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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16화 (116/202)

116화. 중원이 조선 품으로 (3)

자금성에서 황제가 자결하고 그 시신이 백성들에게 조리돌림 당했다는 소식은 이곳까지 퍼져 와 황태자와 명나라 유신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 했는데, 그렇게 등 돌린 민심을 직접 확인한 황족들은 남경의 백성들마저 자신들에게 등을 돌려 창끝을 자신들에게 돌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가득했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조선이 우리를 가만두려 하지 않을 것인데……. 조선군이 들이닥치면 버틸 여력이 없지 않겠소.”

황태자가 근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대신들은 이미 조선군에 항복하거나 도주한 뒤여서 황태자와 함께한 유신들이라 해 봐야 형부상서와 이부 상서를 비롯해 얼마 되지 않았다.

만력제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마지막 충신 대학사 신시행도 만력제가 숨을 거두자 자결을 한 뒤였다.

자금성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그의 아버지가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비명횡사하는 초라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유신들과 부흥군을 모아 기회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조선군이 더는 공격을 하지 않고 있으니, 군을 정비할 시간이 있을 것이옵니다.”

형부상서 심리가 말했다.

“5만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조선군과 어떻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이오? 게다가 민심도 우리 편이 아니거늘…….”

황태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조선군에 맞서다 그렇게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으니, 자신도 조선군과 맞서다 아버지의 비참한 운명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다.

“황태자 마마! 이곳 남경을 중심으로 결사 항전을 하면 분명히 기회가 있을 것이옵니다. 선황제 폐하의 비참한 죽음을 반드시 복수해야 할 것이옵니다.”

황태자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형부상서 심리가 황태자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누구도 막강한 조선군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우선 황태자 마마를 황제 폐하로 옹립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이나 여진에게 연통을 넣어 그들과 연합해 조선을 물리칠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도 조선이 강성해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옵니다.”

이부상서 이정기가 나섰다.

“그들도 오랑캐가 아니요? 오랑캐를 믿을 수 있겠소?”

“황태자 마마. 상황이 다급하니 일단 오랑캐라 해도 손을 잡아야 할 것이옵니다.”

“흐음. 그렇게 해보시오.”

황태자는 오랑캐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으나, 사실 별다른 도리가 없기에 이부 상서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남경과 광동성 일대로 도주한 명나라 유신들과 패잔병들은 일단 황태자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한 후, 몽골과 누르하치와 연합해 조선을 치는 방도를 모색하고자 했다.

***

누르하치 진영

조선군의 막강한 기세에 정예 기병 상당수를 잃고 도주해 본거지로 온 누르하치 군영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많은 전투를 벌였던 그였지만, 그토록 강력한 군대를 본 적이 없던 누르하치는 아직도 공포스러운 조선군의 화포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버님! 조선군이 저리 강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제 저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누르하치가 근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타커시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러게 말이구나. 조선왕이 명을 도운 우리를 치려 할 것인데…….”

타커시도 시름이 한가득하였다.

여진 부족을 통합하여 기회를 보아 중원을 도모하려 했거늘 느닷없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나타나 순식간에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하니 당혹스럽기만 했다.

“조선군이 저렇게 강해졌을 것이라 생각도 못 했습니다.”

누르하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가 알던 조선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조선군이 자금성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해 황제가 자결을 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명나라가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자금성을 그렇게 금세 함락할 것이라고는 여기지 못했사옵니다.”

“흐음. 조선이 우리를 분명 치려 할 것인데, 우리 군만으로 조선군과 대적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타커시도 조선군의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직접 보았기에, 조선군과 단독으로 대적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누르하치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조선에 복속하겠다고 스스로 조선왕을 찾아가는 것이 어떻겠냐. 우선 조선에 항복하고 기회를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타커시는 조선군에 대적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여기고 차라리 조선왕을 스스로 찾아가 부족을 보전해달라고 애걸하여 부족을 보전한 후 기회를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버님! 그리되면 좋을 것이나, 조선왕은 우리 부족을 가만두면 요동이 편하지 않을 것이라 여길 것이옵니다.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우리를 분명 손보려 할 것이옵니다.”

누르하치는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분명 조선왕이 자신의 부족을 가만두려 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느냐?”

타커시가 미간을 찌푸리며 누르하치를 바라보았다.

“아버님! 몽골과 연합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몽골족과 연합을?”

타커시가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몽골 놈들도 조선이 자신들을 칠까 두려움이 가득할 것이옵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면 다급한 몽골족이 우리의 손을 잡으려 할 것이옵니다.”

누르하치는 한때 중원을 지배했으며, 여전히 큰 세력을 형성하며 호시탐탐 명나라를 노리고 있던 몽골족과 연합하면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었다.

“몽골족과 손을 잡는다? 흐음. 손을 잡은들 조선군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타커시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무리 몽골족과 연합한다고 해도 명나라를 망하게 한 조선군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부족이 공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허나 도리가 없습니다. 조선은 분명 우리 부족을 치려 할 것입니다. 우리 부족만으로는 조선과 맞설 수 없사옵니다.”

