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오사카성 공방전 (6)
자신의 부하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이시다 미쓰나리는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대한제국을 침략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류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것은 사무라이의 길이 아니지.’
한참 동안 말없이 남문의 참혹한 전투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입을 열었다.
“결사대를 만들라! 내가 직접 결사대를 이끌고 나아가 조선군의 도륙할 것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지금 군대를 이끌고 나가면 바로 개죽음입니다.”
이시다 미쓰나리가 결사대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자 우키다 히데이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소이다. 내가 결사대를 이끌고 나아가 시간을 끌 것이니 그대는 그 틈을 타 태합 전하를 피신시키시오.”
이시다 미쓰나리는 그래도 의리는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사로서 명예롭게 죽고 싶은 것인지 자신이 결사대를 이끌고 시간을 끄는 사이 주군으로 모셔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피신시키라 말을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 밖으로 나가면 아니 됩니다.”
자신을 희생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살리겠다는 이시다 미쓰나리의 말에 우키다 히데이에가 울먹였다.
“태합 전하를 잘 보필하시오.”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잘 부탁한다는 비장한 말을 남기고 결사대 3,000명을 이끌고 성문 밖을 나섰다.
성안의 왜군 중에 그래도 제법 무사 같은 이들이 있었는지, 아니면 이시다 미쓰나리를 존경해온 것인지 명예롭게 죽기를 원하는 결사대가 순식간에 모였다.
“공격하라! 조선군을 죽여라!”
이시다 미쓰나리는 앞장서 대한제국군을 향해 말을 달렸고, 그 뒤를 결사대가 따랐다.
“저…. 저게 뭐야!”
갑자기 성문이 열리고 수천 명의 왜군이 돌진해 오자 대한제국군은 다소 황당해하면서도 당황한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보았다.
성안에 틀어박혀 농성전만 하던 왜군이 스스로 성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한제국군이 당황하는 사이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결사대는 대한제국군 깊숙한 곳까지 순식간에 돌진해와 백병전을 펼쳤다.
죽기를 각오한 이들보다 용맹한 이들은 없을 것이다.
왜군은 사력을 다해 대한제국군과 결전을 벌였고, 그들의 결사 항전에 대한제국군 갑사들이 꽤 많이 쓰러져 나갔다.
대한제국군은 그동안 전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왜군의 맹렬한 공세에 다소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조선 놈들을 쓸어버려라!”
“명예롭게 죽자!”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결사대는 대한제국군이 다소 당황하며 뒤로 물러서자 더욱 맹렬하게 대한제국군을 향해 돌진하며 칼과 창을 휘둘렀다.
“저…게 무엇이냐!”
기세 좋게 오사카성의 남문을 공격하던 제국군이 갑자기 뒤로 밀리며 우물쭈물하자 이를 지켜보던 신립 장군이 어이가 없는 듯 반문했다.
“왜군이 성문을 열고 갑자기 기습공격을 해와 우리 군이 다소 당황한 것 같습니다.”
“이…. 이런. 왜군 중에 저렇게 용맹한 자가 있다는 말이냐!”
죽기를 각오하고 결사 항전하는 왜군을 본 신립은 비록 적군이지만, 결사대를 이끌고 있는 왜군의 장수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같은 무사로서 존중할 만한 자라 여겼다.
그렇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신립은 그가 아끼는 기마대 일만기를 이끌고 직접 왜군의 결사대를 향해 달려갔다.
“물러서지 말거라! 한 줌도 안 되는 왜군이다! 대형을 유지하라!”
신립이 직접 기마대를 이끌고 와 제국군을 지휘하자, 그제야 대한제국군은 정신을 차렸는지 더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대형을 유지하며 이시다 미쓰나리의 결사대와 혈전을 벌였다.
창과 칼이 서로 부딪치고, 제국군과 왜군 결사대는 서로 엉켜 피비린내 나는 백병전을 벌였다.
죽기를 각오한 왜군 결사대는 온몸을 불사르며 용맹하게 싸웠지만, 압도적인 숫자의 대한제국군에 결국 밀리기 시작했고, 3,000명의 왜군은 하나, 둘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물러서지 마라!”
“이곳이 우리가 죽을 자리다!”
결사대가 서서히 밀리자, 이시다 미쓰나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독려하였으나, 모든 힘을 소진한 그들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그는 이제 자신의 운명이 여기서 끝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후회 없는 전투였기에 그는 무사로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결사대의 비명과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아직 젊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밀려왔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칼을 높이 들고 대한제국군을 향해 달려 나갔고 그의 칼에 제국군 갑사 여러 명이 쓰러졌다.
그러나 곧 그를 발견한 대한제국군의 궁수들은 그를 향해 활을 퍼부었다.
“으…억. 결국….”
이시다 미쓰나리는 여러 발을 활을 온몸을 맞은 후 그 자리에 쓰러져 결국 숨을 거두었다.
오사카성에 남아 있는 그나마 쓸 만했던 장수가 그렇게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와아아아!”
결사대를 이끌던 수장 이시다 미쓰나리가 쓰러지자 대한제국군 갑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이시다 미쓰나리와 함께 왜군 결사대는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왜군에 저런 장수가 있다니….’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왜군 결사대의 항전을 본 신립은 비록 적군이지만 감명을 받았다.
