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무적함대와의 일전 (3)
전국일통을 앞에 두고 급작스럽게 죽은 오나 노부나가, 그리고 스페인의 포르투갈 합병, 조선의 여진 정벌,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이균은 포르투갈에 원군을 보내 무적함대의 스페인과 일전을 앞두고 있었고, 국경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여진족을 토벌하겠다는 핑계로 명나라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만주 일대에 군대를 파견해 명나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장거정이 조선 정후청의 공작 작업으로 제거된 후, 만력제가 파업을 선언하고 모든 정사를 거부하며 후궁하고 노닥거리고 있다고는 하나, 명의 신하들이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명은 곧 조선과 일전을 벌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조선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왜와의 관계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기에, 이균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임진년 왜군의 침략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나약한 조선군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지만, 전장이 계속 확대되는 것은 이균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지금이 조선이 동북아에 처박혀 있는 약소국에서 벗어나 서구 열강과 같이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은 강군을 가지고 있고, 명은 이제 쇠약해졌기에 충분히 명나라와 일전을 벌여도 승산 있는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은 생각보다 허약했기에, 포르투갈을 구원하러 떠난 이순신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만 잘 처리해주면 바다의 지배권을 조선으로 가져올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조선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능가하는 새로운 해상 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흐음. 이순신이 잘 해주어야 할 것인데.”
이균은 오랫동안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세계지도를 바라보았다.
***
“어서들 서두르게!”
지중해 함대의 선박 건조 책임을 진 나대용은 판옥선을 급히 만들어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급히 판옥선을 만들라는 이순신 제독의 명을 받들어 그는 조선의 병졸 중 판옥선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자들과 아조레스 제도의 주민들을 차출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판옥선을 만들었다.
다행히 목재가 풍부하고 판옥선 건조 과정을 분업화해 빠른 속도로 판옥선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전장에 판옥선을 상당수를 투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나대용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며 판옥선 건조에 열을 올리느라 무척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완성된 판옥선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자,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리고 이순신과 머리를 맞대고 탄생시킨 새로운 개념의 돌격선 귀선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흐음. 귀선이 거의 다 만들어지고 있구만!“
지중해 함대 제독 이순신이 귀선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나대용을 직접 찾아왔다.
“제독님!”
설계도면을 보며 배를 만드는 이들을 지휘하느라 여념이 없던 나대용이 이순신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대가 고생이 많구나. 판옥선을 만드는 데도 여념이 없을 것인데, 이렇게 귀선까지 만들고 있으니!”
이순신이 나대용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인부들이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거북선은 어느새 거의 다 만들어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거북선의 앞머리에는 상대방이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지금이라도 살아 움직여 승천할 것만 같은 용머리가 있었으며, 갑판 위는 나무판으로 덮어 적병이 뛰어들지 못하도록 송곳과 칼날을 잔뜩 꽂아놓았다.
얼핏 보기에도 적병이 얼씬조차 못 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비록 많은 숫자는 되지 않겠지만, 귀선도 이번 해전에 충분히 나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흐음. 아주 잘 되었구먼. 조선 땅에서 볼 줄 알았던 귀선을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귀선이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대용의 말을 들은 이순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귀선이 스페인 함대를 만나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나대용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빨리 귀선이 바다를 누비며 적선을 불태워 없애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 몇 척이나 완공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무리 못해도 3척 정도는 건조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나대용이 미소를 지으며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3척이라! 처음 만들어보는 함선이기에 한 척도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3척이라니! 자네가 없었으면 귀선은 만들지 못했을 것이네. 3척이면 충분하네!”
나대용에게 귀선을 만들라 명했지만, 설계도면과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함선이었기에 사실 이순신은 스페인과의 결전에 귀선이 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귀선이 3척이나 전장에 나설 수 있다 하니, 이순신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
포르투갈 리스본
이제 스페인 땅이 되어 버린 리스본에 거대한 갈레온선 70여 척과 80여 척의 상선이 스페인 제국의 커다란 깃발을 달고 위용을 뽐내며 정박해 있다.
함선 위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백전노장의 해군들이 여유로우면서도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부 선원들은 해적질하던 해적들도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모두 수많은 해전을 경험한 일당백의 용사들이었다.
기세 좋게 포르투갈 저항군을 무찌르고 포르투갈 제국의 왕관을 차지한 펠리페 2세도 직접 리스본 항에 나와 기세등등한 무적함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스페인이 자랑하는 무적함대가 아조레스 제도로 도망간 반란군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출전을 하게 되었다.
선원과 병력이 2만 명이 넘고, 상선까지 징발해 함선의 숫자가 150여 척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함대였다.
그리고 함대의 지휘관은 그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투르크 함선을 괴멸시킨 전설적인 영웅 산타크루스 후작이었다.
“후작! 그대가 아조레스 제도의 반란군 잔당들을 모두 소탕해줄 것이라 믿소!”
스페인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며 레판토 해전에 참전에 당시 세계최강이라 불리던 오스만 투르크의 해군을 격파하고, 1572년에는 돈 후안과 함께 튀니스를 정복한 유능한 해군 지휘관 산타크루즈 후작이 함대를 지휘하기에 펠리페 2세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폐하!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안토니우의 브라간사 공작의 목을 폐하께 바칠 것이옵니다.”
