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나고야 해전 (3)
“아니. 저놈이 지금 미친 것인가? 왜 우리 군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이야.”
자신의 함대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여기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함대를 향해 총질을 하자 가토 기요마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가토 기요마사의 수하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를 바라보았다.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는 즉각 아군을 향한 사격을 중지하라고 외쳤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는 사격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토! 너의 운명도 여기서 끝이다! 사격을 멈추지 마라.”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는 더욱 맹렬하게 가토의 함대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제독님.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가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 함대의 퇴로를 가로막았습니다.”
송여립 장군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소서행장(고니시 유니카가)이 제때 와주었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배신하기로 결심한 고니시는 이미 대한제국군과 비밀리에 접촉해 원수와 다를 것이 없는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함대를 치기로 밀약을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밀약에 따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한제국을 치라고 준 선봉대를 이끌고 가토 기요마사를 공격한 것이다.
“으…. 악!”
“도대체 우리한테 왜 그러는 것이야!”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던 아군이 자신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자, 그들은 대한제국군에게서 공격을 받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믿었던 아군이 총질을 하고 있으니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왜군들은 좌절했고 일부 왜군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퇴로가 막힌 왜군은 사방을 향해 조총과 활을 쏘았으나 이미 그들은 아군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배신감에 전의를 상실했고, 대한제국 함대와 고니시 유키나가 함대에 둘러싸여 살육을 당했다.
이순신은 함대를 향해 비격진천뢰와 조란환을 모조리 퍼부으라 명을 내렸고, 함대는 쉬지 않고 왜군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함선은 왜선을 들이받아, 왜선을 깨트려 침몰시켰다.
“대단하구나. 왜군들이 제대로 저항도 못 해보고 죽어 나가고 있으니….”
대한제국 함대에 합류한 포르투갈 함대를 이끄는 마카오 총독 하파엘은 제국 함대의 전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함대의 규모와 화력에 있어 대한제국 함대가 왜군보다 월등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제국 함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왜군을 몰아세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하옵니다. 대한제국 함대가 천하무적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강할 줄이야….”
포르투갈 병사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원수를 갚아라! 왜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허나 어찌 되었건 자국 선교사를 살해하고 천주교를 탄압한 왜국에게 복수를 할 좋은 기회이기에 포르투갈 함대는 대한제국군을 도와 맹렬하게 왜선을 공격했다.
사방이 가로막힌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에서는 왜군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고, 바닷물은 왜군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고…. 니시. 네놈이 결국….”
가토 기요마사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왔다.
상인 나부랭이를 믿고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선봉을 내어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원망스러웠다.
“배신자 고니시를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돌격해! 돌격!”
가토 기요마사는 함대가 전멸하더라도 배신자 고니시 유키나가만은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주군…. 이미 승패가 기울었습니다. 항복을….”
“무엇이라! 어찌 비천한 조선군 따위에 항복하라는 것이냐. 저 배신자 고니시를 죽인 후 여기서 할복을 할 것이다!”
부장이 항복을 권유하자, 가토 기요마사는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부장의 멱살을 잡았다.
“주군. 가토 님의 함선이 저희 대장선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미련한 녀석 같으니라고!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네놈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 손으로 정리를 해줘야지…. 조총을 가지고 오너라!”
“존명!”
부장에게서 장전된 조총을 건네받은 고니시 유키나가는 가토 기요마사의 대장선을 향해 조총을 겨누었다.
‘네놈과 나의 얄궂은 운명도 여기서 끝이로구나. 편히 눈을 감거라. 가토….’
-탕-
곧 고니시 유키나가의 조총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고, 총탄은 가토 기요마사의 가슴을 그대로 명중시켰다.
“으…. 억! 고니시 네놈이….”
가토 기요마사는 철천지원수 고니시 유키나가의 총탄을 맞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숨을 거두자, 지휘관을 잃은 그의 함대는 더는 싸울 의지를 상실했고 백기가 속속 올라왔다.
“제독님! 왜놈들이 드디어 항복을….”
송여립 장군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드디어. 항복한 왜군들은 목숨을 보전해주거라!”
긴 혈투 끝에 왜군의 주력군을 모조리 섬멸하자 이순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승이었다.
대한제국은 약 10여 척의 함선만이 소실되었을 뿐, 별다른 손실을 입지 않았으나,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함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함대에 가득 탑승한 약 4만에 가까운 병력 중 3만 명가량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다를 떠돌았고, 바다는 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다.
수천 척의 왜선이 불타오르거나 침몰해 바다는 왜선의 잔해가 가득했다.
“제독님! 감축드립니다. 대승이옵니다.”
