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오사카성 공방전 (5)
이균은 늠름한 제국의 군사들을 이렇게 보내 뿌듯함이 밀려왔다.
제국의 수십만 대군이 오사카성을 포위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숨통을 조이고 있으니 이균은 뿌듯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땅을 침략해 7년여 동안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어야 하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대한제국군이 왜군의 주력함대를 격파하고, 일본 열도에 상륙해 왜군을 모두 격파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궁지에 몰아넣었으니, 뒤바뀐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기분이 묘할 만도 했다.
“황제 폐하 만세!”
“대한제국 만세!”
이균은 여전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제국의 갑사들을 일일이 격려하고 곳곳을 살펴본 후 군 수뇌부들과 함께 막사로 들어갔다.
“추위에 모두가 고생이 많소.”
이균이 이순신과 신립 등 군 수뇌부들에게 직접 술을 따라주며 그들을 격려했다.
황제가 직접 술을 따라 주자 이순신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은 겸손하게 잔을 받아 이를 비웠다.
이균도 뜨거운 술을 한 모금 마시니 몸에 뜨거운 기운이 드는 것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흐음. 이제 왜군이 막바지에 몰렸다 들었는데, 상황이 어떻소이까?”
이균이 이순신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하옵니다. 황제 폐하! 왜군은 고립무원이 지경이옵니다. 사방이 포위된 왜군을 구원할 사람은 없으며 그 보급물자도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왜군의 사기가 말이 아니옵니다. 이제 전쟁을 끝낼 때가 된 것 같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순신으로부터 전황을 직접 들은 이균은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비웠다.
“듣자 하니 풍신수길의 아이가 죽었다고 하던데….”
“그러하옵니다. 폐하! 저희 군이 천수각을 집중적으로 타격했는데, 그 과정에서 마침 천수각에 있던 풍신수길의 사내아이가 비격진천뢰를 맞고 운명을 달리한 것 같사옵니다.”
이번에는 신립 장군이 나서서 말했다.
“하하하. 대단한 전공을 세웠구려. 적장의 아들을 그렇게 비명횡사하게 했으니. 풍신수길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요?”
“그러하옵니다. 폐하! 아들을 잃은 풍신수길이 크게 슬퍼했다는 전언이옵니다. 그리고 히데요리의 생모 요도도노는 광녀가 되어 오사카성을 배회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어영담 장군이 말했다.
“그러하군요. 과도한 욕심이 비극을 불러오는 법!”
이균이 다시 술잔을 비우며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내도록 합시다. 마침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니, 마침 해자도 꽁꽁 얼지 않겠소이까! 해자가 얼면 우리 군이 해자를 충분히 건널 수 있지 않겠소?”
이균이 이순신 제독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해자가 얼 때를 기다려 총공격을 가하자고 말하자, 이순신은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순신도 황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하옵니다. 황상 폐하! 소신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해자가 단단히 얼면 우리 군이 능히 건널 수 있을 것이옵니다. 오사카성은 남문이 취약하다고 하니 해자가 얼면 남문을 집중 공략하면 성문을 열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순신이 다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립을 비롯한 제국군의 다른 수뇌부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늘마저 우리를 돕는군요. 이제 풍신수길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구려. 총공격이 있을 때까지 갑사들을 넉넉히 먹이고 휴식을 주어 사기를 높게 하시오.”
“그리하겠나이다. 황상 폐하!”
***
“이렇게 추운 날씨는 처음이로구나! 하늘도 우리를 버린 모양이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대신해 오사카성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매서운 추위는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오사카를 향해 차가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오사카성은 일주일이 넘게 눈발이 흩날렸고, 성은 아름다운 설국이 펼쳐져 있었으나, 오사카성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매서운 추위와 폭설은 성안의 왜군들을 더욱 힘들게 했고, 손발이 꽁꽁 어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동사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게다가 대한제국군의 포격은 여전히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니 왜군은 그야말로 악전고투 속에 간신히 성에서 버티고 있을 뿐,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였지만, 이렇게 궁지에 몰린 전투는 처음이었다.
이제 성을 지키는 왜군은 채 4만이 되지 않았다.
오사카성이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라 하더라도 4만의 병력으로 수십만이 넘는 대한제국군을 상대해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겁니까?”
그 순간 우키다 히데이에가 그의 곁으로 왔다.
“흐음. 조선의 왕이 직접 온 모양이구려.”
“그렇습니다. 조선왕이 수만 명의 친위대를 이끌고 직접 이곳으로 왔습니다. 왕이 직접 왔으니 이제 곧 총공세를 펼치겠지요.”
우키다 히데이에도 어두운 표정으로 이시다 미쓰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하. 이제 오사카성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구려. 어찌 이 지경까지 된 것인지….”
이시다 미쓰나리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나! 1년 넘게 조선군의 공세를 버티어 냈는데, 아직은 더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키다 히데이에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하는 듯 더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시다 미쓰나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 해자를 보시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해자가 얼어붙고 있소이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해자는 완전히 꽁꽁 얼어붙게 될 것이요. 해자가 얼어붙으면 오사카성은 그냥 평범한 성에 불과하오.”
우키다 히데이에는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해자를 바라보았고, 이시다 미쓰나리의 말대로 해자는 얼어있었다.
