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산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2)
그는 이성량이 이끄는 요동군이 조선군을 토벌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느닷없이 조선군이 산해관을 공격하고 북경으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고 하니 신시행이 술을 마셔 제정신이 아니거나 미친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폐하!”
신시행은 다시 흐느꼈다.
“이성량이 오만방자한 조선군을 토벌하고 있을 것인데, 어찌 조선군이 산해관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요?”
“폐하! 이성량이 조선군에 대패하고 도주하였다 하옵니다. 그리고 조선 수군이 비밀리에 상륙해 산해관을 떨어트렸다고 하옵니다.”
“무……. 엇이라! 그……. 그것이 사실이오.”
요동책략 이성량이 조선군에 대패하고 도주하였다는 말을 들은 만력제는 술이 확 깼다.
“그 많은 대군이 어찌 조선군에게 당할 수 있다는 것인가?”
만력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폐하! 조선군이 생각보다 강한 것 같사옵니다. 이성량이 이끄는 병졸이 대부분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고 하옵니다.”
“이……. 이런!”
만력제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갑자기 꾼 악몽이 떠올랐다.
오랑캐에 의해 자금성이 불타고 명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끔찍한 해몽을 한 늙은 역술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 조선군이 얼마나 되오?”
“산해관을 넘은 조선군은 5만여 명이 된다 하옵니다.”
“오……. 오만이라……. 그럼 우리 자금성을 지키는 병졸이 얼마나 되는 것이요?”
“채……. 삼만이 되지 않사옵니다.”
“삼......만. 왜 이렇게 병졸이 없는 것이오. 황도를 지키는 병졸이 3만이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것이요?”
거대한 제국의 황도를 지키는 병력이 고작 3만이 안 되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거야 네놈이 허구한 날 계집질이나 하며 방탕하게 지내 나라를 결딴냈기 때문이 아니냐.’
신시행은 만력제 네놈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참았다.
“그…….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어찌해야 하겠는가?”
만력제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신시행을 바라보았다.
“폐하! 우선 속히 병력을 나누어 출발한 유정 장군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정 장군이 올 때까지 자금성에서 버티어야 할 것이옵니다.”
“유정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소?”
만력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만력제는 자신의 실정으로 명나라가 이 지경이 났다는 것을 알기로 한 듯 자신을 자책하였으나 이미 늦은 후회였다.
“그……. 그러하옵니다. 자금성은 튼튼한 성이옵니다. 능히 맞서 싸우면 조선군을 이겨낼 수 있사옵니다.”
신시행은 황제를 안심시키려 노력하였으나, 사실 그도 자신이 없었다.
황성을 지키는 병졸들도 산해관을 지키던 병졸들과 마찬가지로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반면 그는 조선군은 군기가 엄하고 훈련이 잘되어 있는 강군이라 들었기에 오합지졸 명군이 조선군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조선군을 이끄는 장수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명장이라 하니 그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이성량을 격파한 조선군은 북경에 당도한 이순신과 합류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그리고 이순신이 이끄는 5만의 병력이 마침내 자금성 앞에 당도했다.
“제독님! 드디어 자금성입니다!”
송여립 대좌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웅장하구려!”
명나라 황제가 사는 자금성의 규모는 이순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웅장했다.
얼핏 보아도 10미터가 넘어 보이는 높은 성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자가 수천 개의 화려한 건물이 있는 궁궐을 감싸고 있었다.
자금성을 처음 본 이순신은 자신도 모르게 성의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했다.
왜 그들이 자신을 천자의 나라라 하며 다른 이들을 오랑캐의 나라라 업신여기는지 알 것도 같았다.
조선이 비록 강성한 국가가 되었다고 하나 조선의 도성은 명나라 자금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대제국이 우리 수중에 떨어지는 것인가?’
이순신은 자금성의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하면서도 이런 거대한 제국을 노리는 이균의 큰 뜻에 감동했다.
“진을 펼치도록 해라!”
“존명!”
이순신이 진을 펼치라 명령을 내리자 5만여 명이 조선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금성을 공격하기 위한 진을 펼쳤다.
홍이포를 비롯한 수백 기의 화포가 자금성을 향해 도열했고, 수천 명의 조총수가 열을 맞추어 자금성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팽배수, 창수, 궁수 등도 대열을 정비해 자금성을 지키는 명나라 병졸들을 바라보았다.
5만여 명의 조선군이 황성에 들이닥치자, 명나라 백성들은 충격을 넘어 공포에 빠졌다.
조선군이 엄한 군령에 따라 약탈을 하지 않았으나, 큰 전란이 일어날 것이라 여긴 황도의 백성들은 다급히 짐을 챙겨 피난을 떠났고, 수많은 귀족들은 이미 조선군에 투항했다.
군기가 가득 든 조선군을 본 자금성 안의 명나라 병졸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조선군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갑자기 조선군이 황도에 들이닥칠 것이라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기에, 그들은 자금성에 고립된 채 조선군이 공격하기만을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말에 올라타 망원경으로 자금성의 동정을 살피던 이순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방포하라!”
“존명!”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진을 펼치자마자 이순신은 화포를 발포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순신의 명을 받은 화포장들은 일제히 수백 기의 홍이포를 장전해 명 황제가 사는 자금성을 향해 화포를 발포했다.
-콰콰콰 쾅-
곧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개의 탄환이 포물선을 그리며 자금성을 향해 날아갔다.
