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혼인 동맹 (2)
“그렇습니다. 저희 여왕께서는 대한제국과 동맹을 맺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더들리 경은 다시금 엘리자베스 1세가 대한제국과 동맹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영국 여왕이 대한제국과 동맹을 원한다는 말을 들은 대신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술렁였다.
이균은 그제야 왜 영국 여왕의 최측근인 레스터 백작이 직접 대한제국에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맹이라! 귀국의 여왕께서 우리 제국과 동맹을 원한다니 기쁘기는 하나, 이 먼 곳까지 와 우리 제국과 동맹을 맺으려는 연유가 있소?”
이균이 진중한 표정으로 레스터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레스터 백작도 진중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스페인에 억압받고 있는 네덜란드 독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네덜란드를 지원하기 위해 떠난 저희 함대가 스페인 함대에 패하였기에, 여왕께서는 스페인군이 저희 본국을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소이까?”
정후청 요원을 파견해 세계 곳곳의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고 있는 이균은 당연히 영국 함대가 스페인 함대에 대패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에 적대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녀는 영국이 유럽의 변방에서 벗어나 대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제국을 건설한 스페인을 깨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왕위를 제임스에게 물려주고 잉글랜드로 망명한 메리 스튜어트가 헨리 8세 누나의 적손녀임을 내세워 엘리자베스 1세를 제거하려는 반란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된 이후, 스페인과는 거의 원수지간이 되어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해 신교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지원했고,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펠리페 2세는 그런 영국을 가만둘 수 없었다.
허나 스페인 함대가 이순신이 이끄는 지중해 함대에 대패하고 식민지 전쟁까지 패배하며 신대륙의 광대한 식민지를 잃고 큰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자 엘리자베스 1세는 이를 스페인을 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노련한 드레이크를 제독으로 삼고 존 노리스 장군과 함께 군인 3만여 명을 태운 150여 척의 영국 함대를 스페인으로 보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승리를 자신했으나, 스페인군은 만만치 않았다.
비록 스페인군이 대한제국군에 연전연패했다고 하나 여전히 스페인 해군은 강력했고 대제국을 건설한 스페인군의 위상은 여전했다.
스페인 함대는 기세등등하게 스페인을 치겠다고 나선 영국 함대를 50여 척을 수장시켰고, 2만여 명의 병력이 고기밥에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참패였다.
대한제국군에 패하며 위기에 몰려 있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이 해전으로 붕괴하였던 무적함대를 재건하는 데 성공했으나, 반면 영국은 주력해군이 격파되어 네덜란드 지원은커녕 본토를 공격당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초래되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자, 다급한 엘리자베스 1세는 고민 끝에 그의 최측근인 레스터 백작을 대한제국에 보내 동맹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저의 여왕께서는 대한제국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흐음. 영기리가 스페인 함대에 패하여 어려움에 부닥쳐있다는 사정은 이미 들어 알고 있소이다.”
“폐하! 대한제국은 이미 대제국이옵니다. 그러하고 스페인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대한제국과 저희 영국의 이해관계가 맞을 것이니, 여왕께서는 대한제국과 동맹을 맺어 스페인군을 몰아내고 싶어 하십니다.”
동맹을 간절히 원하는 레스터 백작의 말을 듣고 이균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스페인군과 힘든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는 네덜란드는 얼마 전 밀사를 보내 독립전쟁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균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관여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영국이 동맹을 맺기를 간청하니 그 제안을 받아 영국과 함께 네덜란드를 지원하여 이참에 스페인군을 완전히 꺾어 버린다면 대한제국은 유럽에서도 스페인을 대신해 패권을 잡을 수 있기에 그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흐음. 좋소이다. 귀국의 제안을 수락하겠소.”
잠시 고민하던 이균은 레스터 백작의 제안을 수락해 영국과 동맹을 맺기로 했다.
“페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이 동맹을 맺자는 여왕의 뜻을 수락하자, 레스터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제국도 영기리가 화란국을 지원하며 서반아와 맞서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소이다. 그대들을 지원해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관여할까 마침 고민 중에 있었소. 허나 이곳의 사정도 복잡하여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소.”
이균이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폐하! 제국의 사정이 복잡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온지?”
로버트 더들리 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왜국이 어이없게도 우리 제국과 전쟁을 벌이겠다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왜국이 비록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나 그들은 오랜 내전으로 20만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소. 그들과 일전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기에 유럽 개입을 주저하고 있었소이다.”
이균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레스터 백작을 바라보았다.
“폐하! 어찌 작은 섬나라 따위가 대국인 대한제국을 넘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왜국의 왕이 미친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들을 응징하소서. 저희 영국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도록 하겠나이다.”
레스터 백작도 왜라는 조그마한 섬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섬나라가 감히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대한제국을 넘본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작은 나라가 20만이 넘는 대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흐음. 그러게 말이오. 조그마한 섬나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된 망상에 빠진 것이지요. 어찌 되었건 그대의 나라가 도움을 주겠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구려. 우리 제국도 그대의 나라를 도울 것이오. 스페인이 오만방자하게 영기리를 침략한다면 우리 지중해 함대가 용서치 않을 것이오.”
