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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08화 (108/202)

108화. 명군과의 일전 (1)

게다가 군량미조차 풍족하지 않아 명군은 물이 절반인 죽이나 끓여 먹으며 고된 행군을 하고 있으니, 명군은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져 갔다.

“장군. 병졸들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이러다가는 상간하다에 당도하기도 전에 병졸들이 다 죽을 판입니다. 행군을 잠시 멈추어 병졸들에게 휴식을 주어야 합니다.”

이성량의 휘하 부장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서 상간하다를 치고 조선군의 본진으로 향해야 할 것을. 유정이 공을 가로채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공을 세우는 데 눈이 먼 이여송은 자신의 병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장군! 이대로 가다가 조선군을 만나면 모조리 전멸입니다. 병졸들이 모두 지쳐 있습니다.”

“어찌할 수 없다. 일단 상간하다를 치고 병졸들을 쉬게 하도록 하자!”

이성량도 자신들의 군대가 지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여겼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선군에 유리하다는 것이 이성량의 생각이었다.

병졸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가고 있음에도 명군은 상간하다로 진격을 계속했다.

“이러다가 다 죽어 버릴 것이야.”

“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좋으련만.”

고된 행군을 마친 명나라 병졸들이 삼삼오오 모여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그들은 물이 가득 든 죽을 배급받아 허겁지겁 먹었으나, 굶주린 배는 채워지지 않았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고된 행군에 시달린 명나라 병졸들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조선군의 기습공격도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나, 그들은 굶주림을 참을 수 없었다.

행군하는 도중 유목민들의 식량을 강탈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여 굶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고향에서 먹던 기름이 잘잘 흐르는 쌀밥이 생각나 훌쩍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성량의 아들놈을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구만!”

자신들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데, 병졸들의 상태를 살피지 않고 공에 눈이 멀어 행군을 재촉하는 이여송은 명나라 병졸들 사이에 주적이 되어 있었다.

“아니네. 내가 저놈의 목을 쳐버릴 것이네. 저놈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도 않고 있는 게야!”

명나라 병졸들은 당장이라도 이여송을 쳐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인놈들은 그래도 배부르게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이 모양인가?”

명나라 병졸이 추위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야인놈들은 군량미를 넉넉히 챙겨온 모양이네. 우리는 군량미도 없이 전쟁을 하겠다고 사람만 이렇게 모아놓고……. 미친 것이 아닌가?”

방금 먹은 죽이 벌써 소화가 다 되었는지, 병졸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만력제가 내탕금을 털어 군자금을 내어 주기는 하였으나, 군자금은 병졸을 징집하는 데만도 턱없이 부족해 군량미를 넉넉히 마련하지 못했다.

이에 군량미를 아끼느라 명 병졸들은 형편없는 죽으로 연명하며 고된 행군을 하니 그야말로 굶어 죽기 직전이었고, 군량미가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는 명 지휘부는 황도에 장계를 올려 군량미를 더 보내 달라고 독촉하였으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군량미는 도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자신들 병졸이 먹을 군량미를 넉넉하게 챙겨 와 병졸을 넉넉하게 먹이고 있으니, 이를 본 명군의 허망함은 더욱 큰 것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는 명군을 보고 누르하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명나라의 황제가 미쳤다고 하더니……. 명나라의 운명도 끝나려나 보구나.’

명나라의 군대는 그가 알던 군대가 아니었다.

참혹할 정도로 형편없는 명나라군의 상태는 그를 실망감에 빠트렸다.

군량미를 넉넉히 챙겨오지 않았다면 그의 병졸들도 배고픔에 시달리며 생고생을 할 뻔했기에, 그나마 군량미를 넉넉히 챙겨온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정도였다.

***

“무얼 이리 꾸물거리느냐!”

“진군하라. 진군. 시간이 없다.”

명나라 장수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병졸들에게 행군을 계속할 것을 재촉했고, 병졸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꾸역꾸역 상간하다를 향해 지옥의 행군을 계속했다.

명나라 병졸은 이미 2천여 명이 넘게 길에 쓰러져 동사했고, 동상에 걸려 전투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병졸들도 1만여 명이 넘었다.

“장군! 상간하다에 거의 당도하였습니다.”

이성량이 이끄는 명군은 손실을 감수하고 강행군을 계속했고, 결국 상간하다에 당도했다.

“흐음. 적군이 있을지 모른다. 척후병을 보내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부대가 상간하다 인근에 도착하자 이성량은 행군을 멈추고 지친 병졸들을 쉬게 하고, 척후병을 보내 조선군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 명의 병졸들은 무기와 군장을 풀어헤치고 바닥에 철퍼덕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타타타타 탕-

그러나 병졸들이 지친 육신을 쉬려 하는 순간 언덕 너머에 요란한 조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천 기의 궁기병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명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 조선군이다!”

“전……. 전투준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조선군의 기습공격이 있자, 명군은 크게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어 던진 무기를 챙겨 전투를 준비하고자 했으나, 명군이 채 전투준비를 하기 전에 조선의 궁기병 수천 기가 명군 진영에 당도해 명군을 빙빙 돌며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으……. 악.”

진용을 정비하기 전에 조선의 궁기병들이 들이닥치자, 명군은 궁기병이 쏘아대는 화살을 맞고 속절없이 쓰러졌다.

