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무적함대와의 일전 (4)
스페인 함대의 침략이 임박하자 지중해 함대의 이순신 제독은 탐망선을 보내 스페인 함대의 동선을 살피도록 하고, 함대에 전투준비 태세를 발령했다.
회의를 마친 후 이순신은 홀로 망루에 올라 진중한 표정으로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고요했다.
그러나 곧 저 바다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이 될 것이다.
‘이 전투에 남만국의 운명이 달렸거늘.’
이순신은 그의 어깨를 누르는 막중한 책임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곳에서 한 번의 전투에 포르투갈의 운명이 결정될 것인데, 상대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전설의 명장 산타크루즈 제독이 이끄는 무적함대이다.
반면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해군은 함선의 숫자에서도 밀릴 뿐만 아니라 해전다운 해전을 치러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포르투갈군의 전력도 비참할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프랑스, 영국 그리고 한창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는 네덜란드에 사자를 보내 원군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여겼는지 군수물자 등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함대를 지원할 수는 없다며 포르투갈의 요구를 매몰차게 거절해 이들과의 연합함대 구성도 물 건너갔다.
누가 보아도 승산이 없는 게임처럼 보였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아조레스 제도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포르투갈군 상당수는 이미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조선군도 아니 이순신도 두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이를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왜 하필 전하께서 이곳으로 보낸 것인지.’
이순신은 자신을 포르투갈로 보낸 이균이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그는 신립처럼 북방에서 말을 달려 야인들을 토벌하고 싶었는데, 왕은 해전 경험이 전혀 없는 그를 해군에 배속시키더니 포르투갈을 구원하라 했다.
왕이 왜 느닷없이 그를 해군에 배속시키고 또 이렇게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한 것인지 이순신은 왕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
이순신 제독의 명령에 따라 지중해 함대는 탐망선을 아조레스 제도 북쪽으로 보내 스페인 함대를 찾았다.
“듣자 하니 서반아 함대가 대단하다고 하던데, 우리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부관이 탐망선 함장 홍세돌에게 물었다.
“난들 아나! 까라면 까는 거지. 뭐 어쩌겠네. 군인이 명령에 따르라면 따르는 거지.”
홍세돌이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표정으로 부관을 바라보았다.
탐망선 함장 홍세돌도 포르투갈 병졸들에게서 스페인 함대가 어마무시하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딱히 전투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나, 이곳까지 온 이상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함장님이 제독님을 설득 좀 해보시죠?”
부관이 투덜거리며 홍세돌 함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제독님을 설득하나! 다 제독님도 방도가 있을 것이네. 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서반아 함대를 찾아보게!”
홍세돌은 투덜대는 부관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 부관의 말을 끊고 스페인 함대나 찾아보라고 다그쳤다.
여러 척의 탐망선은 어느덧 아조레스 제도에서 꽤 북쪽으로 올라가 스페인 함대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스페인 함대를 찾아 바다로 떠난 지 닷새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리고 짙은 아침 안개가 바다를 감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뭔 안개가 이렇게 꼈지?”
“그러게 말이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구먼!”
“이러다가 서반아 놈들이 불쑥 나타나는 거 아닌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여!
탐망선에 탑승한 해군들은 안개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온몸이 힘이 잔뜩 들어가 앞을 살피었다.
‘무언가 불길한데?’
탐망선 함장 홍세돌도 온몸을 감싸오는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어 인상을 잔뜩 쓰며 앞을 주시했다.
“적……. 적선이다!”
그 순간 탐망선 앞에서 거대한 함선의 무리가 나타났고, 이를 발견한 탐망선의 승조원들은 놀라 뒷걸음을 치며 고함을 질렀다.
“무엇이라!”
적선이 나타났다는 비명을 들은 홍세돌은 즉시 갑판에 나와 이를 확인했다.
“서……. 반아의 함선이옵니다!”
“드디어!”
100여 척이 넘는 선단을 이끌고 나타난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드디어 아조레스 제도 인근에 나타난 것이다.
“어서! 어서 제독님께 이 사실을 알려라. 배를 돌려라!”
산타크루즈 제독이 이끄는 스페인 함대를 발견하자 홍세돌은 즉시 배를 돌려 지중해 함대의 본거지로 향했다.
***
아조레스 제도 테르세이라 섬
수많은 조선 지중해 함대의 병졸과 포르투갈 병졸들이 일제히 늘어서 있고, 부둣가에는 출항 준비를 마친 갈레온선과 판옥선 그리고 귀선이 정박해 있다.
스페인 함대가 마침내 나타났다는 탐망선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마침내 출전을 위해 전 병력을 소집했다.
전 병력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한 포르투갈 병졸이 온몸이 밧줄로 묶인 채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페인 제국의 함대가 아조레스 제도를 치러 왔다는 소식을 들은 포르투갈 병사들은 두려움이 가득했고, 여러 명의 병졸들이 도주했는데 그중 한 병졸이 탈영을 하다 잡힌 것이다.
이순신은 비장한 표정으로 출전을 위해 서 있는 조선과 포르투갈 병졸들을 바라보았다.
“곧 서반아 함대와의 일전이 벌어질 것이다. 서반아 함대가 비록 무적의 함대라고는 하나 우리 조선과 남만국이 힘을 합치면 마땅히 서반아 함대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순신이 큰 칼을 옆에 차고 있는 병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을 바라보고 있던 병졸은 그의 신호를 보자 즉시 칼을 빼 들어 탈영하다 잡힌 포르투갈 병졸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 버렸다.
탈영병의 목이 떨어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선과 포르투갈 병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 연합군의 손에 남만국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잊지 말거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모두 적선을 분멸하여 남만국을 수호하자!
