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형제의 나라 (3)
저 멀리 동아시아에 있는 대한제국의 사신이 뜬금없이 형제의 나라 어쩌고저쩌고하니 황당한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생김새 또한 완전히 달라 피 한 방울 섞인 것 같지 않은데, 형제의 나라라 칭하니 메흐메트 3세는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좌의정 대감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야?”
이조참의도 마찬가지였다.
박성광은 잠시 좌의정 대감이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항복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오스만 제국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 대한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오래전 함께 의기투합해 중원의 당나라와 맞서 싸운 인연이 있사옵니다.”
“함께 힘을 합쳐 당나라와 맞서 싸웠다? 좀 더 말해보시오.”
이항복이 실속 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던 메흐메트 3세는 대한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오래전 함께 힘을 합쳐 중국의 당나라와 맞서 싸운 적이 있다는 이항복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오스만 제국의 대신들도 술렁거리며 이항복의 입에 집중했다.
“폐하. 오스만 제국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을 지배하던 위대한 돌궐제국의 후손이 아니옵니까?”
“뭐. 그렇소만….”
메흐메트 3세는 선황과 스승에게서 그들이 위대한 제국 돌궐의 후손이라는 교육을 받아 왔기에, 그도 당연히 자신들이 돌궐의 후손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폐하! 오스만 제국이 돌궐의 후손인 반면, 저희 대한제국은 고구려의 후손이옵니다.”
“고구려? 그게 어느 나라요?”
고구려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메흐메트 3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폐하! 고구려는 돌궐이 있던 시기에 있던 고대 국가이온데, 돌궐과 고구려는 서로 동맹을 맺어 두 나라를 위협하는 한족의 나라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오?”
오스만 제국은 자신들이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지배하던 돌궐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후손들에게 이를 가르쳐 왔으나, 돌궐과 동맹 관계에 있던 고대 국가 고구려의 존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항복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고구려라는 고대 국가를 말하며 자신들이 고구려라는 고대 국가의 후손인데, 고구려와 돌궐이 동맹을 맺고 그들을 위협하는 적과 함께 맞서 싸웠다는 썰을 푸니, 메흐메트 3세는 자신도 모르게 이항복의 화려한 언변에 빠져들었고, 돌궐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대신들도 이항복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폐하! 돌궐과 고구려는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 폭풍을 뚫고 서로 교류하며 중원의 민족의 위협을 가할 때는 피를 나눈 형제처럼 힘을 모아 목숨을 걸고 그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결국 중원의 당나라에 멸망을 당하였는데, 돌궐제국의 위대한 황제 빌게 가칸께서는 나라를 잃은 고구려 유민을 받아 주시며 돌궐과 고구려는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하였습니다.”
메흐메트 3세와 오스만 제국의 대신들이 흥미를 보이자, 이항복은 신이 나서 돌궐과 고구려의 역사부터 해서 어떻게 동맹을 맺고 형제의 맹약을 맺어 한족과 맞서 싸운 이야기까지 과장할 것은 과장하고 살을 붙여 순식간에 기승전결이 있는 화려한 대서사극을 만들어 냈다.
허균의 화려한 언변에 일부 오스만 제국의 신하들은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 메흐메트 3세도 이항복의 서사극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마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기라도 한 듯 메흐메트 3세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우리 오스만 제국과 대한제국이 그렇게 깊은 인연이 있었다니….”
메흐메트 3세는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제를 이제야 만난 듯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오스만 제국의 선조인 돌궐은 한때 중앙아시아 초원을 지배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결국 당나라에 밀려 본거지를 잃고 오랜 시간 동안 유랑생활을 하다 비잔틴 제국을 몰아내고 이곳에 정착했기에 오스만 제국은 돌궐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있었는데 이항복이 그 향수를 건드린 것이다.
‘역시. 좌의정 대감이로구나.’
이조참의 박성광은 이항복의 화려한 언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항복이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묘한 솜씨가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단숨에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폐하! 대한제국 사자의 말처럼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는 믿을 만한 자가 되지 못하옵니다. 그자는 반드시 우리 제국과 다시 전쟁을 하려 할 것입니다. 반면 대한제국은 우리의 잃어버린 형제가 분명하오니, 다시금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메흐메트 3세가 총애하는 재상 무스타파가 신하들을 대표해 앞으로 나아가 스페인과 함께하기로 한 황제의 생각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신들은 완전히 이항복의 화려한 언변에 넘어온 모양이었다.
“흐음. 대한제국과의 우리 오스만 제국이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스페인과 이미 약조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쉽게 깰 수가 있겠소.”
그가 믿고 의지하는 재상마저 대한제국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메흐메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한제국과 돌궐이 오래전부터 형제의 맹약을 한 깊은 사이였다는 말에 그도 내심 대한제국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었으나, 나라 사이의 약조를 쉽게 저버릴 수는 없기에 난처한 상황이었다.
