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영국에서 일어난 쿠데타 (6)
남편이 반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는 말을 들은 경혜 공주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그것이 무…슨 말이냐. 제임스가 무엇이 어찌 되었다고?”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가 전사했다는 이용평 대좌의 말을 들은 여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그러하옵니다. 반군의 숫자가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사…옵니다.”
이용평 대좌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제임스가 늙은 이 몸을 지키려 목…숨을 버리다니….”
여왕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경혜 공주는 말없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여왕의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자리가 순식간에 로버트 데버루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반란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사랑하는 남편마저 반군의 손에 비명횡사했으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공주!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흑흑.”
여왕은 졸지에 과부가 된 경혜 공주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제임스가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어찌 내게 이런 시련을….’
공주는 여전히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갓 태어난 아이의 재롱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난 남편이 한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봉기를 일으킨 반군을 제압했으나, 스코틀랜드 국왕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이용평 대좌도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떨구었다.
***
“여보! 어찌 이렇게 저를 버리고 먼저….”
공주는 온몸이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남편의 시신을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 밀려들었다.
무엇보다 더는 아버지를 볼 수 없는 프레드릭의 가엾은 운명이 더욱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가엾은 것….”
남편의 시신을 붙잡고 한없이 눈물을 떨구는 공주를 바라보며 여왕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흐느꼈다.
반군의 봉기는 제압했지만, 스코틀랜드 국왕이 희생되었기에 그 상처가 너무나 컸다.
로버트 데버루가 봉기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왕실 근위대는 수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부랴부랴 궁으로 왔지만, 이미 공주를 호위하던 대한제국군에 의해 봉기가 모두 진압된 뒤에 도착했다.
반군의 시신들은 수습되어 불구덩이에 던져졌고, 봉기에 가담했던 살아남은 귀족들은 두 손이 꽁꽁 묶여 고개를 떨어뜨린 채 끌려갔다.
봉기를 일으킨 주동자 로버트 데버루의 목은 런던으로 이송되어, 효수되었고 시민들은 로버트 데버루의 목을 향해 돌을 던지며 치욕스러운 욕을 했다.
런던에 도착한 여왕은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을 모조리 처형하고 그 일족을 모조리 잡아들이라 명을 내렸고, 여왕을 내쫓고 새로운 왕을 추대해 권력을 잡고자 했던 그들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어 후들러 후작, 제임스 남작 등 반군에 가담한 귀족은 모두 처형되었다.
“죽여라!”
“반역자를 처단하라!”
반란에 가담했던 귀족들이 모진 고문을 당했는지 처참한 모습으로 교수대에 올라서자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욕설을 하며 그들을 당장 죽이라 외쳤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여왕에 반기를 든 귀족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예상하지 못한 듯 눈물을 떨구었으나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그들은 결국 시민들의 욕설과 돌 세례를 받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들의 일족은 귀족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비참한 신분이 되었다.
그리고 반란에 작은 동조라도 하거나, 평소 여왕의 통치에 반감을 품고 있던 귀족을 색출하여 그들을 처단했다.
런던은 한동안 공포스러운 피의 숙청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여왕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한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의 장례식이 성대해 치러졌다.
그의 관을 실은 마차가 런던 시내를 통과하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런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비록 여왕의 후계자로 이미 정해져 있었으나, 아직은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별개의 왕국이라 할 것인데, 여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제임스 국왕의 죽음은 런던 시민들을 감동하게 했다.
런던 시민들은 제임스의 관을 실은 마차에 꽃을 던지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왕비께서 가엾게 되었구만!”
“그러게, 말이야. 갓 태어난 왕자는 어떻고….”
런던 시민들은 제임스 스코틀랜드 국왕의 죽음도 애처로운 것이었으나, 지아비를 잃고 아들을 홀로 키워야 하는 경혜 공주 또한 안쓰럽게 생각했다.
런던 시내를 돈 제임스 왕의 관을 실은 마차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했다.
그의 관이 도착하자 장엄하고 슬픈 장송곡이 울려 퍼졌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제임스의 관 앞으로 다가와 눈물을 떨구었다.
“제임스…. 이 못난 여왕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제임스의 주검 앞에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여보! 프레드릭은 잘 키울 것이니…. 부디 편히 눈을 감으세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슬픈 이는 지아비를 잃은 경혜 공주였다.
공주는 아직도 남편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관속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 먼바다를 건너 낯선 나라에 왔기에 남편과 죽는 순간까지 함께할 것이라 여겼는데, 뜻하지 않게 남편을 잃게 되니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제임스가 누워있는 관을 어루만지고 있었고, 공주의 애처로운 몸짓에 여왕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흐느껴 우는 공주와 여왕의 모습에 분위기는 침울했고, 장례식장에 모인 귀족들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런던에서 장례식을 마친 제임스의 시신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궁 바로 옆 사원에 안장되었다.
