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나고야 해전 (2)
“주…. 군!”
신이 나게 탐망선을 쫓아오던 왜군들은 모두 가토 기요마사와 마찬가지로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대한제국의 함대가 이렇게 많이 자신들의 본토 앞바다에 와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런! 어찌! 조선 놈들이….”
수많은 전쟁을 치러봤지만, 가토 기요마사는 이렇게 많은 함선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왜선의 크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갈레온선과 판옥선이 함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니 왜군들은 압도적인 함대의 규모에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학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마냥 함정에 걸려든 왜선의 숨통을 조여 왔다.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는 완전히 학의 날개에 포위되었다.
대장선 갑판에서 이순신은 점점 사거리 안으로 거리가 좁혀져 오는 왜선을 바라보았고, 각 부대의 수병들도 말없이 전투준비를 하며 왜선을 바라보았다.
“제독님! 적선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송여립 장군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이순신이 진중한 표정으로 학의 날개에 완전히 포위된 왜선을 응시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방포하라! 적선을 분멸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커다란 대각 소리가 함대 곳곳에 울려 퍼지고, 대장선의 신호기가 펄럭였다.
“방포하라! 적선을 분멸하라!”
대장선의 신호를 확인한 각 함선의 함장들은 일제히 칼을 빼 들고 화포를 발포하라는 명을 내렸고, 명을 받은 화포장들은 이미 적선을 향해 겨누어져 있던 화포에 불을 붙였다.
‘퍼퍼퍼퍼 펑!’
곧 수천 척의 함선에 장착된 화포는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불꽃을 토해내었다.
함대에서 발포된 화포는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왜선을 향해 떨어졌다.
“으…. 악!”
“살…. 살려줘!”
앞에 선 왜선은 사정없이 떨어지는 커다란 철환 세례를 받고 순식간에 차디찬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왜군들은 공포에 질려 시퍼런 바다에 몸을 던지거나, 철환을 직방으로 맞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갔다.
순식간에 왜선 수십 척이 사라졌고, 당황한 왜군은 조총을 허공에 대고 쏘고 있었으나, 사거리가 현저히 낮은 조총의 탄환은 대한제국 함대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질 뿐이다.
“주군. 우리 함대가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의 부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놈들이…. 저것이 무슨 진법이라는 말이냐.”
무식한 가토 기요마사는 학익진을 생전 처음 보는 듯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주군. 적함이 너무나 많습니다. 게다가 화포의 사거리가 길어 우리 함선이 이를 버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서 공격하라! 조만간 고니시의 함대가 올 것이다. 돌격해! 돌격만이 저 진을 뚫을 수 있다.”
가토 기요마사는 별다른 방책을 내놓지 못하고 돌격하라는 명만 내리고 있었다.
가토의 명에 따라 왜선은 조총을 쏘며 빠른 속도로 대한제국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배의 방향을 틀어라!”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돌격이었다.
한쪽 면의 화포를 모두 쏜 대한제국 함대는 평소 훈련대로 순식간에 함선을 360도 회전하여 반대편에 이미 장전되어 있던 화포를 발포했다.
거대한 학의 날개를 펴고 화포를 쉼 없이 발포하는 대한제국 함대의 거센 공격을 왜선은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어느새 왜선 수백 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곳곳에 왜군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돌격하는 족족 왜선들은 함대의 포격을 받고 소실되어 갔으며, 왜군들은 이제 두려워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허한 조총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다.
“주군. 이러다가 함대가 모두 전멸당할 것입니다.”
“이…….런. 어찌 조선군 따위에 당한다는 것이냐. 고니시는 도대체 어디 처박혀 있는 것이냐….”
가토 기요마사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를 기다렸으나, 고니시의 함대는 보이지 않고, 사방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침몰하는 자신의 함대와 왜군들의 신음 소리만 들릴 뿐이다.
제국 함대의 화포장들은 쉬지 않고 능수능란한 솜씨로 화포를 장전해 곧바로 발사했으며, 왜선이 가까이 다가오자 궁수들과 조총병들도 활과 조총을 쏘았다.
궁병이 쏜 활과 조총병이 쏜 탄환은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더니 왜선을 향해 날아가 왜군들을 사정없이 쓰러트렸다.
제국 함대의 강력한 포격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을 정도인데, 궁수와 조총병들의 공격까지 이어지자, 왜군들은 이미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일부 왜선들은 공격을 멈추고 뱃머리를 돌려 도주하려고 하여 왜선들은 서로 뒤엉켜 왜군의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제독님! 승기를 잡은 것 같사옵니다.”
왜군들이 무너져 내리자, 송영길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군들의 전력이 형편없구나! 흐음. 귀선을 투입시켜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왜군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자, 이순신은 확실히 승기를 잡으려는 듯 거북선을 투입하라 명을 내렸다.
“장군! 귀선을 투입하라는 명이옵니다.”
대장선에서 거북선을 투입하라는 신호기가 올라가자, 나대용이 미소를 지었다.
“흐음. 드디어! 귀선의 위용을 왜놈들한테 보여줄 수 있겠구나. 돌격하라! 왜놈들을 향해 돌진한다!”
북소리와 함께 거북선의 노꾼들은 사력을 다해 노를 저었고, 용의 머리를 한 거북선은 왜선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저…. 저…. 것이 무엇이야!”
“괴…. 괴물이다.”
무서운 용의 머리와 뾰족한 쇳조각을 두른 한 번도 보지 못한 요상한 모양의 함선이 함포를 쏘며 왜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격해오자, 왜군은 비명을 지르며 비명을 지르며 당혹스러워했다.
