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조선, 제국이 되다 (2)
황제의 의복을 갖추어 입은 이균의 모습이 보이자, 화려한 제복을 입은 군악대는 장엄한 곡을 연주했고, 의장대가 하늘을 향해 조총을 쏘았으며, 의장용 홍이포도 불을 뿜었다.
이균은 높이 쌓아 올려진 제단에 조심스럽게 올라가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리고 제관이 신성한 백마의 목을 순식간에 칼로 찔러 철철 흐르는 백마의 뜨거운 피를 잔에 담아 이균에게 바쳤다.
뜨거운 백마의 피가 담겨 있는 잔을 받은 이균은 단숨에 잔을 비운 후 다시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하늘을 향한 의식을 마친, 이균이 뒤를 돌아 도열해 있는 대신들과 각국 사신들을 바라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이제 조선이 황제의 나라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이제 조선은 제국이 되었으며, 그 이름은 대한제국이 될 것이니, 대한제국의 영광은 만세토록 계속될 것이다!”
1590년 8월 15일 이균이 마침내 자신을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제국을 선포했다.
이균은 새로운 제국의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정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대한제국은 제국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비운의 제국이었으나, 이균이 선포한 대한제국은 중원을 정벌하고 한족, 몽골족, 여진족 등이 스스로 군신의 예를 갖추어 섬기는 대제국이 될 것이다.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이균이 자신을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제국을 선포하자, 대신들과 군부의 수장 그리고 갑사들은 일제히 만세를 선창하며 황제의 안위를 기원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절단도 웅장하고 장엄한 황제 즉위식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조선이 명을 무너트릴 줄이야.”
포르투갈을 대신해 온 마카오 총독도 경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균을 바라보았다.
조선이 이렇게 단번에 급성장해 명을 무너트리고 중원을 차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포르투갈의 도움을 받아 개항했을 때만 해도 조선은 동아시아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에 불과했는데 이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명나라까지 치며 명실상부한 황제의 나라가 되었으니, 조선의 급성장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황제가 된 이균은 몽골족의 셍게홍타이지를 비롯한 각 부족 대표, 여진의 누르하치 등을 정식으로 번왕으로 인정했고, 그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이균을 향해 충성을 맹세했다.
‘조선의 기세가 대단하구나’
웅장하고 장엄한 황제 즉위식을 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복 고시니 유키나가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으로부터 황제 즉위식에 사절단을 보내 달라는 초청을 받자, 기분이 상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조선의 정세를 정탐하려는 목적으로 그의 충복 고니시 유키나가를 사절단으로 보냈다.
오랜 내전을 끝내고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에서는 불세출의 영웅으로 칭송을 받고 있으나, 조선왕 아니 새로운 중원의 지배자로 등극한 이균의 스케일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비할 바가 아닌 것 같았다.
한때 중원을 지배했던 명 황실의 후예가 스스로 몸을 낮추어 조선의 신하가 되고, 북방의 강성한 야인들이 이균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니 그런 이균에 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동네 싸움꾼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조선이 저리 강성한데……. 관백전하께서는 어찌 조선을 치겠다는 것인지.’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는 조선으로 향하기 전 그의 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그가 곧 조선을 칠 것이니 조선의 정세를 잘 살피고 오라는 얘기를 듣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국을 통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상인 출신으로 조선의 교역을 통해 막대한 이문을 챙기고 있기에 피할 수 있다면 조선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조선에 와보니 조선은 이미 넘을 수 없는 넘사벽 같은 존재 같았다.
중원을 제패하고 황제국이 된 조선을 무슨 수로 치겠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노망이 든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성대한 대관식을 마친 이균은 본격적으로 드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관제를 개편하고 황제로서의 직무를 시작했다.
중원을 비롯해 대한제국이 다스리는 강역을 50개의 도로 나누어 각 도에 관찰사를 보내 통치권이 미치도록 했다.
징병제는 계속 유지하였으나, 중원 쪽은 만력제의 폭정으로 인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징병제를 보류하기로 하고, 대신 지원병을 모집해 군대의 숫자를 늘렸다.
도성에는 몽골족, 여진, 그리고 남명에서 온 인질들이 머무를 수 있는 처소가 마련되었고, 이균은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특별히 대하도록 했다.
그리고 내각도 개편해 노환이 있는 영의정 박순이 물러나고, 정탁이 영의정이 되었고, 좌의정은 율곡, 우의정은 이산해, 이조판서는 박호산, 호조판서는 이원익, 예조판서는 정인홍, 병조판서는 류성룡. 형조판서는 이덕형이 추대되었다.
제국의 영토가 넓어져 황성을 중원이나 북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균은 황성을 그대로 한성으로 하기로 했고, 다만 제국의 위용에 걸맞은 궁궐을 중축하기로 했다.
그리고 명의 황성이 있던 북경은 서경이라 칭하고, 일 년의 절반 정도는 황제가 서경으로 옮겨 그곳에서 제국을 통치하기로 했다.
***
황제가 된 후 이균은 처음 조회를 열었고, 수많은 대신이 근정전에 모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 폐하 납시오!”
