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26화 (126/202)

126화. 새로운 도자기의 탄생 (4)

“그렇사옵니다. 아주 걸작이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마누엘을 바라보았다.

“흐음. 그러면 한번 보여주게.”

“자. 그럼 내실로 가시지요.”

마누엘이 새로운 자기에 대해 흥미를 보이자, 점원이 그를 내실로 안내했다.

“자. 창고로 함께 가시지요.”

마누엘 일행이 점포 깊숙한 곳에 있는 내실로 들어서자, 점원이 내실 안 커다란 창고의 문을 열어 보였다.

“이것들이 이삼평 청장님께서 새로 만드신 자기들이옵니다. 한번 보시지요.”

창고 문이 열리자 이삼평과 도공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채색 도자기들이 오색찬란한 색상을 뽐내며 진열되어 있었다.

그동안 단조로운 색상의 청화백자만 보다가 빨강, 파란, 노랑, 분홍 등 갖가지 색상으로 수놓은 도자기를 처음 본 마누엘 일행은 한동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를 지켜보았다.

“이……. 이것이 새로 그대들이 새로 만든 자기들이요?”

마누엘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러하옵니다. 이삼평 청장님께서 단조로운 색깔만 표현할 수 있는 청화백자를 보완하여 다양한 색을 담은 채색도자기를 만드셨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을 도자기에 입힐 수 있다는 것인가?’

마누엘은 도자기에 어떻게 다양한 총천연색의 색상을 입힌 것인지 믿어지지 않아 혹시 다 구워진 도자기에 붓으로 색깔을 입힌 것인지 의심스러워 도자기를 손으로 문질러 보았으나 그림은 지워지지 않았고, 그 색깔은 도자기에 코팅되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도자기에 어떻게 이런 다채로운 색상을 입힌 것인가? 듣자 하니 다른 안료는 가마의 열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던데?”

마누엘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점원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거야 저도 잘 모릅지요. 어떻습니까? 도자기가 맘에 드십니까?”

점원이 도자기의 비밀을 알려줄 리 만무했다.

“대단하구만. 당장 그 채색 자기를 사고 싶은데, 물량은 충분한가?”

마누엘은 대한제국이 새롭게 선보인 채색자기가 유럽에서 빅히트 칠 것을 직감하고 가능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싶었다.

“갓 구운 자기는 충분하옵니다. 그리고 마누엘 님은 VIP 고객이신데 당연히 준비를 해드려야지요. 하지만 가격은 청화백자의 두 배는 쳐주셔야 합니다.”

“알겠네. 알겠어. 은자는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도자기나 많이 확보해주게.”

마누엘은 채색자기의 가격이 청화백자의 그것보다 두 배는 더 비쌌으나, 가격과 상관없이 채색 자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이삼평이 만든 신상품 채색자기는 그의 예상대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보였다.

채색자기에 대한 소문은 곧 유럽의 각 상단에 퍼져갔고,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영국 등의 각 유럽의 상단들은 채색자기를 구하기 위해 강화도에 몰려들었다.

유럽의 각 상단은 채색 자기를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붙었고, 그로 인해 채색자기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했음에도 채색자기는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각 상단에 넘어갔다.

한편 대한제국의 한성유통 등 각 상단도 도자청으로부터 채색 자기를 우선 공급받아 포르투갈의 동방항로를 이용해 유럽으로 채색 자기를 실어 날랐다.

***

하와이

부산항을 출발한 이억기 장군이 이끄는 함대가 태평양 함대의 전진 기지 하와이 앞바다에 도착했다.

오랜 항해로 지쳐 있던 승조원들과 갑사들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름다운 섬이 나타나자 함성을 질렀다.

“신탐라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었다니…….”

대장선 갑판에서 점점 다가오는 하와이의 풍경을 바라보던 이억기도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 있다니 신기하옵니다. 무릉도원이 여기 있었습니다.”

원균도 처음 보는 하와이가 주는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항구에는 정착민과 주둔하고 있는 태평양 함대의 갑사들과 병졸들이 나와 손을 흔들며 그들을 환영했다.

고국과 떨어져 미지의 땅을 개척한 정착민은 저마다 고국의 소식이 그리웠기에 고국에서 온 함대를 무척이나 반겼다.

마침내 항구에 함선들이 정박하고 이억기와 원균 등 함대 수뇌부와 갑사들이 차례차례 내리자, 정착민들은 달려 나와 그들에게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이다.”

하와이 총독 박진우가 직접 나와 함대를 이끄는 이억기를 맞이했다.

“이렇게 직접 나오시니 영광이오. 신탐라도가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섬인지 미처 몰랐소이다.”

이억기가 총독 박진우가 직접 나와 환영해준 것에 감사해하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아름다운 섬이지요. 그래도 처음에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는데, 정착민들이 많이 고생했습니다.”

“흐음. 그러하다고 들었습니다. 저 광활한 대지에 자라고 있는 것들이 다 사탕수수가 아닙니까?”

“그렇소이다. 모두 사탕수수 농장이지요.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어 세계 곳곳으로 수출하고 있지요.”

박진우 총독이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박진우 총독과 정착민들은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잡풀과 밀림으로 우거진 이곳을 비옥한 사탕수수 농장으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노예들과 함께 수년간 불모지를 개간해 커다란 농장을 만들어 사탕수수를 경작하기까지 꽤 오린 시간이 걸렸기에, 박진우 총독과 정착민들은 사탕수수 농장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농장 곳곳에는 정착민들이 거주하는 유럽풍의 거대한 저택이 들어서 있었다.