함대를 이끌던 어영담 장군이 이순신에게 달려와 승리를 축하했다.
“흐음. 장군들 덕분입니다. 이제 한시름을 놓게 생겼습니다.”
이순신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영담을 바라보았다.
대승을 거둔 대한제국 감사들은 서로 얼싸안고 함성을 지르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군에 합류해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를 공격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멍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통일을 위한 전쟁에 참여했던 왜군들의 즐비한 시신을 바라보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무모한 도발을 획책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반대해 대한제국군에 합류하기로 하였으나, 배신자의 낙인은 뼈아픈 것이다.
“흐음.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구나!”
고니시 유키나가가 씁쓸한 표정으로 이순신과 함께 온 사위 소 요시토시를 바라보았다.
“아버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비록 우리 왜군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사옵니다.”
고니시가 침울해하자, 소 요시토시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며 장인을 위로하려 했다.
“흐음. 태합께서는 어찌 그렇게 무모한 도발을 하려는 건지….”
처참하게 깨진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를 보며 고니시 유키나가는 대한제국을 도모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2군을 섬멸한 이순신이 이끄는 함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와 합류해 나고야로 향했다.
***
구마모토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1군과 가토 기요마사의 제2군은 왜군의 주력이라 할 것인데, 고니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뜻을 거슬러 대한제국군에 합류하고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는 전멸하였으니, 왜군은 대한제국 침략은커녕 본토를 방어하기도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진린과 백전노장 등자룡이 이끄는 4군과 5군은 구마모토에 기습 상륙하여 규슈를 도모하였다.
누르하치가 이끄는 정예기병 5만도 진린, 등자룡과 함께 상륙하여 규슈를 침공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20만이 넘는 대군이 느닷없이 구마모토에 상륙하자, 전혀 방비하지 못한 왜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조…. 조선군이다.”
“갑자기. 어디서….”
전혀 방비하지 못한 왜군은 순식간에 규슈를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구마모토를 내어주고 북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무엇이라 했느냐? 20만이 넘는 조선군이 상륙해 구마모토를 점령했다는 것이냐?”
사쓰마 번의 번주 시마즈 요시히사가 20만이 넘는 대한제국군이 상륙해 단숨에 구마모토를 점령하고 북상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하옵니다. 정확히는 중원의 병력과 여진족 병력인 것 같사온데 그 숫자가 20만이 넘어 보였습니다.”
시마즈 요시히사의 부장의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말이 되느냐…. 어떻게 갑자기 조선군의 대군이….”
시마즈 요시히사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대한제국을 치겠다며 성대한 출정식을 마치고 20만이 넘는 대군이 나고야를 떠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 느닷없이 20만이 넘는 조선의 대군이 나타나 규슈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니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형님! 조선군이 먼저 우리 왜국을 침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시히사의 동생 시마즈 요시히로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그리된 모양이로구나. 노망이 난 도요토미 저자 때문에 규슈가 전쟁터가 되어버리게 생겼구나.”
화가 잔뜩 난 시마즈 요시히사가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받아 숙원인 규슈 통일을 포기하고 오히려 그의 수하가 되어야 했던 시마즈 요시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기세에 무릎을 꿇고 그의 가신이 되기는 했으나, 시마즈 가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그다지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한제국을 치겠다고 하자 시마즈 요시히사는 그가 노망이 든 것이라 여겼다.
시마즈 요시히사도 대한제국이 이미 거대한 제국이 되어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왜국이 도모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그 사실을 모르고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려 하니 곧 왜국에 재앙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형님! 이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병력만으로는 적군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20만 대군이라 하지 않습니까?”
시마즈 요시히로가 비관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머저리 같은 도요토미 때문에…. 참으로 한심한 일이로다. 그렇다고 이대로 규슈를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
“형님! 우리의 힘만으로 저 대군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리만 개죽음당할 것입니다.”
“일단 각 영주들의 군사를 모아보자. 당장 도요토미에게 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해라!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한제국을 치겠다며 20만 대군을 동원했기에, 규슈에는 남아 있는 병력이 얼마 없어 구마모토에 상륙한 20만 대군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시마즈 요시히사도 잘 알고 있으나, 어떻게 하든 규슈를 방어하고 싶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원군을 보내줄 때까지 버티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구마모토에 상륙한 진린, 등자룡 그리고 누르하치가 이끄는 25만 대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하며 규슈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했다.
왜군의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으나 제국군의 북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제국군은 가고시마, 미야자키, 오이타 등을 모두 점령하며 규슈의 마지막 전략적 요충지인 후쿠오카로 향했고 사쓰마 번의 시마즈 요시히사는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소집하여 각 규슈의 번주들과 연합하여 급히 후쿠오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