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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83화 (183/202)

183화. 경혜 공주 스코틀랜드 왕국의 섭정이 되다 (2)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갑자기 나타나자 대관식에 모여 있던 귀족들은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왕께서!”

“그…. 그러게 말이요. 여왕 폐하께서 이렇게 에든버러에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모턴 백작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경혜 공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그였지만, 공주에게서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놀라워하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여왕은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주와 요람에 누워 있는 프레드릭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시종에게서 스코틀랜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검을 건네받은 후 그 보검을 공주에게 하사했다.

“제임스 국왕의 유일한 적장자 프레드릭이 스코틀랜드 왕국의 새로운 국왕이 되었으니 백성과 귀족들은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거라!”

엘리자베스 여왕이 프레드릭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인정하자, 공주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귀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프레드릭을 국왕으로 받들겠다고 맹세했다.

새로운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이 된 프레드릭은 천진난만하게 여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코틀랜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경혜 공주의 아들 프레드릭을 공식적으로 국왕으로 인정하자, 그 정통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

일주일 전 런던

성대한 생일 파티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제대로 음식도 먹지 않은 채 궁에 머무르며 두문불출했다.

로버트 데버루가 봉기를 일으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경혜 공주를 호위하는 대한제국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여왕은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왕권을 더욱 공고히 했으나, 그녀는 이번 일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은 것 같았다.

믿었던 로버트 데버루의 반란은 그녀에게 큰 실망감과 깊은 상처를 주었다.

여왕은 초췌한 표정으로 경혜 공주가 선물한 커다란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초상화 속의 모습은 아직도 저리 젊은 것 같은데…. 참으로 세월은 무상하구나.”

초상화 속 여왕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여왕은 이제 자신이 늙고 볼품없는 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대영제국의 번영을 위해 헌신했다 여겼는데, 믿었던 측근이 배신의 칼날을 들이대니 그 상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물지 않았다.

“가엾은 것….”

여왕은 자신 때문에 과부가 되어 어린아이를 홀로 키워야 할 경혜 공주가 더욱 마음에 쓰였다.

자신만 아니면 공주가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인데, 제임스가 죽은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공주에게 진 마음의 빚을 꼭 갚고 싶었다.

“폐하! 대신들이 들었습니다.”

여왕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시종이 귀족들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래 들라 하여라!”

여왕이 들라 하자, 여왕의 최측근인 벌린 남작을 비롯한 귀족들이 차례로 집무실에 들어왔다.

“여왕 폐하! 몸은 괜찮으십니까?”

벌리 남작 윌리엄 세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왕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로버트 데버루의 반란 이후 건강이 많이 상한 여왕이 걱정되었다.

“걱정할 것 없소이다. 사람이 늙었으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소.”

엘리자베스 여왕이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어투로 말했다.

“여왕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여왕 폐하는 우리 잉글랜드 왕국의 모든 것이옵니다. 부디 마음을 굳건히 하옵소서!”

벌릴 남작이 머리를 조아리며 여왕에게 마음을 굳건히 하라 말하였고, 다른 귀족들도 이에 동조하며 여왕의 안위를 걱정했다.

“하하하. 고맙소이다. 그래도 그대들밖에 없구려. 내가 그대들을 이렇게 모이라 한 것은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문제를 논의하고자 함이오. 그대들도 알다시피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가 이 몸을 지키기 위해 반군과 싸우다 전사를 하여 지금 스코틀랜드 왕의 자리가 비어 있어요.”

여왕이 다소 쓸쓸한 목소리로 귀족들을 소집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경혜 공주에게서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을 놓고 귀족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에, 이를 논의하기 위해 귀족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귀족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습니다.”

월터 롤리 경이 여왕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흐음. 의견이 분분하다. 제임스 국왕의 적장자가 있거늘 무슨 의견이 그리 분분하다는 것이요.”

여왕의 심기가 다소 불편한 것을 감지한 귀족들은 여왕의 눈치를 살피며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폐하! 분명 제임스 국왕의 적장자는 프레드릭 왕자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게 되면 왕비께서 섭정하려 하실 것인데, 왕비께서 섭정하게 된다면 대한제국이 사실상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귀족들은 그것을 염려하고 있사옵니다.”

눈치를 보고 있다가, 필립 시드니 백작이 입을 열었다.

잉글랜드 귀족들도 여왕의 눈치를 보고는 있으나, 경혜 공주가 낳은 아들 프레드릭이 보위를 넘겨받게 되면 대한제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필립 시드니 백작도 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무슨 대한제국이 스코틀랜드를 통치한다는 것이오. 프레드릭은 제임스의 피를 이어받았소이다. 왕의 피를 이어받은 적장자가 당연히 보위를 이어받아야 하는 것이거늘…. 그리고 왕비는 이제 스코틀랜드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여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나! 여왕 폐하. 그렇게 되면 스코틀랜드 국왕이 우리 잉글랜드 왕국의 다음 보위도 이어받을 가능성이 커지는데….”

벌리 남작 윌리엄 세실이 말을 얼버무리며 여왕을 바라보았다.