누르하치도 몽골과 연합전선을 펼친다 해도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조선군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조선군에 항복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도가 없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그리해보도록 하여라!”

타커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부족의 존망이 위태로운 누르하치의 부족은 즉각 몽골족의 땅에 밀사를 보냈다.

***

한때 몽골족을 통일하고 북경을 포위 공격하여 명나라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몽골족의 영웅 알탄 칸이 죽은 후 몽골족은 오히려 명나라와 교류하며 평화를 유지하였고, 그 기세는 예전 같지 아니하였다.

알탄 칸의 장자 셍게홍타이지가 그의 뒤를 이어 부족을 다스렸으나, 몽골족은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조선이 자금성을 손에 넣다니……. 그것이 사실인가?”

자금성이 조선군에 떨어지자, 알탄 칸의 뒤를 이은 셍게홍타이지는 급히 부족 회의를 열었다.

“그러하옵니다. 자금성을 잃은 명군이 남쪽으로 완전히 밀려났다고 하옵니다.”

회의에 참석한 각 부족장들은 큰 충격에 빠진 듯 술렁거렸다.

그렇게 큰 나라가 순식간에 조선이라는 나라에 무너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기야 조선의 선조들이 과거 만주 일대를 호령했던 것은 사실이나 오래전 일이고, 가까이는 위대한 대제국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고려라는 나라의 후예가 조선이기에, 그들은 사실 조선을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라며 업신여긴 것이 사실인데, 그런 나라가 갑자기 명나라를 무너트렸다고 하니 충격을 받을 만도 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조선이 그렇다면 우리 부족도 치려 하지 않겠는가?”

셍게홍타이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칸! 조선군의 전력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우리 군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조선군을 대적하기 힘듭니다. 조선에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명나라와 교역하며 부를 쌓고 평화를 누리던 몽골족은 이미 예전의 용맹스러운 전사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교역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매료되어 있었고, 굳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조선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흐음. 조선의 왕이 어떤 자인지……. 우리를 무작정 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만.”

셍게홍타이지도 같은 생각이었으나, 중원을 차지한 조선의 왕이 자신들마저 정복해 그 명성을 높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그렇다면 일단 사신을 보내 조선왕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셍게홍타이지의 아우 부안타이지가 나섰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구나. 그럼 진귀한 보물들을 가득 챙겨 당장 아우가 가보도록 해라!”

“알겠사옵니다!”

조선군과 맞서 싸울 생각이 없는 셍게홍타이지는 결국 그의 아우 부안타이지를 사신으로 보내 조선왕 이균의 마음을 알아보기로 했다.

부안타이지는 조선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몽골족이 자랑하는 말을 비롯하여 각종 진귀한 보물들을 챙겨 대규모 사신단을 이끌고 자금성으로 향했다.

***

부안타이지가 이끄는 사신단이 자금성에 당도하자, 이균은 부안타이지의 걱정과 달리 그들을 성대히 환대했다.

“흐음.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황제 폐하! 이렇게 환대해주어 감사하옵니다.”

이균이 아직 정식으로 칭제건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부안타이지는 이균을 깍듯이 황제로 부르며 이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황제 소리가 나쁘지 않구만.’

생전 처음으로 몽골족으로부터 황제라는 말을 듣자,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뭔 길을 달려 이곳까지 온 연유가 무엇이오?”

황제 소리에 기분이 좋은 듯 이균이 인자한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황제 폐하! 조선이 이제 새로운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들었사옵니다. 대칸께서는 조선과 군신의 예를 맺어 황제 폐하를 섬기고자 하옵니다.”

부안타이지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하하하. 그대의 부족이 이렇게 군신의 예를 맺자고 스스로 청하니 짐은 기쁘기 그지없구려. 그대 부족의 청을 받아들이도록 할 것이오.”

부안타이지가 스스로 조선을 섬기겠다고 하자, 이균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마음만 먹으면 몽골족을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균은 굳이 적을 여럿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몽골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황제 폐하께서 저희 부족을 받아주시니 몸들 바를 모르겠나이다.”

“내 그대 부족의 칸을 충의왕으로 봉하고 그대 부족의 교역권을 유지할 것이니, 그대 부족은 조선에 영원히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이오.”

“황제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이 셍게홍타이지를 왕으로 봉하고 교역권을 주며 그의 부족의 정통성을 인정해주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부안타이지는 무척이나 감격스러워 했다.

부안타이지 일행은 자금성에 며칠간 머무르며 융성한 대접을 받은 후 책봉교서를 받아들고 셍게홍타이지에게 돌아갔다.

“형님! 조선왕이 책봉교서를 내렸나이다!”

“그것이 사실이냐?”

“그러하옵니다. 형님. 조선왕이 형님을 충의왕에 봉하고 우리 부족에게 교역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이제야 한시름을 놓게 생겼구나.”

조선의 침략을 받아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는데, 뜻밖에 조선이 자신을 왕으로 봉하고, 교역권까지 주니 셍게홍타이지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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