이미 해자의 대부분이 얼어 그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능히 군대가 해자를 밟고 올 수 있는 지경인 것 같았다.
“그…. 그렇다면 조선군이 해자가 완전히 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해자가 얼어붙게 되면 조선군이 대공세를 펼쳐 올 것이요. 4만의 군사로 어찌 수십만 대군을 감당할 수 있겠소이까.”
이시다 미쓰나리의 말을 들은 우키다 히데이에는 아무 말 없이 침울한 모습으로 속절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
왜군은 해자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 해자를 향해 돌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해자 근처에 불을 피워 놓기도 하였으나, 살을 에는 혹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사납게 오사카성을 몰아쳤고, 결국 일주일 후 해자는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해자가 완전히 얼어붙은 것을 확인한, 대한제국군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총공세를 준비했다.
그리고 1년이 넘도록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약 5만이 군사를 이끌고 왔다.
그러나 눈치만 보다가 전세가 완연히 기울자 군대를 이끌고 온 그를 대한제국군은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대는 우리 제국과 함께 오만한 풍신수길을 치기로 약조하고 이제야 군대를 이끌고 온 연유가 무엇이냐.”
이균은 기회주의자 같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엄히 꾸짖었다.
“그… 그것이 군대를 소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그를 엄히 꾸짖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했다.
“그것을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것이냐! 니놈은 누구 편을 들 것인지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이균은 여전히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지 도쿠가와를 나무랐고, 도쿠가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폐하! 소신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신의 충심을 믿어 주시옵소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짝 엎드려 황제에게 용서를 구하였다.
“흐음. 이번만은 용서할 것이니. 앞장서 오사카성의 문을 열도록 하거라!”
이균은 여전히 노여움이 가시지 않았으나, 이번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용서하기로 했고, 그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군대가 오사카성에 당도하자, 왜군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었으나 그가 대한제국군에 합류하자 크게 실망하였고, 왜군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왜군은 이제 기대할 곳이 아무것도 없었다.
“폐하! 해자가 얼었습니다.”
이순신이 진중한 표정으로 이균에게 해자가 얼어붙었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갑주와 두꺼운 털옷을 입은 이균은 눈발이 휘날리는 오사카성을 바라보았다.
“이제 때가 되었소이다. 총공세를 퍼부어 성문을 여시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황제가 묵직한 목소리 총공격을 하라 명을 내리자, 공격을 알리는 북과 소라 소리가 대한제국군 진영 곳곳에 울려 퍼졌다.
공격 신호를 받은 대한제국군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수천 문의 화포를 쏘며 공격을 개시했다.
-퍼퍼퍼 펑!-
“살… 살려줘!”
“조선군이 공격한다.”
왜군은 무엇보다도 대한제국군의 포격을 가장 두려워했다.
수천 문의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자 왜군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비명을 질렀다.
화포에서 발사된 수천 개의 철환은 오사카성 곳곳을 타격했고, 어느새 왜군 상당수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두려워 하지 마라! 공격하라! 화포를 쏴라!”
성을 방어하는 총사령관 이시다 미쓰나리는 대한제국군의 맹렬한 포격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빼 들고 왜군을 독려했고 그제야 왜군도 가용이 가능한 화포와 조총을 쏘아대며 저항했다.
대한제국군의 화포 상당수는 오사카성 안으로 떨어져 왜군에 큰 타격을 주었으나, 왜군이 쏜 화포의 상당수는 대한제국군의 진영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수천 문의 화포는 계속 불을 뿜었고, 대한제국군의 포격에 왜군이 질려 있을 무렵 이순신이 보병과 기병을 진격시키라 명을 내렸고, 곧 수십만에 이르는 보병과 기병이 오사카성을 향해 돌진했다.
“돌격하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제 폐하 만세!”
대한제국군은 저마다 자신들 부대 깃발을 앞세워 황제를 연호하며 꽁꽁 얼어붙은 해자를 건너 성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약 5만의 병력이 성 중앙을 향했고, 20만의 병력이 성에서 가장 취약한 남문을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은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는 예비대로 남겨 두었다.
해자가 무용지물이 된 오사카성은 이미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성에 불과했다.
대한제국군이 새카맣게 몰려오자 왜군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이시다 미쓰나리의 독려 속에 왜군은 성벽에 의지한 채 화포와 조총 등 가용 가능한 모든 무기를 동원해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로 인해 대한제국군도 어느 정도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대한제국군의 파상공세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고, 성에 근접한 제국의 조총 부대와 궁수들은 성을 향해 조총과 활을 퍼부었다.
“남… 남문이 위험합니다.”
대한제국의 20만 대군이 취약한 남문을 집중 공략하자 남문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남문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남문이 열리면 성이 함락된다. 남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어서 원군을 보내라!”
이시다 미쓰나리는 부랴부랴 남문을 방어하기 위해 원군을 보냈으나, 얼마 되지 않는 병력으로 남문을 방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대한제국군은 조총과 활을 남문의 왜군 진지를 향해 집중 사격함과 동시에 공성 장비를 이용해 남문을 깨고 있었다.
“남문이 곧 열릴 것 같습니다!”
왜군은 사력을 다해 방어했지만, 이제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 이런!”
이시다 미쓰나리는 참혹한 모습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