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황태자의 혼례 (1)
까투리가 활에 맞고 떨어지자,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 참으로 대단하시옵니다. 어찌 그런 활 솜씨를…….”
대신들은 아부하는 데 여념이 없었으나, 이균은 그런 대신들의 아부가 싫지 않았다.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 사랑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태자의 문무가 출중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든든하고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이균과 황자들은 이후에도 신들린 솜씨로 활을 쏘아 여러 마리의 동물을 사냥했다.
푸짐한 안줏거리를 사냥한 후 이균은 대신들과 함께 벌판에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갓 사냥한 고라니, 멧돼지 등이 통구이 바비큐가 되어 제법 노릇노릇 익어 가고 있었고, 이균과 황태자 그리고 대신들은 서로 술잔을 기울였다.
커다란 보름달이 걸려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벌판에서 벌이는 바비큐 파티에 절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흐음. 오래간만에 이렇게 사냥을 하니 기분이 좋구려!”
이균은 어느새 건하게 술에 취해 있었다.
고된 정무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연을 벗 삼아 사냥을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폐하의 은덕으로 제국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사옵니다.”
좌의정 율곡이 이균이 따라준 술잔을 받으며 말했다.
“태평성대라! 그대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구려. 하지만 아직도 제국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소이다. 왜놈들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지 않소? 서반아 놈들도 이대로 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오.”
태평성대라는 좌의정의 말이 기뻤으나,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은 이균은 그렇게 기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왜놈들이 감히 무례하게 우리 제국을 치려 한다니 가소롭기 그지없습니다. 왜놈들이 만약 도발한다면 우리 정예의 황군이 가차 없이 왜놈들의 목을 칠 것이오니 염려치 마시옵소서.”
병조판서 류성룡이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 내전으로 단련된 왜군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류성룡도 알고 있었으나, 명나라군과 서반아 군을 연달아 격파한 제국의 강력한 군대가 있기에 왜군들을 능히 물릴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흐음. 군권을 책임지고 있는 병조판서가 그런 말을 하니 걱정이 되지 않는구려.”
한없이 신중한 병조판서 류성룡이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왜놈이 도발하면 그들의 목을 치겠다고 하자, 이균이 호탕하게 웃으며 류성룡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중원의 사정은 어떻소이까?”
“백성들은 많이 안정되었사옵니다. 다만 일부 명나라의 유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나 그 세가 미약하여 모두 진압하고 있사옵니다.”
한때 혼란을 느꼈던 중원의 백성들은 이균이 그들을 특별히 지원해주었기 때문인지 이제 안정을 되찾고 오히려 명나라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대한제국의 통치를 반겼다.
다만 여전히 명나라 황실을 따르는 일부 유신들과 장수들이 크고 작은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큰 세를 이루지 못하고 속속 대한제국군에 진압되었다.
“흐음. 다행이구려. 명나라의 옛 백성들에게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오. 결국, 민심이 가장 중요한 것이오. 민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대제국이라 해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오.”
이균이 술 한 모금을 마시며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그리고 남명의 정황은 어떻소?”
“폐하 별다른 동향은 없사옵니다. 일부 반란을 일으킨 명나라 유신들이 남명과 함께 하자고 청하고는 있으나, 남명 왕이 모두 거절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도승지 이항복이 말했다.
“흐음. 그러하구려. 남명의 상황도 예의 주시하시구려. 누르하치는 어떻소?”
“야인들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좌의정 율곡이 말했다.
“흐음. 누르하치라는 자는 야심이 큰 자요. 지금 우리 제국의 위세 앞에 고개를 숙이고는 있지만, 조그마한 빈틈이 보이면 언제든지 제국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자요. 누르하치와 그 부족의 경계를 늦추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정후청 요원들이 누르하치 일족과 부족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균은 야심이 가득한 누르하치가 그 야심을 숨기고 제국에 복종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그 야심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기고, 누르하치 일족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었다.
“하하하. 자 오늘은 참 술 마시기 좋은 날이구려. 이렇게 야외에서 그대들과 잔을 기울이니 술에 취하지 않는구려.”
이균은 흥이 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일일이 대신들에게 술을 따라 주웠고, 좌의정 율곡을 비롯한 대신들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이균이 따라주는 어주를 받았다.
이균과 대신들은 거나하게 취해 흥겨운 술자리를 이어갔고, 함께한 황태자와 황자들도 술을 나누어 마셨다.
그런데 그 순간 술잔을 비운 율곡이 황제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이제 황태자 마마의 혼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균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렇군요. 황태자가 이렇게 장성했는데 짝이 없으니…….”
이균이 황태자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자, 황태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하옵니다. 황태자 마마의 혼례를 치를 시기가 이미 지난 듯하옵니다.”
