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주식회사 (1)
“이거야 원 오래간만에 활을 쏘니 잘 맞지 않는구려!”
이균은 오래간만에 병조판서 율곡, 도승지 류성룡 등 측근을 이끌고 활을 쏘았다.
오래간만에 활시위를 잡은 탓인지, 이균의 활시위를 떠난 활은 아슬아슬하게 과녁을 빗나갔다.
“전하! 오래간만에 쏘는 것치고는 잘 맞는 것이옵니다!”
“하하하. 아부는 그만하시고. 병판도 한번 쏴보구려. 조선의 군권을 책임지고 있으니 꼭 명중해야 할 것이오. 과녁을 못 맞히면 벌주가 있을 것이오.”
‘아니 무슨 낮술을 마시라는 것이야.’
이균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벌주를 내리겠다는 말을 하자 율곡은 갑자기 긴장되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왕이 하라면 해야지.
율곡은 심호흡을 깊게 하고 과녁을 바라본 후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하하하! 아쉽구만. 자 벌주 한잔 받으시오!”
율곡이 쏜 화살이 아쉽게 과녁을 빗나가자 이균이 쌤통이라는 표정으로 껄껄거렸다.
이균은 독한 소주가 가득 들어 있는 술병을 내관에게서 건네받은 후 율곡이 들고 있는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율곡은 대낮부터 왕이 따라주는 어주를 받아 단숨에 삼켰다.
이를 지켜본 도승지 류성룡이 미소를 지었다.
“자 나도 과녁을 맞히지 못했으니 한잔 마시겠소. 이번에는 도승지 차례요. 도승지도 맞추지 못하면 벌주요.”
“알겠나이다!”
류성룡이 율곡의 뒤를 이어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활시위를 떠난 활은 그대로 과녁 한복판에 명중했다.
“하하하! 대단하구려. 도승지가 당장 북방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오.”
류성룡이 쏜 활이 과녁에 정확하게 명중하자, 이균이 활짝 웃었고, 율곡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정후청장 김명원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후청장 갑자기 무슨 일이오. 김 청장도 활이 쏘고 싶어 온 거요?”
정후청장 김명원이 갑자기 모습을 보이자, 이균이 그를 바라보며 농을 던졌다.
“전하! 그것이 아니오라 남만국을 구원하기 위해 떠난 이순신 제독이 서반아 함대에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옵니다.”
김명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순신의 승전보를 알렸다.
“무엇이라! 이순신이? 그것이 사실이오?”
이미 소주를 여러 잔 마셔 알딸딸한 상태였던 이균은 이순신이 스페인 함대를 격파했다는 김명원의 말을 듣고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순신 제독이 아조레스 제도 인근에서 산타크루즈 후작이 이끄는 스페인 함대를 전멸시켰다 하옵니다.”
“전멸이라! 하하하! 이런 통쾌한 일이. 듣자 하니 서반아의 함대는 최강의 함대라 하던데. 이순신이 그런 함대를 전멸시켰다는 것이오? 이순신이 정말 큰일을 했구려!”
“그러하옵니다. 전하! 서반아 함대를 격파하고 남만국 도성까지 진격해 서반아군을 완전히 몰아냈다고 합니다.”
“장한 일을 했구려! 그렇지 않소! 병판?”
“그러하옵니다. 이 제독이 정말 큰일을 했사옵니다. 서반아의 강력한 함대를 격파했으니 그보다 장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율곡과 도승지 류성룡도 김명원이 전한 승전보에 흥분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비록 포르투갈을 구원하기 위해 함대를 보냈지만, 스페인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함대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어, 해전 경험이 전혀 없는 이순신이 과연 그들과 겨루어 승리할 수 있을지 염려가 가득했는데, 대승을 거두었다 하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그러하오. 이 제독이 정말 큰일을 했소.”
이균도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도 이순신이 임진년에 조선을 침략한 왜놈들을 바다에 수장시킨 명장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상대방 장수는 레판토 해전의 영웅 산타크루즈이니 과연 이순신이 홈그라운드도 아닌 먼 유럽의 바다에서 무적의 스페인 함대가 주는 중압감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으나, 모든 것이 기우였다.
역시 이순신은 바다의 신이었다.
“전하! 이 제독이 서반아에게서 지중해 함대가 기항으로 삼을 수 있는 나폴리를 얻고 또 신대륙에 있는 은광과 항구를 넘겨받았다 하옵니다.”
“흐음. 이순신이 아주 큰일을 했구려. 유럽에도 우리 조선 땅이 있는 것이 아니오. 게다가 신대륙의 은광이 우리 조선 것이 되었으니. 서반아 왕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겠어요.”
이순신은 격노할 펠리페 2세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하! 게다가 이순신이 병조참의 이항복의 장모인 카탈리나 공작비를 남만국의 새 왕으로 내세웠다고 하옵니다.”
“그래요! 아주 잘했구려. 그렇게 되면 남만국에 우리 조선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되겠지요.”
이균은 자기 뜻대로 카탈리나 공비가 포르투갈의 여왕이 되었다는 김명원의 말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중해 함대의 일부가 여전히 리스본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왕마저 이균의 입맛에 맞는 이를 내세웠으니 남만국에서 조선의 입지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항복이 아주 필자가 피었구려! 장모가 국왕이니 말이오. 인생은 이항복처럼 되어야 하거늘…….”
“하하하! 그러하옵니다. 병조참의 덕분에 남만국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이옵니다.”
율곡과 도승지도 억세게 운이 좋은 이항복의 팔자가 부러우면서도 기가 막혀 껄껄거리며 웃었다.
“바다에는 이순신이 육지에는 신립이 있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구려.”
이균은 이순신과 신립이 그의 믿음대로 제구실을 해주니 그들이 있어 듬직했다.
