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10화 (110/202)

110화. 명군과의 일전 (3)

“으…. 악!”

조선의 조총부대에서 발사된 탄환은 매섭게 달려오는 누르하치의 정예 기병대의 전사들과 말을 명중시켰고, 기병대의 말들은 고꾸라져 나뒹굴었고 말에 타고 있던 전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앞으로 굴러 쓰러졌다.

조총부대의 사격으로 순식간에 누르하치 기병대 절반이 사라져버렸다.

“이……. 이게 무엇인가?”

자신이 애써 키운 정예기병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자 누르하치는 사색이 되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그였지만, 조총을 저렇게 전략적으로 다루는 부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기야 기껏해야 야인들과 전투했던 그였기에, 엄청난 화력과 조총병들의 일사불란한 사격술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에게, 조선군들의 포병과 조총수를 중심으로 한 전투방식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만했다.

“조……. 조선군이 어찌 저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누르하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발포하라! 적군을 섬멸하라!”

“모조리 죽여라!”

조선의 조총부대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화망을 구성해 누르하치군과 명군을 향해 조총 사격을 계속했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사격에 누르하치와 명군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장……. 장군. 병졸들이 모두 쓰러지고 있사옵니다.”

“이……. 이런. 어찌 조총을 저리 잘 다룬단 말이냐.”

이여송도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선군의 집요한 조총 사격에 이여송이 이끄는 예비대도 이미 절반 이상이 쓰러져 초원에 나뒹굴었다.

“장군. 승산이 없습니다. 후퇴를 명하소서!”

“무슨 후퇴를 하라는 것이냐. 공격하라! 공격하라!”

이여송은 이성을 잃은 듯 칼을 빼 들고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자신의 동료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것을 본 명의 병졸들은 두려워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공격하라! 도망가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병졸들이 강력한 조총에 두려워하며 앞으로 나서기를 꺼려하자 이여송은 칼을 빼 들고 병졸들을 앞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마지못해 조선군을 향해 돌진하는 병졸들은 곧 조선군이 쏘아대는 조총을 맞고 쓰러져 나갔다.

“또……. 저놈들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이야!”

“저 피부가 검은 놈들은 무……. 엇이야. 괴물들인가!”

조선군의 조총 공격에도 정신이 없는 지경인데, 후방에서 생전 처음 보는 검은 피부에 털가죽을 뒤집어쓴 이들이 말을 타고 맹렬하게 명군과 누르하치의 기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명군과 누르하치의 기병들은 갑자기 나타난 요로바우가 이끄는 별종군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그들은 유연한 몸으로 이를 피하며 순식간에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적군을 섬멸하라!”

“별종군의 영광을 위하여!”

요로바우가 이끄는 별종군은 이날을 학수고대했다.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다 갑자기 들이닥친 노예 상인들에 잡혀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던 그들은 이균의 은덕을 입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어 죽을 것 같은 혹독한 훈련을 견딘 그들은 이균의 은덕을 갚을 기회를 열망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그들의 사기는 누구보다 높았다.

말을 달려 순식간에 적진에 도착한 이들은 칼을 빼 들고 명군의 목을 베었다.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명군은 요로바우가 이끄는 별종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저 피부가 검은 놈들을 공격하라!”

누르하치의 기병대는 갑자기 들이닥친 별종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유연한 몸놀림으로 별종군의 갑사들은 누르하치의 기병대가 휘두르는 칼을 잽싸게 피하며 그들의 몸뚱이에 칼을 꽂았고, 누르하치의 기병들은 피를 토하며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이……. 이런!”

누르하치는 충격에 휩싸여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전투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자신의 용맹스러운 기병대가 생전 보지도 못한 검은 피부의 요상한 모습을 한 이들에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후……. 후퇴하라!”

누르하치는 승산이 없다고 여기고 그의 기병대에게 후퇴할 것을 명했고, 후퇴를 알리는 신호를 본 누르하치의 기병대는 즉각 말을 돌려 퇴각했다.

“아버님! 이 전투는 승산이 없습니다. 어서 퇴각하시지요. 더 머물다가는 우리 군도 전멸을 당할 것이옵니다.”

“어찌 조선군이 저리 강하다는 말이냐!”

타커시도 명군과 자신의 군대가 일방적으로 조선군에 밀리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님! 우리 군은 조선군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서 후퇴를 명하시지요.”

누르하치가 후퇴를 재촉하자 타커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누르하치의 군대는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후방으로 빠졌다.

“저자가 조선의 왕이라는 자인가?”

후퇴하며 누르하치는 호위대에 둘러싸여 전장을 지켜보고 있는 백마를 탄 이균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명을 치고 금나라에 버금가는 제국을 세우고자 하는 야심이 가득한 그였는데, 조선의 왕이 자신보다 더 강력한 군대로 자신의 정예기병과 명의 대군을 쓸어버리는 것을 직접 보니 그의 야망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장군! 누르하치가 이끄는 군이 퇴각하고 있사옵니다.”

“무엇이라. 저런 비겁한 놈들이!”

누르하치가 이끄는 군대가 도주하자, 이여송은 당혹스러워했다.

“장군! 퇴각해야 하옵니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습니다.”

그의 휘하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황명을 받은 황군이 어찌 이리 비겁하게 퇴각한다는 것이냐!”

그는 부장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여송은 칼을 빼 들고 말을 달려 직접 조선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자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전장을 지휘하고 있던 신립은 적장이 말을 달려오는 것을 보고, 활을 빼 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으……. 악!”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이여송의 목을 정확히 관통해 이여송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와아아아아!”

