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85화 (185/202)

185화. 황제의 분노 (1)

“하하하. 무료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그대들이 찾아오니 참으로 반갑소이다.”

이균이 율곡과 김명원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직접 따라주었다.

율곡과 김명원이 예정 없이 찾아오자, 이균이 잠깐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소 무료하던 차였기에 그들이 반가웠다.

자세히 보니 그들도 이제는 많이 늙은 것 같았다.

젊은 시절 혈기 왕성하여 개혁을 부르짖던 율곡도 이제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으며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

“이제 보니 경들의 얼굴도 주름이 가득하구려!”

이균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이제 소신들도 많이 늙었나이다.”

율곡이 멋쩍은 듯 웃었다.

그도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이균과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수십 년이 되니 자신도 모르게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곤 했다.

“참으로 세월이 빨리도 가는 것 같소이다. 어느새 우리의 나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균이 홍차 한 모금을 마시며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 세월이 참으로 무상한 것 같사옵니다.”

정후청장 김명원도 말을 거들었다.

“허허허. 그렇소. 세월이 참으로 무상한 것 같소. 우리 같은 늙은이는 이제 뒷방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인데….”

이균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폐하께서 우리 제국을 일으키셨사옵니다. 폐하는 곧 제국이니 어찌 폐하가 없는 제국을 상상할 수 있겠나이까!”

이균이 자신을 스스로 뒷방 늙은이로 표현하며 이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냐는 식의 말을 하자 율곡이 정색을 하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경답지 않게 그렇게 아부하시오.”

이균은 평소 그답지 않게 율곡이 아부성 멘트를 날리자, 그것이 웃긴 듯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율곡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온 것이요? 좌의정과 정후청장이 함께 온 것을 보니….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기는 한데….”

정후청장과 좌의정이 함께 예정도 없이 황제를 찾아왔기에 이균은 당연히 그들이 이균을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저…. 폐하! 영기리에서 반란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율곡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영기리에서 반란이?”

공주가 시집간 영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은 이균의 눈동자가 커졌다.

가뜩이나 공주를 시집보낸 후 황후가 노심초사하며 공주를 걱정하고 있는데, 영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율곡의 말은 이균을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했다.

“그…. 그러하옵니다. 에식스 백작이라는 자가 여왕께 불만이 있는 귀족들을 규합하여 봉기를 일으킨 것 같사옵니다.”

“에식스 백작이라? 그자는 공주를 데려가기 위해 우리 제국을 찾아왔던 레스터 백작의 양아들이 아니오?”

이균은 여왕의 연인이자 총애를 받는 레스터 백작의 양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레스터 백작의 양아들이라면 그 또한 여왕이 최측근이라 할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을 것만 같은데,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허나 여왕이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에식스 백작을 보냈는데 반군에 패해 크게 노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에식스 백작이 여왕에 반기를 든 모양입니다.”

정후청장 김명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흐음. 영기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왕이 군권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반란은 손쉽게 진압되었을 것 같은데?”

이균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있기에 에식스 백작이라는 자가 일으킨 반란을 쉽게 진압했을 것이라 여기며 영국에서 일어난 반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 그것이 여왕의 생일파티에 반군이 기습하여 여왕이 목숨을 잃을 뻔한 모양입니다.”

율곡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무엇이라! 여왕의 목숨이?”

영국에서 일어난 반란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균은 여왕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는 율곡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하옵니다. 무방비 상태로 기습 공격을 받아 여왕께서 큰 위험에 처했던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러했구만…. 그럼 반란은 어떻게 진압한 것이오?”

이균이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정후청장 김명원을 바라보았다.

“저…. 그것이 경혜 공주 마마를 호위하는 호위 부대가 마침 근처에 주둔하고 있다가 반란이 일어난 소식을 알고 달려가 반군을 진압했다고 하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공주의 호위 부대가 왜 그곳에 가 있었다는 것이오?”

공주를 호위하라고 보낸 부대가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반군을 소탕했다는 말을 들은 이균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그것이 공주마마께서 여왕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여왕 폐하와 함께 계셨다고 하옵니다.”

“아니. 지금 공주가 반란이 일어난 그곳에 여왕과 함께 있었단 말이오?”

공주가 반란이 일어난 곳에 있었다는 말을 들은 이균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러나 공주님은 무사하시다고 하옵니다.”

정후청장 김명원이 말했다.

“흐음. 그게 사실이오? 공주가 무사하다는 것이?”

공주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이균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여전히 걱정되는지 다시 김명원에게 이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허나….”

김명원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후청장! 왜 그러는 것이오?”

정후청장 김명원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울먹이자 이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공주마마의 부군이신 제임스 국왕께서…. 그만 반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셨다 하옵니다.”

“그…. 것이 사실이오?”

이균이 손에 들고 있던 홍차 잔을 떨어트렸다.

공주의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흑흑.”

