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99화 (199/202)

199화. 나폴리 해전 (5)

김완 장군과 이철윤 장군은 이순신이 뜻한 대로 스페인 함대를 유인해 지중해 함대 본대가 기다리고 있는 소렌토와 카프리 섬 사이로 끌고 왔다.

김완 장군의 함대를 맹추격하던 스페인 함대는 소렌토와 카프리 섬 사이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지중해 함대가 커다란 학의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 저게 뭐야!”

“제…. 제독님! 지중해 함대이옵니다.”

스페인군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지중해 함대를 바라보았고, 일부 병졸들은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다.

“이순신이 또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러나 루이 고메스는 이순신의 전략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생각보다 당황하지 않았다.

“이순신이 또다시 학익진을 펼쳤소이다.”

알바 공작도 단번에 이순신이 포르투갈 해방 전쟁에서 자국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데 사용한 진법인 학익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습니다. 이순신이 함대를 보내 우리를 유인한 것입니다.”

루이 고메스 또한 이순신이 아조레스 제도에서 학익진을 펼쳐 놓고 함대를 유인해 함정에 걸려든 스페인 함대를 학살한 사건을 알고 있었다.

“이순신도 별것 아니구나. 같은 전법을 또다시 들고 나오다니…. 우리가 또 속을 줄 아느냐.”

그는 해신이라 불리는 이순신이 또다시 신기에 가까운 전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였으나, 이순신이 같은 전법을 들고 나오자 이순신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적진 깊숙이 돌진하지 말고 함포를 발포할 준비를 하거라!”

루이 고메스는 거대한 학의 날개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수적 우세를 앞세워 지중해 함대와 포격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제독님! 스페인군이 돌진할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속도를 줄이고 있습니다.”

송여립 장군이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흐음. 두 번 당하지는 않겠다?”

이순신은 스페인 장수가 제법이라 여겼다.

비록 포르투갈 해방 전쟁과 같은 전략을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미끼로 던진 선발대를 격파한 스페인 함대가 기고만장하여 함정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노련한 장수 루이 고메스는 이순신의 계책에 빠져들지 않았다.

“당분간 포격전이 펼쳐지겠소. 함포를 발포할 준비를 하시오.”

이순신은 당분간 지루한 포격전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알겠습니다. 제독님!”

“방포하라!”

“적군을 섬멸하라”

“서반아 놈들을 모조리 수장시켜라!”

-퍼퍼퍼 펑-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지중해 함대였다.

커대란 학의 날개를 벌리고 있던 지중해 함대는 일제히 스페인 함대를 향해 화포를 발포하였고,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곧 수천 발의 탄환이 포물선을 그리며 스페인 함대를 향해 날아갔다.

탄환이 바다에 떨어져 큰 물보라를 일으켰고, 일부 탄환은 스페인의 주력선인 갈레온 선을 직격해 파편이 튀었고, 수병들은 탄환을 그대로 맞고 고꾸라지거나 바다로 쓰러졌다.

“으…. 악!”

“발포하라!”

“대한제국 놈들을 죽여라!”

-퍼퍼퍼 펑!-

지중해 함대가 선제공격을 가하자, 스페인 함대도 반격을 가했다.

곧 스페인 함대에서 발사된 탄환이 지중해 함대를 향해 날아갔고, 지중해 함대의 함선들도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한때 무적함대라 불리며 전 세계 바다를 호령했던 스페인 함대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방포하라! 적선을 섬멸하라!”

생각보다 스페인 함대가 강력한 화망을 이루어 공격을 가하자 지중해 함대의 수병들도 적잖이 당황하였으나, 각 전대의 장수들은 수병들을 독려하며 학익진을 흩트리지 않고 스페인 함대를 향해 화포를 발포했다.

“제독님! 스페인 놈들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송여립 장군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흐음. 그러하구려. 함대를 지휘하는 적장이 제법이구려. 여기서 밀리면 끝이요. 화력을 집중해 맞대응해야 할 것이오.”

이순신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장수들을 독려하며 화력을 더욱 집중할 것을 명했다. 함대는 더욱 맹렬히 포격을 가했고, 양측은 한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주고받으며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어느새 곳곳에 검은 연기와 함께 각 커다란 갈레온 선이 침몰하기 시작했고, 수병들이 흘린 피 냄새가 곳곳에 진동하며 시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스페인 함대는 제법 강력하게 저항하여 이순신이 지휘하는 함대에도 손실을 입혔으나, 거대한 학의 날개에서 날아오르는 불길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스페인 함대의 상당수는 불길이 치솟으며 침몰했고, 수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그러나 스페인 함대의 숫자가 워낙 많기에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지중해 함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물러서지 마라!”

“공격하라!"

루이 고메스는 목이 터지라고 외치며 함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나, 좀처럼 전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쳐갔다.

“제독! 대한제국 놈들이 지긋지긋하구려. 아무리 화포를 쏘아도 물러서지 않으니….”

알바 공작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돌격해 적선에 올라탑시다. 수적으로 우리가 우세하니 함대가 한꺼번에 돌격하면 단숨에 적선에 올라타 단병접전을 벌일 수 있을 것이오.”

알바 공작은 인내심을 잃고 루이 고메스에게 함대를 돌진시켜 단병접전을 벌이자 했다.

해전이 이미 오래전에 배를 돌진시켜 배에 올라타 치열한 육박전을 벌이는 형태에서 포격전을 주고받는 형태로 바뀌었음에도 알바 공작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돌격전을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스스로 저 학익진의 함정에 빠져드는 꼴이 됩니다. 돌격하는 순간 우리 함대는 저놈들의 무시무시한 화포를 두들겨 맞고 침몰해 버릴 것이오.”

