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최후통첩 (2)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야심한 밤 비옷을 입은 말을 탄 서너 명의 무사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 앞에 나타났고, 이내 성문이 열렸다.
성문이 열리자 무사들이 성안으로 들어갔고, 곧바로 성문은 닫혀버렸다.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세 앞에 굴복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영지에 머무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 한구석에는 야심이 꿈틀거리고 있었기에 그는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깊은 밤 홀로 값비싼 이도 다완에 담기 뜨거운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주군! 고니시 유키나가가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를 찾아왔다.
“들라 하여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바로 앞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나타났다.
“어서 오시오. 비가 이렇게 내리는 곳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고니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소신을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표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달리 고니시는 예를 갖추어 그를 깍듯하게 대했다.
“태합 전하는 무탈하시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시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니시를 바라보았다.
“무탈하십니다. 태합 전하께서는 조선과의 전쟁 준비에 여념에 없으십니다.
“하하하! 태합 전하는 정말 불세출의 영웅이시구려. 거대한 제국을 도모하겠다는 야심을 품으셨으니…. 우리 왜국에 이처럼 원대한 포부를 가진 영웅호걸은 없지 않았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고니시 유키나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현실을 망각하고 무모하게 이미 대제국이 된 대한제국을 정벌하겠다는 짓거리를 비웃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태합 전하의 뜻이 원대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소국이 대국을 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소신은 염려되옵니다.”
고니시가 눈치를 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바라보았다.
“흐음. 소국이 대국이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도 다완에 담긴 녹차를 마실 뿐이다.
도쿠가와가 녹차만 마실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고니시 유키나가가 긴 한숨을 내쉰 뒤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영주님! 긴 전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백성들의 원망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조선은 이미 예전의 조선이 아니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서반아와의 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중원과 신대륙의 광활한 식민지를 차지한 대국입니다. 어찌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우리 왜국이 거대한 제국 조선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고니시 유키나가가 간절한 눈빛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쿠가와는 다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이도 다완을 내려놓고 고니시를 바라보았다.
번쩍거리며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와 함께 비는 더욱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하하하! 그대가 나라를 생각하는 걱정이 많은가 보구려. 허나 그대는 태합 전하가 아끼는 가신이 아니오. 그런 소리를 나한테 하는 연유가 도대체 무엇이오?”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는 도쿠가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자신을 찾아와 전쟁을 반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혹시나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하고 있었다.
“영주님! 소신은 조선과의 전쟁은 우리 왜국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여기고 있사옵니다. 소신은 태합 전하께 간곡히 전쟁을 피해달라 부탁을 하였으나, 태합 전하께서는 소신의 말을 통 듣지 않으시니 걱정이 크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더니 다시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흐음.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오. 태합 전하의 충복인 그대의 말도 듣지 않는 태합 전하인데, 조선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영주님! 우리 왜국을 위해 영주님이 나서 주시옵소서. 이제 전쟁을 막을 분은 영주님밖에 없사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의 속마음을 드디어 털어놓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하하! 내가 나서 달라! 지금 나보고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이오. 비록 태합 전하의 신하가 되었으나, 태합 전하는 아직도 본인을 믿지 못하고 있소이다. 그렇게 이 도쿠가와를 경계하고 있는 태합 전하이거늘. 내가 전쟁을 반대하고 나선다면 분명 태합 전하는 우리 가문이 다른 뜻을 품고 있다고 여기고 그 칼끝을 조선이 아닌 우리 가문을 향해 겨눌 것이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색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한 전쟁을 막아달라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도 왜국이 대한제국을 치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천하를 통일하고 모든 군권을 가지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적하는 것은 멸문지화를 부르는 일이기에, 그는 몸을 사리고 있을 뿐 나서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영주님! 소신은 영주님이 비록 지금은 태합 전하를 섬기고 있으나, 언젠가는 쇼군이 되고자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의 가슴속에 들어간 것처럼 도쿠가와의 속마음을 말하자, 그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고니시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태합 전하의 위세에 눌려 가신들이 전쟁에 찬성하고 있지만, 태합 전하의 측근을 제외하고는 많은 가신들과 영주들의 불만이 크옵니다. 영주님이 나서 주시면 영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지금 날 보고 태합 전하께 반기를 들라 부추기는 것이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니시를 바라보았다.