탄환은 두꺼운 자금성의 성벽을 사정없이 때렸고, 또 다른 탄환은 자금성을 넘어가 명나라 병졸들 앞에 떨어졌다.
지축을 뒤흔드는 포성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지자 명군은 귀를 움켜잡고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용기가 있는 일부 병졸들은 화포를 꺼내 발포하려 하였으나, 훈련이 하나도 되지 않아서인지 장전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나마 발포가 된 탄환도 제대로 조준이 되지 못하여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니 이를 지켜본 조선군은 어이가 없는 듯 명군을 비웃었다.
게다가 대완구와 중완구에서 발포된 조선이 자랑하는 신무기 비격진천뢰는 자금성 공략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자금성 안에 떨어진 수백 개의 비격진천뢰는 곧 커다란 폭발음을 내며 수백 개의 쇳조각을 흩뿌렸고, 곧 명나라 병졸들은 온몸에 쇳조각이 박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두려워 마라! 조선군을 공격하라!”
“성을 사수해야 한다!”
조선군의 맹렬한 포격에 성을 지키는 주선표 장군은 병졸들을 독려하며 조선군을 공격하라 외치고 있었으나, 압도적인 화력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병졸들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
-퍼퍼퍼 펑-
“이……. 것이 무슨 소리인가?”
포성이 자금성 깊숙한 곳에 있는 만력제의 처소에까지 울려 퍼지자 만력제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말을 더듬었다.
“황상 폐하! 조선군의 포성 소리입니다. “
대학사 신시행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 조선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오? 유정 장군은 도대체 왜 안 오는 것이요? 우리 명군들은 어디 있기에 조선군이 자금성을 공격한다는 것이요.”
만력제는 미치광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했다.
“황상 폐하!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유정 장군은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용맹스러운 황상 폐하의 군대가 성을 지키고 있으니 조선군은 자금성을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신시행은 미쳐 날뛰는 황제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어둠이 가득했다.
전국 각지에 파발을 돌려 황도를 구원하라는 황명을 내렸으나, 이미 민심은 황제를 버렸기에, 누구도 황제를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제 기댈 곳은 유정 장군이 이끄는 원군밖에 없다고 할 것인데, 이미 북방 멀리 떠난 유정의 군대가 언제 도착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황도가 조선군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인 것이지요. 내 믿을 사람은 이제 대학사 그대밖에 없소.”
만력제는 울먹이며 신시행의 손을 꼭 잡았다.
“소신 목숨을 다 바쳐 황제 폐하를 지킬 것이옵니다.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 그대 같은 충신이 있어서 안심이오.”
만력제는 훌쩍이며 신시행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다만 황상 폐하 만일을 대비해 황태자 마마를 비밀리에 남경으로 보내시옵소서.”
신시행은 황도가 곧 조선군의 수중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고 황실을 보전하기 위해 만력제의 장자로 황태자가 된 주상락을 남경에 보내자고 했다.
“황태자를 남경으로? 황도를 포기한다는 것이요?”
만력제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조선군이 쏘아대는 화포의 포성이 계속 울려 퍼지자 만력제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고, 대학사가 황태자를 남경으로 보내자고 하자 자금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황제가 저렇게 소심해서야…….’
굳건해야 할 황제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오락가락하자 신시행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황도는 지킬 것이옵니다. 다만 조정의 안정을 위한 일이옵니다.”
“으흠. 그렇소? 그렇다면 복왕도 보내도록 하시오.”
“폐하! 복왕까지 보내시겠다는 말씀이옵니까?”
신시행이 진지한 눈빛으로 만력제를 바라보았다.
“그렇소이다. 복왕도 보내도록 하시오.”
만력제는 장남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했으나, 사실 3남 주상순을 더욱 아껴 그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싶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황태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동림당과 비동림당으로 나누어 극렬하게 다투었으나 결국 장남 주상순이 황태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만력제는 3남 주상순을 여전히 아꼈기에 주상순의 안위를 위해 그를 황태자와 함께 남경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알겠나이다. 황상 폐하!”
신시행은 만력제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따르기로 했다.
자금성이 위험하자 결국 황태자와 복왕은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비밀리에 자금성을 빠져나와 남경으로 향했다.
***
“어서 빨리 움직여라. 황성이 위험하다!”
황도가 위험하다는 전령의 말을 듣고 말머리를 돌린 유정은 강행군을 하며 북경으로 향했으나, 이미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병졸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게다가 군량미까지 부족해 주린 배를 움켜잡고 행군하는 병졸들은 사기가 극도로 떨어져 탈영병이 속출하니 유정이 이끄는 군대의 형편은 이만저만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장군! 병졸들이 너무 지쳐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모두 탈영을 하겠습니다.”
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금성이 위태롭다고 하니 재촉하는 수밖에. 조금만 더 가세. 조금만 더 가면 산해관이 아닌가?”
유정도 딱한 병졸들의 사정을 알고 있었으나, 황성이 위험하다 하니 그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유정은 무리해서라도 강행군을 했고, 마침내 산해관 입구에 도달했다.
“와. 산해관이다!”
행군에 지친 병졸들은 산해관이 보이자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산해관에 도착하면 휴식을 주기로 약조했기 때문이다.
“저……. 저게 뭐야!”
그런데 잠시 후 병졸들의 탄성은 탄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 조선군이다!”
산해관 성벽은 조선군의 군영 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어림잡아도 5만이 되어 보이는 조선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