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공주의 혼례 (3)
“허나 이 티아라는 여왕께서 무척 아끼시는 것인데…. 저희가 받을 수 없습니다.”
제임스 1세도 티아라가 공주에게 무척 잘 어울린다고 여겼으나, 여왕이 무척이나 아끼는 것이기에 티아라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 사양하면 왕명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 것이니. 어서 받도록 하거라.”
“여왕 폐하!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러나 여왕의 뜻이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자, 공주는 여왕의 티아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왕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경혜 공주는 그 기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왕과 공주 그리고 제임스 1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
경혜 공주와 제임스 1세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런던을 떠나는 마차에 올라탔다.
공주 부부가 마차에 올라타자 영국 왕실의 근위대와 공주와 함께 온 수천 명의 제국 황실 근위대의 갑사들이 마차를 호위하였고, 마차는 런던 시내를 관통하여 에든버러로 향했다.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공주 부부의 행렬을 본 런던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수천 명의 갑사들을 태운 말과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깃발 수백 개가 펄럭이고 군악대의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길게 늘어선 행렬은 그것 자체로 큰 볼거리가 되었다.
경혜 공주와 제임스 1세는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런 공주 부부를 본 시민들은 더욱 함성을 지르며 런던을 떠나는 그들을 아쉬워했다.
대한제국 공주와 스코틀랜드 국왕과의 성대한 결혼식은 영국 전역에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공주의 눈부신 미모와 아름다운 동양의 의복은 곳곳에 크게 회자 되었고 어느새 영국 귀족들 사이에 공주의 머리 모양과 의복을 따라 하는 것이 큰 유행이 될 정도였다.
공주 부부의 결혼식 소식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대한제국 그리고 영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다.
가뜩이나 대한제국과 영국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두 나라가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게 되었으니, 스페인이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공주 부부의 행렬은 오랜 시간 동안 이동한 끝에 어느덧 스코틀랜드 왕국의 궁이 있는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완전 시골이구나.’
에든버러에 도착한 경혜 공주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한 나라의 왕궁이 있는 왕성이기에 런던만큼은 못해도 제법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공주의 생각과 달리 에든버러는 제국의 황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왕궁은 제국의 변방에 있는 작은 성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어 보였다.
그러나 공주는 내색하지 않고 왕궁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스코틀랜드 백성들도 공주의 아름다운 외모와 쾌활한 성격에 반했고 공주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와 사랑을 받았다.
경혜 공주의 인기 덕에 덩달아 영국 곳곳에 대한제국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공주가 먹는 음식, 의복, 머리 모양 등이 영국에 대유행했다.
대한제국의 음식을 즐기고 의복을 갖추어 입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되어 귀족들이 여는 만찬이나 파티에는 불고기 등 대한제국의 음식이 나왔으며 귀족들은 대한제국의 복장을 하고 대한제국에서 온 찻잔에 밀크티를 즐겼다.
또한 공주가 수천 명의 갑사들과 상궁, 나인들과 함께 왔기에 스코틀랜드에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었고, 그곳은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명소가 되어 있었다.
***
부산항
푸른 바다 사이로 꽤 오랜 항해를 한 것으로 보이는 갈레온 선단이 모습을 보였다.
갑판에서 점점 다가오는 부산포를 바라보는 허균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미지의 신대륙을 찾아 나서겠다고 무작정 바다로 떠난 지 몇 년 만에 이렇게 다시 제국의 땅을 밟게 되었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윤 중좌! 우리가 살아 돌아왔구려!”
허균이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윤정수 중좌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윤정수 중좌도 감개무량했다.
항해 경험이 풍부한 그였지만, 항로를 개척하며 미지의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기에 그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살아 돌아와 다시 제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이 목표로 한 신대륙까지 발견하였으니 그 기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갑판에 서서 점점 다가오는 육지를 바라보는 선원들의 마음도 같았다.
신대륙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거친 풍랑을 만나 바닷속에 수장된 동료들이 있기에 살아 돌아온 것이 기쁘면서도 바닷속 깊이 잠든 동료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남태평양을 향해 탐험을 나갔던 탐험대의 함선이 모습을 보이자, 부산포에는 않은 인파가 몰려나왔다.
이미 대한제국에는 탐험대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허균과 탐험대는 영웅이 되어 있었기에 수많은 백성이 그들을 보기 위해 부산포에 모여든 것이다.
탐험대를 태운 갈레온 선이 점점 가까워지자 항구를 가득 메운 백성들이 손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환영했다.
수많은 인파를 본 선원들과 탐험대는 감격에 겨워 그들도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어느덧 그들을 태운 갈레온 선은 하나둘 포구에 정박했다.
함선이 모두 정박하고 허균과 대원들이 배에서 내리자 어여쁜 여인들이 달려나와 그들을 향해 꽃다발을 걸어주었고, 백성들은 그들을 향해 다시 큰 함성을 질렀다.
