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만력제 정신 차리나? (1)
“명나라가 조용하구만!”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야인들의 땅을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는데, 명나라 놈들이 두고만 보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만!”
해서여진 연합군을 격파한 신립의 북방군단은 잠시 진군을 멈추라는 이균의 어명을 받들어 해서여진의 마을만을 점령한 후 건주여진을 치지 않고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순신이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일전을 치르고 있기에, 이균으로서는 전선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 조만간 명나라가 움직이지 않겠는가? 건주여진만 격파하면 요동이 코앞인데 명 황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군사를 일으키지 않겠는가?”
군대를 움직이지 말라는 이균의 어명 덕에 북방군단의 병졸들은 오래간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명나라와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을 알고 있기에, 병졸들은 경계를 서며 명나라와의 일전에 대해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명나라 황제가 정사는 돌보지 않고 황궁에 틀어박혀 계집질이나 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러게, 말일세. 황제라는 자가 일은 안 하고 계집질이나 하고 있으니 나라가 잘될 턱이 있나. 명나라로 이제 끝물인가 보구만….”
한 병졸이 곰방대에 담배를 넣고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냥 명나라 놈들하고 한판 붙어봤으면 좋겠구만. 명나라 놈들도 별것 아닌 거 같은데 말이야! 안 그런가?”
“하하하. 누가 아니라나! 신립 장군이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이미 야인들과 싸워 연전연승을 거둔 북방군단의 병졸들은 명나라와 싸워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충성! 근무 중 이상무!”
그런데 느닷없이 노가리를 까고 있던 병졸이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구호를 외쳤다.
“아니…. 왜 그러나?”
병졸이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같이 노가리를 까고 있던 병졸이 무슨 일인가 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도 이내 놀라 경례를 하며 큰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충성! 근무 중 이상무!”
신립이 순시를 나온 것이었다.
“흐음. 그래! 특이사항은 없는가?”
신립이 미소를 지으며 병졸들을 바라보았다.
“그…. 그러하옵니다.”
“흐음. 그래! 적들이 언제 도발을 해올지 모르니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네.”
신립이 병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알겠습니다!”
“요동 총병부의 움직임은 아직 없는가?”
신립이 순시를 함께 나온 5군단 1연대장 김종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건주여진의 누르하치 일족과 접촉한다는 정보는 있사오나,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는 않는 것 같사옵니다.”
“흐음. 명나라가 지켜만 보고는 있지 않을 걸세!”
신립의 북방군단이 야인여진에 이어 해서여진 연합군을 연달아 격파하고 만주 일대 상당 부분을 점령하자, 명나라는 부랴부랴 이균을 해서 대장군에 봉했으나 조선이 이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기에 언젠가는 신립의 북방군단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리라는 것을 신립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언젠가는 명나라와 일전을 치러야 할 것이옵니다.”
김종원도 명나라와의 일전을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하오! 명군이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중원을 지배하고 있지 않소. 우리가 상대한 야인들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오.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오!”
“알겠사옵니다!”
신립은 본능적으로 명과의 일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의 북방군단이 연전연승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명은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허술하게 전쟁을 준비했다가는 명군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 자명하기에 신립은 수시로 주둔지를 돌며 부하 장수와 병졸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훈련 시켰다.
***
북경 자금성
“하하하. 간지럽구나!”
만력제는 여전히 정사를 돌보지 않고 자금성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그가 총애하는 귀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귀빈은 만력제의 온몸을 간질이듯 주물렀고, 만력제는 여인의 보드라운 손길에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매일 절세 미모를 자랑하는 궁중의 여인들과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는 귀빈의 보드라운 손길에 천국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폐하! 이리 후궁에만 머물러 계셔도 되는 것이옵니까?”
“왜 짐이 너를 찾는 것이 싫은 것이냐?”
“제가 어찌 폐하를....... 폐하께서 다른 후궁의 처소를 찾지 않고 매일 저의 처소를 찾아오셨으면 하옵니다.”
귀빈이 미소를 지으며 더 보드라운 손길로 만력제의 온몸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귀빈의 보드라운 손길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만력제가 귀빈의 옷을 풀어헤치고 젖가슴을 매만졌다.
“폐하께서 보이지 않는다고 대신들이 난리가 아니옵니까? 그래서 걱정이 돼서......”
만력제의 손길에 귀빈이 야릇한 신음을 내뱉으며 만력제를 바라보았다.
“제 놈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어차피 제 놈들이 다 해 먹는데 황제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냐. 장거정을 보거라. 겉으로는 청백리인 척했지만, 황제보다 더 많은 부를 몰래 챙긴 놈이 아니더냐…….”
만력제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댔다.
그는 장거정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듯했다.
“폐하! 제가 황상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
“하하하. 아니다. 짐이 너를 얼마나 총애하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짐은 이렇게 너와 온종일 함께하며 보내는 것이 좋구나.”
만력제의 손이 귀빈의 젖가슴에서 점차 귀빈의 몸 아래로 내려와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귀빈은 어느새 옷이 거의 벗겨져 하얀 살결이 드러나 있었다.
“폐하!”