조선에서 오로지 새로운 기회만을 보고 무일푼으로 생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을 밟은 정착민들은 사탕수수 경작을 통해 어느새 거대한 저택과 넓은 땅을 소유한 부호가 되어 있었다.

“대단합니다. 이 섬에서 엄청난 부가 만들어지고 있군요.”

이억기가 감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환영식을 마친 이억기와 함대 수뇌부는 총독관저에 초대받아 만찬을 함께 했다.

총독관저는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유럽풍의 웅장한 건물로 유럽 왕가의 어느 궁정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섬 앞바다에서 잡은 해산물과 각종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고, 그 옆에서는 노릇노릇 통돼지 바비큐가 익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고국에서 사람이 오니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박진우 총독이 이억기를 비롯한 함대 수뇌부들에게 일일이 와인을 따라 주었다.

‘이곳 총독은 왕이나 다름이 없구나.’

원균은 신탐라도 즉 하와이에서 왕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박진우 총독이 내심 부러운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하하하. 이렇게 아름다운 섬의 총독으로 계시니 부럽습니다.”

이억기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모두들 이곳에 와본 분들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요.”

박진우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 제국이 결국 명을 무너트렸다고요?”

“그러합니다. 폐하께서 친히 출정하시어 명나라 20만 대군을 전멸시키고 산해관을 넘어 자금성을 무너트렸지요.”

이억기가 신이 나서 명나라 정벌 전쟁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폐하께서 어찌 거대한 거목 같은 명을 정벌할 생각을 다 한 것인지…….”

하와이 총독 박진우는 고국이 명나라를 정벌하고 조선이 황제의 나라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억기에게서 무용담과 함께 직접 들으니 더욱 감격스러웠고, 자신이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워낙 원대한 꿈을 꾸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폐하께서 아니 계셨으면 지금의 제국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억기가 호탕하게 웃으며 와인을 비웠다.

“그렇소이다. 폐하는 불세출의 영웅이십니다.”

만찬회는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이억기와 박진우 총독은 서로 와인잔을 부딪치며 이균을 찬양했다.

“이제. 곧 서반아군과 일전을 벌이셔야 할 터인데……. 준비는 잘하셨습니까?”

박진우가 이억기의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며 그를 바라보았다.

“명나라 정벌 전쟁에도 참여했던 정예의 전사들과 함께 가는 것이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서반아 놈들이 약조를 깨고 우리 제국의 요새를 공격했으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할 것입니다.”

“흐음. 그래야겠지요. 하지만 서반아군을 얕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들이 바다에서도 강하지만, 육지에서도 무척 강하다 들었소이다.”

“물론입니다. 적을 얕보아서는 아니 되겠지요. 하지만 이미 우리 군이 남만국 해방전쟁에서 이미 서반아군과 교전을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능히 서반아 군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억기가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그러해야겠지요. 마땅히 우리 제국군의 위력을 서반아군에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부디 대승하기를 기원하겠소이다.”

박진우가 다시 이억기의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고, 그들은 제국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축배를 들었다.

함대의 갑사들과 병졸들도 무릉도원과 같은 아름다운 풍광의 하와이에서 꿀과 같은 휴식을 즐겼다.

서반아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던 그들은 하와이에서 약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지친 체력을 보충하고, 전쟁과 항해를 위한 식량과 군수물자 등을 보급받은 후 드디어 신대륙을 향해 출항했다.

신대륙의 스페인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한 갑사들과 병졸들을 태운 함선들은 남태평양의 푸른 물살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누에바에스파냐의 항구도시 아카풀코를 향해 나아갔다.

***

아카풀코항

스페인의 식민지 필리핀과 신대륙을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점인 멕시코 아카풀코는 스페인 식민지 선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스페인 선단은 신대륙 볼리비아의 세계 최대의 은광에서 산출되는 은, 설탕 등 교역품을 가득 싣고 태평양을 거쳐 필리핀에 도착한 후 다시 명나라로 가 청화백자, 비단, 생사 등을 구입한 후 유럽에 가 이를 비싸게 팔아 큰 수익을 내고 있었기에, 아카풀코항은 결코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기에 튼튼하게 만들어진 요새가 항구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1만여 명이 넘는 스페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항구에는 스페인 수십 척이 정박해 있었다.

“장군! 총독께서 조선군이 이곳을 급습할 수 있으니 경비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이옵니다.”

신대륙 총독 돈 안토니우의 서신을 받은 에르난데스 장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조선군이 급습을? 무슨 조선군이 이곳을 급습할 수 있다는 것이냐. 그놈들은 지금 은광에 있는 자기들 요새를 지키기도 힘들 것인데.”

“장군! 조선군이 은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수출할 수 있는 항구가 없기에 원주민들과 합세하여 아카풀코 항을 노릴 수 있다는 첩보이옵니다. 이를 가볍게 여기시면 아니 되옵니다.”

부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머저리 같은 총독 같으니라고. 한 줌도 안 되는 조선군과 원주민이 무엇이 무섭다고 저리 겁을 잔뜩 집어먹고 웅크리고 있는 것인지. 한심하구나.”

에르난데스는 한 줌도 안 되는 조선군을 섬멸시키지 못하고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는 총독 돈 안토니우가 한심한 겁쟁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가 총독이 되었다면 대군을 이끌고 당장 조선군을 몰아내고 은광을 왕께 바칠 것인데, 저런 머저리 총독을 자르지 않고 데리고 있는 본국이 원망스러웠다.

신대륙의 총독부는 은광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군이 원주민과 합세하여 아카풀코 항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대한제국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태평양을 건너 아카풀코 항을 기습 공격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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