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영국에서 일어난 쿠데타 (5)
이용평 대좌가 이끄는 800여 명의 갑사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출입문을 막고 있는 반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 악”
기병들은 활을 쏘며 적진을 향했는데, 반군들은 순식간에 들이닥친 호위 부대에 놀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막…. 막아라!”
-타타타 탕-
동료가 쓰러지고 나서야 반군은 대한제국의 호위 부대를 향해 조총을 발포했으나, 대한제국군은 조총을 무서워하지 않고 말을 달려 출입문을 지키고 있는 반군들을 모조리 소탕했다.
“시간이 없다! 어서! 여왕 폐하를 구하라!”
출입문을 열고 핫필드 궁 안으로 들어선 대한제국군은 곧바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는 정예 황실의 용호군 출신의 갑사들이기에 오합지졸 반군과는 수준이 달랐다.
-타타타 탕-
대한제국군은 기병 500기, 조총병 30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병의 뒤를 이어 달려온 조총병들은 이내 궁 안으로 들어서 대열을 갖추어 조총을 발포했다.
“으…. 악”
“살…. 살려줘!”
궁을 점령한 후 여왕을 제거하고 부귀영화를 얻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반군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제국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갔다.
대한제국군은 하나하나 반군이 점령하고 있던 주요 거점들을 탈환하며 여왕과 공주를 찾아 나섰다.
“백.....작님! 대한제국군 놈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여왕과 공주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에식스 백작을 향해 반군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 대한제국군의 출현을 알렸다.
“무…. 것이라. 대한제국군 놈들이….”
대한제국군이 궁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로버트 데버루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 그러하옵니다.”
“얼마나 온 것이냐?”
“800여 명 되는 것 같사옵니다.”
“그럼 우리 군의 숫자가 더 많지 않으냐. 천 명도 안 되는 놈들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냐!”
반군의 숫자가 3천 명이나 되는데 천 명도 안 되는 대한제국군에 고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로버트 데버루는 반군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백작님! 대한제국군의 기세가 너무 강합니다. 비록 천 명이 안 된다고 하나 무장이 잘 되어 있고 또 대한제국의 정예 병사들이기에….”
“이런 그걸 말이라 하는 것이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왕을 찾기 전까지 막아야 한다. 막아야!”
로버트 데버루가 역정을 내며 말했다.
“백작! 이거 거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니오?”
후들러 후작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로버트 데버루를 바라보았다.
대한제국군이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궁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은 반군에 가담한 귀족들이 술렁였다.
반군의 숫자가 3,000명이나 된다고는 하나 대부분은 용병이거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비정규군이었다.
반면 대한제국군은 응양군과 용호군 출신인 대한제국 황실의 정예 병력으로 일당백의 용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반군에 가담한 귀족들도 대한제국군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여왕만 잡으면 끝이요. 끝. 그런데, 제기랄. 여왕 이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야.”
에식스 백작은 다급했다.
여왕을 사로잡지 못하면 쿠데타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그 순간 반군 여러 명이 시종 한 명을 잡아 왔다.
“백작! 이놈이 여왕이 숨은 은신처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라! 그것이 사실이냐!”
시종이 여왕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고 말하자, 로버트 데버루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하옵니다. 이놈이 이 궁에서 오랫동안 시종을 들던 놈이라 하옵니다. 이 궁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놈이옵니다.”
“흐음. 그래! 여왕이 어디에 숨이 있는지 당장 말하거라!”
로버트 데버루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종을 노려보았다.
“살…. 살려주시옵소서…. 저…. 는 아무….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시종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어서 말을 하거라!”
시종이 여왕이 있는 곳을 모른다고 하자 로버트 데버루가 분노한 표정으로 칼을 빼 들어 시종의 목을 겨누었다.
“백…. 작님!”
목숨을 위협받은 시종은 결국 여왕이 은신하고 있는 곳을 자백했다.
“으하하하. 여왕의 운명도 여기서 끝이로구나! 어서 여왕을 잡으러 가자!”
로버트 데버루는 병력을 나누어 상당수의 병력에게는 대한제국군을 막으라 명하고 자신은 귀족들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시종의 안내를 받아 여왕이 숨어 있는 은신처로 향했다.
“여왕 폐하를 구해야 한다!”
반군들은 대한제국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총과 활을 쏘며 저항했다.
여왕과 경혜 공주를 구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용평 대좌는 전 병력을 향해 돌격을 명했다.
-타타타 탕-
“으…. 악!”
조총병들은 대열을 맞추어 반군들을 향해 조총을 쏘아댔다.
반군들이 가지고 있는 총보다 사거리와 위력이 월등히 큰 조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반군들을 그대로 명중했고, 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반군들도 총을 쏘며 응수했지만, 총에 대한 숙련도가 떨어지는 그들이 쏘는 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대부분 대한제국군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조총병들이 반군들의 전열을 흩어놓자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반군들을 향해 돌진했다.
500기의 정예 기마대는 반군이 쏘는 총탄을 피해 순식간에 반군들의 진영까지 도달해 반군들을 빙빙 돌며 활을 쏘았다.
“으악!”
“살려줘…!”
기마병들이 쏜 화살은 반군들의 급소를 그대로 명중시켜 그들을 쓰러트렸다.
기병들이 그들을 빙빙 돌며 쉼 없이 활을 쏘자, 반군들은 무척 당황했다.
