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포르투갈의 운명 (4)
기함 광개토대왕함을 선두로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지중해 함대는 아프리카를 돌아 빠른 속도로 리스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이미 리스본이 스페인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만국이 무사한지 모르겠소”
이순신이 광개토대왕함 갑판에 올라 먼바다를 바라보며 부제독 이철윤 소장을 바라보았다.
“남만국은 거대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 아닙니까! 서반아가 강하다고는 하나, 남만국이 잘 버티고 있을 것입니다.”
부제독 이철윤은 비록 남만국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는 하나 남만국 또한 서반아와 함께 바다를 지배하는 강국이기에 서반아가 섣부른 침략은 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흐음.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는 포르투갈은 명나라에 버금가는 강국이기에 설령 스페인이 공격해온다고 해도 지중해 함대가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찌 되었건 이순신은 지중해 함대가 리스본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남만국이 가까워지고 있소.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제독님!”
리스본이 가까워지자 이순신은 만일의 사태를 위해 함대에게 전투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제독님! 포르투갈 함선이옵니다!”
그런데 지중해 함대가 전투태세를 갖추려는 순간 포르투갈 깃발을 단 작은 함선 한 대가 지중해 함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포르투갈 함선이 우리를 마중하러 온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 함선이 지중해 함대를 마중을 나온 것이라 여기고 함대는 포르투갈 함선을 기함 광개토대왕함 쪽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함선에서 작은 보트가 내려졌고 함대의 승조원과 함장이 광개토대왕함에 올라탔다.
“제독! 리스본이 스페인군에 함락당했습니다!”
포르투갈 해군은 이순신에게 리스본이 알바 공작이 이끄는 스페인군에 함락당한 사실을 알렸다.
“무엇이라! 그게 사실인가?”
“그러하옵니다. 스페인의 알바 공작이 3만 대군을 이끌고 리스본을 침략해 안토니우 공이 이끄는 저항군이 맞서 싸웠으나 결국 리스본이 스페인군에 함락당했습니다!”
“아니 포르투갈처럼 큰 제국이 어찌 3만의 군대에 도성이 함락당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순신은 거대한 제국으로 알고 있던 포르투갈의 도성이 고작 3만의 스페인군에 점령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저……. 전 국왕께서 원정에서 주력군을 모두 잃었기에 도성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족들도 모두 스페인 국왕에게 매수되어…….”
‘남만국이 그렇게 허약한 나라라는 것인가?’
이순신은 포르투갈을 구원하기 위해 출정을 할 때만 해도 포르투갈이 스페인과 함께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강국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 군대도 강력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도성조차 방어할 병력이 없어 용병이나 노예들을 끌어모아 스페인 정규군과 맞서 싸웠다는 말을 듣고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서반아 국왕이 결국 남만국 왕위를 계승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포르투갈 의회의 승인을 받아 스페인 국왕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흐음. 이런 낭패가 있나. 한발 늦었구나.’
이순신은 난감했다.
포르투갈을 구원하기 위해 먼바다를 돌아 함대를 이끌고 이곳까지 온 것인데, 스페인이 이미 포르투갈을 점령해 펠리페 2세가 왕위까지 계승했다고 하니 그의 함대가 할 일이 없어져 버린 셈이 되었다.
함대에 있던 다른 무관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함대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 그럼 브라간사 공작님은 어찌 된 것이요?”
리스본이 스페인군에 의해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항복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장인의 안부를 물었다.
“브라간사 공작과 안토니우 공께서는 패잔병과 리스본 시민들을 이끌고 아조레스 제도로 피신하였습니다.”
“장모님과 루이사도 같이 간 것이요?”
“그러하옵니다. 모두 무탈하십니다!”
‘후유 다행이다!’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자식이 무사히 피신했다고 하자, 이항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조레스 제도? 그곳이 어디에 있는가?”
이순신이 포르투갈 함선의 함장을 바라보았다.
“리스본에서 약 1,000여 킬로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브라간사 공작님께서 조선 함대를 만나면 함대를 그곳으로 이끌라 명하셨습니다!”
이순신은 그나마 저항군이 포르투갈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피신했다는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저항군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나 스페인에 반기를 든 저항군이 여전히 존재하고, 비록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군도에 그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는 하나, 그곳에서 충분히 반전의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흐음. 그대가 길을 안내하도록 하라! 함대는 즉시 아조레스 제도를 향해 기수를 돌리도록!”
“존명!”
리스본이 이미 스페인군 수중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급히 지중해 함대의 기수를 돌려 저항군이 피신한 아조레스 제도를 향해 갔다.
광개토대왕함 등 20여 척의 갈레온선이 일제히 돛의 방향을 틀어 파도를 가르며 전속력으로 항진했다.
***
군기감 무기 개발실
“점심 드시러 가시지요?”
“아……. 아니네. 난 좀 더 생각 좀 해봐야겠네.”
“좀 쉬시면서 연구를 하셔야지요. 그러다가 탈이 나십니다요.”
군기감 청장 나영실이 식사도 거르고 둥그렇게 생긴 철환을 만지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자, 연구원들이 그를 걱정하며 말했다.
“하하하! 자네들이 내 성격을 잘 알지 않는가. 식사는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자네들은 어서 가서 식사하게. 이 화포장 자네도 가보게.”
“아닙니다. 저도 좀 생각이 정리가 되면 청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겠습니다.”
“아이고 참 내. 청장님하고 이 화포장은 못 말린다니까. 그럼 저희들은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맛있게들 먹게!”
