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전쟁을 원하지 않는 고니시 유키나가 (3)
‘그러나 이제 조선은 그대가 알고 있던 나약한 조선이 아니다!’
조선은 왜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채 한 달도 안 돼 도성을 내준 그런 나약해 빠진 국가가 더는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네놈이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이균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황제의 명에 따라 정후청장 김명원은 즉각 정예 정후청 요원들을 추가로 왜에 보내 왜의 동태를 면밀히 살피도록 했다.
***
오사카성
“우르르 까꿍! 하하하. 이 녀석이 웃고 있구나. 웃고 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그마한 사내아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
“태합 전하를 꼭 빼닮은 것 같사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견원지간인 가토 기요마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아부를 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러하냐. 그래. 이 녀석의 눈매가 꼭 나를 닮았구나. 내 이 녀석에게 저 드넓은 중원 땅을 물려줄 것이다.”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통일하였으나, 대를 이어 그가 이룩한 유산을 물려받을 아들을 얻지 못해 심란해했던 그였는데, 그의 나이 53세가 되어 마침내 대를 이을 아들을 얻었으니, 그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이름은 도요토미 쓰루마스였다.
히데요시는 요즘 늦둥이 아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태합전하! 그러할 것입니다. 제가 선봉에 서 태합전하께 중원 땅을 바칠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리하도록 하여라!”
가토 기요마사가 선봉에 서 중원 땅을 그에게 바치겠다고 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태합 전하! 고니시 유키나가께서 오셨습니다.”
그 순간 밖에서 조선에서 돌아온 고니시 유키나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음. 고니시가? 어서 들라 하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들라 하자, 고니시 유키나가가 안으로 들어와 그를 향해 넙죽 절을 올렸다.
“태합 전하! 조선왕 즉위식 참관을 마치고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흐음. 그래. 고생이 많았구나. 조선왕이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고?”
이균의 황제 즉위식에 사절단을 보내기는 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왕이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는 것이 내심 불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의 자리는 자기의 것인데, 조선왕이 그 자리를 도적질한 것 같았다.
“그러하옵니다. 그 기세가 대단하였사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선왕이 오만방자하구나. 스스로 황제라 칭하다니……. 그 자리는 나의 자리이거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니시를 바라보았다.
“그……. 그러하옵니다. 감히 조선왕 따위가 스스로 황제라 칭하니 소신도 보는 내내 불편하였사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그의 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래! 너를 보낸 것은 조선의 정세가 어떤지 살피라는 의미였는데, 직접 가서 보니 어떠하더냐!”
“태합 전하! 조선왕이 비록 오만방자하게 스스로 황제라 선포하기는 하였으나, 그 기세가 실로 대단했사옵니다. 그들은 이미 중원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몽골족, 여진족 등 주변 유목 민족도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조선왕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남경으로 쫓겨난 남명 또한 조선을 어버이의 나라로 섬기니 온 천하가 조선의 것과 다름없을 정도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말을 듣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너의 생각이 어떠한 것이냐? 우리가 조선을 칠 수 없다는 것이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태합 전하! 소신은 태합 전하께서 조선을 치라 명하시면 선봉에 설 것이옵니다. 그러나 소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면…….”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조선은 이미 중원을 얻었고, 주변 유목민족들도 모두 조선을 섬기고 있사옵니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너무 커졌고 그 군사의 기세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니, 조선과 전쟁을 하게 되면 저희 병졸들이 큰 희생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닌지 염려되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조선과의 전쟁을 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자, 무서울 것 같은 정적이 흘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그가 아끼는 고려다완에 담겨 있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니며 웃었다.
“고니시. 조선의 정세를 살피고 오라 보냈더니……. 아주 조선왕의 기세에 겁을 잔뜩 집어먹었구나!”
“태합 전하! 소신은……. 그것이 아니오라…….”
“고니시! 명은 망할 때가 돼서 망한 것뿐이다. 조선이 강해서 망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명을 쳤다면 명의 자금성은 더 일찍 성문이 열렸을 것이고, 남경에 있는 남명도 사라져 버렸을 것이란 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의 충복 고니시 유키나가를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태합 폐하! 고니시는 상인 출신이 아니옵니까? 전쟁을 잘 알지 못하는 자이옵니다. 전쟁도 하기 전에 이렇게 겁을 잔뜩 집어먹는데,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니시 유키나가의 정적 가토 기요마사가 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들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 무식한 놈의 자식이.’
