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선제공격 (2)
이균은 중앙군 5만여 명과 경기도와 충청도를 방어하는 11군단과 12군단의 병력 등 약 7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군이 주둔하고 있는 허투알라에 입성했다.
왕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북방에 당도하니 북방에 주둔하고 있던 갑사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북방은 어느새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으나, 신립이 이끄는 북방군단의 병력들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도열해 그들의 왕을 맞이했다.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해 있는 듬직한 갑사들, 번쩍번쩍 빛이 나는 수천 기의 화포, 바람에 펄럭이는 수백 개의 대형 깃발을 이균은 흡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립 장군! 북방에서 고생이 많았구려!”
이균이 다부진 모습으로 서 있는 신립을 격려했다.
“전하께서 이리 몸소 친정을 하시니, 병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옵니다!”
신립 장군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왕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북방으로 향한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왕이 도성을 비우고 이곳 최전선으로 향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전쟁에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을 의미하는바, 신립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이균은 말에서 내려 갑사들을 일일이 격려한 후, 군 수뇌부들과 함께 막사에 들어섰다.
이균을 중심으로, 북방군단을 지휘하는 신립 장군, 그리고 중앙군을 지휘하는 권율 장군, 그리고 유구국에 있다가 급하게 차출되어 11군단과 12군단을 통합 지휘하게 된 정발 장군 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으나, 막사 안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모닥불 안에 통돼지 바비큐가 돌아가며 노릇노릇 익어 가고 있어 막사 안은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북방은 벌써 한겨울이구려!”
이균이 잔에 채워진 맑은 소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북방은 겨울이 일찍 찾아옵니다.”
신립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흐음. 그대들이 있어 내 든든하오! 명나라가 곧 출병하겠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요원들의 정보에 의하면 명나라가 군대를 둘로 나누어 이미 요동성을 떠났다고 하옵니다.”
이균과 함께 온 정보기관 정후청장 김명원이 말했다.
정후청은 이미 곳곳에 요원들을 파견해 명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명군의 전력은 어떻소?”
이균이 한가운데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명군이 대군이기는 하오나, 급히 징집된 농민군으로 그다지 전력이 강하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다만 누르하치가 이끌고 온 9만여 명의 병력은 전투경험이 풍부한 정예병이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옵니다.”
“흐음. 그래요. 결국 누르하치라는 자가 명군에 합류했구려!”
이균의 미간이 다소 찌푸려졌다.
명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은 안심할 일이나, 누르하치의 정예군이 명과 합류한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누르하치라는 자는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는 자로 결코 만만히 볼 자가 아니옵니다. 전투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명군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후청장 김명원도 누르하치의 세력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미 정보를 통해 파악하고 있었기에, 명군보다 그들의 전력을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흐음. 명군의 전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는 하나, 야인들과 연합한 그들의 숫자가 우리 군의 갑절은 넘으니 전장에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요.”
이균이 잘 익은 돼지 바비큐를 입에 넣은 후 목이 막히는지 소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흐음. 그리고 병졸들이 배불리 먹어야 할 것이니, 보급을 신경 쓰도록 하시오.”
이균과 군 수뇌부는 밤이 늦도록 전략 회의를 하며 명나라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
무순성
평화롭게 보이던 무순성에 갑자기 수만 명의 병졸들이 들이닥쳤다.
무순성의 성주 임응창은 갑자기 들이닥친 조선군의 등장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장군! 조선군이 성을 포위하고 있사옵니다.”
그의 휘하 부장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성을 지키는 병졸 대부분은 조선군을 토벌하기 위한 토벌군에 합류하기 위해 요동성으로 떠났기에, 성을 치키는 병졸은 채 2,000명이 되지 않았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조선군이 무순성을 선제공격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단잠에 빠져 있던 명나라 병졸들은 이른 새벽 족히 2만여 명이 넘는 조선군이 들이닥치자 놀라 급히 성으로 올라와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나, 성을 빽빽이 포위하고 있는 조선군을 보고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장군, 조선군의 숫자가 너무 많사옵니다. 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속히 후퇴하시는 것이…….”
부장은 성을 지키는 병졸보다 10배나 많은 조선군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이미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상실했다.
“후퇴? 지금 후퇴를 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것이다.”
임응창도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성을 버리고 도주하면 목을 베겠다는 이성량의 엄명이 있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장군! 공격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부관이 공격 준비를 모두 마쳤다고 하자, 곽재우 장군이 망원경으로 성 주변을 살펴보았다.
시골에 은거하고 있던 곽재우는 이균이 제법 왕 노릇을 한다 여기고 무과에 응시한 후 무관의 길을 걸었다.
결단력이 있고 병법에 능했기에 그 또한 쾌속 승차하여 어느덧 소장이 돼 이균과 함께 북방으로 출병하여 공을 세울 기회를 잡게 되었다.
“성을 지키는 이들이 몇 명 정도 되는가?”
“채 2천여 명이 되지 않는 것 같사옵니다. 병졸들도 대부분 나이가 많은 것 같사옵니다.”
“흐음. 반나절이면 성이 떨어지겠구나.”
곽재우가 부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커다란 신호기가 펄럭이고, 나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방열되어 발사 준비를 모두 마친 수백 기의 홍이포에서 연기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퍼퍼퍼퍼 펑-
수백 기의 홍이포의 포격을 시작으로 2만여 명의 조선군은 일제히 무순성을 공격했다.
