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선제공격 (3)
무순성이 조선군에 의해 함락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이성량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조선군이 선제공격을 가했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장군! 2만여 명이 넘는 조선군이 기습공격을 가해와 막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런!”
이성량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조선군이 명나라와 누르하치 연합의 대군을 맞이해 방어 위주의 전략을 펼칠 것으로 생각했기에, 조선군이 요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무순성을 먼저 공격하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버님 무순성을 버리고 바로 진격하시죠. 성 하나 떨어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이여송이 조선군에 떨어진 무순성을 버리고 바로 조선군의 본진을 향해 진격하자 고집을 피웠다.
“흐음. 아니 된다. 무순성은 요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무순성을 놔두면 조선군이 우리의 뒤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무순성을 버릴 수는 없다.”
무순성이 버리고 곧바로 조선군 본대로 향하자는 이여송을 이성량은 다소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멍청한 아들 이여송과 달리 이성량은 무순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조선군이 점령한 무순성을 그냥 두고 가면 조선군은 전쟁 내내 명군의 후방을 괴롭힐 것이다.
“회군하라! 무순성을 수복한다!”
이성량은 재빨리 말을 돌려 무순성으로 향했다.
조선군의 급습으로 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이 짜증 나는 것이 사실이었으나, 무순성을 버리고 갈 수 없기에, 그는 무순성을 수복하기로 했다.
명나라와 누르하치의 대군은 빠른 속도로 무순성을 향해 달려갔다.
***
무순성
“장군! 명의 대병이 이곳 무순성을 향해 오고 있다는 첩보이옵니다.”
무순성을 함락한 곽재우는 명군이 반드시 무순성을 수복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 여기고 곳곳에 척후병을 심어 놓아 명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의 예상대로 명군은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무순성을 수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흐음. 전원 전투준비를 하라!”
“존명!”
하루가 지나고 약 10만여 명의 명군이 무순성 앞에 나타났다.
명군을 지휘하고 있는 이는 이성량의 아들 이여송이었다.
이성량은 아들의 전투경험을 쌓게 하려고 이여송에게 10만여 명의 병력을 내어주고 무순성을 함락하라 했고, 이성량과 누르하치의 군은 만일을 위해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장군! 조선군이 성을 비우고 나왔습니다.”
“하하하. 이놈들이 병법을 아는 것이냐. 모르는 것이냐. 대군을 맞아 성을 지키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거늘······. 아주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나!”
조선군이 성을 버리고 나왔다는 부장의 말을 들은 이여송은 어이가 없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조선군을 비웃었다.
대군을 막기 위해서는 성안에서 농성해야 할 것인데, 다섯 배나 많은 명군을 맞아 조선군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왔다고 하니, 이여송은 조선군 장수가 겁을 상실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당황하여 제정신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이놈들! 그렇게 죽고 싶다면 당장 죽여주마! 전군 공격하라!”
이여송은 망설임도 없이 칼을 빼 들어 전군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명군의 기마대 1만이 함성을 지르며 선봉에서 조선군을 공격했고, 뒤를 이어 명의 보병들이 따랐다.
“장군! 적군이 기병대를 앞세워 공격하고 있사옵니다!”
명군을 맞아 성을 비우고 나온 곽재우가 망원경을 꺼내 기병대를 앞세워 진군해오는 명군을 바라보았다.
조선군을 압도하는 대군이 몰려옴에도 곽재우는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공격하라!”
명나라의 기마대와 보병들이 돌진하고 있는 것을 잠자코 보고 있던 곽재우가 명을 내리자, 커다란 나각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고, 신호병이 커다란 깃발을 흔들었다.
-퍼퍼퍼펑!-
그리고 잠시 후 조선군의 화포가 일제히 불을 품었고 화포에서 발사된 커다란 철환과 작은 쇠구슬이 하늘을 뒤덮으며 명군을 향해 날아갔다.
“으······. 악!”
기세 좋게 말을 달려오던 선봉에 선 명군의 기병대가 조선군의 맹렬한 화포 공격을 받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화포장들은 연습한 대로 쉬지 않고 장전을 한 화포를 쏘아댔고, 조선군의 화포 공격을 처음 맞본 명군의 기병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굴러오는 철환을 맞은 말은 울부짖으며 쓰러졌고 말 위에 타고 있던 명의 갑사는 말과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선봉에 섰던 명군 기병대 2천 기가 순간 몰살당했다.
기병대가 무너져 내리자, 명군이 주춤거렸다.
“이······. 이런!”
선봉에 선 명 기병대가 조선군의 화포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본 이여송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어서 공격을 하지 못할까!”
“한 줌도 안 되는 조선군이다. 밀어붙여라!”
조선군의 매서운 화포 공격에 명군이 주춤거리자, 이여송을 역정을 내며 공격하라 명령을 내렸고, 그제야 명군은 마지못해 조선군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총과 조선군의 자랑 활이었다.
명군이 조총의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조총병은 당황하지 않고 매서운 눈빛으로 장전한 총을 일제히 발사했다.
-타타타탕!-
앞열의 조총병이 조총을 발사한 후 재빠르게 뒷열로 빠지고, 다음 열의 조총병이 다시 장전한 조총을 발사하며 조총병들은 쉬지 않고 명군을 향해 조총을 발사했다.
조총병들이 발사한 탄환은 돌격해 오는 명군을 명중시켰고, 말에 탄 명군은 외마디 신음 소리를 내며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사······. 살려줘!”