왜군들은 거북선을 향해 조총을 퍼부었으나, 두꺼운 목재로 덮여 있는 거북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측면과 용의 머리에 장착된 화포를 발포하며 왜군 진영을 휘저었다.
“으악! 살려줘!”
수백 척의 거북선은 왜군 진영을 마음껏 짓밟았고, 왜선들은 큰 타격을 입고 바닷물에 잠기어 갔다.
“저…. 저 배가 무엇이냐!”
요상한 괴물 같은 배가 나타나 왜군의 진영을 혼란스럽게 하자, 가토 기요마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모르겠습니다. 주군! 처음 보는 배이옵니다. 저 요상한 배 때문에 진영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냐. 공격하란 말이다. 배가 근접해 있으니 조총이라도 쏘란 말이다.”
가토 기요마사가 고함을 쳤다.
“주군. 배가 워낙 튼튼하여 조총이 먹히지 않습니다.”
“저놈의 배가 무슨 요새라도 되는 것이냐. 배에 올라타기라도 해봐라!”
가토 기요마사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았다.
거북선이 사정없이 자신들의 진영을 유린하며 왜선들을 사냥하자, 당황한 왜군들은 거북선에 오르려 거북선을 향해 뛰어내렸으나 그들은 곧 뾰족한 쇳조각에 찔려 신음을 토해내다 바다에 그대로 떨어졌다.
가토 기요마사의 말처럼 거북선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깰 수 없는 철옹성과 같았다.
돌격선 거북선 부대를 지휘하는 나대용 장군은 왜선들이 거북선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지자 뿌듯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거북선의 가공할 위력을 확인했지만, 왜군과의 해전에서 거북선은 더욱 무서운 위력을 뽐내며 왜군의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충파! 귀선의 위력을 보여주거라!”
“존명!”
나대용은 왜선을 들이받으라 명을 내렸고, 그의 명이 떨어지자 거북선은 왜선의 정면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뭐…. 뭐야. 적선이 돌진한다.”
“괴…. 괴물이….”
거대한 크기의 거북선의 왜선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오자, 왜군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괴성을 질렀다.
“어서 조총을 쏴!”
“공…. 공격!”
-타타타 탕-“
거북선이 자신들의 배를 향해 오자, 왜군들은 조총이나 활 등 동원 가능한 무기를 모두 동원해 거북선에 퍼부었으나, 거북선은 꿈적도 하지 않고 더욱 맹렬한 속도로 왜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악! 부딪친다!”
“살…. 살려줘!”
거북선이 사정없이 왜선을 향해 오자, 겁을 잔뜩 먹은 왜군 중 일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북선은 왜선을 들이받았고, 왜선은 커다란 충격을 받고 선체에 심한 손상을 입어 그 틈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왜선은 거북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북선은 왜선을 향해 거침없이 돌격했고, 왜선은 모두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저…. 저런!”
가토 기요마사는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참혹한 전장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지 외마디 말을 내뱉고 식은땀을 흘리며 자기 병사들이 쓰러져 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주…. 주군 이미 승패가 기울었습니다. 퇴각을….”
부장은 이미 승패가 기울었다고 여기고 퇴각할 것을 가토 기요마사에게 요청했다.
“이…. 이런 어찌 이 천하의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군 따위에 이렇게 당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의기양양하게 대한제국을 향해 출병한 자신의 함대가 대한제국 땅을 밟기도 전에 나고야 앞바다에서 이렇게 참패를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함대는 이미 절반 이상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바다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의 수하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떠돌고 있었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퇴…. 퇴각하라!”
가토 기요마사는 눈물을 머금고 퇴각하라 명을 내렸다.
“제독님! 왜놈들이 드디어 퇴각하고 있습니다.”
송여립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왜군이 큰 손실을 입고 퇴각하자, 함대의 수병들은 큰 함성을 질렀다.
“흐음. 저놈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저놈들을 추격해 모조리 분멸하라!”
“존명!”
승기를 확실히 잡은 이순신은 왜군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이순신이 왜군을 추격하라 명을 내리자, 함대는 일제히 명을 따라 도주하는 왜선을 맹렬히 추격하며 화포와 조총 그리고 활을 쏟아부었다.
이미 대형이 완전히 무너진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는 대한제국 함대의 맹렬한 공격에 무너져 내렸다.
전투라기보다는 참혹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란환을 쏘아라!”
“비격진천뢰를 발포하라!”
왜선에 근접한 제국의 함대는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조란환과 비격진천뢰를 발포했고, 곧 작은 수백, 수천 개의 쇠구슬이 왜선을 덮쳐 왜군은 온몸에 쇠구슬이 박힌 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왜선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폭발한 후 쇳조각을 비산시켜 단숨에 수십여 명의 왜군들을 쓰러트렸다.
사방에서 비격진천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고, 왜군들의 신음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주…. 주군 고니시 님의 군대이옵니다. 고니시 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퇴각하는 방향에서 검은 십자가 문양이 펄럭이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가 나타났다.
“와아아아! 살았다. 고니시 님이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가 보이자, 대한제국 함대에 처참히 당한 왜군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고니시 이놈이 이제야….”
견원지간이었던 고니시였으나, 그의 함대가 이제라도 나타나니, 가토 기요마사는 누구보다 그가 반가웠다.
-타타타 탕-
허나 반가움도 잠시,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는 가토 기요마사 함대를 향해 조총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