홍이포에서 발사된 탄환 수백 개가 포물선을 성안으로 떨어졌다.
“으……. 악!”
홍이포의 포탄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궁수들이 발사한 화살과 조총병들이 화망을 구성하여 쏘아대는 조총의 탄환이 쉬지 않고 무순성을 타격하자, 성을 지키는 명나라 병졸들은 속수무책으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두려워하지 마라! 공……. 공격하라!”
“화……. 화포를 방포하라!”
조선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자, 성주 임응창도 칼을 빼 들고 목이 터져라 조선군을 공격하라고 외쳤으나, 성을 지키는 명나라 병졸들은 이미 조선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성벽에 기대어 몸을 숙이고 있을 뿐 조선군을 공격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어서 공격하지 못할까?”
“네놈들이 내 칼에 죽고 싶은 것이냐! 어서 공격하라!”
임응창이 공격을 하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서야 명군은 눈을 찔끔 감고 화포, 조총 그리고 활을 쏘며 간헐적으로 저항했으나, 조선군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잘 훈련된 조선군은 맹렬히 홍이포 등 화력을 쏟아부었고, 무순성은 검은 연기와 함께 곳곳이 불타올랐고, 명군들의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가 성을 가득 메웠다.
오합지졸 명군이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병력만 잃자, 곽재우는 공성장비를 이용해 성을 깰 것을 명했고, 조선군 본대는 예비대를 제외하고 화포의 엄호를 받으며 공성장비를 앞세워 무순성을 깨기 위해 돌진했다.
“전군. 진격하라!”
“성문을 열어라!”
조선군 본대는 어느새 무순성 정문 앞까지 진격해 들어가 두꺼운 성문을 두드렸다.
“조……. 조선군이 성문을 깨려 한다.”
“막……. 막아라!”
조선군이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명군은 겁에 가득 질려 있었다.
“장군! 성문이 곧 깨질 것 같습니다! 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성주 임응창을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임응창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고, 칼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조선군의 맹렬한 기세에 가장 겁을 집어먹은 자가 무안성 성주 임응창 같았다.
성주가 이미 겁을 잔뜩 집어먹자, 병졸들은 무기를 집어 던지고 성안 깊숙한 곳으로 도주했다.
“성주님! 항복을……. 이미 전세가 기울었습니다!”
임응창의 휘하부장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조선군에 항복할 것을 재촉했다.
“공격하라! 성문을 부숴라!”
“명군을 섬멸하라!”
명군의 사기가 완전히 꺾인 것을 확인한 조선군은 더욱 맹렬하게 무순성을 공격했다.
조선군의 화포는 쉬지 않고 발사되어 무순성 안을 공략했고, 성문은 이제 열리기 직전이었다.
“항……. 항복하라!”
“백……. 백기를 올리고 성문을 열어라!”
더는 버티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임응창이 드디어 항복을 결심했다.
잠시 후 무순성 꼭대기에 커다란 백기가 올라가고, 깨지기 직전이었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와아아아아!”
성문이 활짝 열리자 조선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장군. 성문이 열렸습니다!”
무순성의 성문이 열리자 부관이 이를 곽재우 장군에게 보고했다.
“흐음. 생각보다 명군이 형편없구나.”
무순성을 공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군이 항복을 선언하자, 곽재우는 명군의 전력이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성을 지키고 있는 명군은 훈련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주력군이 토벌군에 합류하고, 성을 지키는 병졸들은 주력군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항복을 선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선군이 성문을 열고 들어가자, 명군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투항했고, 곧 무순성에 조선군의 군기가 올라갔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조선군의 선제공격으로 명과의 일전이 시작되었다.
명군이 사실상 무순성을 비워놓았다고는 하나 무순성은 요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라 할 것인데, 조선군이 의외로 선제 기습공격을 감행해 무순성을 함락시키니 기선제압은 조선군이 먼저 한 꼴이 되었다.
***
요동을 출병한 20만이 넘는 토벌군은 조선군을 응징하기 위해 마침내 출병했다.
이성량과 그의 아들이 이끄는 북로군과 서로군 그리고 누르하치의 군대는 북쪽을 향해 긴 행렬을 이루며 행군했고, 남로군과 동로군은 남쪽을 향해 이동했다.
“아버님! 어서 빨리 조선군을 만나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선봉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말에 탄 이여송이 이성량을 바라보며 히죽거리며 웃었다.
“흐음. 명심하거라! 전장에서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서두르게 되면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적군의 계략에 넘어가게 된다.”
이성량은 성질이 급한 아들 이여송이 걱정되었다.
제법 병술에는 능해 활과 칼을 잘 다루었지만, 병법이나 지략은 턱없이 모자랐다.
“아……. 알겠습니다. 아버님!”
이여송은 대군을 이끌고 있으면서 왜 아버지가 그토록 신중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 같으면 당장 말을 내달려 조선군을 도륙할 것 같은데, 아버지는 너무나도 신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 빠른 속도로 말 2마리가 달려왔다.
“아버님! 우리 명군의 말 같은데?”
명군 복장을 한 말이 다급히 달려오자, 이성량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바라보았다.
“장군! 무순성이 함락되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명군은 다급한 목소리라 무순성이 떨어졌다 알렸다.
“무……. 엇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