율곡과 정후청장이 울먹이며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가 전사한 소식을 이균에게 알렸다.

이균은 거듭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딸 중에 가장 어여쁘고 총명했기에 이균과 황후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공주를 이역만리 영국으로 시집보내는 것은 이균과 황후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렇게 금지옥엽 키운 공주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딸이 졸지에 과부가 되어 자식을 홀로 키워야 한다니 이균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벅차오르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참으로 공주가 딱하게 되었구나…. 지아비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클 것인가…. 이를 어쩐단 말이냐. 황후가 이 사실을 알면….”

이균은 말을 잊지 못했다.

가뜩이나 멀리 떠난 공주를 그리워하고 있는 황후인데, 공주의 남편이 전사한 사실을 알면 몸이 약한 황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이균은 걱정이 되었다.

이균이 하염없이 슬퍼하자, 율곡과 김명원도 침통한 표정으로 황제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후청장 김명원이 입을 열었다.

“폐하! 그리하온데 이번 에식스 백작의 반란에 서반아가 연관되어있는 것 같사옵니다.”

“지금 서반아라 했소?”

하염없이 슬픔에 잠겨 있던 이균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후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요원들의 정보에 의하면 서반아가 에식스 백작을 지원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옵니다.”

“이…….런. 그럼 서반아 왕이 에식스 백작의 반란을 부추겼다는 것이오?”

영국의 반란에 서반아가 개입되었다는 말에, 이균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서반아 왕과 영기리 여왕 폐하와 거의 원수지간이 아닙니까. 에식스 백작이 여왕 폐하에 불만을 품은 것을 안 서반아 왕이 이참에 여왕 폐하를 제거하려 반란을 부추긴 것 같사옵니다.”

“이런…. 왕이라는 자가 그런 못된 짓을…. 반란을 부추겨 사위를 죽음으로 몬 서반아 왕을 용서할 수 없소이다.”

이균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서반아 왕 때문에 사위가 비명횡사했다는 사실을 안 황제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폐하! 서반아와 전쟁이라도 생각하시는 것인지?”

율곡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흐음. 전쟁을 해야 한다면 해야겠지요. 서반아 왕의 농간 때문에 사위가 죽지 않았소. 이건 우리 제국에 대한 도전이오. 오만방자한 서반아 왕을 용서할 수 없소이다.”

사위를 잃은 이균의 분노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서반아 왕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 이균의 생각이었다.

“당장 조회를 소집하시오. 대신들과 서반아 문제를 논의해야겠소이다.”

“알겠습니다. 황상 폐하!”

***

경혜 공주의 남편 제임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황후는 한참을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스코틀랜드 국왕과의 사이에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서신을 받고 기뻐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공주가 졸지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할 것을 생각하니 공주의 운명이 한없이 가엾기만 했다.

“황후!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세요. 황후마저 탈이 날까 걱정이오.”

이균은 애처롭게 울고 있는 황후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몸이 온전하지 않은 황후이기에 이균은 황후가 혹시 혼절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어 황후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폐하! 지아비를 잃었으니 홀로 살아가야 할 공주가 안쓰럽습니다. 앞길이 창창하거늘…. 어찌.”

젊디젊은 공주가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황후는 거듭 눈물을 흘렸다.

“황후! 공주는 잘 이겨낼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내 공주를 반드시 지켜 줄 것이오.”

이균은 시름에 잠긴 황후를 거듭 위로했다.

“폐하….”

이균이 황후를 위로하자, 그녀는 그제야 눈물을 거두었다.

***

“폐하! 제임스의 아들이 스코틀랜드 국왕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펠리페 2세의 비서 마테오 바스케스가 스코틀랜드의 소식을 아뢰었다.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그렇게 되면 그 대한제국에서 온 계집이 섭정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사옵니다. 왕비가 어린 국왕의 어머니가 되니 섭정을 할 것입니다. 그 왕비가 속전속결로 대관식을 거행하고 지중해 함대의 병력을 상륙시켜 반대하는 귀족들을 감금시켜 군권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옵니다.”

“흐음. 계집 주제에…. 별짓을 다 하는구나. 제 아비를 닮은 것인지….”

경혜 공주가 주도면밀하게 그녀의 자식을 보위에 앉혔다는 얘기를 들은 펠리페 2세는 몹시 불쾌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왕비를 계집이라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사옵니다.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단숨에 스코틀랜드의 군권과 왕권을 모두 장악한 여자이옵니다.”

펠리페 2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딱한 나라가 아니냐.”

“폐하! 무슨 말씀이신지?”

마테오 바스케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왕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나 할 것 없이 모두 계집들이 설치는 나라가 아니냐. 계집들이 저렇게 설치니 저놈의 나라는 곧 망할 것이다.”

스페인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발목을 잡은 대한제국과 영국에 진절머리가 난 펠리페 2세는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고 싶은 듯 한참을 껄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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