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해외파병 (2)
보트를 타고 섬에 도착한 장보고함의 선원들은 응양군 갑사들과 마찬가지로 난생 처음 보는 섬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었다.
“꼭 천국 같습니다!”
선원들은 풍랑에 자신들이 죽어 천국에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섬의 절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일부 선원들은 갈증이 나는지 야자수 열매를 따 목을 축였고, 또 다른 선원들은 바나나를 따 허겁지겁 삼키기도 했다.
박진우 중좌도 아름다운 섬의 풍광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지도에는 없는 섬 같은데!”
“그렇습니다. 저희가 가진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섬입니다. 섬의 규모도 꽤 큰 것 같습니다!”
선발대를 이끌고 섬에 먼저 상륙했던 이용철 대위가 말했다.
“식수는 있는가?”
섬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식수가 먼저 확보되어야 하기에 박진우 중좌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용철 대위를 바라보았다.
“섬에 식수는 충분합니다. 저희가 이미 식수가 있는 곳을 확보해놓았습니다.”
“흐음. 다행이구만!”
이용철 대위는 이미 탐사대를 이끌고 섬 곳곳을 탐색해 식수가 있는 곳을 확보했다.
식수가 있다는 말을 들은 박진우 중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도에도 없고, 그렇다면 우리 조선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하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이런 큰 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천우신조이옵니다!”
“흐음. 그러하구만! 이런 곳에 이런 섬이 있을 줄이야! 아무튼, 우리가 섬을 발견했으니, 국제법상 우리가 이 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하옵니다. 서반아나 남만국도 이 섬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원주민이 있을 수 있으나, 저희가 이 섬의 영유권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표류하다 발견한 섬은 하와이였다.
그들은 하와이에 제도 중 가장 큰 섬인 하와이섬에 난생처음 상륙한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 제국조차 아직 발견하지 못하여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은 태평양에 있는 아름다운 섬 하와이를 조선이 처음 발견한 것이다.
“섬이 아름다운 것이 탐라도와 같으니 섬의 이름을 우선 신탐라도라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좋으신 생각입니다!”
박진우 중좌는 그들이 발견선 섬을 우선 신탐라도라 정하고 야영하기 좋은 곳을 찾아 목책을 세우고 선원들과 군인들을 주둔시킨 후 조선군 가장 높은 망루에 조선군 군영기를 높이 달았다.
주둔지를 정돈한 후 응양군 소속 갑사들은 섬 곳곳을 둘러보며 섬의 지형을 지도로 그려 넣었고, 또 근처에 다른 섬들도 있는지 세밀히 탐색했고 곧 자신들이 상륙한 섬 이외에 곳곳에 약 8개의 큰 섬이 있고 큰 섬 이외에 작은 섬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원들은 적당한 목재를 구해 부서진 장보고함을 수리했고, 응양군 갑사들에게서 섬의 지형과 지리를 보고받은 박진우 중좌는 그들이 발견한 섬에 대해 세밀히 기록했다.
***
한편 거대한 풍랑을 만나 행방이 묘연해진 장보고함을 찾지 않고 그대로 태평양을 횡단한 조선 선단은 이후 큰 풍랑을 겪지 않고 스페인의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의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했다.
장보고함을 잃기는 했지만, 조선이 처음 개척한 태평양 항로를 통해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신대륙에 무사히 당도한 이시언 중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의 동맹국인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 1세가 전사한 후 스페인 제국이 포르투갈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조선에서 온 갈레온 선단은 아카풀코에 정박한 후 연은분리법을 가진 기술자들과 이들을 호위할 응양군 소속 갑사들을 내려주었고, 이들은 은광이 있는 지금의 볼리비아 포토시로 향했다.
머나먼 이국땅에 도착한 이들은 두려움도 컸고, 언제 조선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신세계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한편 갈레온선에 가득 실려 있던 청화백자, 홍차 등은 배에서 내려진 후 육로를 통해 대서양 연안인 베라크루즈까지 이동했고,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페인의 갈레온선에 다시 실려, 쿠바 아바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했다.
***
“전하! 이순신 입시이옵니다.”
“흐음. 들라 하라!”
왕의 부름을 받은 이순신이 마침내 입시했다.
이균 옆에는 병조판서 이이, 도승지 류성룡이 함께 있었다.
이순신은 이균을 향해 예를 갖춘 후 자리에 앉았다.
오래간만에 이순신을 본 이균은 미소가 가득했다.
“듣자 하니! 남해함대의 수병들을 잘 조련하고 있다 하던데, 남해는 별다른 상황이 없는가?”
“전하! 삼포를 드나드는 왜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기는 했으나,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흐음. 다행이구나! 그대도 알다시피 북방에서는 야인들을 소탕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때 남쪽에서 왜인들마저 소란을 일으키면 남쪽과 북쪽 모두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경계를 항상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본론을 말씀하시지! 왜 이리 시간을 끄시나.’
이미 이항복에게 얘기를 들어 자신이 또다시 포르투갈에 파견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순신은 왕께서 빨리 본론을 말해주기를 원했다.
“그리하겠나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를 내색하지 않고 이균이 물어보는 것에 그저 대답만 했다.
“흐음. 그대도 남만국 국왕이 전사한 사실은 알고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원정을 떠났다가 전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순신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이균을 바라보았다.
“그러하다! 남만국 국왕의 자리가 비자 서반아가 남만국을 넘보고 있다. 그대도 알다시피 남만국의 동방항로는 우리 조선에게 아주 중요한 항로이다. 서반아가 남만국을 가지게 되면 동방항로를 우리가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알고 있사옵니다. 전하! 동방항로는 반드시 지켜야 하옵니다!”