“그…. 그렇습니다. 영주님께서 쇼군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영주님께서 거병하시면 소신의 가장 먼저 영주님과 함께 나설 것이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오랫동안 섬겨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도요토미가 천하를 통일한 후 전쟁이 없이 교역을 장려하여 백성들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도요토미는 노망이 난 늙은이처럼 대제국이 된 대한제국을 치겠다며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또다시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트리려 했고, 게다가 그가 독실하게 믿는 천주교를 탄압하니 도요토미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그는 도요토미를 버리려고 한 것이다.
“하하하!”
고니시 유키나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반기를 들라고 말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는 태합 전하의 가신이거늘 내가 그대를 믿을 수 있소? 그대가 태합 전하께 반기를 들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전히 고니시 유키나가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주님! 태합 전하는 예전의 전하가 아니옵니다. 허망한 야망에 사로잡혀 백성을 생각지 않으니, 태합 전하를 따를 이유가 없사옵니다. 소신은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백성을 위한 길이라 여겨 이렇게 영주님을 찾아온 것뿐입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진정성이 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흐음. 태합께 반기를 든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거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여전히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으나, 그의 말이 영 터무니없는 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고니시가 백성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은 하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완전히 떠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영주님! 백성을 위해 일어나 주십시오! 영주님께서 나서 주시면 소신 영주님의 가신이 될 것이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다시금 간절한 눈빛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바라보았다.
기회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범인은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인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지만,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기회라는 것을 아는 자는 그 기회를 포착해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인지 아니면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위기인지 잘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건 자신의 운명을 가를 중대한 기로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흐음. 좋소이다. 백성을 위한 길이라 하니,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겠소.”
“감…. 감사하옵니다.”
도쿠가와가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거하자는 자기 뜻을 받아들이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사방에서 번쩍거리며 번개가 치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가 계속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운명을 건 도박을 하기로 했고, 고니시도 평생을 섬겨온 주군을 버리려 했다.
***
오사카성
대한제국 용호군 갑사 200여 여명이 오사카성 한복판에 나타냈다.
그리고 그들은 병조판서 류성룡을 호위하고 있었다.
갑자기 대한제국 갑사들이 모습을 보이자, 오사카의 왜인들은 긴장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조선군이 무슨 일이지?”
“그러게, 말이야. 항복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조선이 왜 항복하겠나. 태합 전하께 경고를 하러 온 것이 아니겠는가?”
“경고?”
“그래. 솔직히 우리 왜국이 어떻게 조선을 칠 수 있겠나.”
왜인들도 대한제국과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안 대한제국이 왜국과의 교역을 전면 중단하고, 왜국을 응징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에 오사카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왜인 대다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도 대한제국이 이미 드넓은 중원을 차지한 제국이라는 것을 알기에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왜국이 대한제국을 치는 것은 무리라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전쟁 준비를 핑계로 백성들을 징집하고, 과도한 조세를 부담시키고 있기에 백성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런 상황에서 무장한 조선군 갑사들이 오사카 한복판에 나타나니 왜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선 놈들이 교역을 중단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녹차를 마셨다.
“그러하옵니다! 태합 전하. 조선이 우리 왜국이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교역을 전면 중단하고 왜관에 거주하고 있던 상인들을 모두 추방했습니다. 상인들의 걱정이 큰 것 같사옵니다.”
센리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소이까. 이제 곧 조선 땅이 우리 것이 될 것인데,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한제국이 교역을 끊는 등 보복을 해온다고 해도 별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태합 전하! 그래도 상인들의 불만이 큰 것 같습니다. 남만국과도 교역이 끊어진 상태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소이다. 조선 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 더 기다릴 필요가 없겠소이다. 당장 조선을 정벌하러 가야겠소.”
“태합 전하! 조선에서 사자가 왔사옵니다.”
“흐음. 사자가? 드디어 왔군. 들라 하여라!”
마침내 병조판서 류성룡이 오사카성에 당도했고, 류성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