“와아아아아!”
탈영병의 목을 베고 군기를 바로 잡은 이순신이 출전을 명하자, 조선과 포르투갈 연합군 병력은 일제히 갈레온선과 판옥선에 올라탔다.
함선에 올라탄 연합군의 표정은 비장했다.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일전에 포르투갈의 운명에 걸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우, 브라간사 공작 등 포르투갈군 지휘부도 모두 함선에 탑승했다.
안토니우는 여전히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지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지만, 브라간사 공작은 스페인 함대와의 일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카탈리나 공작비와 루이사는 남편 이항복과 함께 멀리 떠나는 함선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겠지요?”
“루이사. 걱정하지 말거라! 꼭 스페인 함대를 무찌르고 무사히 돌아오실 거야!”
카탈리나가 루이사를 꼭 안으며 말했다.
“그래요! 루이사 장인 어르신과 이순신 제독이 힘을 합쳐서 꼭 스페인 함대를 격파할 것이에요. 이순신 제독은 아주 유능한 장수예요!”
이항복도 루이사를 다독이며 그녀를 달랬다.
***
“포르투갈 함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
기함에서 산타크루즈 후작이 바다를 바라보며 부관을 바라보았다.
“아직 적함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우리 함대가 두려워서 꼭꼭 숨어버렸나 보구나!”
플로레스 섬을 지나 어느덧 아조레스 제도 깊은 곳까지 함대가 들어왔음에도 얼마 전에 탐망선 한 척만을 보았을 뿐 적선의 모습의 보이지 않자, 산타크루즈 후작은 혹시 조선과 포르투갈의 연합군이 아조레스 제도를 버리고 도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어서 빨리 듣보잡 조선과 포르투갈 연합군 함대를 만나 그들을 단숨에 격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가 봅니다. 후작님이 직접 출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당장 줄행랑을 치는 것이 목숨을 보전하는 방법이지요.”
부관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함대에 승선한 스페인 해군들도 승리를 당연시 여겼다.
한 번도 패전한 적이 없는 무적의 함대이기에 듣보잡 조선군을 만나면 반나절도 안 되어 그들을 수장시키고 리스본으로 돌아가 어여쁜 계집을 옆에 끼고 젖가슴이나 만지며 승리를 만끽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연합군 함대를 찾아 나섰던 탐망선이 모습을 보였고 탐망선에서 커다란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후작님! 드디어 적선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연합군 함선을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이제야 모습을 보이는구나. 적선이 어디 있는가?”
탐망선이 연합군 함선을 발견하자, 전투를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산타크루즈 제독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생조지섬 인근 해안이라 하옵니다!”
“지금 당장 생조지섬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고 전원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존명!”
연합군 함선을 발견한 산타크루즈 후작은 생조지섬으로 함대를 이동시킬 것을 명령했고 함대는 돛의 방향을 바꾸어 생조지섬으로 방향을 틀었고, 함대에 탑승한 승조원들은 전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
“전대장님 적선입니다. 적선의 모습이…….”
생조지섬 인근 해역에서 북쪽으로 나가던 조선 지중해 함대의 판옥선은 100척이 넘는 스페인 함대와 마주쳤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 함대를 직접 보자, 판옥선에 탑승한 승조원들은 그렇게 고된 훈련을 받았음에도 겁이 덜컥 났다.
상대방 함선은 크기도 자신들의 판옥선보다 엄청나게 컸고 숫자도 얼핏 보아도 100척이 넘는 거대한 선단을 이루고 있는데, 자신들의 함선은 덩치가 작은 판옥선에다 채 10척이 되지 않는 8척에 불과하니 겁을 집어먹을 만도 했다.
“듣던 대로 그 위용이 대단하구나!”
2전투 전대 지휘관 홍남기 대좌도 순간 스페인 함대의 위용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겁먹지 말거라! 전원 전투태세를 갖추고 함포를 발포할 준비를 하거라!”
“존명!”
전투준비를 알리는 깃발이 대장선에 나부끼자, 8척의 판옥선은 즉각 적선을 향해 방향을 틀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후작님! 적선의 모습이 보입니다!”
적선의 모습이 보인다는 부관의 말을 들은 산타크루즈 후작은 즉시 망원경을 꺼내 조선 함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아니 저것이 조선의 함선이라는 말이냐?”
판옥선의 모습을 처음 본 산타크루즈 제독은 판옥선의 초라하고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에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모습을 지었다.
스페인 함대의 주력선인 갈레온선은 길이가 50미터가 넘고 50여 문의 함포를 장착하고 그 톤수가 800톤이 넘는데, 조선의 판옥선은 길이가 채 30여 미터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 톤수도 200여 톤에 불과하니 산타크루즈 제독은 도무지 조선의 판옥선의 전투선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하옵니다. 조선의 함선인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감히 저따위 함선으로 우리와 대적하겠다는 것이냐!”
산타크루즈 제독은 장난감 같은 배로 자신의 함대와 대적하겠다는 조선 함대의 무모함에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함선에 탑승한 스페인 해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해전을 치러보았지만 저렇게 초라해 보이는 함선으로 무적의 스페인 함대와 감히 대적하겠다고 덤비는 적을 본 적이 없었다.
“후작님! 아무래도 척후선인 것 같습니다. 본대는 후방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적들을 섬멸하고 본대를 친다!”
산타크루스 후작이 공격 명령을 내리자, 스페인 함대의 거대한 함선들이 일제히 조선 지중해 함대의 판옥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두려워 마라! 적함이 좀 더 접근할 때까지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