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아타이와의 일전 (2)
기병연대의 궁기병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야인들을 향해 조선이 자랑하는 활을 쏟아부었고 기병들이 발사한 활은 야인기병을 하나둘 쓰러트렸다.
퇴로가 막힌 아타이 기병 일부는 그나마 숫자가 적다고 여긴 기병연대를 향해 돌진했으나 채 얼마 가지 못해 기병연대 궁기병들의 신들린 활 솜씨를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갔다.
동료들이 조선 기병이 쏘는 활에 비명횡사하자 이판사판이라 여겼는지 일부 야인들은 다시 무시무시한 홍이포가 버티고 있는 조선 주력군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명운을 재촉하는 무모한 짓거리였다.
또다시 홍이포가 불을 품었고 화포에서 발사된 철환에 아타이의 기병들은 제대로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간혹 홍이포의 강력한 화망을 뚫고 나가는 기병들이 있었으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총과 활이었다.
아타이의 기병들이 조총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조총수는 평소 훈련받은 대로 탄환을 장전해 조총을 발사했고 조총은 커다란 소리와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탄환을 토해냈다.
이윽고 조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제정신이 아닌 야인들의 급소를 맞추어 그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미 일방적으로 기운 전세였다.
전투라기보다는 살육에 가까웠다.
조선군 사상자는 거의 없는 반면 전장에는 어느덧 야인들의 주검과 피를 흘리며 쓰러져 신음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보병을 투입시켜라!”
이제 전투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신립은 대기하고 있던 보병을 투입시키라 지시했고, 보병을 전진시키라는 대각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방패와 환도로 무장한 중무장 보병 팽배수 2천여 명과 장창으로 무장한 창수 2천여 명이 밀집대형을 이루고 열을 맞추어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야인들을 향해 행진했다.
맨 앞 열에 선 팽배수는 야인들이 눈앞에 보이자 일제히 들고 있던 창을 들어 야인들을 향해 던졌고, 힘이 좋은 팽배수의 창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야인들 향해 날아가 그들의 목과 가슴을 꿰뚫었고, 창에 맞은 야인들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창을 던진 후 팽배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환도를 꺼내 들어 야인을 향해 돌진해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야인들을 살육했고, 창수들도 밀집대형을 이루며 긴 창으로 전진해오는 야인들의 군마를 찌르자 군마들은 미쳐 날뛰어 기병을 말에서 떨구었고, 말에서 떨어진 기병들은 팽배수가 휘두르는 환도에 그대로 목이 달아났다.
“추……. 추장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정예 기병 수천 기가 사분오열하며 거의 전멸에 이르자 아타이는 망연자실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키운 정예 기병이었거늘 이렇게 정예 기병을 허무하게 잃게 되었으니, 그 허무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추……. 추장! 이러다 모두 전멸합니다. 항복을 하심이!”
“어찌 장부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겠는가! 너희들은 항복해 목숨을 보전하거라!”
아타이는 차고 있던 칼을 빼 들고 말의 등을 힘껏 내리쳤고, 말은 전속력으로 조선군 본영을 향해 달렸다.
“활을 주거라!”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신립이 병졸에게서 활을 받아 있는 힘껏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으악!
잠시 후 신립의 활에서 떠난 화살은 아타이의 목을 그대로 꿰뚫었고, 아타이는 풀썩 주저앉으며 말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과연 신궁이었다.
“와아아아!”
적장이 신립의 활을 맞고 그대로 고꾸라지자, 조선군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타이의 목이 달아나자, 그의 수하들은 더는 싸울 의지가 없었고, 살아남은 약 1,000여 명의 병졸들은 무기를 버리고 조선군에 항복했다.
또 한 번의 대승이었다.
아타이의 정예 기병 오천이 조선군이 쳐놓은 덫에 걸려 제대로 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몰살당했으니, 조선군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아타이의 수급을 베고 그 시신은 잘 묻어주도록 해라!”
신립의 명에 따라 조선군 병졸들은 아타이의 수급을 취한 후 그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장군! 이제 저희는 다시 주둔지로 돌아갑니까?”
5군단 1연대장 이종원 대좌가 신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차분히 전장을 바라보던 신립이 이종원을 바라보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해서여진을 칠 것이오!”
“장군. 지금 해서여진을 치겠다 말씀하셨나이까?”
이종원이 신립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거듭 물었다.
“그렇소이다. 전하께서 밀지를 보내셨소. 변방을 어지럽히는 야인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으니, 야인들을 모두 소탕해 고토를 회복하라는 어명을 내리셨소!”
이균은 아타이와 해서여진의 예허부가 조선군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야인여진 마을을 침략하자 이를 구실로 삼아 변방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야인들을 모두 소탕하고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땅을 조선의 땅으로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전하께서 결국!”
이종원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소.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소.”
“장군! 그럼 어떻게!”
“야인여진 마을에 있는 6군단은 약 3000여 명만 남겨 놓고 우리와 합류할 것이고, 7군단, 8군단, 9군단, 10군단 병력이 모두 합류해서 여진을 토벌할 것이오.”
“알겠나이다!”
신립의 5군단과 북방의 6군단, 7군단, 8군단, 9군단, 10군단 등 6개 군단 약 6만여 명의 대군이 일제히 해서여진의 본거지를 공략하기로 했다.
야인들을 토벌하기 위해 편성된 6개의 군단은 북방군단이라 칭해졌고, 신립은 북방군단을 통솔하는 지휘관이 되었다.
***
포르투갈 리스본
날렵한 동양인을 태운 말이 빠른 속도로 리스본 한가운데를 달려 궁으로 향했다.
