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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82화 (82/202)

82화. 리스본 해방 (2)

스페인군이 연합군의 파상적인 공격에 혼란스러워하자 팽배수가 방패와 창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고 창수와 도수가 뒤를 따르며 스페인군을 향해갔다.

곧 조선군 갑사들이 스페인군 진지에 들이닥쳐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응양군과 용호군 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혹독한 훈련을 받은 대로 방진 대영을 이루어 스페인군을 밀어붙였다.

맨 앞줄에 선 팽배수는 스페인군의 진영에 도착하자 들고 있던 창을 있는 힘껏 던졌다.

“으악!”

팽배수가 던진 창은 스페인 병졸의 목을 그대로 꿰뚫었고 창을 맞은 그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공격하라!”

“야만족 놈들을 죽여라!”

스페인군 지휘관은 조선군 갑사들을 야만족이라 부르며 스페인 병졸들을 독려했다.

“와아아아아!”

스페인 병졸들은 지휘관의 명에 따라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칼을 빼 들고 조선군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조선군의 밀집대형은 깨어지지 않았고 맨 앞줄의 팽배수가 스페인 병졸들이 휘두르는 칼을 막아냈고 그사이 창수들이 팽배수의 보호를 받으며 돌진해 들어오는 스페인 병졸을 긴 창으로 찔렀다.

“으악!”

창수들의 장창에 스페인 병졸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조선군의 밀집대형은 마치 로마군단이 부활한 것처럼 강력했다.

스페인군은 사력을 다해 조선군의 밀집대형을 깨려 했지만, 그럴수록 조선군의 방진은 더욱 강해졌고 스페인군의 희생은 더욱 커졌다.

수많은 스페인군이 창수들의 장창에 쓰러져갔고, 응양군과 용호군 소속 도수들도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며 스페인 병졸들의 목을 베었다.

“후퇴! 후퇴하라!”

백병전을 펼치던 스페인군은 희생이 커지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왕궁 쪽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서반아 놈들이 도주한다!”

“추격하라!”

스페인군이 줄행랑을 치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스페인군이 도주하자 용호군 궁기병들이 말을 달려 활시위를 당겼다.

말을 타며 쏘아대는 신기에 가까운 궁술에 스페인 도주하던 스페인 병졸들은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마치 300여 년 전 기마 부대를 이끌고 와 동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든 바투의 몽골 원정군을 보는 것 같았다.

“타타타탕!”

포르투갈 시민군도 도주하는 스페인군을 향해 총을 쏘며 그들을 쫓았고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조선군과 포르투갈군도 스페인군을 맹추격했다.

“공작님 더는 버티기가…….”

이미 전의를 상실한 부관이 버티기가 곤란하다며 애처로운 눈으로 알바 공작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역도들에게 왕궁을 내어줄 수 없다! 공격하란 말이다! 저놈들을 다 죽여버려라!”

이미 조선군과 포르투갈군 그리고 리스본의 시민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갈 곳이 없음에도 현실을 인정할 수 없는 듯 역정을 내며 공격하라 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공격을 받는 것은 포위된 스페인군이었다.

이미 조선의 응양군 그리고 용호군 갑사 2만여 명이 포르투갈 왕궁을 둘러싸고 있었고 포르투갈 저항군과 시민군까지 합류해 스페인군이 숨어든 왕궁을 겹겹이 포위했다.

-콰콰콰 쾅!-

곧 왕궁을 둘러싸고 배치된 100여 문의 홍이포가 일제히 불을 뿜으며 왕궁을 포격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제국의 찬란한 영광이 서려 있는 웅장한 왕궁의 외벽이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홍이포에서 발사된 작은 쇠 구슬이 비처럼 쏟아져 내려 스페인 병졸들을 사정없이 내리치니 병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갔다.

“공격하라! 포를 발사하라!”

스페인군도 사력을 다해 화포를 쏘고 총을 쏘며 저항했으나, 화력과 병력의 숫자 등 모든 것에 있어 역부족이었다.

“이제 항복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인데!”

이순신이 호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망원경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왕궁을 바라보았다.

왕궁 앞에는 도주하다가 쓰러진 스페인군 시신이 가득했고, 왕궁으로 도주한 스페인군 상당수도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옵니다. 제독님!”

부제독 이철윤 소장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더 버티어 봐야 희생만 늘어날 것이거늘!”

이순신도 이미 완전히 조선과 포르투갈의 연합군에 포위된 스페인군이 버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스페인군이 항복하기를 바랐으나, 스페인군은 아직은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강력하게 스페인군을 공격하라!”

스페인군이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자, 이순신은 강하게 스페인군을 밀어붙일 것을 주문했고, 명을 받은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은 모든 화포와 조총, 그리고 활을 더욱 매섭게 퍼부었다.

“공작님! 항복을…….”

“무엇이라! 저 야만인 놈들에 항복을 하라는 것이냐? 차라리 자결을 하고 말 것이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스페인군 장수들은 알바 공작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인지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공작님! 이미 승패가 기울었습니다. 여기서 버티어 봐야 희생만 늘어날 뿐입니다.”

알바 공작이 고집을 피우며 결사 항전을 주장하자, 부대를 지휘하는 일선 지휘관들은 다시 그를 설득했다.

“이런……. 스페인의 자랑스러운 군대가 저 오합지졸들에게 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냐!”

알바 공작은 버럭 화를 냈지만, 사실 그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의 포격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자, 3일 동안 버티던 스페인군 진영에 커다란 하얀 깃발이 올라왔다.

“와아아아!”

“서반아 놈들이 항복했다!”

