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오사카성 공방전 (7)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왜군은 대한제국군과 치열한 교전을 펼쳤으나, 제국군의 파상적인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밀리고 있었다.
“막아라! 조선군을 죽여라!”
우키다 히데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피신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제국군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이제 역부족이었다.
오사카 성 내의 주요 거점은 이미 대한제국군이 점령한 상태였고, 약 1만여 명의 왜군이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여 저항하고 있으나, 방어선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우키다의 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텨야 한다! 태합 전하께서 피신할 시간이 필요해!”
우키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버티고 싶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센리큐가 침통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선생! 태합 전하께서는 피신을 가신 것이요?”
센리큐가 오자 우키다 히데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공적으로 비밀통로를 통해 피신을 떠났다고 여겼다.
“태…. 태 합 전하께서 스스로 목숨을….”
센리큐는 울먹이며 말을 잊지 못했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요? 태합 전하께서 어찌 되었다는 것이오?”
우키다 히데이에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분명 태합이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센리큐가 한 것 같은데, 그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태…. 합 전하께서 자…. 결을 하셨소이다.”
“자…. 자결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은 우키다 히데이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았다.
“선…. 선생.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태합 전하께서 자…. 결을 하셨으나. 더는 싸울 의미가 없소이다.”
센리큐도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우키다를 바라보았다.
“항…. 항복을 하라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아무 의미가 없는 싸움이 아니겠소….”
우키다 히데이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숨을 거두었기에 대한제국군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사의 자존심이 남아있는지 섣불리 항복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복선언을 하시오…. 병졸들이 아무 의미 없이 죽어 나가고 있소이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왜군들이 지르는 비명과 성 곳곳에 널려 있는 주검을 바라보았다.
‘결국. 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우키다 히데이에는 아무 말 없이 비참한 전장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백기를 올려라!”
그가 명하자 곧 왜군의 진영에 커다란 백기가 올라갔다.
“와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마침내 왜군이 항복을 선언하자, 제국군은 일제히 들고 있던 칼과 창 등을 추켜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폐하! 드디어 오사카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병조 판서 류성룡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균과 함께한 대신들도 오사카 성에 백기가 펄럭이자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흐음. 드디어…. 우리 갑사들이 고생했구려….”
오사카 성이 드디어 떨어지자 이균도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승리야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왜군이 결사대까지 조직해 생각보다 격렬하게 저항하였기에 아군의 희생이 클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성을 함락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황제 폐하의 은덕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대신들은 황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 장군! 드디어 오사카 성이…. 감축드리오.”
신립 장군이 이순신 장군을 향해 달려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했다.
“신 장군도 고생이 많았소이다. 참으로 긴 전쟁이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공방전을 벌인 오사카 성이 마침내 함락되니, 이순신도 감개무량했다.
반면 왜군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오사카 성 곳곳은 왜군의 시체가 즐비하게 쌓여 있었고, 살아남은 왜군의 숫자는 채 1만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제대로 방한복을 보급받지 못한 탓인지 손발이 대부분 얼어 있었으며, 몰골이 몇 날 며칠을 굶은 거지와 같은 꼴이었다.
항복한 왜군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대한제국군에게 따스한 국물과 밥을 받아 뜨거운 모닥불이 있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오래간만에 뜨거운 음식을 취하니 그들은 살 것 같았다.
신립은 결사대를 이끌고 격렬하게 싸우다 숨을 거둔 이시다 미쓰나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도록 했고, 다른 왜군들의 시신도 정리했다.
그러나 오만방자하게 대한제국을 치겠다며 도발한 전쟁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신을 발견한 제국군은 그의 목을 베어 오사카 성 중앙에 효수하였다.
“태합 전하!”
성 중앙에 걸려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끔찍한 머리를 본 고니시 유키나가는 심란했다.
“아버님! 드디어 전쟁이 끝났사옵니다.”
고니시의 사위 소 요시토시가 입을 열었다.
“흐음. 그렇구나. 이렇게 전쟁이 끝나긴 했구나. 태합 전하께서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배신을 하긴 했지만,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도요토미의 목이 저리 처참하게 효수되어 있으니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비극적 운명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쩌겠습니까! 태합 전하가 자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태합 전하의 아들 히데요리까지 죽었으니 태합 전하의 가문은 이제 그 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러하겠구나. 요도도노 님께서도 숨을 거두었다고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히데요리 님을 잃은 충격으로 광녀가 되어 성을 떠돌다가 제국군의 포탄을 맞고 그만 목숨을 잃었다고 하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끼던 측실 요도도노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실성하여 머리를 풀어헤치고 성을 떠돌다가 결국 대한제국군의 포격을 맞고 비명횡사했다.