산타크루즈 후작도 승리를 자신했다.
비록 조선이라는 나라가 포르투갈을 지원하기 위해 함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세계최강이라 불리던 오스만 투르크 해군을 격파한 경험이 있는 그에게 조선 해군은 들어본 적도 없는 잡군에 불과했다.
“흐음. 그대가 통쾌한 승전보를 전해줄 것이라 믿소!”
펠리페 2세는 손수 그에게 손수 보검을 하사했고, 산타크루즈 후작은 국왕이 직접 주는 보검을 겸손해하며 받았다.
전설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지휘관과 전투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의 승무원과 병력들 그리고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함선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기에 패배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출전이었다.
“출항하라!”
기함에 올라탄 산타크루즈 후작이 출항할 것을 명령하였고, 마침내 100척이 넘는 스페인의 함선들이 삼각돛과 사각 돛을 일제히 펼치고 바람을 타며 아조레스 제도로 향했다.
***
“서반아 함대가 이제는 출발하지 않았겠습니까?”
지중해 함대를 이끄는 이순신은 지중해 함대의 지휘부와 더불어 포르투갈 저항군의 지휘부를 모두 불러들여 회의를 주재했다.
“그렇소. 이제 아조레스 제도 쪽으로 향하는 바람이 불 때요. 이제 출항을 해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요.”
브라간사 공작이 말했다.
그들도 이제 스페인 제국이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함대를 보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함대를 이끌 지휘관은 아무래도 산타크루즈 후작이 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이순신도 레판토 해전에서 맹활약해 그 명성이 높은 산타크루즈 후작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흐음. 그렇소이다. 산타크루즈 후작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지휘관이 없지요. 분명 그가 올 것이요.”
브라간사 공작이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유럽에서 그 명성이 자자한 최고의 해군 지휘관 산타크루즈 후작이 전장을 지휘할 것인데, 이순신이라는 자는 어떻게 보면 산타크루즈 앞에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해전 경험이 없는 젊디젊은 이순신이라는 자가 늙은 여우 같은 산타크루즈 후작을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순신이 진중하고, 제법 지장의 면모를 갖추고 훈련도 제대로 안 된 포르투갈군과 의용군을 제대로 훈련시켜 쓸만한 병졸로 만든 것은 사실이나, 스페인 함대의 산타크루즈 후작에 비하면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서반아 해군이 어떤 전술을 주로 사용합니까?”
이순신이 다시 브라간사 공작을 바라보았다.
“화포도 사용하기는 하지만, 적선을 들이받아 함선에 올라타 난전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래요?”
함선에 화포를 충분히 장착할 수 있는 스페인 해군이 왜놈들이 즐겨 쓰는 전략을 즐겨 사용한다는 말을 들은 이순신은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페인 해군이 화포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면, 함선이 수는 그리 많지 않으나 그들을 둘러쌀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화포로 집중타격할 수만 있다면 적선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은 다시 책상에 있는 아조레스 제도의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대좌! 파이알 섬, 피코 섬 일대의 지형과 바다의 흐름을 잘 살펴보았소?”
이순신이 제3전투 전대장 이억기 대좌를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세 개의 섬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고 특히 파이알 섬과 피고 섬 사이가 극히 좁아 여러 대의 함선이 한꺼번에 진입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섬 사이에 암초 같은 것은 없어 보였고, 바닷물은 그리 빠르지 않았습니다.”
이순신이 이억기 대좌의 보고를 들으며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중좌 판옥선은 얼마나 출전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족히 50여 척은 출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선은?”
“귀선은 3척 정도가 가능합니다!”
“함선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적선은 100여 척이 넘는 것으로 아는데, 게다가 판옥선이라는 배는 스페인의 갈레온선에 비해 선체가 작은데, 적선을 감당할 수 있겠소?”
브라간사 공작이 조선이 급히 만든 판옥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판옥선이 갈레온선에 비해 선체가 작으니 그런 의문을 충분히 품을 만했다.
“흐음. 판옥선이 갈레온선에 비해 선체가 작기는 하오. 그러나 함선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 판옥선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판옥선이 갈레온선에 비해 작은 배이기는 하나 제도 연안에서는 충분히 전투용으로 쓸 수 있는 함선입니다!”
브라간사 공작의 걱정이 무엇인지 이순신도 잘 알고 있었다.
갈레온선은 그 함선의 크기가 크고, 또 높이도 판옥선보다 높아, 일대일로 갤리온과 붙는다면 판옥선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함선이 부족한 상황이기에 판옥선이라도 건조해 스페인 함대와 대적할 수밖에 없기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흐음. 이제 서반아의 함대가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오. 비록 적선이 많다고는 하나 우리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이 힘을 합쳐 맞서 싸우면 능히 적선을 분멸할 수 있을 것이오. 박순철 대좌는 탐망선을 띄워 적선의 위치를 파악할 것이며, 나머지 함대는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시오!”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