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92화 (92/202)

92화. 유구국 구원 (3)

재상 웨카타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폐하! 조선국은 명나라를 치려 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사쓰마 번의 침략에서 조선을 구원해줄 수 있는 나라는 조선뿐이옵니다. 부디 우리 유구국을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소신 조선군의 원군을 받지 못하면 이곳에서 자결할 것이옵니다!”

웨카타가 비장한 표정으로 조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결하겠다고 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약소국이 겪어야 할 비참한 운명!

자신의 어깨에 조국이 운명이 걸려있다는 절실함에서 나오는 유구국 재상의 호소가 대신들을 숙연하게 했다.

“흐음. 그대들의 절실함은 알겠소. 그러나 당장 이를 결정할 수 없으니, 대신과 논의한 후 결정하도록 하겠소. 그러니 이만 물러나 쉬도록 하시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부디 유구국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이균이 대신들과 논의하겠다며 이만 물러나라 하자, 재상 웨카타를 비롯한 유구국 사신들은 다시금 유구국을 버리지 말라며 하소연한 후 자리를 떠났다.

“흐음. 유구국의 사정이 딱하긴 하군요. 영상의 생각은 어떻소?”

“전하! 소신의 짧은 생각으로는 유구국이 왜인들이 겁박에 시달리는 것 같사오니, 마땅히 원군을 보내 그들을 도와야 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박순이 유구국 재상 웨카타의 호소에 감동을 받았는지 유구국의 사정이 딱하니 원군을 보내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상의 생각은 어떻소?”

이균이 우의정 이산해를 바라보았다.

“전하! 유구국의 사정이 안된 것은 사실이나, 명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소국에 불과한 유구국을 지원해 잘 지내고 있는 왜와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 같사옵니다.”

우의정 이산해도 병조판서 율곡처럼 유구국에 원군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대신들은 유구국의 사정이 딱하니 도움을 주자는 쪽과 소국에 불과한 유구국을 도와주었다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왜와의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있으나 도울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누어져 있었다.

대신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나누어지자, 이균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의 의견이 다 타당한 측면이 있기에 이균은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교역선이 입항하고 있는 장기(나가사키)는 사쓰마 번의 영역이 아니지 않소?”

이균이 병조판서 율곡을 바라보았다.

“그렇긴 하옵니다. 장기(나가사키)는 대촌손충(오무라 스미타나) 가문의 영지이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구국을 도와 사쓰마 번과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다 한들 대촌손충(오무라 스미마타) 가문과의 사이가 벌어지지는 않지 않겠소. 게다가 대촌손충(오무라 스미마타)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남만국과 사이고 좋은 것으로 아는데, 남만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우리 조선과 척을 질 이유가 없지 않겠소.”

나가사키는 왜와의 무역을 위한 거점 항구이기에 나가사키가 막히면 조선은 왜와 더는 교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가사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오무라 스미마타 가문의 영지이기에 조선이 유구국을 도와 사쓰마 번과의 사이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왜와의 교역에 큰 차질이 없으리라는 것이 이균의 생각이었다.

“전하! 그렇기는 하오니 사쓰마 번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그들은 곧 큐슈 통일을 앞두고 있는바, 조만간 장기(나가사키)도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클 것인데, 그렇게 되면 조선은 왜와 교역이 불가능해질 수 있사옵니다.”

율곡은 사쓰마 번이 곧 큐슈 전역을 차지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여전히 유구국을 돕는 것을 반대했다.

“흐음. 그대의 말이 일리는 있소. 하지만 사쓰마 번의 부당한 겁박에 시달리는 유구국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대국의 도리가 아니오. 약소국을 겁박하는 사쓰마 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것이오. 그들이 장기(나가사키)를 침략하면 대촌손충(오무라 스미타나)을 구원할 것이오.”

이균은 고민 끝에 유구국을 구원하기로 했다.

그러자 율곡이 이균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 명나라와 일전을 앞두고 있는데 전선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재고하여······. 재고······. 으윽!”

“병판!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요?”

율곡이 말을 마치지 못하고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율곡이 느닷없이 쓰러지자 모두 당황하여 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자 옥좌에 앉아 있던 이균이 달려 나와 율곡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이 뛰는지를 확인했다.

‘이런 심장이 뛰지를 않는구나. 이렇게 율곡이 죽는 것인가. 안 돼. 아직 할 일이 많거늘······.’

“내관은 무엇을 하는 것이냐. 어서 허준을 불러오너라!”

이균은 율곡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의관 허준을 불러오라고 외친 후, 본능적으로 군대에서 배운 대로 인공호흡법을 실시했다.

쓰러져 숨을 쉬지 않는 율곡을 바로 눕힌 후 두 손으로 깍지를 끼워 율곡의 명치 부분을 있는 힘껏 압박했다.

“율곡 제발 정신 차리시오!”

이균을 땀을 흘리며 율곡의 명치 부분을 약 20회 정도 압박한 후 이번에는 율곡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바람을 불어넣었다.

“전하! 지금······.”

이균이 난생처음 보는 해괴망측한 짓을 하자, 대신들은 민망스럽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정네가 느닷없이 남정네의 입술을 포개는 괴상한 짓을 하니 자신의 왕이 미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남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들 지경이었다.

“전하! 어찌 이리 망측한 짓을······. 의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옵소서!”

