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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04화 (104/202)

104화. 명나라의 최후통첩 (3)

이균이 홍국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시 바라보자, 본전도 찾지 못한 홍국번은 쭈뼛거리다 급히 자리를 떠났다.

“전하! 결국, 대명국과 결전을 벌이려 하시는 것이옵니까?”

노회한 재상 박순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왕을 바라보았다.

박순은 아무래도 명을 천자의 나라라며 떠받들었던 세대이기에 명과 전쟁을 하겠다는 이균이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명나라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소.”

그러나 명나라와 일전을 치르겠다는 이균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기울어가는 명나라의 국력, 그리고 누르하치가 기세를 잡아 발호하기 전인 지금이 명나라를 물리치고 조선의 강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었다.

“전하! 명에게 40만 대군이 있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조선이 40만 대군의 명군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박순은 홍국번의 입에서 나온 40만 대군이라는 말이 여전히 큰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영상 40만 대군이 있다는 것은 허풍이요. 지금 명은 40만 대군을 동원할 여력이 없소. 그렇지 않소? 병판!”

“그러하옵니다. 전하! 정후청 요원들의 첩보에 의하면 명은 40만 대군을 동원할 여력이 없다고 하옵니다.”

율곡도 이균처럼 명이 40만 대군을 동원할 수 없다고 여겼다.

“전하! 그렇다고 해도 대명국은 큰 나라이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조선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사옵니다. 신중하옵소서!”

그러나 오랫동안 명을 섬겨왔던 박순을 비롯한 원로대신은 명과의 일전을 주저하며 이균에게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원로대신들의 걱정도 이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세뇌 교육을 받아 왔기에 명나라는 여전히 크고 무서운 나라였다.

“전하! 명 황제가 정무를 거부하고 미쳐 날뛰는 바람에 조세조차 제대로 걷히지 않고, 흉년까지 들어 명의 백성들은 유리걸식하며 떠돌고 있다 하옵니다. 명의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으니, 우리의 옛 땅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것입니다.”

반면, 율곡 등 젊은 소장파 관료들은 명의 국운이 기울고 있어 예전의 명이 아니라며 명나라와 일전을 벌여도 승산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서로 간에 설전을 벌였다.

“도승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균이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전하! 병판 대감의 말씀처럼, 명의 국운은 이미 다하였습니다. 반면 우리 조선은 정예 20만 대군이 있사오며, 신립과 이순신 장군이 어명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명을 치시옵소서!”

이항복도 명과의 일전에 찬동하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도 명나라의 국운이 이미 기울어 조선이 충분히 명을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오히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균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신들을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명과의 일전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것이오. 명을 쳐 우리의 옛 땅을 수복할 것이오. 군대를 소집하시오. 그리고 내 친히 그 군대와 함께 북방으로 향할 것이오!”

“전……. 전하! 친정을 하겠다는 말씀이옵니까?”

이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방으로 향하겠다고 하자 대신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하며 이균을 바라보았다.

“그렇소이다. 내 친히 출정하여 명나라와 일전을 벌일 것이요.”

명과의 전쟁에 찬동한 이항복도 이균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는 여기지 못했기에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하! 전하는 나라의 근본이라 할 것인데, 자칫 전장에서 험한 일일이라도 당하시면 이 나라는 크나큰 위태로움에 빠지게 되옵니다.”

영의정 박순, 우의정 이산해 등 중신들이 일제히 친정을 하겠다는 이균을 만류하고 나섰다.

“전하! 그리하시옵소서. 신립과 전하의 충성스러운 장수들이 전하의 뜻을 받들어 명군을 격파할 것이옵니다. 전하께서 도성을 비우게 되면 백성들도 혼란스러워할 것이옵니다.”

이조판서 류성룡도 왕이 도성을 비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이균이 직접 출정하는 것을 반대했다.

왕을 오랫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던 류성룡도 이균이 한 번도 직접 북방으로 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기에, 그가 친정을 하겠다고 하니 당혹스러워하며 친정을 극구 만류했다.

대신들 대부분은 이균이 도성을 비우고 전방에 직접 나서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자칫 왕이 적군에 사로잡히거나 전투 중 전사라도 하는 날이면 나라의 근본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명나라의 정통제도 명을 위협해오는 몽골의 오이라트를 치겠다고 친정에 나섰다가 포로로 잡혀 나라를 위태롭게 한 예가 있으니, 대신들은 친정을 하겠다는 이균을 극구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의 운명을 건 전투가 벌어질 것인데, 군사들을 전장에 보내놓고 도성에서 한가로이 지낼 수는 없소. 내 직접 나서 명나라를 칠 것이니, 더는 반대하지 마시오.”

“전……. 하!”

이균이 친히 출정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자, 대신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기야 왕이 직접 나서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

명나라 황제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최후통첩을 하고, 왕이 최후통첩을 거부하고 직접 출병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조선 8도에 퍼져 나갔다.

명나라와의 결전이 임박하자, 도성은 술렁거렸고, 명나라의 40만 대군이 조선을 치기로 했다는 소식에, 일부 겁을 먹은 백성들은 피난 보따리를 싸기도 했다.

“전하! 사대의 예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어찌 패륜의 길로 가시려 하옵니까!”

한편 여전히 명나라를 천자의 나라라 여기며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일부 유생들은 상소를 올리고 궁 앞에 모여 명과의 교전을 반대하며 눈물을 쥐어짜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왕이 직접 친정하겠다는 말에 사기가 높아졌고, 명과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전하께서 친히 출정하겠다는 말이 사실인가?”

