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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96화 (96/202)

96화. 유구국 구원 (7)

비격진천뢰의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위력에 혼비백산한 왜군 병졸들도 갑자기 1만여 명에 이르는 조선군이 나타나 성 위에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자,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당황스러움과 두려운 표정으로 조선군을 바라보았다.

“장군 왜군들이 완전히 올가미에 걸려들었습니다.”

1연대장 박세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정발 장군을 바라보았다.

정발 장군은 망루에 올라 비격진천뢰에 터져 나오는 철편을 맞고 신음하고 있는 왜군들을 바라보았다.

“왜군들을 모두 섬멸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거라!”

“존명!”

정발이 결연한 표정으로 왜군을 섬멸하라 명하자, 커다란 나각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각 소리를 들은 조선군은 일제히 홍이포, 활, 조총을 사정없이 왜군을 향해 쏘아댔다.

-퍼퍼퍼 펑!-

-타타타 탕!-

비격진천뢰에 이어 천지를 진동하는 커다란 광음과 함께 홍이포에서 발사된 커다란 철환과 작은 쇠구슬이 하늘을 비 오듯 뒤덮고, 뒤를 이어 숙련된 조총수들이 강력한 화망을 이루며 조총을 쉬지 않고 발포하고, 조선이 자랑하는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겨 활을 쏘아대자 이미 정신을 잃은 왜군들은 오도 가도 못 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나갔다.

“사……. 살려줘!”

“으……. 으악!”

왜군들은 생전 처음 보는 조선군의 막강한 화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화력 덕후인 조선군이 슈리성의 높은 성벽에서 왜군들을 향해 화포와 조총 그리고 활까지 온갖 무기를 동원해 무자비한 사격을 가하자, 왜군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 커다란 철환을 맞고 그대로 즉사하거나, 비격진천뢰에서 터져 나오는 철편에 온몸이 찢겨 나뒹굴었다.

게다가 왜놈들이 자부하는 조총보다 장전 시간이 짧고 강선이 있어 사거리가 길며 사거리가 훨씬 긴 조총은 높은 성벽으로 인해 그 위력이 더욱 커져 왜군들을 속절없이 쓰러트렸다.

“푸하하! 무슨 활이 저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냐!”

“활이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 저런 활은 처음이구먼!”

왜군들이 조선군의 강력한 화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자 후방에 있던 왜군 궁수들은 다급히 활시위를 당겨 왜군들을 구원하려 하였으나, 왜군들의 활은 슈리성에 당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왜군들 앞에 떨어져 그들을 당황케 했다.

왜군들의 활이 왜군들 진영에 떨어지는 어이없는 상황을 목격한 조선군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깔깔거리며 왜군들을 농락했다.

왜군들의 활은 단순히 대나무로 만들어 그 크기는 조선의 국궁보다 크나, 탄성이 약해 사거리가 형편없는 수준으로 활의 민족 조선군이 보기에 조잡하기 그지없는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반면 조선의 활은 물소뿔, 쇠심줄, 뽕나무 등으로 다듬어 민어 부레를 붙여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들어 그 탄성이 뛰어나 왜군들의 장난감 같은 활에 비해 사거리가 훨씬 길고 그 위력도 대단했다.

조선군의 강력한 활마저 비 오듯 쏟아지자, 어느덧 피범벅이 된 왜군들의 시체가 성벽에 즐비하게 쌓여 있었고, 두려움에 울부짖는 왜군들은 속속 대열을 이탈하여 흩어졌다.

“주군. 대역이 무너지고 있사옵니다!”

“어찌! 조선군이 슈리성에 있다는 말이냐! 조선군이 왜!”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시마즈 요시히로였지만, 이렇게 자신의 용맹스러운 군대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의 얼굴은 어느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슈리성을 단숨에 점령하여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조선군이 나타나 자신의 군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니 그는 당혹스러움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주군! 승패가 이미 기운 것 같사옵니다. 후퇴를 명하시는 것이…….”

시마즈 요시히로의 충성스러운 부장 야마모토는 이미 대열이 무너져 도주하기 바쁜 군대가 승산이 없다고 여겼다.

야마모토도 이렇게 비참하게 시마즈 가문의 정예군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무슨 소리냐! 어찌 수치스럽게 이대로 물러나란 말이냐.”

“주군! 조선군의 숫자가 저희보다 배는 더 많습니다. 게다가 화포와 조총도 우리보다 많아 성을 공략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사옵니다.”

야마모토는 주군이 이미 승산이 없는 전쟁에 무리수를 두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무슨 소리냐! 야마모토. 용맹스러운 시마즈 가문의 군대가 이렇게 수치스럽게 도주하라는 것이냐. 자결하는 한이 있어도 후퇴는 없다. 즉시 예비대를 투입해라!”

요시히로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했다.

자신의 군대가 조선군에 의해 사실상 학살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는 미친 사람처럼 칼을 빼 들고 예비대마저 투입하라 외쳤다.

그러나 자신들의 동료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린 것을 그대로 목격한 왜군들은 겁에 잔뜩 질려 섣불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했다.

“이놈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뒤로 물러서는 자는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예비대가 슈리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주춤거리자, 시마즈 요시히로는 겁에 질려 대열을 이탈하려는 병졸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당장 돌격하라! 조선놈들을 죽여라!”

시마즈 요시히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슈리성을 향해 돌격하라 외쳤고, 그제야 예비대는 슈리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미 본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조선군의 강력한 홍이포, 조총 그리고 화살 세례였다.