이균은 유럽에 주둔 중인 지중해 함대가 개입할 수 있는 점을 분명히 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유럽 최강의 함대 지중해 함대가 나설 수 있다고 말하자 레스터 백작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그리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흐음. 그것이 무엇이오?”
이균이 빙그레 웃으며 레스터 백작을 바라보았다.
“폐하! 저희 여왕께서는 양국의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는 뜻으로, 양국의 왕가가 혼인 관계를 맺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레스터 백작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혼인? 그럼 양국 왕가의 자식들 간에 혼례를……?”
느닷없이 레스터 백작의 입에서 대한제국과 영국이 혼인동맹을 맺었으면 한다는 말이 나오자 이균은 잠깐 당황을 했다.
그가 준비해온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좌의정 율곡 등 대신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 혼인동맹을 맺자? 뭐 그런 소리요?”
율곡이 놀란 눈을 하고 레스터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렇소이다. 양국이 혼인으로 서로 연결되면 양국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지 않겠습니까?”
로버트 더들리 경이 미소를 지으며 율곡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율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하나 백작의 나라 여왕께서는 혼인하지 아니하여 자녀가 없지 않소. 그런데 어떻게 우리 황실과 혼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요?”
율곡은 영국 여왕이 결혼을 하지 아니하여 그녀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물론 자식을 두고 있지 않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사정은 이균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여왕이 된 후 그 신하들이 대를 이을 왕자를 생산할 필요성이 있기에 여러 차례 결혼할 것을 강하게 권유하였으나, 그녀는 혼인을 빌미로 다른 나라가 영국을 집어삼키려 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참한 가족의 운명을 보아서였는지 자신은 조국과 결혼했다고 하며 한사코 결혼을 거부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결국 자녀를 두지 못했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가 죽게 되면 튜터 왕조의 명맥은 끊어지는 셈이었다.
“흐음. 그렇소이다. 그러나 소신에게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은 여식이 하나 있소이다. 여왕께서는 제 여식을 양녀로 삼아 대한제국 황실의 황자들 중 한 명과 혼인을 치렀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하셨습니다.”
“흐음. 백작의 자녀를 양녀로 삼아 혼례를 올리겠다…….”
그 말을 들은 이균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양국이 혼인으로 연결되면 양국의 관계는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좌의정의 말씀대로 저희 여왕께서는 다음 보위를 이을 자녀가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다음 보위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께서 넘겨받으실 것이옵니다. 저희 여왕께서는 다음 보위를 넘겨받을 제임스 1세의 짝도 대한제국의 황녀와 혼인시키기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무엇이라! 제임스 1세의 배필까지…….”
레스터 백작은 계속 전혀 예상하지 않은 놀라운 말을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죽고 튜터 왕조의 맥이 끊어지면 그녀의 뒤를 이어 제임스 1세가 보위를 이어받게 된다는 것을 이균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스튜어트 왕가 출신으로 영국 전역의 왕이 되는 제임스 1세의 배필을 대한제국 황녀로 하고 싶다는 제안은 놀라운 제안이었다.
그만큼 엘리자베스 1세는 대한제국과의 동맹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저희 여왕께서는 대한제국과의 동맹을 절실히 원하고 있사옵니다.”
“흐음. 황녀라…….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균이 율곡을 바라보았다.
“폐하!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나, 소신의 생각으로는 영기리와 동맹을 맺는다면 남만국, 영기리와의 삼각 동맹으로 스페인군을 유럽에서 모두 몰아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혼인 관계로 연결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율곡은 영국과 혼인 관계를 맺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면 포르투갈, 영국으로 이어지는 삼각 동맹을 완성해 스페인을 압박할 수 있다고 여겼다.
“흐음. 병조판서의 생각은 어떻소?”
이균은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혼기가 다 되어 가는 황자와 황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황자의 짝으로 레스터 백작의 여식을 맞이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는데, 이역만리 유럽으로 공주를 보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마 공주를 유럽으로 보내겠다고 하면 딸을 더는 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황후가 슬퍼할 것이니 그것을 생각하여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폐하! 공주님을 이역만리 유럽으로 보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나, 좌의정의 말씀처럼 제임스라는 자가 보위를 이어받을 자라면 양국의 관계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옵니다. 소신도 혼인 관계를 맺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옵니다.”
류성룡도 율곡과 같은 뜻이었다.
그는 유럽에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대신들이 하나같이 영국과 혼인동맹을 맺는 것을 찬성하였음에도, 이균은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 혼기가 꽉 찬 셋째 공주가 있는데 제임스 1세의 짝으로 그녀가 적격이었으나, 황후가 공주를 아끼니 그 공주를 떠나보내야 하는 황후의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하니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