몽골 기병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법이지만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법이기에 그들은 당황하여 제대로 대응 사격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무엇 하는 것이냐! 공격하라! 총을 쏘란 말이다!”
반군을 이끄는 지휘관은 반군들에게 총을 쏘라고 고함을 치고 있었으나, 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기에 가뜩이나 조준 실력이 형편없는 반군들은 기병들을 제대로 명중시킬 수 없었다.
“후퇴!”
“도망쳐!”
반군 진영은 금세 무너져 내렸고, 이미 절반 이상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나뒹구는 것을 본 반군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도주했다.
“여왕 폐하를 찾아라!”
“공주님을 구해라!”
반군들 진영을 돌파한 대한제국군은 궁 곳곳을 돌아다니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경혜 공주를 찾아다녔다.
***
“거기 숨어 있는 것 다 안다. 문을 열어라!”
반군들이 여왕과 공주가 숨어 있는 은신처의 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렸다.
“이…. 이놈들이!”
반군들이 자신이 숨어 있는 은신처를 찾아내자 여왕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 여왕 폐하!”
경혜 공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왕을 바라보았다.
“공주! 결국…. 이렇게 되는구려. 미안하구나.”
여왕이 체념하듯 말했다.
“여왕 폐하! 마음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남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여 그녀 또한 걱정이 한가득하였지만, 공주는 여왕을 위로했다.
“문을 당장 열어라! 무엇 하는 것이냐!”
여왕이 문을 열지 않자 로버트 데버루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네 이놈! 감히 네놈이 반란을 도모하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냐!”
여왕이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로버트 데버루를 나무랐다.
“아직도 네년이 여왕인 줄 아는 것이냐. 안 되겠구나! 문을 부숴라!”
여왕이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로버트 데버루는 문을 부수라 명을 내렸고, 반군들은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반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반군들이 은신처에 쏟아져 들어오자, 여왕을 지키는 근위대 병사들이 칼을 빼 들고 반군들을 향해 돌격했다.
병사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고, 근위대가 휘두르는 칼에 반군 수십 명이 쓰러졌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반군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충직한 근위대 병사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반군들을 향해 칼을 겨누었으나, 결국 그들은 모두 쓰러져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이…. 이놈! 감히…. 네놈이….”
근위대 병사들이 그녀 앞에 쓰러지자, 여왕이 분노하며 로버트 데버루를 노려보았다.
“여왕 폐하! 이제 모든 것이 끝났소이다. 이제 그 무거운 권좌에서 내려오시지요.”
로버트 데버루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여왕을 희롱했다.
“감히 여왕 폐하께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그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소!”
경혜 공주가 로버트 데버루의 무례한 짓을 나무랐다.
“하하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구나. 네 년들의 운명은 여기서 모두 끝났다. 이제 네 년들은 왕이나 왕비가 아니란 말이다.”
로버트 데버루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배은망덕한 녀석! 이따위 짓을 하고도 네놈의 목숨이 온전할 줄 아느냐!”
사면초가에 몰린 여왕이었지만 그녀는 여왕의 품위를 잃지 않고 에식스 백작을 향해 호통을 쳤다.
어렵게 왕위를 차지하고 스페인 제국의 위협 속에 왕국을 굳건히 지킨 그녀는 과연 여걸다웠다.
“흐음. 꼴에 왕이라고….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 칼로 당신의 목을 베어주리다!”
여왕이 목숨을 구걸할 줄 알았는데, 구걸하기는커녕 호통을 치자 로버트 데버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빼 들어 여왕의 목을 겨누었다.
그러자 여왕이 이제 운명이 다한 것이라 여기고 공주의 손을 꼭 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으…. 으악!”
그런데 그 순간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군인들이 은신처 안으로 들어왔고 바람을 가르며 활 소리가 나더니 여왕의 목을 치려던 로버트 데버루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여왕의 은신처로 들이닥친 군인들은 마치 번개와 같이 여왕을 둘러싸고 있던 반군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고 반군들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우수수 쓰러졌다.
이용평 대좌가 이끄는 대한제국군이 드디어 은신처를 찾아내어 여왕과 공주를 구원하러 온 것이다.
“아니 그대는 공주의 호위 부대…. 이 여왕과 공주를 구원하려고 왔구나!”
로버트 데버루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여왕은 갑자기 나타나 반군들을 일거에 제압한 대한제국군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으…. 으악. 살려줘!”
목에 활을 맞은 로버트 데버루는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저 모반을 일으킨 녀석의 목을 당장 베시오!”
여왕은 고통에 신음하는 로버트 데버루를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살…. 살려주시오. 제발!”
에식스 백작이 목숨을 구걸했다.
여왕의 지시가 떨어지자 이용평 대좌가 직접 칼을 빼 들어 망설임 없이 로버트 데버루의 목을 내리쳤고,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로버트 데버루가 일으킨 반란은 그렇게 무모하게 끝나버렸다.
여왕은 한참 동안 목이 달아난 로버트 데버루를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제임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반란이 진압된 후에야 여왕은 자신을 위해 반군과 싸운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가 걱정되었다.
그러자 이용평 대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국왕께서는 무사하신 것이오?”
이용평 대좌가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못하자, 경혜 공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 그것이…. 국왕 폐하께서는 전…. 사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