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식민지 전쟁 (2)
“그……. 그러하옵니다. 총독님 아카풀코에 조선 함대가 나타나…….”
비서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돈 안토니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조선 함대가 아카풀코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냐.”
돈 안토니우는 느닷없이 조선 함대가 나타나 전략적 요충지 아카풀코를 함락시켰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은광을 차지한 조선군을 경계하고는 있었지만, 바다를 통해 조선군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총독님! 본토에 있는 조선의 함대가 태평양을 건너 아카풀코에 온 것 같사옵니다.”
“무엇이라! 태평양을 건너…….”
돈 안토니우는 당황했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대담하게 태평양을 건너 아카풀코를 공략한 대한제국의 기세가 두려워졌다.
“에르난데스는 어떻게 되었느냐?”
“전사하였다 하옵니다. 요새를 지키는 병력 전부가 조선군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고…….”
“이……. 이런! 잔인한 놈들 같으니라고”
돈 안토니우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에르난데스 장군마저 비명횡사했다 하니 돈 안토니우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병력을 동원하라! 아카풀코는 동방으로 통하는 관문과 같은 곳이다. 아카풀코를 내어주면 동방으로 갈 수가 없다.”
“알……. 알겠습니다.”
아카풀코는 신대륙과 동방을 연결해주는 전략적 요충지이기에, 돈 안토니우는 결코 아카풀코를 내어줄 수 없었다.
곧바로 그는 소집령을 내려 군대를 모아 아카풀코를 탈환하려 했다.
***
볼리비아 조선군 요새
원주민과 연합하여 스페인군의 침략을 물리친 이시언 대좌는 원주민들을 훈련시키고 요새의 경비를 강화하며 스페인군의 재침을 대비했다.
그는 분명 스페인군이 요새를 다시 공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반아 놈들의 동태는 어떠한가?”
“서반아가 군대를 모으고 있다는 첩보이옵니다. 다시 요새를 공격할 것 같사옵니다.”
“흐음. 그러할 것이네. 서반아 놈들이 결단코 은광을 되찾으려 할 것일세. 경계를 더 단단히 하고, 서반아 군의 동태를 살피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원주민과 그리고 정착민들의 피와 땀으로 요새를 지켜내기는 했지만, 스페인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략한다면 요새를 다시 지켜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식량은 제법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요새에 고립되어 있기에 화포를 장전할 탄약이나 탄환 등이 부족했다.
“대좌님……! 저희 요새를 향해 말이…….”
그 순간 여러 마리의 말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요새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말이? 서반아 군인가?”
“그…….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시언 대좌는 당장 망원경을 꺼내 요새를 향해 달려오는 말을 바라보았다.
“저……. 저것은 제국군의 깃발인데?”
말 위에 탄 갑사들 위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대좌님? 대한제국군이라 하셨습니까?”
부관이 놀라 이시언 대좌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대한제국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단 갑사들을 태운 말이 달려오니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시언 대좌도 다소 어리둥절했다.
“대한제국군이 분명하다!”
그러나 말이 점점 요새에 가까워지며 말 위에 타고 있는 이들이 제국군의 갑사라는 것이 명확해지자 요새를 지키는 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아……. 아군이다!”
“제……. 제국군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제국군 갑사들이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요새의 문은 열렸고, 갑사들을 태운 말들은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어찌 된 일인가? 자네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이시언 대좌가 다소 놀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대좌는 저희는 태평양을 건너 아카풀코에 상륙했습니다. 이억기 장군님께서 소식을 전하라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무엇이라! 태평양을 건너! 그럼 황제 폐하께서 드디어 원군을 보내 주셨다는 것인가?”
원군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시언 대좌의 눈이 빛났다.
“그러하옵니다. 대좌님!”
“이런. 드디어 원군이……. 아카풀코는 그럼 함락시킨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아카풀코를 지키기 있는 서반아군을 모두 전멸시켰사옵니다.”
“흐음. 이렇게 감격스러운 일이…….”
드디어 대한제국군의 대군이 태평양을 건너 그들을 구원해주러 왔다는 말을 들은 이시언 대좌는 감격스러워했다.
제국이 함대를 이끌고 요새에 고립된 제국군을 구원해주기 위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요새 안의 갑사들과 정착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요새 안 병력들의 사기는 높아졌다.
이제 약조를 깨고 요새를 공략한 스페인군에 보복을 가할 때가 되었다.
***
암스테르담
강화도에서 이삼평이 만든 채색 자기를 가득 싣고 온 포르투갈의 마누엘 상단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들의 근거지 리스본으로 향할 수도 있었지만, 더욱 높은 값을 받기 위해 물류 교역의 중심지 암스테르담으로 가기로 했다.
동방에서 진귀한 물자를 가득 실은 갈레온 선단이 항구에 정박하자, 유럽 각국에서 온 왕실과 귀족들 대리인들이 상선 주위에 몰려들었다.
스페인과의 오랜 전쟁을 치르고 있었으나, 암스테르담은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어디에 들렀다 오는 것이오?”
“대한제국이요.”
“대한제국이라면 청화백자를 가지고 온 것이오?”
마누엘이 대한제국에서 왔다고 하자, 왕실과 귀족들의 대리인들은 당연히 질 좋은 청화백자가 가득 실려 있을 것이라 여기고, 상선 주위에 더욱 몰려들었다.