가토 기요마사가 자신을 무시하듯 말하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짜증이 밀려왔다.
“가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지 마라. 조선군의 기세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냐. 조선군이 서반아의 무적함대도 격파하고, 명나라 20만 대군을 단숨에 전멸시켰다는 말일세!”
“무엇이라! 주둥이? 이놈이……. 태합 전하. 이놈이 기리시탄이 되더니……. 사무라이 도리를 저버린 것 같사옵니다. 기리시탄이 되어 묵주나 주물럭거리는 놈을 곁에 두지 마시옵소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무식하다는 듯 가토 기요마사를 나무라자, 그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고니시를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네놈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것이냐. 그러고도 네놈들이 나의 가신이라 할 수 있느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다투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거친 목소리로 나무랐다.
“태합 전하……! 죄송하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둘을 나무라자, 그제야 그들은 조용해졌다.
“고니시! 조선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우리 정예병력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잘된 것이 아니냐. 조선왕의 목만 치면 중원 땅도 덤으로 오는 것이니. 이보다 좋을 것이 없지 않으냐. 네놈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선과의 전쟁이나 준비하도록 하거라!”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진 농민과 토지를 정비하고 호구조사를 실시하는 등 체제를 정비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상당수 다이묘들이 여전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반감을 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들은 많은 영지를 하사받았으나, 하급 무사들은 제대로 된 토지를 받지 못해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이에 그는 하급 무사들의 불만을 외부와의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고, 조선을 정벌해 중원을 차지하겠다는 헛된 야망을 품게 된 것이다.
“태합 전하! 그렇게 대규모 병력이 조선에 파병되면 그 틈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노리는 것이 아닐지 염려되옵니다. 태합 전하! 지금은 내치에 신경을 쓰시고, 조선 정벌은 다음으로 미루소서!”
무모한 전쟁이 못마땅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끝까지 전쟁을 반대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설득하려 했다.
“고니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도쿠가와 따위가 어떻게 태합전하와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가토 기요마사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도쿠가와라…….”
그러나 고니시의 입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말이 나오자 야망에 부풀어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기세에 눌려 그를 따르고는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야망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잔뜩 움츠리며 기회를 보고 있는 맹수와 같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잠시 허점이라도 보이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고니시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흐음. 네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다이묘들이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데, 그놈 혼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에이 망했구나.’
조선과 전쟁을 일으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노릴지도 모른다며 전쟁을 거두어달라고 하소연했음에도 주군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고개를 떨구었다.
“가토 그리고 고니시 네놈들은 나의 자랑스러운 충복이다. 내 너희들을 이끌고 조선을 정벌할 것이니, 속히 전쟁을 준비하도록 하거라!”
“존명!”
‘결국, 전란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인가?’
오사카성을 나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표정이 심하게 굳어져 있었다.
조선과의 전쟁을 막아보고 싶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침없는 야망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인어른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사위 소 요시토시가 초조한 눈빛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실패했다. 태합 전하의 뜻이 워낙 강하니……. 이거 참 낭패로구나!”
“일단 영지로 돌아가자꾸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빈손으로 그의 영지로 돌아가야 했다.
***
남경
중원을 얻은 대한제국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대한제국이 자랑하는 청화백자는 여전히 유럽과 전 세계에 잘 팔려나갔고, 수많은 상선들이 강화도와 부산항을 드나들었다.
게다가 하와이와 유구국에서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이 들어서 사탕수수를 경작하여 값비싼 설탕을 생산해 유럽과 아시아에 공급하며 막대한 이문을 챙기고 있었고, 생사와 비단 그리고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홍차 또한 불티나게 팔려나가니 제국의 재정은 더욱 든든해졌다.
그러나 남경과 광동성 일대로 쫓겨난 남명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란스럽다가 새로운 황제와 함께 체제를 정비했다.
그러나 남명은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황제 이균을 어버이로 섬기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으나, 언제 그들이 침략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지 않았소?”
이균에 의해 충선왕을 봉해진 남명의 왕이 대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백성들도 차차 안정을 찾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사옵니다.”
대학사 심리가 입을 열었다.
“대한제국이 우리를 침략하는 일은 없겠지요?”
“장담할 수는 없사오니, 대한제국의 황제를 섬기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하셨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대학사 심리가 충선왕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심리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주변 이민족들을 호령하던 제국의 황태자에서 대한제국을 영원히 섬기겠다는 의미로 충선왕으로 봉해진 그의 운명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대학사!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