에 치욕적인 패전을 당하자 전황은 급격하게 대한제국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본래 스페인은 지중해 함대를 격파하여 제해권을 장악한 이후 대한제국에게 빼앗긴 나폴리를 수복하고, 또 다른 지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동맹국 포르투갈을 침략해 전쟁을 신속하게 끝낸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주력함대를 잃게 됨으로써 원대한 계획이 수포가 되고 오히려 제해권을 지중해 함대에 완전히 내어줘 오도 가도 못 하고 이베리아반도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순신은 지중해 함대와 오스만 제국 그리고 영국, 네덜란드 함대를 모두 동원해 이베리아 반도를 봉쇄하였고, 스페인 왕국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고립되어있는 스페인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동맹국인 신성로마제국, 헝가리 왕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등이 함대를 파견했으나, 그들은 본래 육군은 강했으나 해군은 강하지 않았기에 지중해 함대의 봉쇄라인을 뚫을 길이 없었다.

펠리페 2세가 머무르고 있는 마드리드는 온통 침울했다.

곧 대한제국군이 상륙해 마드리드를 점령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상당수의 시민들은 피난 짐을 싸 마드리드를 빠져나갔다.

해군이 전멸했다고는 하나 육군이 아직 건재하기에 일부 귀족들은 충분히 대한제국군과 맞서 싸울 수 있다며 병졸들을 격려하며 전쟁을 준비했으나, 70만 대한제국군이 곧 당도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자 스페인 병졸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지?”

펠리페 2세는 직무를 보지 않고 성당에 은거하며 천주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으나 아무런 응답도 얻지 못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신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이룬 스페인 제국이 이렇게 순식간에 몰락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고 펠리페 2세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펠리페 2세는 절망스러움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대한제국과 무모한 전쟁을 벌이려 한 자신을 원망했으나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

이스탄불

마침내 황제가 이끄는 70만 대한제국 육군이 오스만 제국의 황도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70만 대군의 행렬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것이었다.

기마대가 일으키는 먼지구름이 이스탄불을 뒤덮었고, 대한제국군의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져 군악대의 장엄한 음악과 함께 이스탄불에 입성했다.

오스만 제국의 황제 메흐메트 3세가 직접 나와 이균을 맞이했다.

그는 대한제국군의 행렬을 보고 기겁했다.

대한제국 황제가 마음만 먹으면 그의 제국을 단번에 점령할 것 같은 위압감이 들었다.

스페인과의 동맹을 깨고 대한제국의 손을 잡기로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이다!”

메흐메트 3세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균에게 잘 보이려 했다.

“흐음. 고맙소이다. 이렇게 우리 제국에게 길을 열어주니 고맙기 그지없소이다.”

이균은 제국군이 가는 길을 열어준 오스만 제국의 황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메흐메트 3세는 황제와 그의 군대의 장수들에게 성대한 만찬을 열어주었고, 대한제국군은 이스탄불에 한 달여 동안 머무르며 오랜 여정에서 오는 피로를 풀고 스페인 침공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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