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무적함대와의 일전 (2)
이균은 박진우 중좌가 발견했다는 섬이 하와이라는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으나, 이를 내색하지 않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박진우 중좌를 바라보았다.
“흐음. 태평양에 조선의 땅이 생긴다니 설레는구려! 서반아나 남만국은 신대륙을 비롯해 곳곳에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지 않소. 조선도 이제 마땅히 식민지를 만들 필요성이 있소!”
“그러하옵니다. 전하! 저희가 발견한 섬이 저희가 개척한 태평양 항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군사기지로 활용할 수 있고, 또 기후가 덥고 습하여 서반아나 남만국처럼 이곳에 사탕수수도 경작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대의 생각이 맞소. 아주 전략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섬인 것 같소. 그대가 아주 큰일을 했구려! 그래 섬의 이름은 무엇으로 정했는가?”
이균의 생각도 박진우 중좌의 그것과 같았다.
하와이는 조선이 태평양에 진출하는 데 있어 큰 교두보가 될 것이다.
“섬이 탐라도처럼 아름다워 우선 신탐라도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이 적당한 것 같구려.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가보고 싶구려. 신탐라도를 그대가 처음 발견했으니 내 그대를 신탐라도 총독으로 임명하겠소. 필요한 돈은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니 그대가 신탐라도를 개척하도록 하시오!”
“전하 성심을 다해 신탐라도를 개척하겠나이다!”
이균은 하와이를 처음 발견한 박진우 중좌를 초대 총독으로 임명하고 그곳을 조선 최초의 식민지로 삼아 적극적으로 개척하기로 했다.
하와이는 전략적으로 조선에게 중요한 섬이 될 것이다.
조선이 새롭게 개척한 태평양 항로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항로를 이동하는 선박들의 중간기지 역할을 하며 조선과 신대륙을 오고 가는 무역선과 함선에 보급품을 공급할 것이고, 또 군사기지 역할을 하며 조선 해군이 태평양에서 제해권을 행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조선 최초의 식민지를 하와이에 만드는 것이 결정되자, 조선 8도 곳곳에 하와이로 이주할 이주민을 모집하는 방이 붙었다.
“신탐라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우리 조선이 어디냐. 태평양인가? 아무튼 먼바다에 나갔다가 큰 섬을 발견했다는구만. 그래서 그 섬을 개척할 이주민을 모집한다는 거 아닌가?”
하와이로 떠날 이주민을 모집한다는 방이 붙자, 백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려! 그런디! 조선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아닌가? 가기도 전에 풍랑을 만나서 수장될 수도 있고…….”
“그래도 섬으로 이주하면 땅도 주고 정착비도 주고 한다는데……. 한번 가볼 만할 것 같은데.”
“그려 한번 가볼 만하지 않겠는가? 거기서 뭣이냐 사탕수수를 기를 거라고 하던데, 엄청나게 비싸게 팔린다고 하지 않던가! 잘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여!”
하와이를 식민지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이주민이 필요했기에 이균은 하와이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사탕수수 등을 경작할 수 있는 땅과 정착을 위한 은자를 넉넉하게 주겠다며 조선 백성들을 유혹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땅으로 떠나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나, 그 두려움을 이겨내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이미 조선 땅에는 서반아와 남만국의 용기 있는 개척자들이 신대륙을 발견해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부를 만들고 있다는 전설 같은 소문이 퍼져나갔기에 조선에 별다른 기반이 없는 이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선뜻 하와이로 이주하겠고 나섰다.
다행히 하와이로 떠나겠다는 이주민이 줄을 서자, 하와이 초대 총독 박진우는 갈레온선 함대 약 10여 척에 이주민과 해군, 그리고 식량과 섬을 개척할 물자를 가득 싣고 부산포에서 하와이로 떠났다.
***
나가사키항
부산포에서 출발한 고려인삼의 상선 10여 척이 여정을 마치고 나가사키항에 입항해 배에 가득 실려 있는 막사발, 생사, 청화백자 그리고 인삼을 분주하게 옮기는 하역작업을 하고 있었다.
조선에 상선이 오자, 소식을 들은 일본 상인들이 부둣가로 달려 나와 하역작업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의 상단이 가지고 온 물건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왜에 팔리고 있기에, 물건을 빨리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통역일 을 하다가 고려인삼을 세우고 왜와 교역하며 인삼, 청화백자를 유통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객주 김태수는 갈레온선까지 구입해 왜를 넘어 유구국과도 교류하며 그 상권을 넓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상단의 주된 교역의 대상은 여전히 왜로 상단은 이번에도 왜놈들이 좋아하는 막사발, 인삼, 청화백자 등을 배에 가득 싣고 나가사키에 정박한 것이다.
“객주 어르신 그런데 뭔가 분위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나가사키항은 여전히 많은 갈레온선이 정박해 있고, 수많은 상인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같았으나, 무엇인가 예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항만 곳곳에 경비병들이 조총이나 창을 들고 경계를 삼엄하게 펼치고 있었고, 약 백여 명에 이르는 소수의 부대들이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이동하기도 했다.
“흐음. 그러하구만. 예전 같은 분위기가 아닌데. 변란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객주 김태수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나가사키항은 예전처럼 번잡했으나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고, 항만에 있는 왜군 병졸들의 검문검색도 더 강화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일단 상단을 가지고 온 물건을 먼저 풀기로 했다.