이여송의 목이 떨어지자, 조선군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도……. 도망가자!”

“살……. 려줘!”

이여송의 목마저 떨어지자, 명군은 이제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조선군에 항복하거나 사방으로 도주했다.

“여……. 여송아! 어찌 이런 일이!”

자신의 아들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을 지켜본 이성량은 울부짖으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공격하라! 예비대를 투입하라! 아니 내가 직접 나서 아들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자신의 아들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자, 이성량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칼을 빼 들고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섰다.

“장군! 이미 승패가 기울었습니다. 지금 퇴각하지 않으면 전멸이옵니다.”

이성량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자, 그의 휘하 부장들은 그를 가로막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부대에게 모두 후퇴하라는 명을 내렸다.

“놔라! 이놈들! 내 손에 죽고 싶은 것이냐!”

이성량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부장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쳤지만, 그는 호위부대 갑사들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갔고, 전군 퇴각하라는 신호를 받은 명군은 즉각 후퇴했다.

“명군이 도망간다.”

“와아아아아!”

명군과 누르하치군이 일제히 퇴각하자, 조선군은 창과 칼을 높이 들고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전하! 대승이옵니다.”

이항복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균은 말없이 망원경을 빼 들어 전장을 살펴보았다.

곳곳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전장은 명군과 누르하치군 병졸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치열했던 교전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참혹한 전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흐음. 갑사들과 병졸들이 고생한 덕이오!”

조선군도 3,000여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으나, 명군과 누르하치군의 전사자가 모두 10만이 넘는 압도적인 대승이었다.

게다가 이성량의 아들 이여송의 수급까지 취하였으니 이만한 승리가 없었다.

***

산해관 앞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어스름한 새벽 황도 북경으로 통하는 관문인 산해관 앞바다에 갈레온선을 비롯한 수백 척의 함선이 모습을 보였다.

함선에는 화포와 병졸들이 가득 실려 있었으며, 기병을 태울 말들도 실려 있었다.

“제독님! 드디어 산해관 앞바다이옵니다!”

이순신을 보좌하는 송여립 대령이 입을 열었다.

“흐음. 물안개가 자욱하구려.”

이순신이 대장선 갑판에 올라 진중한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안개가 자욱한 바다는 조선 함대의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제독님! 명군이 우리 해군의 상륙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하옵니다.”

“다행이구려. 상륙 준비를 하시오!”

“존명!”

이균은 이순신에게 조선의 동원 가능한 해군과 육군 병력 5만을 내어 주고 산해관 인근 앞바다에 기습 상륙해 산해관을 치고 명의 황도 북경을 치라는 밀명을 내렸다.

왕의 밀명을 받은 이순신은 평양성 앞바다에 대규모 함대를 결진시켜 병력 5만과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산해관으로 향했다.

대규모 상륙함대를 꾸린 이순신은 명나라의 수군이 이를 눈치채고 바다 앞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였으나, 다행스럽게 명군은 조선군이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하리라는 것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다.

상륙을 준비하라는 이순신의 명에 따라 수백 척의 갈레온선과 판옥선은 빠른 속도로 상륙이 가능한 산해관 앞바다로 향해 나아갔다.

산해관 앞바다에 당도한 함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무사히 상륙했다.

“제독님! 무사히 상륙하였습니다.”

“흐음. 적군이 하나도 없구나. 혹시 모를 매복병이 있을 수 있으니 척후병을 보내 명군의 움직임을 살펴보도록 하라!”

이순신은 혹시 명군이 매복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척후병을 보냈으나, 멍청한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명군은 매복조차 없었다.

“진격하라!”

명의 매복조차 없는 것을 확인한 조선의 5만 대군은 빠른 속도로 산해관을 향해 진격했다.

***

산해관

“이성량 장군이 조선군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이성량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오랑캐 놈들이 오줌을 지린다 하지 않나. 뭐 대군을 이끌고 출병했으니 조선놈들을 격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산해관을 지키는 명 병졸들이 망루에 올라 심심한지 서로 이성량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앞을 보고 있었다.

제국의 황도 북경으로 통하는 관문에 있는 산해관이었지만 동원 가능한 병력을 모두 조선군을 치는데 투입시켰기에 산해관을 지키는 병력은 채 1만이 되지 않았다.

“이보게. 설마 조선놈들이 이곳으로 오지는 않겠지?”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인가. 조선군이야 모두 이성량 장군하고 맞서 싸우기 위해 요동 쪽에 있는데 어찌 이곳으로 올 수 있다는 말인가?”

“흐음. 그러하겠지. 조선놈들이 이곳으로 오면 우리는 그냥 죽는 것이 아닌가? 병졸들도 얼마 없는데…….”

병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조선군이 오려고 해도 이성량 장군을 깨야만 올 수 있을 것일세. 어휴 이성량 장군이 조선군을 깨주어야 할 것인데…….”

“이……. 이보게……. 저……. 게 무엇인가? 설마 조선군인가?”

그런데 앞을 보던 병졸 하나가 무엇을 보았는지 놀라 말을 더듬거렸다.

“이 사람이 왜 계속 조선군 타령이야? 아직 잠이 덜 깬 것인가?”

다른 병졸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아……. 니. 앞을 좀 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군.”

병졸이 여전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자, 다른 병졸이 마지못해 앞을 보았다.

“아……. 니. 어떻게 이……. 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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