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나폴리 해전 (2)
다국적 연합군으로 이루어진 70만 대군은 신장 우루무치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향했다.
몽골 제국이 공포의 기마군단을 이끌고 유럽을 침공한 이후, 아시아 국가가 또다시 엄청난 숫자의 대군을 이끌고 유럽을 침공하는 것이다.
70만 대군은 고대부터 사용되었던 비단길을 통해 행진을 계속했다.
대한제국의 서반이 침공에 길을 내주기로 한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에 있는 나라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군대의 행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길을 열어달라는 대한제국의 요청을 거절했다면, 대한제국군에 응징을 당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각 나라의 왕들은 몸소 마중 나와 친정에 나선 황제를 알현했다.
“황후 몸은 괜찮은 것이요?”
스페인 침공도 침공이지만, 이균은 그와 함께 긴 여정에 나선 황후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폐하!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황후는 긴 여행에 대한 걱정보다 공주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설렜다.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소이다. 먼 여정이 될 것인데….”
이균은 황후의 눈물 어린 간청에 황후와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으나, 몸이 약한 황후를 데리고 가길 한 그의 결정을 잘하기로 한 것인지 염려되었다.
“폐하! 잘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저 때문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흐음. 아니요. 방해가 될 일이 없소이다. 어의가 함께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말하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이균은 미소를 지으며 황후를 바라보았다.
***
스페인 마드리드
스페인 침공을 위해 70만 대군이 움직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펠리페 2세는 그의 측근들을 모두 불러 대한제국과의 일전을 논의했다.
“이제 대한제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소.”
회의에는 알바 공작, 산타 크루즈 백작,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 알렉산더 파르네스, 루이 고메스,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 충실한 비서 바테오 바스케스 등 펠리페 2세의 측근이 모두 모였다.
“폐하!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대한제국군의 주력이 오기 전에 먼저 지중해 함대를 선제공격해 제해권을 장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격적 성향의 알바 공작이 대한제국 본대가 오기 전에 지중해 함대를 선제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공작의 말이 옳소. 대한제국 놈들의 본대가 오게 되면 전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요. 지중해 함대를 선제공격해 제해권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면 이번 전쟁은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소.”
펠리페 2세도 알바 공작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하오나 지중해 함대는 해신이라는 불리는 이순신이라는 자가 있지 않습니까? 섣불리 공격을 가했다가 함대를 잃는 날이면 순식간에 전황이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알렉산더 파르네스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이미 이순신의 함대에 대패를 당해 포르투갈과 나폴리를 잃은 경험이 있는 스페인은 이순신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순신이 왜국과의 해전에서도 왜국의 거대한 함대를 전멸시켰다는 소식도 유럽에 널리 알려졌기에 유럽에서 이순신은 이미 해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런 해신이 버티고 있는 지중해 섣불리 공격한다는 것은 스페인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해신 이순신이 있는 지중해 함대를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커다란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알렉산더 파르네스의 생각이었다.
“그대의 말이 일리가 있소. 허나 대한제국 본대가 합류하면 전쟁이 더 어려워질 것이요. 알바 공작의 말처럼 지중해 함대를 먼저 쳐야 승산이 있소. 게다가 이번 전쟁은 오스만 제국이 함께 하기로 했으니, 오스만 제국과 힘을 합치면 지중해 함대를 단숨에 섬멸할 수 있을 것이요.”
알렉산더 파르네스가 신중한 입장을 보임에도, 펠리페 2세는 지중해 함대를 먼저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펠리페 2세는 조무래기라 여겼던 이순신에게 당했던 치욕적인 패전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듣보잡 나라인 조선이라는 곳에서 온 애송이 장수 이순신에게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그렇게 처참히 패배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 이순신에게 처참히 무너졌고, 그때부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칭송받던 스페인의 국운은 기울어갔다.
펠리페 2세는 그 치욕을 반드시 갚아줄 때가 되었다 여겼다.
오스만 제국의 함대와 연합해 지중해 함대에 일격을 가할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으나 그는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3세가 그와의 밀약을 깬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오스만 제국과 연합해 우리에게 치욕적인 패전을 안겨 주었던 지중해 함대를 모조리 불태워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오스만 제국과 교섭에 성공한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도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펠리페 2세의 측근들은 알렉산더 파르네스처럼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선제공격을 감행해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는 알바 공작의 말에 동조했다.
결국 스페인은 지중해 함대를 선제공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폐하! 그렇다면 나폴리를 먼저 칠 것이옵니까?”
선제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가 되자, 지중해 함대의 기항인 나폴리와 리스본 중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흐음. 나폴리가 지중해 함대의 주력이 주둔하고 있고, 오스만 제국과의 연합도 용이하니 나폴리를 먼저 쳐야 하지 않겠소. 그다음에 바로 여세를 몰아 포르투갈을 침공하면 될 것이요.”
“소신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오스만 제국과 연합해 나폴리를 기습공격하면 천하의 이순신이라 해도 우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알바 공작도 펠리페 2세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하하. 좋소이다. 이제 대한제국 놈들에게 당한 수모를 갚아줄 때가 되었소. 지중해 함대를 칠 것이니, 군대를 당장 소집해 전쟁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펠리페 2세는 한참을 껄껄거리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던 지중해 함대에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 펠리페 2세는 껄껄거리며 지도를 펼치고 나폴리를 바라보았다.
