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74화 (74/202)

74화. 무적함대와의 일전 (1)

조선의 지중해 함대가 포르투갈을 구원하기 위해 아조레스 제도에 도착하자 절망에 빠져 있던 포르투갈 저항군은 활력을 되찾았다.

게다가 조선이 생각보다 많이 병력과 함선을 보냈기에 한번 해볼 만하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브라간사 공작을 비롯한 저항군 수뇌부도 섬에서 버틸 수 있는 요새를 구축하고 무엇인가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안토니우는 여전히 비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여보 사위를 참 잘 둔 것 같소. 이렇게 대군을 이끌고 올 줄이야.”

브라간사 공작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아내 카탈리나를 바라보았다.

브라간사 공작은 요즘 사위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항복이 사랑하는 막내딸을 가로채었을 때는 그가 꼴도 보기 싫었는데 어느새 브라간사 공작은 틈만 나면 사위 이항복이 조선왕의 총애를 받는 조선의 엘리트 관료로 조선의 병권을 담당하는 촉망받는 젊은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사위 사랑은 장모가 아닌 장인이 된 꼴이었다.

“사위를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시더니.”

공작비 카탈리나는 이항복에 대한 태도가 돌변한 브라간사 공작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카탈리나도 사랑스러운 막내딸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젊은이와 혼인을 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으나, 이제 이항복이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다.

“아니 그거야. 뭐 그때는 사위가 우리 사랑스러운 루이사를 도적질했으니…….”

브라간사 공작이 말을 얼버무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사기가 급상승한 저항군과 달리 아조레스 제도에 도착해 포르투갈군의 상황을 파악한 이순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전력이 형편없는 것을 보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화포와 화약은 넉넉한 편이나 병장기는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정규병력은 천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훈련을 받았다는 정규병력들도 이순신이 보기에는 전투경험이 없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이런 포르투갈을 병력을 가지고 무적의 스페인 함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흐음 남만국의 군사력이 생각보다 형편없는 수준인 것 같소.”

이순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사실 남만국 병졸들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옵니다. 오로지 저희 병졸들만으로 서반아와 맞서 싸워야 할 것이옵니다.”

부제독 이철윤 소장도 남만국 군대의 수준이 생각보다 형편없는 것을 보고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제독님, 듣자 하니 서반아의 함대가 유럽에서 최강이라 하던데 우리 함대만으로 서반아의 함대와 맞설 수 있겠습니까?”

1전투 전대 지휘관 박순철 대좌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지중해 함대 수뇌부들 사이에서는 조선군만으로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지중해 함대와 맞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척의 갈레온선만으로는 무적함대라는 스페인 함대를 맞서 결전하는 것이 버거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흐음. 어찌하겠소. 남만국은 우리를 믿고 의지하고 있소. 그런 남만국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소. 우리 함대의 병력이 2만이 넘소. 잘 대비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소.”

이순신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독님 그럼 결전은 어디에서 하실 생각이신지?”

“흐음. 어차피 서반아 왕의 귀에도 우리 조선 함대가 아조레스 제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요. 머지않아 서반아 함대가 이곳으로 올 것이요. 전장은 아조레스 제도가 될 것이요.”

“제독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제독 이철윤 소장이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흐음. 나 대위 이곳에서 판옥선의 건조가 가능하겠는가?”

이순신이 멀찌감치 앉아 수뇌부들의 심각한 회의에도 멍하니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나대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독님 판옥선이라 하셨습니까?”

갑자기 이순신이 그에게 말을 걸자 나대용이 당황해하며 반문했다.

“그러하네.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해전이 될 것이네. 그런데 함선이 절대 부족하니 판옥선이라도 만들어 적들과 대적해야 할 것이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섬을 둘러보니 선박을 만들 수 있는 목재들이 꽤 있습니다. 일을 분업해서 섬 주민들을 동원해 작업하면 빠른 속도로 만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나대용이 미소를 지으며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흐음. 다행이구만. 서반아도 함대를 꾸려 전쟁 출전을 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기에 당장 출전하기는 힘들 것일세. 내 자네를 중좌로 임명해 함선 건조에 대한 전권을 부여할 것이니, 한번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보게.”

“혼신의 힘을 다해 판옥선을 만들어보겠습니다!”

“흐음. 그리고 귀선도 한번 만들어 볼 수 있으면 만들어보게.”

“귀선이요? 제독님 좋으신 생각이옵니다. 서반아 놈들이 귀선을 보면 아마 혼비백산할 것이옵니다.”

나대용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섬 주민들 중에 함선에 올라탈 선원들을 모집해 그들을 훈련시키도록 하고 포르투갈 병졸들도 강하게 훈련시키시오. 서반아와의 일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제독님!”

***

이순신이 상 미구엘 섬에서 가장 높은 해안가 절벽에 올라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아조레스 제도를 바라보았다.

“흐음. 이곳이 전장이 되겠구나!”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과연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이순신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물살이 제법 빠르구나. 아조레스 제도에 섬이 9개가 몰려 있다고 했느냐?”

바다를 응시하던 이순신이 부관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제독님! 가장 큰 섬인 상 미구엘 섬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섬 9개가 몰려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항해 왕자 엔히크 수하였던 해군 제독이 발견한 아조레스 제도는 발견 당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포르투갈 영토에 편입된 이후 본토에서 건너온 꽤 많은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조레스 제도는 주도인 상 미구엘 섬이 있는 동부 군도, 파이알 섬 등이 있는 중부 군도, 플로레스 섬 등이 있는 북서부 군도로 이루어졌다.