이균이 모든 대신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망측한 짓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자, 박순이 민망해하며 이균에게 망측한 짓을 그만하라 말했다.

“지금 율곡이 위중한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이요. 허준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오?”

그러나 이균은 오로지 율곡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균은 땀을 흘리며 계속 두 손으로 율곡의 심장을 압박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인공호흡법을 했다.

‘율곡이 결국 이렇게 죽는 것인가.’

율곡이 이른 나이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균은 율곡에게 운동도 시키고 보약도 지어 먹이며 그의 건강을 챙겼지만, 율곡이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니 그의 명줄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균이 사력을 다해 인공호흡을 하였음에도, 율곡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이균은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율곡의 가슴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눌렀다.

“어······. 헉”

그런데 이균이 포기하려는 순간, 율곡이 외마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병······. 병판 괜찮은 것이오?”

율곡이 정신을 차리자 이균이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 전하. 제가 어찌 된 것인지.”

율곡은 자신이 왜 갑자기 누워있고, 왕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있는 연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균과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병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오. 그대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소. 전하께서 그대를 살리신 것이오.”

박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율곡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의식을 차린 율곡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병판!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으시오!”

“전······.하!”

왕이 직접 그를 보고 있으니, 율곡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이균이 한사코 그를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전하 어의 허준 입시옵니다!”

“어서 들라 하라!”

급호출을 받고 달려온 조선 최고의 의원 허준이 모습을 보였다.

“어서! 병판을 살펴보도록 하시오. 병판이 갑자기 쓰러져 숨을 쉬지 않았소.”

“알겠나이다. 전하!”

허준은 즉각 누워있는 율곡 옆으로 가 진중한 눈빛으로 율곡의 맥을 짚었다.

맥을 짚으며 허준은 율곡의 가슴과 머리 몸 이곳저곳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허준은 긴 장침을 꺼내더니 율곡의 상의를 벗기고 율곡의 명치 쪽에 쭉 밀어 넣었다.

“윽!”

장침이 들어가자 율곡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나 허준은 신음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율곡의 정수리와 목 주변에 정신을 집중해서 그런지 땀을 흘리며 무수한 침을 정성스럽게 놓았다.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

그의 뛰어난 의술을 알고 있던 이균이었기에, 이균은 일찍이 허균을 어의에 임명한 후 동양 의술은 물론 서양 의술도 익히게 했다.

명의 허준이 정성스럽게 침을 놓아 주어서 그런지 율곡은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어떠하오. 병판!”

이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율곡을 바라보았다.

“전하! 소신 이제 괜찮사옵니다!”

율곡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자, 이균을 비롯한 대신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 최고의 천재로 병권을 책임지고 있는 율곡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조선에 큰 손실이기에 율곡이 살아난 것을 보고 이균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어의! 병판이 왜 갑자기 혼절한 것이오?”

“전하 병조판서께서 그동안 무리를 하시어 기와 혈이 약해지시어 심통이 오신 것 같사옵니다. 조금만 지체되었어도 큰 봉변을 당하실 뻔하였나이다!”

“흐음. 그동안 병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고 하더니······. 큰일이 벌어질 뻔했구려. 이제 어찌하면 좋겠는가?”

“절대 안정이 중요하시옵니다. 당분간 쉬시면서 탕약을 드시어 약해진 기와 혈을 튼튼히 하셔야 하옵니다.”

“병판! 어의의 말을 잘 들었겠지요. 당분간 병조의 일은 보지 말고 집에서 쉬도록 하시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허오나 명나라와 일전을 앞두고 있어 병조의 일이 산더미이오니 일을 멈출 수가 없사옵니다.”

일벌레 율곡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일을 멈출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어허!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마시오. 병조참의나 밑에 있는 관료들에게 일을 나누어 주고 병판은 어명이 있을 때까지 집에서 나오지 마시오.”

“허나......”

“어명이라 하지 않았소. 어명을 거역하면 역모죄로 다스릴 것이요.”

이균이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면 역모죄로 다스리겠다고 하자, 일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율곡이 그제야 조용해졌다.

“흐음. 앞서 말한 대로 유구국이 왜의 겁박에 구원을 요청하니, 아량을 베풀어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를 돕는 것은 군자의 도리라 할 것이니 유구국에 원군을 보낼 것이니 더는 반대하지 마시오!”

갑자기 혼절한 율곡이 정신을 차리자, 이균은 유구국의 조공을 받아들이고 사쓰마 번의 겁박에 시달리는 유구국을 구원하기로 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이 단호한 어투로 유구국을 구원하는 것을 논하지 말라 하자, 율곡을 비롯한 대신들도 더는 반대하지 못하고 이균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병판이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구려!”

“그러게 말이요. 그런데 전하께서 병판에게 한 그 해괴망측한 행동이 무엇이오. 전하 때문에 병판이 숨이 돌아온 것 같기는 한데······. 그런 해괴망측한 의술은 처음 보는지라······.”

조회를 마치고 궐 밖으로 나온 대신들은 저마다 이균이 율곡에게 행한 인공호흡법에 충격을 받은 듯 그에 관한 얘기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

“조선이 우리를 도울 것 같소?”

숙소로 돌아간 유구국 세자는 초조한 눈빛으로 재상 웨카타를 바라보았다.

“조선의 대신들 일부가 왜와 교역이 중단될 것을 염려하여 반대하고 있으니 그것이 걱정이옵니다.”

웨카타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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