만력제의 손길을 느낀 귀빈은 볼이 발그레져 신음 소리를 토해내며 만력제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괜한 말을 하여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더욱 정성을 다해 만력제의 몸을 매만졌고, 만력제는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만력제는 조선이 야인들을 토벌하고 이제 요동까지 넘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정사는 전혀 돌보지 않고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 숨어 계집질이나 하며 보냈다.
그는 무려 10만여 명의 궁녀와 환관의 시중을 받으며 온종일 나체로 후궁들과 목욕을 하거나, 커다란 연못을 파 배를 띄워 놓고 궁녀와 함께 노닐다가 나비를 풀어 나비가 앉은 궁녀를 간택해 하룻밤을 보냈다.
계집들과 환락의 시간을 보내다 요절한 그의 아버지 융경제를 닮았는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계집과 은자를 모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융경제는 계집질을 하긴 했어도 장거정, 척계광 등 유능한 관료들을 등용해 변방을 안정시키기라도 했지만, 만력제는 모든 정사를 거부하고 오로지 후궁에 틀어박혀 계집질이나 하고 있으니 명나라 조정은 사실 1년 내내 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가 총애하는 귀빈은 어느덧 만력제의 은밀한 부분까지 보드라운 손길로 만지기 시작했고, 만력제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에 겨운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몸이 달아오른 만력제도 귀빈의 은밀한 부분을 쓰다듬었고 침실은 어느새 만력제와 귀빈의 교성이 가득했다.
그러나 만력제는 어젯밤 궁녀 여러 명과 정사를 치러서 그런지, 귀빈의 은밀한 부분을 매만지며 신음을 토해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악.......으……. 악!”
귀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만력제는 몇 시진이 지나지 않아서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괴성을 지르며 눈을 떴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흉몽이라도 꾸신 것이옵니까?”
귀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만력제를 바라보았다.
“물……. 물 좀 주거라!”
만력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귀빈이 가져다 둔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흐음........ 참으로 이상한 꿈이로구나.”
“폐하 도대체 어떤 흉몽을 꾸셨기에......”
귀빈이 땀에 흠뻑 젖은 만력제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흐음. 말을 탄 묘령의 여인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짐을 향해 말을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력제는 아직도 꿈이 생생한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는 이른 아침 궁중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오랑캐 복장을 한 여인이 말을 타고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보았다.
거침없이 달리는 말에 구름처럼 먼지가 일어나 말의 주변을 둘러쌌다.
이를 본 만력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온몸이 경직된 채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점차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는 그를 공포로 밀어 넣었다.
그는 고함을 치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많던 그를 지켜주던 갑사들과 궁녀 그리고 환관들은 온데간데없고 그만 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도망가려 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도와달라고 외치고만 있었다.
어느덧 한 손에 긴 창을 든 오랑캐 여인이 눈앞에 나타나 그를 향해 창을 던지려는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것이다.
“폐하! 참으로 흉측한 꿈이옵니다. 어찌 그런 흉몽을……. 기가 허약해지셔서 그런 꿈을 꾸는 것이 아니온지……. 보약이라도 드셔서 기력을 회복하시옵소서!”
귀빈이 만력제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흐음. 참으로 기분 나쁜 흉몽이로다. 꿈에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지 않느냐…….”
만력제는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냉수를 마시고 귀빈이 땀을 닦아 주었음에도 왠지 모를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폐하 목욕을 하시면 기분이 좋아지시올 겁니다. 목욕을 준비하라 할까요?”
귀빈이 만력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흐음. 아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꿈 같구나. 지금 당장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자를 부르도록 하여라.”
“알겠나이다!”
자신이 꾼 꿈이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만력제는 즉시 해몽가를 부를 것을 명했고, 이에 명나라에서 가장 꿈 해몽을 잘한다는 역술가가 비밀리에 황궁으로 들어왔다.
“황상 폐하!”
졸지에 황궁에 불려 들어간 역술가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그의 목이 달아날 수 있기에 그는 황제의 얼굴을 볼 생각도 안 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네놈이 그리 꿈을 잘 본다는 것이냐?”
만력제가 역술가를 노려보며 말했다.
“황상……. 폐하!”
백발이 성성한 역술가는 여전히 황상 폐하라는 말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짐이 아주 기분이 나쁜 흉몽을 꾸었구나! 네놈이 한번 해몽을 해 보거라.”
만력제는 독주를 한 모금 마신 후 귀빈을 어루만지며 낮잠을 자다 꾼 꿈을 역술가에게 풀어놓았다.
만력제가 꾼 꿈을 듣고 있던 역술가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도대체 이 흉몽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만력제는 자신이 꾼 꿈 얘기를 하니 다시 기분이 나빠졌는지 독주를 다시 단숨에 마셔 버렸다.
“황상 폐하.......!”
급격히 얼굴색이 어두워진 역술가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허허. 이놈이! 왜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냐. 어서 해몽을 해 보거라!”
역술가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자 만력제가 호통을 쳤다.
그러자 역술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 오랑캐 여인이 말을 타고 창……. 을 황상 폐하께 던진다는 것은....... 오랑캐가 이곳 자금성을 불태우고 명나라의 강역을 빼앗는다는 뜻이 옵니다!”
“무……. 무엇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