조선군의 홍이포, 조총, 활 3종 세트는 강력한 화망을 구성하여 왜군 예비대를 공격했고, 왜군 예비대는 제대로 진격도 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나갔다.

“쏴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방포하라!”

-콰콰콰 쾅!-

-타타타 탕!-

조선군의 화포와 조총은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이날을 위해 끝없이 반복 훈련을 한 조선군의 포수와 조총수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거의 기계적으로 화포와 조총을 쉼 없이 장전하고 발포하기를 반복했다.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지며 하늘에서 포탄과 총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왜군들은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이런 비참하고 두려운 광경을 처음 경험한 왜군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해,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고, 이성을 상실한 요시히로가 칼을 빼 들고 도주하는 왜군 병졸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고 있음에도 왜군들은 대열을 이탈해 달아나기에 바빴다.

“와아아아아!”

“왜놈들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다!”

왜군들이 달아나기에 바쁘자, 조선군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조선군과 함께 왜군들을 상대한 유구국 병졸들도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통쾌한 광경에 사기가 충전되어 쉬지 않고 왜군들을 향해 활을 퍼부었다.

“장군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난 것 같사옵니다!”

박세직이 미소를 지으며 정발 장군을 바라보았다.

“왜군들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 같구만!”

비록 조선군의 숫자가 왜군을 압도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유리한 슈리성에서 왜군들을 맞아 싸우고 있으나,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왜군들의 전력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왜군들이 자랑하는 조총도 조선군이 개발한 신형 조총에 비해 그 성능이 떨어졌고, 왜군들은 조선군처럼 강력한 화포도 많이 보유하지 않았다.

비록 실전 경험이 풍부한 그들이 단병접전에는 강할 수 있으나, 강력한 화력으로 왜군들을 상대하면 대등한 숫자의 왜군이라 하더라도 조선군이 능히 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이제 전쟁을 끝내야겠소!”

정발 장군이 불만이 가득한 원균을 바라보았다.

“원 대좌 기병대를 이끌고 왜군 잔당을 섬멸하시오!”

“장군 정말이옵니까?”

정발이 기병을 내어주겠다고 하자 원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소! 왜군들한테 조선 기병대의 위용을 보여주시오!”

“알겠사옵니다. 장군. 왜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사옵니다.”

이제야 제대로 싸울 수 있다 여긴 원균은 신이나 기병 2천 기를 이끌고 슈리성 문을 열고 왜군을 향해 말을 달렸다.

“기……. 기병이다.”

“도……. 도망가!”

슈리성 성문이 열리고 2천 기의 기병들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왜군들을 향해 돌격해 들어오자, 이미 도주하기에 여념이 없던 왜군들은 들고 있던 병장기마저 모조리 집어 던지고 발바닥이 땀이 나게 후퇴했다.

전의를 상실한 왜군들은 이미 병졸이 아니었다.

조선의 기병대는 말을 힘껏 달려 도주하는 왜군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버렸고, 왜군들은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푸하하하! 모조리 죽여라!”

원균은 칼을 사정없이 휘두르며 왜군들을 추격했다.

말을 달려 전장을 누비니 이제야 살 것만 같았다.

“주……. 주군 어서 후퇴를!”

어느덧 5천에 이르던 왜군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거나 도주하여 요시히로를 호위하고 있는 몇백의 병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찌 이리 치욕스러운…….”

시마즈 요시히로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와 전장을 누비며 함께해온 정예전사 오천 명이 갑자기 나타난 조선군에 의해 순식간에 전멸당한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주군. 어서. 시간이 없습니다.”

야마모토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요시히로를 재촉했다.

원균이 이끄는 기병대가 살아남은 왜군 잔당을 소탕하고 빠른 속도로 요시히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기 왜군 우두머리가 있다!”

“저놈의 목은 내가 벨 것이다!”

원균은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를 발견하고 그의 수급을 차지하기 위해 빠르게 말을 달렸다.

“윽! 조선군 놈들이 왜!”

요시히로는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주……. 주군 어서…….“

“야마모토. 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어서 이곳을 탈출하거라!”

“주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후퇴를 명하시옵소서.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 없사옵니다. 후일을 도모하소서!”

야마모토는 그가 모시는 요시히로가 이미 기울어진 전장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죽겠다고 하자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속히 전장을 떠날 것을 재촉했다.

“내가 병졸들을 다 죽음으로 몰아넣고 혼자 도망갈 수 있겠느냐. 어서 떠나가거라!”

그러나 요시히로는 여전히 이곳에서 죽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그는 자신의 성급한 선택으로 그의 충성스러운 병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제법 무장다운 책임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요시히로가 끝까지 전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야마모토가 호위부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건장한 체격의 병졸들이 요시히로를 순식간에 덮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주군 용서하소서!”

왜군 병졸들은 요시히로를 힘으로 제압한 후, 말을 달리 속히 전장을 빠져나갔다.

“저놈들을 놓치지 말거라!”

왜장이 도주하자, 왜장의 목을 베고 싶은 원균은 맹렬한 속도로 말들을 달려 요시히로를 추격했다.

“장군! 적장이 도주하고 있사옵니다.”

정발은 망원경을 빼 들고 도주하는 요시히로를 바라보았다.

“흐음. 이만하면 됐다! 원균에게 돌아오라 명하거라!”

이미 왜의 주력군이 전멸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적장을 추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발 장군의 생각이었다.

정발이 명령을 내리자 신호를 알리는 커다란 깃발이 펄럭였다.

“와아아아!”

“적군이 도망간다!”

“이겼어!”

살아남은 왜군들이 모두 도주하자, 슈리성을 가득 메운 조선과 유구국의 병졸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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