조선에서 온 상단이 왜에서 인기가 있는 막사발, 청화백자, 생사, 인삼을 가득 풀자 이를 선주문한 왜의 상인뿐만 아니라 남는 물품이라도 구입하기 위해 다른 상인들이 금방 모여들어 순식간에 물건을 실어갔다.
자신들이 가져온 물품을 비싼 값으로 왜의 상인들이 사가자 김태수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번 교역에서도 남는 물품 없이 모두 팔아 큰 이문을 남기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건이 아주 좋습니다. 인삼을 더 구해줄 수 있겠소?”
조선에서 온 인삼의 품질에 만족한 왜 상인이 보다 많은 인삼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하하.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소이다. 걱정하지 말구려!”
객주 김태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요즘 왜에서 인삼의 인기가 아주 많아요. 구해달라고 아주 난리입니다.”
김태수가 인삼을 더 구해줄 수 있다고 하자, 왜 상인은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왜에 우연히 전파된 인삼은 왜인들에게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왜인들은 조선의 인삼이 엄청난 인기에 팔리자, 스스로 인삼을 키워보기도 했지만, 토양과 풍토가 조선과 달라서인지 인삼은 잘 자라지 못했고 그럴수록 조선의 인삼은 더욱 귀한 약재로 대접받으며 왜에 도착하자마자 팔려나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소? 항에 왜이리 군졸들이 많은 것이요?”
나가사키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김태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왜 상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김태수에게 다가가 무엇인가 귓속말을 했다.
“그게 사실이오? 직전신장이?”
왜 상인의 귓속말을 들은 김태수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오아리국의 오다노부나가께서 부하 장수의 배신으로 비명횡사했소. 참 안된 일이오. 일통을 앞에 두고 그런 일을 당했으니.”
왜의 상인이 노부나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전국일통을 앞두고 노부나가가 부하 장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왜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으나, 김태수도 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김태수는 그제야 나가사키항의 경비가 강화되고 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알 것 같았다.
아자이, 아사쿠라, 다케다 등 전국을 화려하게 수놓은 가문들을 차례차례 공략해 굴복시켜 일통을 앞에 두고 있던 야망가 노부나가는 모리 가문을 치기 위해 혼노지에 머물던 중 수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그런 일이!”
“그럼 직전신장의 영지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뭐 그 아드님이 물려받겠지요. 그런데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노부나가 님이 쓰러지셨으니, 그 자리를 노리는 이들이 많겠지요. 노부나가 님 덕분에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나 했더니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게 생겼어요.”
백 년이 넘도록 계속된 전쟁이 지겨운 듯 왜의 상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럼 교역에도 영향이 있겠소?”
김태수는 인삼과 막사발 등을 왜에 팔아 큰 부자가 된 김태수는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왜와의 무역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비록 왜가 조선과 교류하고 있으나, 왜의 실력자 노부나가가 갑자기 죽어 버렸으니, 조선과 교류하던 왜의 정책이 갑자기 바뀌어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뭐 큰일이야 있겠소. 다 필요한 물건인데, 막사발이나 인삼은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니 그런 걱정일랑 접어 두고, 다음에 올 때에는 더 많은 인삼을 꼭 부탁하오.”
“알겠소!”
왜의 상인은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김태수를 안심시켰으나, 앞으로 왜의 정세가 어찌 변할지 김태수는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가시카항에 머무르며 왜의 동태를 살폈다.
***
조선 한성
이균도 이미 정후청장 김명원을 통해 노부나가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개입하지 않았더니, 결국 노부나가의 운명이 바뀌지 않았구나!’
이균은 당연히 노부나가가 부하 장수에 의해 살해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노부나가와의 인연으로 포르투갈 등 유럽과 교역하며 청화백자 등을 팔 수 있었기에, 그를 도와 그의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이균 덕분에 목숨을 건진 과격한 노부나가가 히데요시보다 더 무모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왜의 역사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전하! 직전신장의 죽음으로 왜가 당분간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김명원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흐음. 일통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리 허무하게 세상을 뜨다니, 직전신장이 참 안타깝구려!”
이균은 모르는 척 이항복이 유럽에 전파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흐음. 직전신장의 아들이 있지 않소. 아들이 직전신장이 이룩한 것을 잘 지킬 수 있겠소?”
“전하! 저희가 아는 바에 의하면 불행히도 직전진장의 아들은 직전신장의 대범함과 영민함을 물려받지 못한 듯합니다. 아마도 영지를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옵니다.”
김명원은 이미 정보원들을 통해 노부나가의 아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흐음. 그렇구려. 그럼 누가 직전신장의 뒤를 이어 왜를 일통할 것 같소?”
이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단정하기는 어렵사오나, 직전신장의 수하 중에 풍신수길이라는 자가 아주 교활하며 야망이 크다 들었습니다. 그자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고, 또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자도 제법 큰 세력을 유지하며 기회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법인걸!’
김명원이 왜의 형세를 제법 상세히 파악하고 있자, 이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후청장 김명원은 이미 왜에 수많은 정후청 요원들을 파견해 왜의 정세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흐음. 풍신수길과 덕천가강이라! 왜국의 정세가 요동치겠구려! 왜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주세요!”
“알겠사옵니다. 전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 장수의 배신으로 죽었다는 사실은 곧 각 대신에게도 알려졌고,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대신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왜의 정세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