나폴리를 치기로 한 펠리페 2세는 함대를 집결시켰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갈레온 선이 바르셀로나 항에 모여들었다.
나폴리 침공의 사령관은 펠리페 2세의 측근 루이 고메스이었다.
루이 고메스는 제법 함대를 이끈 경험이 풍부하기에 그만한 장수가 없었고, 알바 공작이 루이 고메스와 함께 함대를 이끌기로 했다.
***
나폴리 항
이순신 해군참모총장과 장수들이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제독님! 서반아 해군이 선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후청 요원의 보고가 있었사옵니다.”
작전참모 역할을 하는 송여립 장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스페인에 잠입한 정후청 요원에게서 온 첩보를 보고했다.
정후청은 스페인계 정후청 요원을 이미 스페인 곳곳에 침투시켜 스페인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는데, 스페인군이 함대를 바르셀로나 항에 집결시켜 나폴리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징후를 포착해 즉시 지중해 함대에 이를 알렸다.
“흐음. 서반아 군이 우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육군이 도착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감행할 모양이요.”
이순신이 특유의 진중한 표정으로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도 충분히 스페인군이 주력군이 오기 전에 선제공격을 감행해 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제독님! 스페인군 족히 10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할 것이라 하옵니다. 이번 해전은 치열한 해전이 될 것 같사옵니다.”
백전노장 어영담 장군이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흐음. 그렇소. 서반아 왕은 이번 전쟁에 모든 것을 걸었소. 결코 서반아 해군을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요.”
이순신도 사력을 다할 스페인과의 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스페인군을 섬멸할 자신감은 있었다.
“알겠사옵니다. 허나 서반아군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우리 지중해 함대의 사기가 드높으니 이번에도 서반아 함대를 모조리 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돌격장 정운 장군이 평소 그의 성격답게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정운 장군을 보고 있으니 이순신 장군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정운 장군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소이다. 허나 항상 신중히 처리해야 할 것이요. 우리 함대는 나폴리와 리스본에 전력이 분산되어 있으나, 스페인의 대군이 이곳을 집중 공략하면 꽤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요. 게다가 스페인군은 우리와 여러 차례 교전하여 우리 해군의 전략을 잘 알고 있소. 그러하니 예전처럼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요. 그러하니 자만하지 말고 신중히 처리해야 할 것이요.”
“명심하겠습니다.”
이순신은 오랜 시간 동안 장수들과 스페인과의 일전을 논의했다.
스페인의 전력이 결코 만만치 않기에 이순신은 더욱 철저히 전쟁을 준비했고, 함대는 강도 높은 훈련과 함께 탐망선을 띄워 함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
바르셀로나 항
수천 척의 갈레온 선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며, 스페인이 자랑하는 해군들이 함선에 가득 올라탔으며, 일꾼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다.
대형 깃발이 곳곳에 펄럭이고, 스페인 해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갑판에서 출항을 준비했다.
국왕의 명령이 있기는 했으나, 그들은 이순신 장군의 명성을 잘 알고 있기에 전쟁에서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한가득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드디어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소.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 제국에게 치욕을 안겨준 이순신의 목을 베어야 할 것이요.”
갑주를 갖추어 입은 알바 공작이 루이 고메스를 바라보았다.
사실 알바 공작은 자신이 함대를 지휘하고 싶었으나, 알바 공작의 단순 무식함을 아는 펠리페 2세는 그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지 않았기에, 국왕에게 불만이 있었으나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알고 있소이다. 이번만은 이순신도 어쩔 수 없을 것이요. 오스만 제국이 우리와 연합한다는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할 것이요.”
루이 고메스는 엄청난 스페인 제국의 함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화려하게 치장을 한 마차가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했다.
펠리페 2세였다.
마차에서 내린 왕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박해 있는 수천 척의 함선을 바라보았다.
“폐하!”
루이 고메스를 비롯한 군 수뇌부는 펠리페 2세를 향해 예를 표했다.
“이렇게 많은 함선이 모여 있다니…. 장관이구려. 출전 준비는 모두 끝난 것이요?”
“그러하옵니다. 폐하의 군대가 지중해 함대의 함선을 모조리 불태워 버릴 것이옵니다.”
루이 고메스가 반드시 승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흐음. 그대를 믿겠소. 이순신 그놈의 목을 반드시 가지고 오시오. 자! 그럼 어서 출정하도록 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펠리페 2세는 함대에게 출정을 명했고, 곧 수천 척의 함선이 닻을 올리고 마침내 바다로 나아갔다.
갑판에 올라선 스페인군은 점점 멀어지는 항구를 말없이 바라보았고, 항구의 많은 시민들은 그들이 대한제국 함대를 격파하고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손을 흔들었다.
루이 고메스와 알바 공작은 갑판에 올라 펠리페 2세를 향해 다시금 예를 표했고, 곧 수천 척의 함대는 돛을 펼치고 파도를 가르며 나폴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