“자! 오늘같이 기쁜 날을 축하해야지요. 자 모두 모여 술 한잔합시다!”
이순신이 전한 승전보에 기분이 좋을 대로 좋아진 이균은 대신들을 불러 모아 술판을 벌였고, 대신들도 이순신의 대승을 축하했다.
***
“이순신 장군이 서반아 놈들 함대를 대파했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말이야. 서반아 함대가 거의 전멸했다던데.”
“대단하구만, 이순신 장군이 남만국에서는 완전 영웅이라는구만. 공작 작위까지 받았다는데…….”
“그럴 만도 하지 아니한가. 나라를 구해준 은인인데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지.”
백성들에게도 이순신이 유럽 땅에서 스페인 함대에 대승을 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백성들은 커피하우스나 주점 등에 삼삼오오 모여 이순신의 승전보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파죽지세로 여진족을 격파하여 북방의 영웅이 된 신립에 이어, 이순신은 세계 최강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해전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북방에는 신립 장군이 여진족을 소탕하고,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이 있으니 뭐 이제 외침을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허허. 당연한 것 아닌가! 감히 누가 조선을 넘보겠는가. 오히려 명나라가 덜덜 떨고 있다던데…….”
백성들은 어느새 천자로 받들던 명나라도 우습게 여길 정도였다.
“그러게. 조만간 명나라와 붙을 거라는 소문이 돌던데…….”
“그런 소문은 나도 들었네. 뭐 어떤가! 이제 명나라랑 붙어도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이제 조공이나 바치던 조선이 아니란 말이지.”
북방에서 야인들이 거주하던 명나라의 영역을 빼앗은 조선을 못마땅하게 여긴 명나라가 조만간 조선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두려워하는 이들보다는 명나라와 붙어도 해볼 만하다 여기는 이들이 더 많았다.
***
강화도
“이제 배가 올 때가 되었는데…….”
강화도 포구에 여러 명의 값비싼 비단옷을 입은 이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이오. 이번 항해에 많은 은자를 투자했는데, 돌아오는 배가 많아야 할 것인데.”
이들은 유럽에 도자기를 싣고 가 파는 상단에 은자를 투자한 자들이다.
조선의 지중해 함대가 스페인 제국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포르투갈의 왕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항복의 장모 카탈리나를 내세우자 조선과 포르투갈의 관계는 동맹 이상으로 밀접해졌고 조선은 포르투갈이 개척한 동방항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동방항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조선은 포르투갈 선단을 이용하기보다는 스스로 갈레온선을 구입해 도자기, 홍차 등 유럽에서 인기를 끄는 무역품을 싣고 교역에 나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직접 선단을 꾸려 교역품을 파는 것이 훨씬 많은 이문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청화백자 한 점이 집 한 채나 흑인 노예 여러 명의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에 도자기를 실은 갈레온선이 무사히 유럽에 도착하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선단을 꾸리기에는 많은 돈이 들기에 투자자를 끌어모아 배, 선원, 도자기 등 교역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선단이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투자금에 비례해 교역을 통해 벌어들인 은자를 배당해주었다.
거친 바다를 무사히 건너 선단이 온전히 돌아오면 투자자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선단이 해적을 만나거나 풍랑을 만나 좌초되기라도 하면 투자자들은 투자한 돈을 모두 잃어 큰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도박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하니 선단에 투자한 이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배……. 배가 들어온다!”
투자자들의 초조해하고 있는 사이 그들이 기다리던 갈레온선 선단이 강화도 포구 앞바다에 모습을 보였다.
“와. 정말이네. 무사히 돌아왔구먼!”
유럽을 다녀온 갈레온선단이 귀환하자 포구에 나와 있던 투자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격하게 선단을 환영했다.
그들이 투자한 5척의 갈레온선 중 2척은 불행히도 풍랑을 만나 좌초되어 3척만 돌아왔으나 3척의 갈레온선만으로도 그들은 투자금의 몇 곱절은 배당받을 수 있기에, 그들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물론 포르투갈은 그들의 선단을 이용해 조선의 도자기를 여전히 실어 나르고 있었으나, 조선은 많은 투자자를 모집해 직접 선단을 꾸려 청화백자, 홍차 등을 유럽에 직접 파는 것이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수많은 백성이 은자를 가득 들고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었다.
***
이균은 오래간만에 집무실에 홀로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신립은 북방에서 야인들을 평정하고 조선의 영토를 넓히고 있고, 이순신은 적수가 없다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나폴리와 신대륙의 식민지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이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그러하니 이균의 기분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명과의 일전이 남은 것인가!”
이균은 집무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지도에서 명나라의 도성 북경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전하 도승지 입시요!”
그 순간 내관이 도승지 류성룡이 입조한 것을 알려왔다.
“도승지가? 들라 하여라.
이균이 들라 하자 도승지 류성룡이 집무실에 들어와 예를 갖춘 후 자리에 앉았다.
“그래 도승지 무슨 일이오?”
이균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전하 다름 아니오라 남만국이 개척한 유럽으로 가는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후 백성들이 상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사옵니다.”
“흐음. 그렇지요. 이제 조선의 상단들이 남만국의 항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직접 청화백자를 내다 팔 수 있으니 더 많은 이문이 남지 않겠소.”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러하온데 남만국으로 떠난 상선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투자에 나선 백성들이 큰 손실을 보아 걱정이옵니다. 또 배가 돌아오면 투자자들에게 이문을 넘겨주고 상단을 해산하고 다시 투자자들을 모아 상단을 만들어야 하니 번거로움이 한둘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류성룡이 상단에 투자하는 백성들이 배가 풍랑을 만나거나 하여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큰 손실을 보는 것을 걱정했다.
그러자 이균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