“남작! 그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이오? 내가 죽게 되면 프레드릭이 보위를 이어받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대한제국의 영향력이 우리 잉글랜드에게도 미친다는 것이오?”

“그…. 그러하옵니다.”

여왕의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여왕의 사후를 말하는 것이 자칫 불경스럽게 여겨질까를 염려한 벌릴 남작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으나, 그는 경혜 공주의 아들이 스코틀랜드 국왕이 되면 후사가 없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까지 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영국을 경혜 공주가 통치하게 되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그대들의 걱정이 무슨 뜻인지 알겠소. 허나 어차피 내가 후사가 없으니 우리 튜더 왕조는 단절될 수밖에 없소. 어차피 제임스 국왕이 내 보위를 넘겨받도록 되어 있었으니, 그 아들이 보위를 넘겨받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겠소.”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후사가 없었다.

헨리 8세의 후손은 완전히 단절되었기에 여왕이 죽으면 헨리 7세의 후손 중에 왕위 계승자를 찾아야 했다.

헨리 8세의 누나 마거릿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제임스 5세가 메리 여왕의 아버지였으며,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이 단리경의 어머니였기에 제임스는 부계와 모계 양쪽으로 투더 왕조의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임스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여왕이나 잉글랜드 귀족들은 당연히 제임스 스코틀랜드 국왕이 여왕의 보위를 이어받을 것이라 여겼으나, 제임스 국왕이 급히 세상을 떠나니 귀족들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국왕의 후계만을 정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으나, 스코틀랜드 국왕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국왕의 자리까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니, 경혜 공주의 아들 어린 프레드릭이 보위를 이어받으면 영국을 통째로 대한제국 황족인 경혜 공주에게 바치는 것은 아닌지를 귀족들은 걱정하는 것이었다.

“여왕 폐하! 그래도 귀족들의 걱정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제임스 국왕의 왕비는 대한 제국 황족이옵니다. 어린 제임스 국왕의 후손이 왕이 되면 경혜 공주의 섭정이 계속될 것인데…. 대한 제국이 분명 우리 영국을 삼키려 할 것입니다. 차라리 유력한 귀족의 자제를 양자로 들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왕이 강한 의지를 보이며 경혜 공주의 아들 프레드릭을 스코틀랜드 국왕에 앉히려 했으나, 귀족들의 반발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벌리 남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엘리자베스 여왕께 다시 한 번 스코틀랜드 차기 국왕에 대한 여왕의 생각을 재고해달라며 차라리 유력 귀족의 자제를 여왕의 양자로 들여 여왕의 후계자를 든든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귀족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크자, 가뜩이나 심기기 불편한 여왕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이미 식어버린 홍차를 마실 뿐이었다.

여왕이 아무 말 없이 홍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녀가 귀족들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귀족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여왕을 지켜볼 뿐이었다.

여왕은 계속 식어버린 홍차를 연거푸 마시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나라를 위한 걱정은 잘 알고 있소이다. 허나 제임스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오. 제임스는 우리 영국 왕실을 보존해준 영웅이란 말이오. 게다가 왕비의 호위 부대가 반군을 모두 토벌하였소. 제임스와 왕비가 그렇게 우리 왕실을 위해 희생했는데, 그들을 매몰차게 버리라는 것이오? 프레드릭은 제임스의 적장자요. 당연히 그가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 것이오.”

“여…. 여왕 폐하!”

여왕이 노기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벌리 남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 차기 국왕으로 경혜 공주의 아들 프레드릭이 되는 것을 지지하기로 했고, 여왕의 의사가 명확하자 귀족들은 더는 이를 반대하지 못했다.

잉글랜드의 입장이 정리되자, 여왕은 밀사를 스코틀랜드로 보내 여왕의 뜻을 경혜 공주에 전했고, 여왕의 뜻을 알게 된 경혜 공주는 그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여왕의 지지는 공주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개적인 지지 속에 대관식은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여왕 폐하! 이렇게 먼 곳까지 직접 오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경혜 공주는 여왕이 이렇게 직접 대관식까지 올 것이라 여기지 못했다.

여왕이 프레드릭을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데, 이렇게 대관식에 그녀가 직접 참석하니 이는 여왕이 자신의 후계자로 프레드릭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상 만천하에 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경혜 공주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반대하는 귀족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왕비! 당연히 내가 와야 하지 않겠소. 일부 귀족 놈들이 왕위 계승을 반대한다고 하던데…. 그놈들이 누군지 알려주시오. 내 혼꾸멍을 내줄 것이니.”

여왕이 공주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여왕 폐하!”

엘리자베스 여왕의 말에 공주는 감격스러운지 제대로 말을 잊지 못했다.

여왕이 이렇게 말해주니 말만이라도 공주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여왕이 대관식에 참가했다는 소식은 곧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귀족들 사이에 알려졌고 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여왕은 한동안 에든버러에 머무르며 공주를 지켜주기로 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공주 부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

“무엇이라! 왕비가 비밀리에 대관식을 치렀다는 것이냐?”

대관식이 열렸다는 말을 들은 머리 백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 듯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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