“청화백자도 있소만, 그것보다 더 좋은 도자기를 가지고 왔소이다.”
마누엘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청화백자보다 더 좋은 자기? 그것이 무슨 소리요?”
마누엘이 청화백자보다 더 좋은 자기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자, 대리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에게 있어 도자기는 여전히 청화백자뿐이었고, 청화백자를 능가하는 그 어떠한 자기도 찾을 수 없었다.
유럽 각국은 고품질의 청화백자를 만들어내는 대한제국과 명나라를 부러워하며 자신들도 도자기를 만들어보기 위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고령토의 존재와 뜨거운 불을 견디어 내는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그 비밀을 찾아내지 못한 유럽 제국의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고, 결국 비싼 은을 주고 청화백자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청화백자는 최고의 도자기였고, 그들에게 청화백자 이외의 도자기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포르투갈 상단이 청화백자가 아닌 새로운 도자기를 가지고 왔다고 하니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소이다. 청화백자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자기요.”
마누엘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화백자보다 아름답다? 세상에 그런 도자기가 어디 있다는 것이오?”
왕족과 귀족들의 대리인들은 마누엘이 통 무슨 말을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럼 한번 도자기를 보여드리겠소.”
마누엘이 일꾼을 향해 눈짓하자, 일꾼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려 뜯었다.
상자가 뜯기고 상자 안에 있던 채색 자기를 일꾼이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자, 대리인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아니. 어떻게 이런 자기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갖가지 다양한 색상의 도자기가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자, 왕족과 귀족들의 대리인들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동안 코발트 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에 단조로운 색상에 익숙했던 그들이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색깔을 표현한 도자기는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어떻습니까? 도자기가 마음에 드십니까?”
마누엘이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대리인들을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아니. 이 도자기가……. 대한제국에서 새로 만든 도자기란 말이오?”
“그렇소이다. 청화백자가 푸른색만 표현할 수 있다면, 이번에 대한제국에서 선보인 도자기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소이다."
"정말 대단하구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
그들은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자기의 이름이 채색자기라는 것이요? 내 돈은 얼마든지 줄 것이니 자기를 모두 우리에게 넘기시오.”
영국에서 온 왕실의 대리인이 채색 자기를 모두 사겠다고 나섰다.
“무슨 소리요. 우리가 두 배는 더 주겠소. 우리한테 넘기시오.”
각 유럽에서 몰려온 왕실과 귀족들의 대리인들은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채색 자기를 서로 사겠다며 경쟁을 했고, 이를 마누엘은 뿌듯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결국, 마누엘이 가득 싣고 온 채색 자기는 유럽 왕실과 귀족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가격 경쟁이 벌어졌고, 청화백자보다 10배나 되는 고가의 가격으로 모두 완판되어 마누엘에게 큰 부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청화백자의 시대가 저물고 대한제국이 새롭게 선보인 채색 자기의 시대가 오고 있었고, 청화백자를 다시 대량으로 생산해 부흥을 꿈꾸었던 남명은 다시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
태평양을 건너온 대한제국 함대의 기습공격으로 전략적 요충지 아카풀코를 내어준 돈 안토니우는 부랴부랴 군대를 소집했고, 급히 수집된 약 5만여 명의 스페인군은 아카풀코를 향해 진격했다.
“모조리 죽여라!”
“마을을 불태워라!”
그들은 아카풀코로 향하는 도중 원주민 마을을 급습해 보이는 대로 원주민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대한제국군과 연합해 반기를 든 원주민들에 대한 보복이자, 원주민들이 또다시 대한제국군과 연합하여 배후를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크기에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처였다.
스페인군은 살인귀처럼 보이는 대로 원주민들을 살해했고, 평화롭던 원주민 마을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 비명 소리가 난무했고, 마을은 매캐한 연기와 함께 불탔다.
돈 안토니우는 불타는 원주민 마을을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괘씸한 놈들……. 감히 대 스페인 국에 반기를 들다니. 반기를 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도록 해라!”
원주민 전사들은 가족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소총과 화포로 무장한 스페인군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들은 곧 가족과 부족민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대한제국군에 대패한 굴욕을 원주민들에게 풀려는지 그들은 원주민 마을을 보는 즉시 파괴하고 약탈을 자행했고, 살육을 견디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스페인군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가슴에 품고 도주했다.
***
아카풀코
아카풀코의 요새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의 커다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이억기 장군은 망루에 올라 출렁이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장군……. 적군이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스페인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정찰을 나갔던 척후병이 말을 타고 요새 안으로 들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스페인군의 소식을 알렸다.
“흐음. 드디어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그러나 척후병과 달리 이억기 장군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동방으로 통하는 관문인 아카풀코를 수복하기 위해 스페인군이 출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군. 요새에서 대적할 것이옵니까?”
원균이 이억기를 바라보았다.
아카풀코를 점령한 이후 한동안 큰 전투가 없이 요새 안에서만 머무르고 있던 그는 몸이 근질근질해 당장에라도 기마대를 이끌고 스페인군을 선제공격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굳이 이런 천혜의 요새를 버릴 이유가 없지 않겠소. 요새에서 그들을 기다릴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