“무슨 말이 저렇게 빠르지?”
“그러게! 그런데 말을 탄자의 복장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갑자기 동양인이 이국적인 복장을 하고 빠른 속도로 말을 달리자, 포르투갈 시민들은 한참 동안 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 조선에서 온 사절단의 옷 모양새와 비슷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 조선 사절단은 돌아간 지가 꽤 되는데, 도대체 누구인가?”
세바스티앙 1세가 모로코 원정 중에 뜻하지 않은 전사를 당하고 주력군 모두를 잃자,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은 어수선했다.
세바스티앙 1세가 후사가 없이 죽자, 펠리페 2세는 노골적으로 포르투갈을 넘보았고, 이에 시민들은 이러다가 조국을 스페인 제국에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스페인군이 당장에라도 국경을 넘어 침략해와 전쟁이라도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폐하! 조선에서 온 사자이옵니다.”
“그……. 그래 어서 들라 하라!”
세바스티앙 1세가 후사가 없이 죽자, 결국 그를 섭정하던 돈 엔히크 추기경이 왕의 자리에 올랐다.
세바스티앙 1세의 큰아버지뻘 되는 스페인 제국의 펠리페 2세는 황금알을 낳은 동방항로를 가진 포르투갈 제국을 탐내며 자신이 포르투갈 제국의 왕위 계승자라 주장하며 포르투갈 제국을 압박했지만,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네덜란드와의 전쟁 등 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인지 무력침공이라든가 더는 포르투갈을 압박하지 않고 돈 엔히크가 왕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을 집어삼키려는 펠리페 2세의 야욕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펠리페 2세는 고령의 돈 엔히크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 또한 사제로 후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사후를 노리고 있었다.
“조선에서 이렇게 먼 길을 와주다니……. 고맙소!”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한 엔히크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손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먼 길을 달려온 정후청 요원은 포르투갈 제국의 새로운 국왕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폐하! 저의 전하께서 친서를 보내셨습니다!”
정후청 요원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쳐들어 이균이 보낸 친서를 새로 등극한 포르투갈 왕 엔히크에 전했다.
떨리는 손으로 친서를 받은 엔히크는 돋보기를 끼고 천천히 이균의 친서를 읽어 나갔다.
“조선의 왕이 포르투갈을 구원하겠다니……. 제국의 운명이 위태로웠거늘……. 이제 안심이 되는구나!”
엔히크는 이균이 구원군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친서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흐음. 돌격선으로 귀선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떤가?”
이순신은 설계도를 펼쳐 놓고 나대용과 함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귀선만 한 것이 없습니다. 판옥선 위에 거북 등처럼 덮어 그 위에 뾰족한 쇳조각이나 못을 박아놓으면 적선에 근접해도 적군이 감히 배에 올라탈 생각을 못 할 것이옵니다.”
“흐음. 나 대위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그리고 배의 좌우에 포를 6문씩 달고, 앞에는 용머리를 달아 포를 설치해, 적함선에 근접해 포를 사방에서 쏘아대면 적선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고 말 것이네.”
이순신이 생각만 해도 통쾌한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장군! 게다가 왜선은 삼나무로 만들어 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귀선이 돌격해 화포를 쏘면 금세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나대용도 신이 나서 말했다.
이순신과 나대용은 돌격선으로 태종시대에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 귀선(거북선)을 개량하기로 했다.
왜 수군은 배가 약해 화포를 실을 수 없어 빠른 속도로 적선에 접근해 적선의 배에 올라타 단병접전을 벌이는 전투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에, 판옥선에 지붕을 덧씌워 쇠못이나, 칼날을 촘촘하게 박아 넣으면 왜군들은 거북선에 상선 자체가 불가능해 그들의 장기인 단병접전을 펼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귀선의 앞, 뒤, 좌, 우 사방에 화포를 설치해 왜선을 향해 돌진해 화포를 사정없이 쏘아대면 왜선은 큰 혼란에 빠져 전열이 흐트러질 것이다.
“언제 귀선을 만들 수 있겠나!”
이순신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대용을 바라보았다.
그는 빨리 귀선의 자태를 보고 싶었다.
“이제 설계도를 대략 만들어놨으니, 금세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 배의 틀은 판옥선이니 건조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나대용도 어서 빨리 귀선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막사에 병졸이 뛰어들어왔다.
“장군! 좀 나가보셔야겠습니다. 도성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한양에서? 무슨 일이라 하더냐!”
갑자기 한양에서 사자가 왔다고 하자, 이순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병졸을 바라보았다.
“저……. 자세히는 알지 못하겠으나, 전하께서 조속히 장군님을 도성에 올라오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어라!”
남해함대에 배치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갑자기 왕이 자신을 다시 부른다 하니 이순신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성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자세는 모르겠습니다. 어서 나가 보시지요!”
이순신은 즉시 막사를 박차고 나아가 도성에서 온 사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전하께서 부르신다고?”
“그러하옵니다. 조속히 도성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성에 무슨 변이라도 있는 것이냐?”
이순신도 신립이 북방에서 야인들을 연일 격파하며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으나, 서인들의 반란 이후 도성에 큰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왕께서 자신을 급하기 찾는다 하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장군님을 속히 한성으로 올라오라는 어명을 받들어 왔을 뿐, 자세한 연유는 알지 못하오니 어서 도성으로 가시지요.”
“흐음. 알겠네!”
지엄하신 어명이기에 이순신은 더는 그 연유를 묻지 않고, 채비를 챙겨 속히 도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