내관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황제의 입장을 알렸고, 곧 이균이 나타나 옥좌에 앉았다.
“황제 폐하!”
이균이 모습을 보이자 영의정을 비롯한 대신들이 이균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추었다.
“이제 제국이 시작이나, 그대들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이요.”
이균이 미소를 지으며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황제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듣자 하니 서반아가 신대륙의 은광에 파견된 우리 군의 요새를 공격했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서반아가 신대륙에 있는 은광의 경영권을 주겠다는 약조를 깨고 은광을 차지하기 위해 저희 제국의 요새를 공격하였으나, 이를 잘 격퇴하였다 하옵니다.”
신대륙에 있는 조선군 요새가 스페인군에 의해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류성룡이 이균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반아 놈들이 무례하기 짝이 없구려. 그런데 우리 군이 얼마 안 되지 않소?”
“그러하옵니다. 폐하! 다행히 원주민들이 도움을 주어 서반아 군을 격퇴했다고는 하나 서반아군이 다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요새를 공격하면 이를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율곡에 이어 병조판서의 지위를 넘겨받은 류성룡이 말했다.
“흐음. 은광을 서반아 놈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소이다. 원군 5만을 보낼 것이니 요새를 사수하라 하시오.”
협약을 깨고 은광을 차지하기 위해 조선군 요새를 공격한 스페인을 응징해야 한다고 여긴 이균은 5만의 병력을 스페인 식민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이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인 신대륙에 원군을 보내겠다고 하자 대신들도 이균의 뜻을 반대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라가 바뀌게 되었으니 중원의 백성들이 큰 혼란을 느낄 것이요. 그들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요.”
“명심하겠나이다!”
“명나라 추종세력의 움직임은 어떻소?”
“일부 명나라 추종세력이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고는 있으나 그 세가 미약하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 속속 진압되고 있사옵니다.”
좌의정 율곡이 입을 열었다.
중원은 빠르게 안정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곳곳에서 명나라를 추종하는 명나라 출신 장군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백성들이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고, 무장봉기를 일으킨 이들의 세가 미약하여 속속 제국의 군대에 제압을 당하는 형국이었다.
“다행이구려. 명나라 유민들이 세운 남명의 존재 이외에 그 어떠한 명의 추종세력도 인정할 수 없소. 반란을 일으키는 그 수괴는 모두 극형에 처하도록 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흐음. 그리고 황성에 유입 인구가 많아 황성이 이를 감당할 수 없소이다. 그러하니 강남을 개발해 황성의 규모를 키워야겠소.”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교역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작은 황성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이균은 황성의 인프라와 규모를 늘리기 위해 뽕밭과 농지만 있었던 한강 이남을 개발하기로 했다.
“전하! 한강 이남은 대부분이 모래땅으로 토질이 단단하지 못하온데 건물들이 제대로 들어설 수 있을지 걱정이옵니다.”
호조판서 이원익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황도가 좁으니 다른 방도가 없소이다. 땅을 단단히 다져서 건물을 지으면 괜찮을 것이니 개발을 진행하도록 하시오.”
“그……. 그리하겠나이다!”
강남 일대의 땅이 단단하지 못하고 무르다는 이유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으나 이균의 뜻이 단호하자 더는 반대하지 못하고 강남 일대를 개발하기로 했다.
곧 제국의 수도 한성은 개발 바람이 불었다.
자금성의 규모를 능가하는 황성이 만들어졌고, 그와 동시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강남 일대가 개발되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일부 불탄 누각과 무너진 성벽이 있는 자금성도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
황제 즉위식에 참석한 사절단이 머무는 한 숙소가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불이 꺼지지 않고 그 안에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님! 이대로 조선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운 표정의 젊은 사내가 아버님이라고 칭하는 남자에게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그것을 태합전하께서만 모르시니 이거야 원!”
술잔을 받은 남자가 술잔을 단숨에 비우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은 왜에서 사절단으로 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복 고니시 유키나가와 그의 사위 소 요시토시였다.
황제 즉위식을 직접 본 그들은 걱정이 한가득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을 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조선을 정복하겠다는 망상에 빠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
“아버님! 관백전하께 사실대로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을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하하. 우리 주군께서 고언을 한다고 들을 분이 아니라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말씀은 드리겠지만,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일세!”
“흐음. 아버님!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조선과 전쟁을 하면 조선과 교역을 할 수 없으니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저희이옵니다.”
사위 소 요시토시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묵주를 매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조선과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막고 조선과 교역을 계속하고 싶었다.
“흐음. 조선에 사실을 알려야겠다!”
“아버님? 조선에 이를 알리겠다는 말씀이옵니까?”
사위 소 요시토시는 순간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래야겠어! 태합전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으니 조선에 알려 전쟁을 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야. 이것은 무모한 전쟁이다. 무모한 전쟁을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버님! 아니 되옵니다. 우리가 기밀을 발설한 사실이 알려지면, 아버님이나 저나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문이 절멸하게 되옵니다.”
소 요시토시가 창백한 표정으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