왕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스코틀랜드 왕국의 백성들과 귀족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국왕을 애도했다.
***
“공…공주! 아니 된다…. 공주!”
“황후! 무슨 일이요. 왜 그러는 것이요.”
황후가 공주의 이름을 부르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자, 이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영국으로 시집간 경혜 공주의 이름을 부르던 황후가 땀에 흠뻑 젖은 채 눈을 떴다.
“황후! 괜찮은 것이요? 왜 이렇게 식은땀을…. 악몽을 꾸기라도 한 것이요?”
“폐…. 폐하!”
이균이 황후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낀 황후가 부끄러운 듯 말했다.
“이제 정신이 드는 것이요? 도대체 무슨 악몽을 꾼 것이요?”
최근 들어 몸이 더욱 쇠약해진 황후이기에 이균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황후는 이균이 건네준 차가운 물을 마시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셨나 보옵니다.”
자신 때문에 황제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여긴, 황후가 민망하며 말했다.
“지금. 그것이 문제요? 황후의 몸이 날로 쇠약해지니 걱정이구려.”
이균이 황후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
“괜…. 괜찮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래. 무슨 악몽이라도 꾼 것이요? 공주의 이름을 그렇게 애처롭게 부르던데….”
“폐하! 공주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꿈을 꾸었나이다. 혹시 공주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옵니다.”
이균의 예상대로 황후는 경혜 공주가 잘못되는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황후는 여전히 꿈이 생생한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허허. 몸이 허하니 악몽을 꾸는 것이야. 공주는 잘 있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아이를 출산하고 잘 있다고 하지 않소.”
“그렇긴 하오나, 꿈이 워낙 생생한지라….”
가장 아끼던 경혜 공주를 멀리 스코틀랜드에 시집보낸 황후는 공주가 더욱 그리웠다.
“흐음. 황후 걱정하지 말구려! 공주는 현명하니 잘 적응해 살고 있을 것이요.”
이균은 사랑하는 황후가 공주를 멀리 떠나보내고 그리움에 눈물로 지새우고 있는 황후가 안쓰러웠다.
공주를 괜히 스코틀랜드 국왕에게 시집보낸 것은 아닌지 후회가 들 정도였다.
“그러하겠지요. 괜히 저 때문에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시고, 어서 주무시지요.”
황후는 자신 때문에 잠을 설친 이균에게 미안한 감정이 더욱 들었다.
황제의 말처럼 공주가 탈 없이 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스페인 마드리드
“에식스 백작이 여왕을 제거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시도니어 공작이 펠리페 2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멍청한 녀석…. 로버트 데버루를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로버트 데버루의 봉기기가 실패했다는 말을 들은 펠리페 2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에식스 백작이 여왕에 반감을 품고 있는 귀족들을 규합해 봉기를 일으킬 것이니 지원해달라는 밀지를 받은 펠리페 2세는 눈엣가시 같은 엘리자베스를 제거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용병과 군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본래 멍청하고 아둔한 로버트 데버루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고도 봉기에 실패했으니, 펠리페 2세는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여왕이 궁지에 몰렸으나, 대한제국군이 반군을 진압했다고 합니다.”
펠리페 2세의 충직한 비서 마테오 바스케스가 입을 열었다.
“또 대한제국군이? 그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다는 것이냐?”
대한제국이 또다시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는 말을 들은 펠리페 2세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번번이 스페인 제국이 하는 일을 가로막고 방대한 식민지를 빼앗더니, 영국 여왕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마저 대한제국군이 가로막았다고 하니, 펠리페 2세의 심기는 무척 불편했다.
“스코틀랜드 국왕의 왕비를 호위하기 위해 온 대한제국군이 여왕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던 핫필드 궁전 인근에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런. 하필 그곳에 대한제국군 놈들이….”
펠리페 2세는 기가 찼다.
“폐하. 여왕 대신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가 죽었다고 합니다.”
루이 고메스 백작이 입을 열었다.
“늙은 여왕 대신 제임스가 희생을 했구만….”
펠리페 2세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폐하! 스코틀랜드 국왕은 여왕의 왕위를 계승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자가 죽었으니…. 다음 보위를 놓고 영국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여왕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번 봉기에서 제임스를 제거하였으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이 분열된 틈을 노리면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시도니아 공작이 펠리페 2세를 바라보았다.
“흐음. 여왕의 다음 보위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 제임스 왕이 얼마 전에 아들을 낳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어리고, 순수 혈통이 아니라 반쪽은 대한제국 황실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보위를 이어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만 되면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올 수도 있겠어!”
펠리페 2세는 시도니아 공작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비록 여왕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여왕의 보위를 이어받을 스코틀랜드 국왕이 제거되었으나, 여왕의 사후 영국은 보위를 놓고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 틈을 타 골칫덩어리 영국을 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펠리페 2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 펼쳐진 커다란 지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