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왜구 소탕 (2)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들이 아무리 왜군 출신이라고 하나 해적질이나 하는 자들이 아니오. 우리 수군이 해적질이나 하는 왜구를 토벌하지 못한다니….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왜구를 소탕하도록 하시오.”
충선왕이 노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충선왕이 호통을 치자, 병부상서가 땀을 흘리며 왜구를 소탕하겠다고 했으나, 별다른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을 어전에 모인 대신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어찌 되었건 왕명이 내려졌기에 남명은 동원 가능한 모든 수군을 결집해 다시금 왜구를 소탕하러 나섰다.
남명은 수군 2만과 함선 5백 척을 광저우 앞바다로 보냈다.
수군을 이끄는 장수는 왕족 주용석 장군이었다.
“왜구들의 동태가 어떠한가?”
대장선에 올라 주용석 장군이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왕의 명에 따라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수군을 모집하기는 했으나, 모인 병력은 한 번도 해전을 치러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헤엄도 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였으니 주용석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반면 악명을 떨치고 있는 왜구는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무장 또한 잘된 사실상 정규군과 다름이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왜구를 격퇴할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농사나 짓다가 급하게 소집된 수병들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사실 돈이 있거나, 귀족들의 자제들은 모두 돈이나 빽을 써서 징집에서 면제가 되었기에, 징집된 이들은 가난하거나 빽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들도 왜구의 악명을 이미 알고 있기에 가능한 징병을 피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그들은 도무지 징병을 피할 여력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풀이 죽은 채 배에 탈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왜구의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으나, 사방이 푸른 바다이니 그러하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벌벌 떨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장군! 와키자카라는 왜구의 수장이 왜구들을 결집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흐음. 답답한지고. 적들이 코앞인데 이런 오합지졸로 어떻게 왜구와 교전을 하라는 것인지….”
주용석 장군은 아무리 생각해도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이런 오합지졸을 가지고는 왜구를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속히 전투 준비를 하거라!”
“존명!”
그러나 왜구가 코앞에 있다고 하는데, 신세 한탄만 할 수 없었던 그는 속히 부대를 향해 전투 준비를 하라 명했다. 남명의 함선에 탄 수병들은 장군의 명에 따라 각자 위치로 가 전투 준비를 했고 노 꾼들은 노를 저어 왜선을 향해 나아갔다.
“주군! 남명의 수군이 우리 함대를 향해 접근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하하하. 가소로운 것들…. 감히 천하무적 와키자카의 함대를 공격하겠다는 것이냐…. 그래 오너라! 네놈들을 모조리 바다에 수장시켜 줄 것이니…. 당장 공격, 남명의 함대를 향해 돌진하거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자신의 함대를 토벌하겠다고 오는 남명의 함대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이미 남명의 수군과 여러 차례 교전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기에 남명이 수군이 두렵기는커녕 우습기만 했다.
와카자카의 명에 따라 수백 척의 왜선은 장엄한 북소리에 맞춰 남명 함대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왜…. 왜구가 나타났다.”
“해…. 해적이다!”
수백 척의 왜선이 모습을 보이자, 남명의 수병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공격하라! 남명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퍼퍼퍼 펑!-
-타타타 탕!
남명의 함대를 발견한 왜선들은 일제히 함포와 조총 세례를 퍼부으며 선제공격을 했고, 남명의 함대도 왜선을 공격했다.
그러나 남명 수병들은 제대로 훈련을 해보지도 못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기에, 무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화포나 조총을 방포하는 속도로 느렸고 발사가 되더라도 왜선을 향해 날아가지 못하고 대부분 바다에 떨어졌다.
반면 수많은 전투를 치른 왜선의 화포와 조총은 정확하게 남명의 함대를 명중시켰다.
게다가 왜구의 함대는 왜선뿐만 아니라 교역을 하기 위해 온 유럽 각국의 함선을 노략질해 얻은 여러 척의 갈레온 선도 포함되어 있기에 그 화력이 남명 함대의 화력을 압도했다.
“사…. 살려줘!”
남명군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왜구의 공격을 받고 순식간에 남명 함선 10여 척이 반파되어 불타고 있었고 수병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차가운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두려워 말거라! 방포하라!”
“적들을 섬멸하라!”
주용석 제독은 칼을 빼 들고 왜선을 공격하라 외치고 있었으나, 이미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남명의 수병들은 제대로 명령을 듣지 않고 몸을 벌벌 떨며 고개를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하. 저 꼬락서니를 보거라! 저놈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구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광인처럼 웃으며 남명군을 비웃었다.
“돌격하라! 단병접전으로 저놈들을 모조리 도륙할 것이다.”
“존명!”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와키자카는 남명 함대를 향해 돌진하라는 명을 내렸고, 왜선은 그의 명령에 따라 조총을 퍼부으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왜…. 왜놈들이 온다.”
남명 함대는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고, 다급한 북소리가 울려 퍼져다.
“장군! 왜구들이 배에 올라타려 하는 것 같습니다.”
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된다. 저놈들이 배에 올라타도록 둘 수 없다. 어서 배를 돌려라! 화포를 쏘거라!”
주용석 장군은 다급히 배를 돌리고 함포를 방포하라 외쳤지만, 이미 왜구들의 함선은 배를 가까이 접근시킨 후 일제히 남명 함선을 향해 갈고리를 던졌다.
갈고리에 걸린 남명 함대는 쥐덫에 걸린 쥐처럼 끌려나갔다.
“돌격하라!”
“남명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남명의 함대를 갈고리로 끌어당긴 왜구들은 칼과 창을 빼 들고 우르르 남명의 함대로 달려들었다.