조총병들의 쉬지 않게 계속되는 사격 솜씨를 생전 처음 본 명군은 놀라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기병대는 그나마 훈련이 되어 있어 덜 당황했으나, 농사를 짓다 징집되어 기초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생전 처음 전장에 나서는 명나라 보병들은 우레와 같은 화포와 조총 소리에 기겁해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꽁무니를 빼려 했다.
조선군의 조총 사격에 놀란 것은 명의 병졸뿐만 아니라, 이여송도 마찬가지였다.
명나라도 조총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전하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리고, 비가 오면 사용이 곤란하고 명중률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기에, 조총을 전장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 조선군은 조총수의 숫자가 상당했고, 게다가 자신들의 조총보다 사거리가 훨씬 길고 명중률이 높은 처음 보는 신형 조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 조총병들이 열을 바꾸어 계속 사격을 하여 사격이 쉼 없이 계속돼 그 위력이 더욱 배가 되니 이여송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공격하라! 조선군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겁먹지 마라!”
그러나 조선군의 신출귀몰한 사격에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여송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임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병졸들을 독려했고,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마저 서둘러 투입했다.
그러나 조선군의 신출귀몰한 사격에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곽재우가 이끄는 조선군이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명나라의 공세를 막아내고는 있었으나, 명나라군의 숫자가 조선군을 압도하고 있기에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명나라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군! 더는 막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흐음. 됐다. 후퇴한다!”
명군을 맞이해 더 싸우는 것은 인명손실만 늘리는 것으로 생각하였는지, 곽재우는 후퇴를 명했고, 곽재우의 명이 떨어지자, 조선군은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챙겨 도주하기 시작했다.
“조선군이 도망친다!”
“와아아아아!”
명군의 전진을 막고 필사적으로 버티던 조선군이 갑자기 도주하자, 명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장군! 조선군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부장이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이여송에게 말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조선군 따위가 감히 어디서······.”
10만여 명의 넘는 명군이 2만여 명의 조선군에 고전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이여송은 그제야 여유를 되찾았다.
“조선군을 추격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이여송은 기세를 살려 조선군을 추격하라 명령을 내렸고, 명군은 기마대를 앞세워 후퇴하는 조선군을 추격하였으나, 일사불란하게 후퇴하는 조선군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겼다.”
“와아아아아!”
조선군과의 첫 전투에서 승리한 이여송 휘하의 병졸들은 함성을 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조선군기가 펄럭이던 무안성에는 다시 명군의 깃발이 펄럭이게 되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무엇인가 찝찝한 것이 사실이었다.
10만의 대군이 2만여 명의 조선군을 공격하였기에 명군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 여겼으나, 훈련이 잘되어 있고 군기가 잡혀있는 조선군에 명군은 고전을 했다.
조선군이 후퇴하였다고는 하나 조선군의 사상자는 채 200여 명이 되지 않았고, 명군의 사상자는 5,000여 명이 넘었다.
그러나 자신의 병졸이 오천 명이나 저세상으로 갔음에도 이여송은 무순성을 되찾은 것을 기뻐하며 황제께 보낼 승전보를 작성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승리를 떠벌리며 자랑했다.
자신의 아들이 조선군을 격파하고 무순성을 되찾은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으나, 명군 5,000여 명이 전사했다는 얘기를 들은 이성량은 찝찝한 기분을 털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무순성을 다시 수복한 명군은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이성량과 이여송이 이끄는 군은 사르후를 거쳐 곧바로 허투알라를 통과한 후 조선군 본대가 있는 아부달리로 향하려 했다.
“조······. 조선군이다!”
그러나 무순성에서 후퇴한 조선군의 잔당인지 수천 명이 조선군이 시도 때도 없이 기습 공격해 명군을 괴롭혔다.
조선군의 기습공격에 명군은 이들을 모두 격퇴하며 승전보를 이어갔다.
명군을 공격했다가 후퇴한 조선군은 자이피얀을 거쳐 상간하다 쪽으로 이동했고, 명나라의 척후병들은 상간하다 중간 지역에 5만여 명의 조선군이 있어 이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흐음. 이놈들이······. 그곳에 본거지를 틀고 공격을 감행하고 있구나! 상간하다를 치고 조선군 본대로 향한다!”
이성량은 상간하다 인근에 있는 조선군을 놓아두면 오히려 자신들이 조선군에 포위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상간하다를 먼저 치기로 했다.
“장군! 무엇인가 수상합니다. 조선군이 전면전을 펼치지 않고 치고빠지고만 있으니······. 혹시 조선군이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옵니다.”
누르하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무슨 조선군 따위가 계책을 세우겠는가? 나도 그 점을 걱정하긴 했으나, 우리 군이 워낙 강하니 전면전을 펼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병력을 나누어 기습공격이나 하고 있는 것이네. 오히려 잘된 것이 아닌가? 상간하다를 치고 조선군 본대를 공략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전면전을 펼치지 않고 치고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는 조선군의 행동이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누르하치는 상간하다를 치는 것을 반대하고 곧바로 조선군 본대로 향하자 하였으나, 그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이성량의 군대는 상간하다로 향했다.
명군은 상간하다로 진로를 바꾸어 행군을 했고, 조선군은 쉬지 않고 명군을 괴롭히며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명군은 조선군의 간헐적인 공격을 모두 격파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며 상간하다로 향했으나, 고된 행군을 하며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연일 연투가 계속되자,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피곤함이 명군 전체에 몰려왔다.
게다가 북방의 겨울은 일찍 찾아왔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온 세상을 뒤덮을 것 같은 커다란 눈송이가 속절없이 내렸고, 기온은 급강하했다.
급히 징집되어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솜옷조차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명군은 폭설과 추위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행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