연구원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떠난 후 연구실에는 군기감을 책임지는 나영실과 화포장 이장손만이 남아 심각한 표정으로 설계도와 둥근 철환을 마주 보고 있었다.
“흐음. 이제 다 된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목곡에다가 도화선을 감아 넣으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폭발 시간을 조절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영실이 신이 난 표정으로 이장손을 보았다.
“그러하옵니다. 도화선을 목곡에 많이 감아 넣으면 폭발 시간을 더 늦출 수 있고, 적게 감아 넣으면 폭발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요. 상황에 맞게 폭발 시간을 마음껏 조절할 수 있으니 전장에서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요!”
“하하하! 그래 이놈이 폭발하면 아주 적들이 기겁을 하겠구만!”
나영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그란 공 같은 물체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폭발해 그 안에 들어있던 철 조각이 사방으로 튈 것이니, 적들이 아주 혼비백산을 할 것입니다요!”
화포장 이장손도 신이 나서 말했다.
어느 날 화포장 이장손이 전장에서 적들이 혼비백산할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며 나영실을 찾아왔다.
이장손이 다소 엉뚱한 면은 있으나, 영특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영실은 이장손이 생각했다는 신무기에 대해 흥미를 보였다.
이장손은 나영실에게 둥근 나무 그릇 안에 얇은 철 조각을 가득 채우고, 도화선을 감은 목곡을 넣어 나무 그릇 안의 뚜껑을 닫은 후 무쇠로 감싼 후 이를 화포를 통해 발사하거나 심지에 불을 붙인 후 적진에 굴려 넣으면 적진 한가운데에서 원하는 시간에 큰 소리를 내며 폭발해 적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장손의 설명을 들은 나영실은 그의 아이디가 충분히 쓸만하다고 여겼다.
둥근 나무 그릇 안에 탄체와 쇳조각을 넣고 도화선을 감은 목공을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아 넣으면 도화선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에 불이 붙으면 뚜껑이 어디에 있는지도 구별할 수 없어 도화선이 내부에서 타들어 가기 때문에 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대나무 통 안에 넣은 뒤 탄체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아 도화선 끝부분만 밖으로 나오게 하면 안에 있는 도화선이 얼마나 긴지 알 도리가 없다. 더구나 적진에 떨어질 시점이면 탄체 바깥 부분의 도화선은 다 타서 없어졌을 것이기에 어디가 뚜껑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니 한 번 심지에 불을 붙이고 이게 내부로 타들어 가면 이제 이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이 시절의 전투는 보병들이 밀집대형을 이루어 전투하였고, 포탄의 파편을 엄폐한다는 전략도 없었기에, 밀집대형을 이루고 있는 적진에 이장손이 새로 개발하려 한 포탄이 여러 발 떨어지면 적진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나영실은 이장손이 개발하려는 새로운 개념의 포탄이 개발만 되면 전장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직감하여 이장손이 아이디어를 낸 포탄을 함께 만들기로 하고, 오랜 시간 동안 군기감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에 매진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제 다 되었구만. 이 화포장 그동안 고생했네!”
마침내 설계도에 따라 새로운 개념의 포탄이 완성되었다.
“청장님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어서 시험 발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전용 발사대인 대완구나 중완구에서 발사를 하면 넉넉히 400보는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요.”
“하하하! 나도 이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구만. 당장 시험 발사를 해보세!”
나영실과 화포장 이장손은 연구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즉시 새롭게 개발한 포탄을 발사하기 위해 시험 발사장으로 향했다.
군기감 연구원들이 모두 모여 긴장된 표정으로 발사장에 마련된 대완구를 바라보았다.
나영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병졸이 조심스럽게 개발된 포탄을 대완구에 장전했다.
포탄이 대완구에 장전이 되자, 나영실이 침을 꼴깍 삼기며 입을 열었다.
“방포하라!”
나영실이 포탄을 방포하라 명하자, 커다란 빨간 깃발을 들고 있던 병졸이 깃발을 흔들었고, 깃발을 본 병졸이 대완구에 불을 붙였고, 곧 커다란 폭음과 함께 포탄이 발사되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약 400보 앞에 떨어졌다.
떨어진 포탄은 그대로 땅에 박혀 있을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패한 것인가?’
포탄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화포장 이장손이 긴장이 되는지 고개를 푹 수그렸고, 다른 연구원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수군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와 같은 폭발 소리가 들리더니, 포탄 안에 있던 쇳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커다란 흙 폭풍이 일어났다.
포탄의 엄청난 위력에 연구원들은 혼비백산했고, 나영실과 이장손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흙먼지가 날아가자, 포탄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여러 개의 허수아비는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목이 날아간 허수아비, 철 조각이 온몸에 박혀 흙 폭풍에 날아간 허수아비 등 온전한 허수아비가 하나도 없었다.
“성……. 성공입니다.”
“와아아아아!”
시험 발사가 성공하자 연구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고, 나영실과 이장손도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 화포장 정말 위력이 대단하구만!”
“저도 이렇게 화력이 강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우리 군에 큰 힘이 될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이놈의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 것 같은데…….”
“청장님께서 생각하신 이름이라도 있으신지.”
“흐음. 이놈이 폭발할 때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를 내니 비격진천뢰가 어떻겠는가?”
“이놈에게 아주 적합한 이름인 것 같습니다!”
이장손은 나영실이 명명한 비격진천뢰라는 이름이 만족스러운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