이순신도 동방항로의 중요성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하다! 동방항로는 우리의 생명줄과 같다. 그러하니 서반아의 위협으로부터 남만국을 지켜주기로 결정하였느니, 그대가 남만국을 구원하도록 하거라!”
“전하! 신 목숨 바쳐 남만국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대가 있어서 든든하구나! 남만국을 지원할 함대의 이름은 지중해 함대라 할 것이며, 그대가 지중해 함대의 제독이 되어 남만국을 서반아의 야욕으로부터 지키거라!”
이균은 자리에서 이러나 내관에게서 받은 상방검을 직접 이순신에게 하사했다.
“전하! 어찌 상방검을…….”
이균은 이순신을 중장으로 승차시켜 남만국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지중해 함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친히 상방검을 하사했다.
왕이 직접 상방검을 하사하자, 이순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를 대신해 그대에게 전권을 위임할 것이다. 반드시 남만국을 지키도록 하라!”
“전하! 그리하겠나이다. 소신 남만국을 지키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다시 중장으로 벼락 승차해 남만국을 구원하기 위한 지중해 함대의 사령관이 된 이순신은 결연한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도승지 류성룡은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이순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 또다시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는 그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북방에서 국경을 어지럽히는 야인들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6개의 군단이 이동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가용 가능한 갈레온선을 모두 동원해 남만국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군부와 대신들 중 일부가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염려하며 반대하였으나, 이균은 포르투갈이 무너지면 생명줄과 같은 동방항로를 빼앗길 수 있다는 염려에 결국 남만국을 지원할 함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
강화도
조선 해군이 확보한 거대한 갈레온선 약 20여 척이 강화도 앞바다에 모여 있었다.
조선은 동원 가능한 모든 갈레온선을 강화도에 집결시켜 포르투갈을 구원하러 떠날 지중해 함대를 구성했다.
엄청난 크기의 갈레온선에 동해, 남해, 서해 함대에서 차출된 해군 약 1만여 명과 응양군, 용호군 용사 1만여 명이 군장을 꾸려 차례차례 배에 탑승했다.
이순신은 기함 광개토대왕함에 올라 출항 준비를 하는 해군 승조원들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또 먼바다로 떠나게 생겼구나!”
다시 포르투갈을 향해 떠나는 이순신의 심경은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
전쟁이 있으면 어디든 그 전쟁터를 따라 떠나는 것이 군인의 숙명이라 하지만, 세계 최고의 군대를 가진 거대한 제국 스페인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중해 함대의 사령관 이순신을 보좌할 지휘관들은 부제독 이철윤 소장, 1전투 전대 지휘관 박순철 대좌, 2전투 전대 지휘관 홍남기 대좌, 3전투 전대 지휘관 이억기 등이었고, 그와 함께 돌격선 귀선을 연구했던 나대용 대위도 함께했다.
“이장군 또 이렇게 떠나게 생겼구려!”
이항복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하하! 무슨 한숨을 그리 길게 내쉬는 것이오. 처자를 만날 수 있으니 기쁘지 않소.”
“뭐. 그렇긴 하오만, 전쟁하러 가는 것이 아니오. 또 바다가 엄청나게 거칠지 않소.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구려!”
본의 아니게 포르투갈 공작 가문을 처가로 두게 된 이항복은 정3품에 해당하는 병조참의로 벼락 승차하여 이순신과 함께 포르투갈에 가게 되었다.
느닷없이 정3품 병조참의로 벼락 승차하고 또 포르투갈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나, 전쟁의 한가운데로 가는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를 생각하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걱정할 것이 없소. 아직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또 전쟁이 벌어진다 한들 우리 해군은 일당백의 용사들이오. 서반아 배들을 모두 수장시킬 것이오.”
이순신이 미소를 지으며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아. 그거야 그렇지요. 전하께서 총애하시는 이 장군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오. 듣자 하니 전하께서 상방검을 하사하셨다고 하던데……. 전하께서 이 장군을 엄청 아끼시나 보오!”
조금 전만 해도 시름이 한가득하였던 이항복이 언제 그랬냐는 듯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그도 이균이 직접 이순신에게 상방검을 하사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흐음. 글쎄요. 아끼신다기보다 남만국을 꼭 지키고 오라는 전하의 당부가 아니겠습니까.”
이순신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이 장군을 전하께서 아주 확 찍어 둔 것이 아니겠소. 도승지와 동문수학한 사이라 들었는데, 도승지 라인을 타신 것인가? 이 장군과 친하게 지내야겠소. 도승지 라인이라면 줄이 튼튼한 것이 아니오. 하하하!”
‘으이구 저자가 또 실없는 농을 지껄이는구나!’
“자 쓸데없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 출항 준비가 다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가봅시다!”
이항복이 또다시 실없는 말을 지껄이자, 이순신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출항하라는 명을 내렸고, 커다란 뱃고동 소리가 갈레온선 곳곳에 울려 퍼지자 선원들은 일제히 닻을 올리고 커다란 삼각돛과 사각 돛을 펼치고 배를 바람에 맡기었다.
거대한 갈레온 선이 돛을 활짝 펼치고 천천히 움직이자, 항구를 가득 메운 백성들이 손을 흔들었다.
항구에는 조선 첫 해외파병을 떠나는 해군과 갑사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나와 조선군을 배웅했다.
“꼭 살아 돌아오거라!”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먼 타국에 파병되자, 그들의 어머니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원하며 눈물을 흘렸고, 갑판에 나와 이를 지켜보고 있던 20대 초반의 조선군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덧 강화 앞바다를 떠난 갈레온선 20여 척은 바람을 제대로 만나 빠른 속도로 포르투갈을 향해 물살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