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92화 (192/202)

192화. 형제의 나라 (1)

“폐하! 소첩도 가겠습니다. 공주를…. 공주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황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황후…. 아니 되어요. 한가로이 유랑을 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러 가는 길이오. 그 험난한 길을 어찌 황후가 갈 수 있겠소.”

이균은 경혜 공주를 그리워하는 황후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전쟁을 위해 가는 험난한 길에 황후를 데려갈 수 없었다.

“폐하! 소첩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공주의 얼굴을…. 꼭 보고 싶사옵니다.”

황후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황…. 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요.”

황후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울며 하소연하자, 이균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폐하! 부디 보내주시옵소서. 공주를 보고 싶습니다.”

이균이 아니 된다고 함에도 황후는 거듭 자신도 함께 가겠다며 황제에게 간청했다.

“황후. 이번은 안 됩니다. 전쟁…. 전쟁이 끝나면 내 황후를 데려갈 것이니…. 부디.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시오.”

이균은 경혜 공주를 절절히 그리워하는 황후의 애절함을 알고 있으나, 가뜩이나 몸이 약한 황후를 위험한 전쟁터로 보낼 수 없었다.

“폐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 전 살아 있지 못할 것이옵니다…. 부디 마지막으로 공주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날이 몸이 약해지고 있는 황후는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녀는 죽기 전에 공주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겼다.

“허허. 황후….”

이균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황후의 손을 꼭 잡았다.

쓸데없이 경혜 공주를 멀리 영국으로 시집보내 황후의 마음을 이렇게 심란하게 했다는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

“제독님! 오셨습니까?”

“흐음. 오래간만이오.”

이순신 장군이 마침내 지중해 함대의 기항 나폴리에 도착했다.

이순신을 대신해 지중해 함대를 맞고 있던 이철윤 중장이 이순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흐음. 그동안 노고가 많았소.”

이순신 장군이 지중해 함대를 오랫동안 잘 관리해온 이철윤 중장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순신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 그들과 함께 나폴리에 도착했다.

이순신의 든든한 오른팔 어영담, 돌격장 정운, 지략이 뛰어난 김완, 이순신과 거북선을 함께 개발한 나대용, 이순신과 동명이인 이순신, 그리고 이순신을 항상 보필해온 송여립 등이 모두 함께했다.

“흐음. 서반아의 동향은 어떻소이까?”

자리에 앉은 이순신이 진중한 표정으로 이철윤 중장을 바라보았다.

“제국에서 사자가 다녀간 후 서반아도 전쟁을 직감했는지 군대를 모으고 함대를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이제 서반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소. 우리 육군이 합류하기 전에 서반아군이 우리 지중해 함대를 선제공격할 가능성이 크니 각별히 대비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제독님! 그리고 최근 정후청 요원의 정보에 의하면 서반아 국왕의 측근이 오스만 제국을 다녀갔다고 합니다. 서반아와 오스만 제국이 무엇인가를 꾸미는 것 같습니다.”

이철윤 중장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서반아와 오스만 제국은 서로 앙숙이 아니오? 그런데 그런 두 나라가 손을 잡으려 한다는 말이오?”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펠리페 2세가 일관되게 오스만 제국을 적대시해 왔다는 것을 이순신도 알고 있기에 그들이 서로 손을 잡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스만 제국이 서반아와 손을 잡는다면 우리 배후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움직임을 각별히 살펴야 할 것 같사옵니다.”

“흐음. 이 장군의 말이 맞소이다.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제국이오. 이들이 서반아와 합류한다면 힘든 전쟁이 될 것이오. 오스만 제국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도록 하시오.”

오스만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들은 이순신은 그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라 지시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주마마가 계시는 영기리의 상황은 어떻소이까?”

“공주마마의 아드님이 성공적으로 보위를 이어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공주마마의 요청으로 지중해 함대가 상륙해 공주마마를 돕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경혜 공주의 근황을 궁금해하자, 이철윤 중장은 공주와 영국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경혜 공주가 섭정을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제압하고 성공적으로 섭정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이순신 장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공주는 비록 계집으로 태어났으나, 황제를 빼닮아 비상한 머리와 결단력이 있다는 것을 이순신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하하. 과연 공주마마답소. 공주마마는 여걸이요. 여걸.

이순신은 공주가 사내로 태어났다면 성군이 되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하옵니다. 공주마마께서 영기리 여왕 폐하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여왕 폐하의 지지까지 받아 냈다고 하옵니다.”

“흐음. 다행이구려! 이제 서반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소. 이번 전쟁의 승패도 해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오. 우리 지중해 함대의 손에 전쟁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니 철저히 준비해 반드시 서반아 함대를 제압해야 할 것이오.”

이순신이 진중한 표정으로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순신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장수들과 함께 회의를 주관하며 스페인과의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자마자 나폴리 항으로 나아가 정박 중인 함선의 상태와 병력들의 훈련 상황 그리고 군수물자 등을 둘러보았다.

이순신 장군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음에도 이철윤 중장은 제법 지중해 함대를 잘 이끌어 왔다.