“섬이 무척 가파르고 험악해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거늘!”

“그러하옵니다. 섬 전체가 난공불락의 성과 같사옵니다. 서반아군이 쉽게 상륙을 시도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섬들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화산섬이라 그런지 바위와 자갈로 된 해안선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 외적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 부를만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도 바다는 지배할 수 있을지언정 섬에 쉽게 상륙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파른 절벽을 요새화해 조선군이 화포와 조총으로 강력한 화망을 구성해 상륙을 시도하는 스페인군을 몰아세운다면 스페인군도 큰 손실을 볼 것이다.

“흐음. 그렇다고 이 섬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서반아 함대와 결전을 벌여야 할 것인데…….”

매서운 바람이 이순신의 뺨을 때렸다.

아조레스 제도의 섬들의 천혜의 요새와 같다 하여 섬에만 있다면 스페인 함대는 바라를 둘러싸고 조선군과 포르투갈군을 굶겨 죽일 것이다.

리스본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건 바다로 나아가 스페인 함대를 격파해야만 했다.

이순신은 아조레스 제도의 섬들이 상세히 표시된 지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스페인의 함대는 분명 규모가 엄청날 것이다.

조선이 비록 판옥선을 급조하고는 있지만, 함선의 숫자에서 스페인에게 밀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스페인의 함대와 맞서는 것은 어쩌면 자살행위와 같은 것일 수 있다.

지도를 한참 보던 이순신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세 개의 섬이 서로 옹기종기 몰려 있구나!”

이순신의 눈은 파이알 섬, 생 조지섬, 피코섬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파이알 섬, 조지섬, 피코섬은 서로 가까운 곳에 몰려 있었고 특히 파이알 섬과 피코섬 사이의 거리는 무척이나 좁아 보였다.

섬 사이의 틈이 너무 좁아 규모가 큰 선단이 한 번에 섬 사이를 통과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스페인 함대가 이곳을 통과한다면 일렬로 들어갈 수밖에 없겠구나!”

이순신은 무엇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망원경을 꺼내 먼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흐음. 지금 당장 파이알 섬 등이 있는 중부 군도에 함선을 보내 군도의 지형, 물살의 흐름 등을 상세히 파악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제독님!”

이순신이 왜 중부 군도의 지형과 물살을 파악하라는지 그 의도를 알지는 못했지만, 지중해 함대는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함선을 중부 군도에 보내 섬의 지형, 해류의 흐름 등 모든 지형을 상세히 기록해 이순신에게 보고했다.

한편 나대용은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판옥선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조레스 제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해 동원령을 내려 판옥선을 만들 목재를 구하고, 목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목수들, 판옥선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해군의 병졸들을 수소문해 일을 분담시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판옥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설계도면 만으로만 존재하던 귀선도 서서히 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

“지금 이것밖에 못 하는 겁니까?”

조선 최고의 정예부대 용호군 전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포르투갈 병졸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강훈련에 포르투갈 병졸들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지옥의 극기주 훈련과 조선 8도를 횡단하는 행군을 견딘 용호군 전사들은 그들이 보기에 가볍기만 한 훈련조차 힘들어하는 포르투갈 병졸들을 보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강훈련을 당하는 포르투갈 병졸들은 조교 역할을 하는 용호군 전사들을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저 조선놈들은 귀신인가? 사람인가?”

“그러게 말이야. 아주 우리를 죽일 심산이구만!”

“지금 누가 떠들라고 했습니까? 죽고 싶습니까?”

포르투갈 병졸들이 훈련 중 잡담을 하는 것이 용호군 전사의 독사 같은 눈에 들어왔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조선군은 강도 높게 포르투갈 정규군과 의용군에 지원한 주민들을 훈련 시켰고, 강도 높은 훈련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그들은 어느새 훈련을 이겨내고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예군이 되어가고 있었다.

***

조선 한양

이균은 집무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세계지도를 바라보았다.

그가 왕이 된 후 명만 떠받들며 문을 걸어 잠그고 은둔해 있던 조선의 문호를 열고 도자기를 팔아 이전의 조선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으나, 여전히 세계지도에 표시된 조선은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이제 조선은 새로운 길을 갈 것이다. 동북아의 반도에 웅크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이균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도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전하! 박진우 중좌가 왔습니다!”

“들라 하여라!”

“전하!”

태평양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다가 풍랑을 만나 낙오되어 바다를 떠돌다 하와이를 발견한 박진우 중좌가 무사히 함선을 이끌고 조선으로 돌아와 이균을 알현했다.

“고생이 많았소.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던데. 바다는 항상 위험한 곳이지요!”

“전하의 은덕 덕분에 이렇게 다시 조선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흐음. 그래요. 정말 다행이오. 그런데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요?”

“그러하옵니다. 풍랑을 만나 선단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뜻밖의 섬을 발견하였나이다! 남만국, 서반아도 발견하지 못한 지도에 없는 섬이었습니다!”

“하하하. 지도에 없는 섬이라. 그렇다면 그 섬은 조선의 땅이 되겠구나!”

“그러하옵니다. 함대가 발견한 섬은 전하의 것이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