“흐음. 참으로 딱한 일이구나. 요도도노 님의 시신이라도 잘 묻어주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사위와 함께 오랫동안 효수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바라보다 자리를 떠났다.
오사카 성에는 정식으로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이 깃발이 올라갔고, 대한제국군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대한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갑주와 두툼한 털옷을 입은 이균은 호위대와 함께 도열해 있는 대한제국군 갑사들을 일일이 격려했고, 황제를 직접 알현한 제국군 갑사들의 함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
“드디어 왜군과의 전쟁이 끝이 났소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이순신 장군, 신립 장군 등 용맹한 그대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오.”
이균은 직접 군 수뇌부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그들을 격려했고, 전쟁에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두둑한 은자를 주어 포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가 술을 직접 따라주고, 두둑한 은자까지 내려주자 군 수뇌부들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이렇게 왜군에 대승을 거두니 뿌듯하구려.”
“모든 것이 폐하의 은덕이옵니다.”
장수들은 하나 같이 황제의 은덕이라며 황제에게 공을 돌렸다.
“무슨 말이오. 그대들이 없으면 어찌 이런 대승을 거두었겠소.”
흥이 난 이균은 장수들에게 연거푸 술잔을 따라 주었고, 이균도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왜군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후 황제와 군 수뇌부는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각 군부의 수장들과 대신들도 흥이 올라 아름다운 무희들이 추는 춤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폐하!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왜국을 어찌 통치할 생각이옵니까?”
좌의정 율곡이 술을 많이도 마셨는지 발그레한 얼굴로 이균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소신의 생각으로는 대마도와 큐슈는 우리 대한제국이 직접 통치하고, 가장 큰 섬인 혼슈는 절반을 나누어 그 남쪽은 대한제국이 그리고 그 절반만 왜국이 통치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좌의정 율곡이 자신이 생각하는 전후 처리 방안에 대해 직접 말을 꺼냈다.
율곡의 말을 듣고 있던 이균이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다른 생각이 있는가?”
“소신도 좌의정 대감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왜국을 그대로 두면 그들이 또 다른 생각을 할지 모르오니, 왜국 일부를 제국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류성룡도 율곡과 같은 생각이었다.
“짐의 생각도 같소이다. 명나라를 정벌했던 선례와 같이 왜국을 절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제국이 직접 통치하고 절반은 왜국이 통치하되, 왜국의 왕을 짐이 봉해 왜국을 우리 제후국으로 삼을 것이요.”
“그리하시옵소서! 폐하!”
대신들과 군부의 수장들도 이균의 뜻에 동의했다.
‘결국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구나!’
나라가 두 동강 나는 장면을 본 고니시 유키나가는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대의 이름이 소서행장인가?”
“그…. 그러하옵니다.”
황제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자, 그가 몸을 조아렸다.
“그대가 이번 전쟁에 큰 공을 세웠다 들었다. 그대의 영지를 넓혀주고 우리 제국과의 무역권은 보전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폐….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주군을 배신한 대가로 고니시 유키나가는 보다 넓은 영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대한제국과의 독점적 무역권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그의 가문은 더욱 많은 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흐음. 그리고 풍신수길이 죽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잔당이 있을 것이오. 잔당들을 모두 소탕해야 할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전후처리 방안을 함께 논했던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
지루한 전쟁을 끝낸 대한제국군은 대마도, 큐슈 그리고 혼슈의 절반을 직접 통치하기로 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교토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 에도는 왜국이 직접 통치하도록 했는데, 왜왕을 충호왕으로 봉하고 기회주의자 같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를 쇼군으로 임명해 왜를 다스리게 했다.
이로써 왜는 대한제국의 제후국이 되었다.
“태합께서 자결을 했다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참으로 딱한 일이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결하고 왜군이 오사카성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은 곧 일본 열도 곳곳에 퍼져나갔다.
“딱하긴 뭐가 딱하나! 태합이 욕심을 부려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이렇게 수많은 젊은 군인들이 죽어 나간 것이 아닌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왜인들은 그가 무모하게 일으킨 전쟁 때문에 이 지경이 난 것이라며 차라리 그가 잘 죽었다는 말까지 하며 그를 격멸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대한제국이 우리 왜를 직접 지배하는 것인가?”
“듣자 하니 나라를 절반으로 나누어서 절반을 대한제국이 통치한다고 하던데….”
갑자기 대한제국의 백성이 되어 버린 큐슈와 혼슈 남쪽 왜인들은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긴 전쟁의 소용돌이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기에 그들은 큰 불만이 없었던 것 같았고, 황제가 왜인을 차별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라 명하였기에 그들은 어느덧 충직한 제국의 백성이 되어 갔다.
이균의 우려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곳곳에서 크고 작은 봉기를 일으켰으나 대한제국군과 왜국의 군대들에 의해 대부분 소탕되었고 왜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