전투가 끝난 후 그들의 시신을 온전한 곳에 묻어 주리라고 결심한 신립은 다시 칼을 빼 들고 오사카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격하라! 성문을 열어라!”
결사대를 전멸시킨 제국군은 다시 오사카성의 남문을 총공격했다.
제국군은 거침없이 남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왜군은 마지막 희망이라 여겼던 결사대마저 무너지자 사기가 더욱 급격히 떨어져 상황은 더욱 절망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일부 왜군은 승산이 없다고 여기고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였으며, 왜군 장수들도 절망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지휘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이시다 미쓰나리의 장렬한 죽음을 목격한 우키다 히데이에는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막아라! 공격하라! 이시다 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그러나 그들은 수십만 대한제국 대군의 총공격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기에 성벽에 기대어 화포와 조총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무기를 퍼부었다.
왜군은 오사카성의 성벽에 의지에 제법 버티었으나, 쏟아져 들어오는 대한제국의 막강한 기세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성…. 성문이 열린다.”
치열한 공성전 끝에 마침내 오사카성 남문이 열렸고, 수십만 대군이 열린 남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갔다.
“황제 폐하 만세!”
“제국의 영광을 위해!”
대한제국 갑사들은 황제를 외치며 오사카성을 향해 돌격해 왜군과 교전을 벌였다.
“폐하! 드디어 성문이 열린 것 같사옵니다.”
이균과 함께 온 병조판서 류성룡이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드디어 오사카성이 무너지는구나.”
갑주와 두툼한 털옷을 입은 이균은 망원경을 통해 오사카성 남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치열했던 오사카성 공방전이 끝을 향해 달려가니 이균과 함께 온 대신들과 이순신 등 군 수뇌부들도 모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격하라! 성을 접수하라!”
견고한 성문이 뚫리자, 전투는 대한제국군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조총병, 창병, 팽배수, 기마대 등 수십만의 대한제국군이 오사카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왜군을 도륙했다.
어느덧 왜군의 시체가 수북이 쌓였고, 곳곳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왜군의 비명이 들렸다.
성 곳곳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지고, 칼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으며 망루와 성 주요 건물이 연기를 뿜어내며 불타고 있었다.
커다란 오사카성 내부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왜군은 지휘부 건물만은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곧 왜군의 시체는 수북이 쌓였고 대한제국군은 성의 주요 거점을 하나둘 점령해 들어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군도 황제의 환심을 사려는 듯 가장 앞장서서 한때 같이 통일 전쟁을 수행했던 왜군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
-퍼퍼퍼 펑!-
-탕탕탕-
태합이 있는 성의 가장 안쪽 은밀한 거처에도 조총 소리와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태…. 태합 전하! 성문이 열렸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비밀 통로로 대피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향해 센리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드디어 조선군 놈들이 이 태합에게 항복을 선언하러 들어온 모양이구나. 아무렴 그래야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독주가 가득 든 잔을 단숨에 비운 후 비참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태…. 태합 전하!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지금 퇴각한다고 해도 영원히 지는 것은 아닙니다. 후일을 도모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선생! 무슨 소리요. 퇴각이라니…. 이시다는 어디 있는 것이요? 또 우키다는 어디 있고? 충성스러운 나의 가신들이 모두 어디로 간 것이요.”
“태합 전하! 이시다 미쓰나리는 성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였나이다.”
센리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엇이라? 지금 그것이 사실이요. 선생? 이…. 이시다가?”
그의 충직한 가신 이시다 미쓰나리가 전사했다는 말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 없이 있었고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선생! 모든 것이 나의 욕심 때문이구려! 욕심이 과했소이다. 욕심이…. 허허허.”
도요토미는 그제야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이라며 자신을 원망하였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아니옵니다. 아직 기회는 있사옵니다. 태합 전하! 어서 몸을 숨기시옵소서. 곧 조선군이 들이닥칠 것이옵니다.”
센리큐는 다시금 다급한 목소리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퇴각할 것을 재촉했다.
조총과 화포 소리는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생! 나는 이 성을 버릴 수 없소이다.”
도요토미가 다시금 독주를 마신 후 옆에 있던 칼을 빼 들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합 전하! 그…. 그것이 무슨 말씀이온지….”
“선생! 조선군이 아무리 포악하다고 하나 선생은 죽이지 않을 것이나, 혹시 모르니 선생은 어서 피신하시오.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요.”
“태…. 태합 전하! 아니 되옵니다. 훗날을 도모하소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곳에서 할복하겠다고 하자 센리큐는 눈물을 떨구며 그럴 수 없다며 그의 선택을 만류했다.
“하하하. 그래도 제법 사내로서 잘살았소이다. 비루한 생선 장수 출신이 전국을 통일하여 모든 다이묘가 우러러보는 태합이 되었으니, 이만하면 출세한 것이 아니요.”
“태…. 태합 전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구려! 주제도 모르고 조선을 치겠다고 나섰으니.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이는 선생밖에 없구려. 어…. 어서 가시오.”
센리큐는 눈물로 하소연하였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순간 칼로 자신의 배를 찔렀고 옆에 있던 호위무사가 긴 칼로 그의 머리를 단숨에 베었다.
“태…. 태합 전하! 아니 되옵니다. 흑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결국 할복하여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다.
전국을 통일하여 전국 각지의 모든 다이묘를 호령하던 그였건만, 그의 마지막을 지키는 이는 센리큐 말고는 아무도 없는 초라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