허균은 이렇게 큰 환대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안이 벙벙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함을 느꼈다.
윤정수 중좌와 대원들도 백성들의 열광적인 환대가 기분이 좋은 듯 활짝 웃으며 그들과 축제를 즐겼다.
허균과 탐험대원들은 부산포 관원들이 준비한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했고, 백성들은 마차를 쫓아가며 손짓을 하고 꽃다발을 던졌다.
부산포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은 허균 일행은 일주일 정도 부산포에 머무르다 황도로 향했다.
***
황도에서도 허균 일행은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허균은 이미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 마젤란을 뛰어넘는 영웅 취급을 받았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바다로 떠나 신대륙을 발견하고 온 허균의 모험담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벌써 그의 모험담을 담은 책이 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며 팔려나갔고, 그에 대한 연극도 만들어졌다.
허균과 탐험대원들은 자신들의 인기를 실감하고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어린아이는 물론 어여쁜 처자 등이 몰려나와 사인을 요청했다.
“윤 중좌! 졸지에 영웅이 되니! 어안이 벙벙하구려!”
허균이 싱글벙글 웃으며 윤정수 중좌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꼬마 녀석들이 아주 졸졸 쫓아다니며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이야….”
윤정수 중좌도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영웅 대접을 만끽했다.
***
황도에 머무르며 치솟은 인기를 실감하고 있던 허균 일행은 마침내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다.
황제를 오래간만에 직접 본 허균은 넙적 엎드려 황제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황제를 처음 본 윤정수 중좌는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참으로 기쁜 일이로구나! 신대륙을 발견하다니…!”
이균은 흐뭇한 표정으로 허균과 윤정수 중좌를 바라보았다.
탐험을 지원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호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했는데, 목숨을 건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새로운 땅을 발견하니 그들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황제 폐하 덕분에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신대륙은 폐하의 것이옵니다.”
허균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어찌 짐 덕분이겠는가! 그대와 대원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바다로 나아가 싸웠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균이 탐험대가 이룩한 것을 치하하자, 허균은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황제를 처음 알현한 윤정수 중좌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거대한 제국을 이룬 황제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보았으면 했는데, 이렇게 황제를 직접 보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래! 목숨을 잃은 선원들도 꽤 있다고 하던데….”
“그러하옵니다. 큰 풍랑을 만나기도 하여 몇몇 함선이 난파되었고 그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 바다는 위험천만한 곳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살아 돌아왔다면 이렇게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을….”
이균은 목숨을 잃은 선원들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이 시대의 바다는 너무나 위험천만하기에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소신도 목숨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니…. 괴로운 마음이.”
허균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선원들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윤정수 중좌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황실에서 유족들을 특별히 살필 것이니 심려치 말거라!”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가 바닷속에 잠겨 돌아오지 못한 선원들의 유가족을 직접 챙기겠다고 하니 허균과 윤정수 중좌의 두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신대륙은 어떤 곳이더냐.”
이균은 허균 일행이 발견한 것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물었다.
“폐하! 아직 신대륙의 모든 곳을 탐사한 것은 아니나. 저희가 탐사한 곳만 말씀드리면 기후가 온화하고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농작물을 짓고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격인 곳 같았사옵니다.”
허균이 그가 발견한 대륙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이균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허허. 그래. 참으로 잘되었구나. 그렇다면 그곳에 이주민을 정착시켜 사탕수수나 커피 등을 기르면 적격이겠구나.”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렇게 되면 제국에 큰 이문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옵니다.”
허균이 싱글벙글 웃으며 이균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대들 덕분에 제국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겠구나!”
이균과 허균 그리고 윤정수 중좌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발견한 오스트레일리아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균은 허균과 윤정수 등 탐험대원들에게 큰 포상을 내렸고 윤정수는 소장으로 승차시켜주었다.
그리고 성대한 만찬을 열어 탐험대원들을 격려했다.
***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해냈구먼. 자네는 완전히 영웅이 되었어! 영웅이….”
이항복이 허균을 다소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무사히 귀환한 허균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항복은 허균을 기방으로 불렀다.
기방은 황도에서 가장 미색을 뽐내는 기녀들이 분 내음을 풍기며 이항복과 허균의 옆에 달라붙어 앉아 있었다.
미색이 출중한 기녀들의 분 내음을 맡으니 이항복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허균에게 술을 권하였고, 오랜 시간 동안 여인의 분 내음을 느끼지 못하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다 돌아와 미색들과 함께 있으니 그것이 싫지 않았다.
“과찬이옵니다. 영웅은 무슨….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항복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비우고 옆에 앉은 기생이 집어준 안주를 삼킨 허균이 겸손해하며 입을 열었다.
“과찬은 무슨! 온통 자네 얘기뿐이더구만! 전쟁 영웅 이순신, 신립 장군보다도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은데….”
이항복도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옆에 있던 기녀의 손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