대신들도 빙그레 웃으며 황태자가 혼례를 올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좌의정 율곡의 말에 동조했다.
“흐음. 황태자! 생각해 놓은 짝이라도 있는 것이냐?”
“폐하! 소자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사옵니다.”
황태자는 느닷없이 혼례 얘기가 나오자 당혹스러운지 얼굴만 붉힐 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이균은 얼굴을 붉히고 있는 황태자가 재밌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이거늘 지금까지 짝이 없이 지냈으니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허허. 속히 황태자의 배필을 찾아보아야겠구려. 황태자를 더는 홀로 지내게 놔둘 수 없지요.”
“하하하. 그러하옵니다. 폐하!”
***
우토성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자신의 영지인 우토성에 마련된 작은 성당에 앉아 묵주를 매만지며 천주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아무 말이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성당의 문이 열리고 한 승려로 보이는 자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향해 걸어갔다.
인기척이 들리자, 기도를 올리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셨군요. 오사카에서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선생이자 정신적 스승 센리 큐였다.
“아니오. 기도를 올리고 있었나 보구려.”
“그러하옵니다. 요즘 걱정거리가 많아 통 잠이 오지 않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센리 큐를 바라보았다.
“흐음. 걱정이라……. 조선과의 전쟁 때문이요?”
센리 큐도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려도 태합 전하께서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으시니…….”
고니시 유키나가는 대한제국과의 전쟁이 자살행위와 같다며 극구 전쟁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노망이 들었는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흐흠. 정말 걱정이로군요. 태합 전하께서는 이미 생각이 확고합니다. 전쟁 준비도 거의 다 끝나가니, 분명 조금 있으면 조선 아니 대한제국을 침공할 것이요.”
센리큐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고니시 유키나가와 마찬가지로 대한제국과의 전쟁이 승산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신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말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대한제국과의 전쟁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오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이자 자신과 뜻이 같은 센리큐와 전쟁을 막을 방도를 논하기 위해 그를 은밀히 자신의 영지로 부른 것이었다.
“선생도 아시지 않습니까? 조선은 이미 대제국입니다. 그런 대제국을 어떻게 우리가 칠 수 있겠습니까! 조선을 침공하는 날이 우리 왜가 망하는 날이 옵니다.”
대한제국과 교역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어떻게 해서든 대한제국과의 전쟁을 막고 싶었다.
“그것을 왜 모르겠소. 그런데 태합 전하께서 도통 말을 듣지 않으시니……. 나이가 드시니 더 고집이 세진 것 같소.”
센리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생, 전쟁을 막을 방도가 없겠습니까?”
“흐음. 다른 가신들이 우리와 뜻을 같이해주어야 하는데…….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태합 전하의 가신들 대부분이 전쟁에 찬동하며 오히려 태합 전하를 부추기고 있으니…….”
전쟁을 막을 뾰족한 방도가 없는 센리큐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센리큐가 별다른 방도를 내놓지 못하자, 고시니 유키나가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태합 전하께서 선생을 가장 믿고 있으니, 선생이 다시 태합 전하를 설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흐음. 해보기는 하겠지만, 태합 전하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오. 태합 전하의 뜻을 누가 막을 수 있겠소.”
센리큐가 체념하듯 말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긴 하지만 그는 점차 주군이 하는 짓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승산도 없는 대한제국과 전쟁을 하겠다며 무모한 짓을 하고 있고, 또 그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임을 알면서도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주교 신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얼굴로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을 열었다.
“선생!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무어라 했소? 도쿠가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입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말이 나오자 센리큐는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지금 태합 전하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고니시 유키나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센리큐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대의 뜻은 알겠지만, 아주 위험한 생각이요. 도쿠가와가 지금은 태합 전하의 위세에 몸을 숙이고는 있지만, 그는 태합 전하의 정적이나 마찬가지요. 그자와 접촉하는 것이 발각이라도 되면 태합 전하께서 그대를 반역자로 몰아 처단할 것이오.”
센리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접촉하겠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발상이 위험하다 여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대적할 적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밖에 없었다.
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일통했다고는 하나 도요토미는 항상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경계했다.
도쿠가와가 야심을 가득 숨기고 있다는 것을 도요토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가 빈틈을 보이면 분명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가 이룩한 영광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가신들 중 누군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접촉해 그의 뜻을 꺾으려 한다는 것을 안다면 분명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분노하며 그 가신을 잔인하게 처단할 것이다.
“선생! 알고 있소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지 않소이까? 태합 전하를 막지 못하면 우리 왜는 파국을 맞이할 것입니다. 태합 전하를 막을 자는 도쿠가와밖에 없습니다. 전쟁만 막을 수 있다면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센리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