스페인군이 항복하자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은 함성을 지르며 승리를 자축했고, 시민들도 모두 서로를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곧 굳게 닫혀 있던 왕궁의 문이 활짝 열렸고, 스페인군은 들고 있던 무기를 모두 내려놓고 당당하게 성안으로 들어오는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을 침통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리스본이 스페인군에게서 해방되자 리스본 시민들은 일제히 광장과 시내로 뛰쳐나와 포르투갈 군기와 조선 군기를 함께 흔들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

치열한 전투로 어수선한 리스본 시내와 왕궁 그리고 광장 등을 깨끗이 정리한 후 승리를 자축하는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의 시가행진이 벌어졌다.

번쩍번쩍 빛나는 갑주와 이균이 직접 하사한 상방검을 차고 투구를 눌러 쓴 이순이 백마를 타고 호위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앞장서자 포르투갈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순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순신 장군 만세!”

리스본의 시민들에게 이순신은 포르투갈을 스페인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준 영웅이었다.

포르투갈 시민 모두가 이순신의 존재를 알았다.

리스본 시내 곳곳에 이순신을 위한 플래카드가 나부꼈고 수십만의 시민들이 시가행진을 하는 이순신과 조선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조선군의 개선행진을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해 시민들은 담벼락에 올라서거나 건물 옥상에 올라갔고, 시가행진 대열이 지나가는 곳에 꽃잎을 한가득 뿌려 조선군을 환영했고, 해방을 축하하는 음악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저 백마를 탄 장군이 이순신인가?”

“그래 맞아! 정말 하늘에서 보낸 천군이 아닌가?”

“그럼. 신께서 포르투갈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천사일세!”

“스페인군 놈들 쌤통이구만!”

수많은 리스본 시민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를 환대하자 이순신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병졸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이 이토록 그들을 환호할 것이라고 여기지 못했는데, 그들을 영웅 대접하자 조선의 병졸들도 하늘을 날것처럼 기분이 좋았고, 일부 여인들은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고 행진하는 조선군 앞으로 달려가 키스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연합군의 승리를 자축하는 축제는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낮에는 음악회와 조선군과 스페인군의 일전을 담은 연극이 공연되었고 밤이 되면 아름다운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

조선군 막사

시끌벅적한 축제가 끝났다.

스페인군을 몰아내고 승리를 자축하는 축제도 끝났으니, 이제 공석인 포르투갈 왕을 선출할 차례였다.

“이 제독! 이제 남만국의 새로운 왕을 뽑아야 할 것인데, 누구를 왕으로 했으면 좋겠소?”

병조 참의 이항복의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흐음! 병조 참의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소?”

이순신이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진중한 표정으로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흐음. 지금으로써는 안토니우 공 하고……. 또……. 뭐”

“하하하! 무엇을 그리 머뭇거리오. 병조 참의의 장모이신 카탈리나 공작비가 있지 않소.”

넉살 좋은 이항복도 자신의 장모를 차기 왕으로 말하기가 좀 그러한지 머뭇거리자, 이순신이 재밌다는 듯 껄껄거리며 말했다.

“아니 뭐 그렇기는 하지만……. 흐음. 남만국 귀족 중에 안토니우를 추종하는 이들이 꽤 있지 않소. 그리고 장모께서는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 좀 꺼리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항복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안토니우 같은 머저리에게 남만국을 맡길 수는 없소. 그자가 왕이 되면 남만국은 또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오. 남만국의 새로운 왕은 그대의 장모이신 카탈리나 공비가 되어야 하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그렇게 되면 안토니우가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여자가 왕이 된다고 귀족들이 반발하지 않겠소?”

“왜 여자가 왕이 되면 안 되는 것이오? 영기리도 여자가 왕이 되지 않았소. 그리고 삼국시대의 신라도 여왕이 있었고. 남만국은 우리 덕분에 해방되었소. 당연히 우리에게 왕을 추천할 지분이 있다는 말이오. 포르투갈 귀족들도 반발하지 못할 것이오.”

당연히 이순신은 포르투갈에 조선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이항복의 장모인 카탈리나 공비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흐음. 뭐 그렇긴 하오. 우리 조선이 남만국을 위해 피를 흘렸는데,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으면 안 되겠지요. 흐음. 장인어른하고 장모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하시겠소.”

“그러시겠지요. 어서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시지요.”

“야 이거야 원 내 팔자가 완전 잘 풀리는구려! 남만국의 왕이 장모님이시니…….”

이항복의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팔자가 완전히 폈다고 생각이 들었다.

졸지에 포르투갈 처녀와 결혼했을 때만 해도 완전히 망했다 여겼는데 장인과 장모가 포르투갈의 지체 높은 귀족이었고 장모는 이제 포르투갈의 여왕에 등극할 예정이니, 처갓집 덕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생겼으니 얼굴에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귀족으로 구성된 포르투갈 의회가 정식으로 소집되었고, 이순신은 호위병을 이끌고 의회에 입성했다.

의회에는 안토니우 그리고 브라간사 공작과 공작비 카탈리나도 와 있었고 수백 명의 귀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순신이 의회장에 모습을 보이자 귀족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치며 그를 맞이했다.

포르투갈 귀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원로 디니스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 자리는 우리 포르투갈 제국의 새로운 왕을 선출하는 자리요. 용맹스러운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국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이 제독께서 새로운 국왕 폐하를 추천하실 것이오!”

원로 디니스의 말이 끝나자 이순신이 연단 앞으로 나아가 포르투갈 귀족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저는 많은 고민 끝에 이번 서반아와의 전쟁에 큰 공헌을 한 미구엘 1세의 친손녀 카탈리나 공작비가 남만국의 새로운 왕이 되어야 한다 여겼소!‘

이순신의 입에서 카탈리나라는 말이 나오자 안토니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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