왜구들이 피 냄새에 굶주린 아귀처럼 달려들자 남명의 수병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활과 총을 쏘았으나, 순식간에 남명의 함선은 왜구들로 가득 찼고, 그들은 칼과 창으로 남명의 수병들을 살육했다.
“장군! 저희 함대의 전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대로 가다가는 전…. 전멸입니다.”
부장이 절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런!”
주용석 장군은 자신의 병졸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나가는 처참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이미 패전에 예견된 전쟁이었으나, 그래도 왕명을 받아 소집된 정규군이 제대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처참히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살아남은 남명의 수병들은 사력을 다해 왜구와 백병전을 벌였지만, 실전으로 단련된 왜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교전이 벌어진 지 채 반나절도 되기 전에 바다는 남명 수병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고, 시체가 수북이 쌓였다.
“장군…. 퇴각…. 퇴각을.”
주용석 장군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구의 발호를 막을 수 없는 남명의 형편없는 군사력이 기가 막히고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퇴…. 퇴각하라!”
그러나 이미 함선 대다수가 불타고 있고 수병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기에 더는 버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살아남은 남명의 함선은 부리나케 도주했고, 남명의 함선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수병들을 버리고 도주하자 왜구들은 그들을 마음껏 비웃었다.
“주군! 남명 놈들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저러고도 장수라고 할 수 있느냐! 지 부하들을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주를 하다니.”
대승을 거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기고만장했다.
그의 수하들은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남명 수병들을 모조리 베어 바다에 던져 버렸고, 그들이 놓고 간 무기와 함대를 접수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주축으로 하는 왜구는 약 일주일 동안 남명 수군과 치열한 해전을 벌인 끝에 남명의 수군을 모두 격파했다.
남명의 함선 3백 척이 불타 바닷속에 가라앉았고, 수군 2만 중 1만 명이 전사한 치욕적인 패전이었다.
남명의 주력 수군을 격파한 왜구는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 기세가 더욱 올라 수만 명의 왜구가 해안에 상륙해 백성들을 살육하고 청화백자, 비단, 향신료 등 온갖 진귀한 물자를 약탈하며 북상했다.
“모조리 죽여라! 으 하하하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살인귀가 붙은 듯 닥치는 대로 남명의 백성들을 죽였고 동남해 해안은 쑥대밭이 되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지경이었다.
왜구를 소탕하겠다고 수군을 보냈다가 대패하고 오히려 수만에 달하는 왜구들이 해안에 상륙해 해안을 약탈하고 왕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으니, 남명 조정은 크게 당황했다.
광동성 일대에 상륙한 왜구들은 광동성을 단숨에 초토화시킨 후 해안선을 따라 푸저우, 원저우, 진화, 닝보를 함락한 후 남명의 왕도 코앞에 있는 항저우 인근까지 도달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참에 남명을 접수하여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듯 모든 왜구들을 동원해 남명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남명군은 무지막지한 왜구들이 총, 칼 앞에 제대로 싸울 생각도 없어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기에 바빴고, 남명군이 버리고 간 무기를 노획한 왜구들의 기세는 더욱 커져갔다.
왜구들은 보이는 대로 약탈하고, 남명의 백성들을 죽이고 처자들을 유린했다.
잔혹한 왜구들의 만행에 살아남은 백성들은 피난 보따리를 싸 긴 행렬을 이루어 남명의 왕도 난징(남경)으로 향했다.
남명이 곧 망할 것이라 여긴 상당수의 백성들은 월경해 대한제국의 땅으로 가기도 했다.
왕도가 위험해진 명나라 조정은 부랴부랴 대한제국의 왜국 정벌 전쟁에 참전했던 백전노장 주영락을 도원수로 임명해 왜구를 격퇴하라 명했다.
명나라 조정이 기댈 것은 이제 주영락밖에 없었다.
충선왕은 떨리는 손으로 주영락에게 상방검을 하사했다.
“도원수! 나라의 운명이 그대에 달렸소. 꼭 왜구를 격퇴해주시오.”
상방검을 하사하는 충선왕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운명의 주영락의 손에 달려있었다.
“전하! 소신 왜구를 반드시 물리쳐 왕성을 지킬 것이옵니다. 소신을 믿으시옵소서.”
백발의 성성한 백전노장 주영락은 왜구를 반드시 물리칠 것이라며 두려움이 가득한 왕을 달랬다.
“도원수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구려!”
주영락의 말을 들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왕명을 받은 주영락은 무거운 갑주를 걸치고 말 위에 올라탔다.
근엄한 표정의 주영락은 가까스로 모은 근왕병 6만 명을 이끌고 왕성을 나섰다.
충선왕은 주영락이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배웅했다.
대신들도 남명을 지킬 마지막 장수가 주영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주영락이 반드시 왜구를 물리쳐주기를 바라며 주영락이 이끄는 군대가 사라질 때까지 배웅했다.
주영락은 왜구를 물리치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항저우로 향했다.
대한제국군의 일원으로 왜국 정벌 전쟁에 참전했던 그였기에 그는 왜군이 기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급조된 근왕병은 대부분 제대로 훈련도 안 된 이들이었기에 그는 이번 전쟁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반드시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왜구를 항저우에서 막아야만 했다.
주영락이 이끄는 군대는 어느덧 항저우에 도착했다.
항저우 백성들 상당수는 피난을 떠난 상태였고 남아 있는 백성들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항저우를 방어하는 남명군 또한 잔혹한 왜구가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문에 전의를 상실한 채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