“징글징글한 놈들…….”

명군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기습공격을 감행한 조선군에 넌덜머리가 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 조선군의 기습공격이…….”

“이……. 이런!”

이성량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조선군의 기습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조선군이 이렇게 빨리 기습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무엇하느냐! 당황하지 말고 조선군을 섬멸하라!”

이성량은 칼을 빼 들고 당황해 허둥대는 병졸들을 지휘하며 속히 대열을 갖추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조선의 궁기병들은 명군이 대열을 갖출 시간을 주지 않고 화살을 쏘아 부으며 명군을 쓰러트렸고, 명군은 큰 혼란에 빠져 여전히 우왕좌왕했다.

궁기병대의 막강한 공격력에 명군은 오랜 시간 동안 대열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후방에 있던 누르하치의 기병 1만여 기가 조선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선군을 공격하라!”

“조선군을 섬멸하라.”

누르하치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그의 정예기병 1만여 기는 조선군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오합지졸 명나라의 병졸들과 달리 누르하치의 용맹스러운 기병들은 조선 궁기병들이 쏘아대는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누르하치의 기병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들자, 조선의 궁기병들은 활을 집어넣고 환도를 꺼내 들어 적의 기병들과 일합을 겨루었다.

조선과 누르하치의 기병들은 서로 엉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후퇴하라!”

“전군 후퇴하라!”

그러나 얼마 후 조선의 궁기병들은 누르하치의 기병들 숫자가 자신들을 압도하고 그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느꼈는지, 말머리를 돌려 후퇴했다.

“와아아아!”

“조선군이 도망간다!”

조선의 궁기병들이 물러서자, 명군은 함성을 지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성량의 표정은 몹시 어두워져 있었다.

조선군의 산발적인 공격을 막아내어 연전연승하며 상간하다로 진격을 하고 있으나, 허울 좋은 승전일뿐 전투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명군의 손실이 커지고 있었다.

반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명군을 괴롭히는 조선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인명손실이 거의 없었다.

이성량은 조선군의 집요한 공격에 진절머리가 났다.

게다가 병졸들은 장기간에 거친 행군에 지쳐 적군의 본영과 싸우기도 전에 이미 지쳐 버렸으니,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급한 이성량은 하루를 쉰 후 대열을 갖추어 곧바로 상간하다를 향해 진격했다.

“장군! 적군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상간하다는 텅텅 비어 있었다.

“무엇이라?”

명나라군을 기습 공격했던 조선군은 이미 상간하다를 비웠다.

조선군의 기습공격과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어렵사리 상간하다에 당도했는데, 이미 조선군이 떠나고 없으니 이성량은 황당함에 잠시 아무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럼 조선군이 어디로 향했다는 것이냐?”

“조……. 조선군이 허투알라 쪽으로 이동한 것 같사옵니다.”

“이……. 이런 놈들이……. 감히 우리 군을 기만하는 것이냐!”

이성량은 조선군에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달아오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아버님! 조선군이 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조선놈들이 많이 달아나지는 못했을 것이옵니다. 속히 쫓아야 합니다.”

이여송도 짜증이 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는 이성량에게 조속히 조선군을 쫓아야 한다고 재촉했다.

“장군! 군량미가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주일 안에 군량미가 모두 떨어지게 되옵니다.”

“황도에서 군량미를 보내주기로 하지 않았느냐? 도대체 언제 도착을 한다는 것이냐?”

“저……. 그것이 조만간 보내준다고는 했는데……. 저도 모르겠사옵니다.”

“이런……. 제기랄!”

군량미를 거듭 보내 달라는 장계를 보내자, 황도에서는 군량미를 보내주기로 약조하였으나, 군량미는 약속한 날짜에 도착하지 않았고, 이제 남은 군량미는 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조선군을 추격해라!”

“장군! 병졸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다 죽습니다.”

부장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시간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조만간 군량미가 도착할 것이다. 군량미가 당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조선군의 군량미를 빼앗으면 된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성량은 군량미가 부족함에도 조선군을 쫓으라 명했고, 명군은 또다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행군을 시작했다.

“미친 것이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돌아도 단단히 돌았군!”

또다시 조선군을 쫓기 위한 행군을 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명나라 병졸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지휘부는 병졸들의 불만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한 행군을 계속 강행했다.

명군은 조선군을 쫓기 위해 빠른 속도로 행군했지만, 조선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군량미는 바닥을 보였다.

군량미가 바닥을 보이자, 명군은 누르하치의 군량미를 빌렸으나, 이마저도 바닥을 보였고, 황성에서 오기로 한 군량미는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명군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무리한 행군을 계속했고, 명군은 이제 무기를 들 힘조차 없어 보였다.

“조선군이 매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초원을 불태워라!”

허투알라로 가는 중간 지점에 마른 풀들이 널려 있는 초원지대를 만나자, 이성량은 또 조선군이 매복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원을 모두 불사르라는 명을 내렸다.

명군은 초원을 불태우면 언 몸이라도 녹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초원에 불을 놓았고, 마른 장작처럼 초원의 마른 풀들은 활활 타올랐다.

명군이 초원 곳곳에 불을 질러 초원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퍼퍼퍼 펑!-

그런데 그 순간 초원 맞은편 구릉에서 지축을 흔드는 포성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커다란 포성이 울려 퍼지자 명군은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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