“뭐. 그렇다는구먼. 전하께서 직접 나가 명군을 치겠다는 것이야!”

도성의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명과의 결전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명나라를 이길 수 있겠는가? 듣자 하니 명나라 군대가 40만이 넘는다고 하던데?”

“아니네, 100만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던데…….”

명나라 사신 홍국번이 40만 대군을 말하며 조선을 겁박하였으나, 어느새 그 숫자는 뻥튀기되어 조선을 치기 위해 명나라 황제가 100만 대군을 동원했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100만 대군?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조선 팔도의 군대를 다 동원해도 20만 정도가 아닌가?”

한 백성이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무슨 100만 대군이겠는가! 듣자 하니 명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라고 하던데……. 어떻게 100만 대군이나 동원할 수 있겠는가? 다 허풍이네. 허풍.”

그러나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설령 100만 대군이면 어떻겠는가? 수 양제도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려 했다가 오히려 수나라가 망하지 않았는가! 신립과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의 100만 대군을 모조리 전멸시킬 것이네.”

“아무렴! 오히려 명나라가 망할 것이네.”

백성들은 서로 맞장구를 치며 명나라와 한판 붙어보자며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백성들도 이제 조선이 예전의 형편없는 군사력의 조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방에서 신립 장군이 야인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북방의 맹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이순신이 세계 최강이라고 하는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니,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느새 도성은 전쟁 준비로 시끌벅적했다.

이균은 도성을 지키는 중앙군 2군 6위 6만여 명의 병력 중 도성을 방어하기 위한 1만여 명의 병력을 남겨 놓고 5만여 명을 모두 동원하기로 했고, 용병으로 구성된 별종군 5,000명도 참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방어하는 11군단과 12군단도 합류하기로 했다.

이로써 신립의 북방군단까지 합치면 약 13만 명의 대군이 명나라와 일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조선으로서는 조선 땅을 방어할 병력을 남겨 놓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 명나라와의 결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2군 6위로 이루어진 중앙군이 모두 전장에 투입되기로 결정되자, 도성의 중앙군은 북방으로 향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군량미 등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마차와 수레가 긴 행렬을 이루며 어디론가 이동했고, 조총과 창, 환도를 찬 갑사들이 서둘러 움직이며 도성은 전쟁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백성들은 도성 한가운데를 지나는 갑사들을 볼 때마다 그들을 격려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나이가 어린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전쟁에 보탬이 되겠다며 스스로 자원입대를 했다.

***

요동총병부

명나라 황실을 상징하는 깃발 수백 개가 펄럭이고 있고, 어림잡아 보아도 16만이 넘는 대군이 요동성 앞 벌판에 늘어서 있었다.

기병을 태운 말 수천 마리가 추운지 입김을 불어내고 있었고, 말 위에 올라탄 기병들은 갑주를 갖추어 입고 늠름한 모습으로 투구를 눌러쓰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화포 수천 기도 번쩍번쩍 빛을 내며 늘어서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게다가 누르하치 부족의 날쌘 기병 4만과 보병 5만이 합류하니 국경을 어지럽히는 조선군을 토벌하기 위한 병력은 25만이나 되는 거대한 대군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대군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본 이성량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신립의 군대가 국경을 넘어 명나라의 영역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고 있음에도 치욕스럽게 이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는데, 이제야 황명을 받들어 대규모 토벌군을 편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만한 조선군을 도모할 기회를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황상 폐하의 명을 받들어 그는 대군을 이끌고 국경을 어지럽히고 있는 조선군을 토벌하고, 국경을 넘어 오만함이 끝도 없는 조선 왕을 사로잡아 황상 폐하께 받칠 것이다.

늘어서 있는 명나라 군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성량은 지휘부 장수들과 함께 천천히 제단으로 걸어갔다.

이성량이 제단 앞에 서자, 시중을 드는 갑사가 칼을 꺼내 줄에 묶여 있는 신성한 백마의 머리를 베었고, 백마는 신음도 내지 못한 채 고꾸라져 피를 토해내었다.

제관은 백마의 피를 잔에 정성스럽게 받아, 이성량과 지휘부 장수들에게 건네주었다.

백마의 붉은 피가 가득 담긴 잔을 받든 이성량은 단숨에 백마의 뜨거운 붉은 피를 들이켰다.

이성량이 백마의 피를 들이켜자, 다른 장수들도 백마의 피가 가득 든 잔을 비웠다.

“와아아아아아!”

이성량이 승리를 기원하는 신성한 백마의 붉은 피를 마시자, 늘어서 있던 20만이 넘는 대군이 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백마의 붉은 피를 마신 이성량은 몸을 굽혀 제단에 절을 올린 후, 병졸들을 바라보며 만력제가 하사한 상방검을 빼 들었다.

“자랑스러운 황군이여 들으라! 우리는 지엄하신 황상 폐하의 명을 받드는 용맹스러운 황군이다!”

“와아아아아!”

“황명을 받들어 명나라의 강역을 침범한 조선군을 모조리 섬멸할 것이니 그대들은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아!”

20만이 넘는 명나라와 누르하치 부족 연합군은 일제히 창과 칼을 뽑아 들고 요동성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질렀다.

깊은 함성이 쉬지 않고 요동성에 울려 퍼졌으며,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며 요동치고 있으니 이성량은 뿌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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