“폐하! 나라 사이의 약조는 분명 중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뀌면 국익을 위해 바뀔 수 있는 것이옵니다. 오스만 제국과 우리 대한제국이 형제의 맹약을 맺은 형제의 나라라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그깟 음흉한 왕 펠리페 2세와의 약조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그리고 저희 황상 폐하께서는 스페인을 점령하면 형제의 나라인 오스만 제국과 함께 스페인을 나누는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스페인을 분할 점령하면 폐하께서는 잃어버린 지중해 지역의 영향력을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황제가 여전히 갈등을 하는 것 같자, 이항복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흐흠. 스페인을 나누겠다? 그럼 스페인의 절반을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이오?”
이항복이 스페인을 나누어 나누는 방안을 제시하자 메흐메트 3세의 눈이 빛났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항복에게서 다시 확답받은 메흐메트 3세는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흐음. 오늘은 아주 뜻깊은 자리였소. 그대 덕분에 운명을 같이하기로 한 잃어버린 형제를 찾을 수 있게 되었소. 그대의 말이 맞소. 어찌 형제를 버리고 우리 제국을 이교도로 업신여기는 스페인과 손을 잡을 수 있겠소. 형제의 나라 대한제국과 함께하겠소.”
메흐메트 3세는 결국 스페인과의 약조를 깨고 대한제국의 손을 잡기로 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제 대한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천여 년 동안 단절되었던 형제의 맹약을 다시 맺을 수 있게 되었나이다.”
황제의 마음이 돌아서자 이항복이 이조참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이조참의는 감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하하하. 이렇게 든든한 형제를 다시 얻었으니,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오. 이렇게 기쁜 날 가만히 있을 수 없소이다. 연회를 베풀 것이니 먹고 마시고 즐깁시다.”
대한제국이라는 든든한 동맹을 얻게 된 메흐메트 3세는 기분이 좋은 듯 화려한 연회를 열어 대한제국 사절단을 대접했다.
“좌의정 대감, 정말 대단하십니다. 소신 눈물이 날 뻔하였습니다.”
이조참의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어떠한가? 내가 뭐라 했는가? 오스만 황제가 우리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항복도 홍차를 마시며 재밌다는 표정으로 이조참의를 바라보았다.
“대감. 소신은 황제가 끝내 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 할까 봐 가슴이 벌렁거려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조참의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내가 누군데 저런 멍청한 황제 하나 설득 못 하겠나? 누워서 떡 먹기네. 떡 먹기….”
이항복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아이고. 대감 덕분에 살았습니다. 살았어. 저는 오스만 제국 황제가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여기서 그냥 자결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인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오늘은 그냥 즐기게 즐겨.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은 술과 여자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거. 술도 없고 참으로 목이 메이는구만….”
이슬람 국가인 탓에 산해진미가 가득한 연회가 열렸음에도 술을 마시지 못하고 홍차나 홀짝홀짝 마셔야 하니 이항복이 영 재미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연회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고, 곧 화려한 복장을 한 무희들이 나와 경쾌한 음악과 춤을 추니 이항복은 그제야 흥이 나는지 밝게 웃으며 연회를 즐겼다.
***
왜국
“태합 전하! 대한제국에서 원군을 보내라는 황명이 하달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혼다 마사즈미가 이균의 명을 전달했다.
“흐음. 결국! 황제께서 서반아를 치기로 했나 보구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도다완에 담겨 있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혼자 마사즈미를 바라보았다.
대한제국 편에 서서 정적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거한 공을 인정받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왜국 절반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대한제국은 왜국의 절반을 직접 통치하고 나머지 절반은 제후국으로 만들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이 통치하도록 했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조선이 저렇게 거대한 제국이 될 줄이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나날이 커져만 가는 대한제국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였다.
유럽과 먼저 교류를 하고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왜국이었는데, 뒤늦게 문호를 개방한 대한제국이 단시간에 저렇게 대제국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절반으로 쪼그라든 왜국을 다스리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가끔 자신이 대한제국 편에 선 것이 잘한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나, 대한제국 편에 서지 않았다면 그나마 왜국의 통치권도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을 위안했다.
“태합 전하 원군을 보내실 생각이옵니까?”
“하하하.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으냐? 황명을 거역하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서반아 왕이 황제의 사위를 처참히 죽였다고 저렇게 군사를 일으켜 서반아를 치려 하는데…. 황명을 거역하면 큰 벌을 내리실 것이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비록 왜국을 직접 다스리고는 있다고 하나, 제후국으로 대한제국의 통제를 받고 있는 그는 황명을 거역할 용기가 없었다.
“대한제국이 서반아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서반아는 이미 대한제국과의 전쟁에서 여러 번 패하지 않았느냐? 서반아는 대한제국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야. 서반아 왕이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흐름. 얼마나 되는 원병을 보내 주어야 할지 그것이나 생각해야 할 것이야. 원병이 너무 적으면 황제께서 노여워하지 않겠느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도다완을 만지작거리며 어느 정도의 병력을 보내야 황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이균은 남명, 왜국, 여진족 등 대한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각 제후국에 스페인과의 전쟁을 위한 원군을 보낼 것을 요구하는 황명을 내려보냈고, 각 제후국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속속 원군을 편성해 대한제국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