주력선이라 할 수 있는 갈레온선이 천여 척이 넘고, 돌격선인 거북선과 조선의 주력선이었던 판옥선도 제법 갖추어져 있었고, 병력 또한 8만이 넘어 지중해 함대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함대를 둘러본 이순신은 매우 흡족했다.

***

이스탄불

스페인으로 통하는 길을 열기 위해 유럽으로 통하는 길 곳곳에 있는 나라들을 돌던 이항복이 마침내 오스만 투르크의 황성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마지막 관문이로구나!”

육군이 통하는 길을 열라는 특명을 받은 이항복은 특유의 언변으로 각 나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수십만의 대군이 자신들의 나라에 들어온다고 하니 그 진위를 의심하는 나라들이 많았으나, 이항복은 그들 나라의 왕을 모두 설득했다.

이항복과 함께 가며 그의 화려한 언변을 본 이조참의 박성광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동유럽과 중동에 걸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제국의 황제를 설득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였기에, 천하의 이항복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감! 오스만 제국의 황도도 대단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인 줄은 몰랐습니다.”

지중해를 끼고 이국적이고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을 보며 박성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하하. 오스만 제국도 대제국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곳에 예전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고 하지 않나.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니 그럴 수밖에.”

서책을 통해 이스탄불이 유서가 깊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직접 오스만 제국의 황도 이스탄불을 보니 이항복 또한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는 성소피아 성당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아름다웠고, 각종 이국적인 건물과 궁전은 화려함을 자랑했으며, 드넓은 제국 곳곳에서 온 사람들도 도시는 북적거렸다.

과연 이슬람 세력의 패권국의 황도다운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였다.

“그나저나. 대감. 오스만 제국 황제가 길을 열어주겠습니까? 정후청 요원에 의하면 오스만 제국이 서반아 국왕과 함께 우리 제국을 치기로 의기투합하였다고 하던데….”

오스만 제국으로 향하던 도중 이항복 일행은 정후청 요원을 통해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이 극적으로 동맹을 맺어 대한제국과 맞서기로 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러게 말일세. 오스만 제국은 서반아와는 앙숙인데, 어찌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오스만 제국과 스페인이 힘을 합쳐 대한제국과 맞서기로 했다는 정보를 들은 이항복은 힘이 빠져버렸다.

정후청 요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후청 요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황제가 우리를 만나려 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하. 그러하겠지. 일단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숙소나 잡고 커피라도 한잔하세. 생각 같아서는 술이나 마시고 싶은데, 이곳은 회교도의 나라이니 술 마시기는 힘들 것 같고….”

이항복도 걱정이 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본래 낙천적 성격의 그는 일단 숙소를 잡고 긴 여행에서 오는 피곤함을 달래줄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항복은 숙소를 잡고, 일행과 함께 커피를 마신 후 이스탄불 곳곳을 유랑하며 지냈다.

물론 오스만 제국 관료에게 연통을 넣어 메흐메트 3세를 알현할 일정을 잡아 달라 청을 넣었다.

“이야!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로구나. 처자들은 또 어찌 저리 어여쁜지?”

이항복은 오래간만에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휴가라도 온 사람인 양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 이스탄불을 즐겼다.

그러나 그를 수행하기 위해 함께 온 이들은 이스탄불에 도착한 지 벌써 2주가 넘도록 오스만 제국의 황실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좌불안석이었다.

“대감! 아무래도 황제가 우리를 만날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이조참의 박성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참…. 무엇을 그리 걱정하는 것인가! 이 아름다운 도시에 또 우리가 언제 오겠는가! 좀 즐길 때는 즐기도록 하게.”

이항복이 걱정이 한가득한 박성광을 핀잔주었다.

“아니. 그래도. 황제가 우리를 만나주지 않으면 만사가 틀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박성광은 천진난만하게 관광이나 즐기고 있는 이항복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조참의. 우리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걱정할 필요가 없네. 대한제국의 사절단이 이렇게 왔는데, 어찌 되었건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언젠가는 한번 우리를 만나 줄 것이네.”

메흐메트 3세가 뜸을 들이고는 있으나 오스만 제국보다 훨씬 거대한 영토를 거느린 대한제국 황제의 사절단을 마다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항복의 생각이었다.

“대감…. 정말…. 그럴까요?”

“허허.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즐기게. 즐겨….”

이항복 이조참의를 나무라고 다시금 풍류를 즐겼다.

***

오래간만에 이스탄불에 비가 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구나.”

이름 아침부터 비가 내리자, 이항복은 홍차를 마시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이스탄불에 머무른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었건만, 기다리던 오스만 제국 황실에서의 연락은 없었다.

“이보게. 이조참의 비가 내리니 이 도시가 더 멋있어 보이는구만. 뭔가 분위기가 있어 보여.”

“대감. 아직도 황제에게서 연락이 없습니다. 황제가 우리를 만날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조참의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궁에서 연락이 없으니, 그는 모든 것이 틀어졌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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