루이 고메스가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무모한 돌격전을 주장하는 알바 공작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그럼 이렇게 화포나 주고받으며 우리 함대가 다 수장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러나 알바 공작은 알바 공작 나름대로 계집애처럼 겁에 잔뜩 질려 머뭇거리기만 하는 루이 고메스를 못마땅해했다.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곧 올 것이오. 오스만 제국의 함대만 오면 이 지루한 공방전을 곧 끝낼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루이 고메스는 밀약을 맺고 지중해 함대를 함께 치기로 한 오스만 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중해 함대와 이렇게 지루한 공방전을 주고받다가 오스만 제국이 약속한 함대를 보내오면 그들과 함께 지중해 함대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제기랄! 오스만 놈들이 오긴 오는 것이오? 지금까지 함대를 보내지 않은 것을 보니 그놈들은 함대를 보낼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하오. 이교도 놈들을 믿어서는 아니 되거늘….”

알바 공작은 애초에 이교도인 오스만 제국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국왕 폐하와 약속한 것이오. 반드시 함대를 보낼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러나 루이 고메스는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오스만 제국이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대장선 갑판에 올라선 이순신은 망원경을 꺼내 전황을 살폈다.

지중해 함대의 막강한 화포 공격에 스페인 함대는 제법 타격을 입었으나, 여전히 진을 유지한 채 극렬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제 진을 유지하고 있는 스페인 함대의 본진을 깨트릴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점이라 여겼다.

“흐음. 이제 때가 되었소. 구선을 보내시오.”

“존명!”

이순신은 이제 거북선이 나서 주어야 할 때라 여겼다.

대장선에서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대형 신호기가 올라오는 것을 지중해 함대의 돌격장 정운 장군이 지켜보았다.

“흐음. 드디어 제독님께서…!”

거북선을 출격시키라는 이순신 제독의 명을 받은 정운 장군이 미소를 지었다.

당장이라도 출진해 스페인 함대를 섬멸하고 싶었지만 명이 떨어지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는데, 이제야 명령이 떨어지니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구선을 출전시켜라! 스페인 함대를 모조리 수장시켜라!”

“존명!”

정운 장군을 칼을 빼 들고 목이 쉬어라 외쳤고, 명령이 떨어지자, 수백 척의 거북선은 큰 북소리와 함께 스페인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저…. 저것이 무엇이야?”

“괴…. 괴물이다!”

용의 머리와 거북의 모습을 한 요상한 배가 화포가 비 쏟아지듯 쏟아지는 바다를 가로질러 스페인 함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자, 스페인 수병들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스페인 함대는 갑작스러운 거북선의 출현에 당황하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고, 어느새 정운 장군이 이끄는 거북선은 적진 깊숙이 들어왔다.

“방포하라! 스페인 놈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적진 깊숙이 들어온 거북선은 스페인의 갈레온 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양 측면에 배치된 화포가 불을 품었고, 곧 수천 발의 작은 쇠구슬이 갑판에 있는 수백 명의 스페인군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으…. 으악!”

“살…. 살려줘!”

스페인군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적진 깊숙이 침투한 거북선은 마치 중무장한 기병대처럼 스페인 함대 가까이 근접한 후 인마 살상용 무기인 조란환을 발포했고, 스페인 수병은 그야말로 학살당했다.

이미 아조레스 전투에서 거북선에 당한 경험이 있으나, 그때 당시에 스페인 함대는 거의 전멸했기에 대부분 스페인 수병은 거북선을 실전에서 처음 보는 것이기에 그 충격은 훨씬 컸다.

“비격진천뢰를 쏴라!”

“존명!”

정운 장군은 조란환에 이어 대한제국이 자랑하는 인마 살상용 무기인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라 명을 내렸고, 곧 수천 발의 비격진천뢰가 스페인 함대의 갑판에 쏟아져 내렸다.

“으악!”

“사람 살려!”

그리고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갑판에 있던 스페인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저…. 저 요상하게 생긴 배가 무엇이오?”

스페인군 진영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자, 알바 공작은 사색이 되었다.

“거…. 거북선이라는 배요. 아조레스 제도 전투에서 우리 함대를 전멸로 이끌었던….”

루이 고메스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 거북선?”

알바 공작도 거북선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으나, 실전에서 처음 본 거북선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그렇소이다.”

팽팽하던 전황이 거북선의 출현으로 순식간에 스페인군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루이 고메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거북선의 활약으로 스페인군 진영은 무너져 내렸고, 스페인 함대는 서로 살겠다고 대장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다.

“제독님! 스페인군의 무너지고 있습니다.”

송여립 장군이 들뜬 표정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거북선의 맹활약을 지켜본 이순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전쟁을 끝낼 때가 되었다. 전 함대! 전진하라!”

“존명!”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학익진을 유지한 채 스페인 함대를 향해 전진하라 명을 내렸고, 지중해 함대는 학 날개를 펄럭이며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지중해 함대가 함포를 쏘며 전진하며, 이미 진형이 흩어진 스페인 함대는 제대로 화포를 쏘지 못하고, 앞 열부터 무너져 내렸다.

“이…. 이런!”

루이 고메스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스페인 수병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스만 제국의 함대다!”

“오스만이 우리를 구원하러 왔다!”

“무엇이라? 오스만 제국이?”

루이 고메스는 망원경을 꺼내 후방을 바라보았고, 수병의 외침처럼 망원경에는 오스만 제국 함대의 깃발이 펄럭였다.

“이…. 이제야! 하하하. 살았구나!”

수천 척의 오스만 제국 함대가 나타나자, 루이 고메스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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