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태평양 항로 개척
조선사절단은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선의 도자기가 유럽에 판매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나, 유럽 제국은 도자기만 알 뿐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사절단의 방문을 통해 조선의 존재를 유럽 제국에 명확히 각인시켜주었다.
게다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스페인 제국에 차관까지 제공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 조선이 작은 나라가 아닌 동북아의 떠오르는 신흥 강국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신비한 아시아의 나라에서 온 조선 사절단의 의복, 그들이 먹는 음식 등 사절단의 모든 것이 큰 관심을 받았고, 사절단이 다녀간 이후 사절단에 관한 책이 수십 권 쏟아져 나오며 유럽 제국은 먼바다를 건너온 사절단에 흥분했다.
그리고 특히 이항복이 영국 귀족 자제에 전파한 홍차와 밀크티는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귀족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점차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귀족들은 하나둘 오후에 달달한 케이크나 쿠키와 함께 홍차나 밀크티를 즐기는 티타임을 가지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돈 자랑하기 좋아하는 귀족의 자제들은 값비싼 조선에서 온 청화백자 찻잔 세트에 홍차나 밀크티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것을 최고의 사치로 여겼다.
홍차가 어느새 영국을 중심으로 유행하게 되니, 차츰 조선에서 만들어진 홍차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사절단이 다녀간 후 조선의 도자기는 더욱 인기를 끌었고, 유럽의 명문가는 도자기 집에 도자기 진열관을 따로 만들어 수집한 값비싼 도자기를 파티를 열어 방문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버렸다.
조선 도자기를 보유하는 것이 부의 척도가 되어, 왕족들과 귀족들은 조선에서 나온 청화백자를 보는 즉시 사들여 그 가격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한편 이균은 홍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대비해, 제주도와 전라도 보성에 엄청난 규모의 녹차밭을 조성해 홍차를 본격적으로 만들도록 했다.
녹차에 비해 홍차는 발효의 정도와 향이 중요하다고 할 것인데, 처음 녹차를 수확해 발효할 때만 해도 최상급의 향을 풍기는 고급진 홍차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나, 정후청의 요원들이 홍차에 적합한 녹차 품종과 발효기술을 명나라에서 몰래 가지고 와 시행착오 끝에 유럽인들이 좋아할 만한 질 좋은 홍차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질 좋은 홍차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조선은 분주하게 홍차를 수출할 준비를 했다.
홍차는 조선의 또 다른 먹거리가 될 것이다.
***
부산포
포르투갈을 다녀온 태조대왕호와 여러 척의 갈레온선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부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며 청화백자와 잘 발효된 홍차를 실어 나르고 있었고, 선원들은 갑판에서 출항 준비를 했다.
“자 어서들 서두르게. 조금 있으면 배가 출항한다네!”
“그런데 이번에는 배가 새로운 땅으로 간다면서.”
“그렇다는구만. 무슨 서반아가 발견한 땅으로 간다는데. 은광 기술자들하고 군인들도 같이 간다는구먼!”
“아이고 엄청 멀리도 가는구먼!”
“자자!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짐을 옮기도록 하게!”
스페인의 볼리비아 은광의 지분을 획득한 조선은 약조에 따라 연은분리법 기술이 있는 숙련된 기술자 500여 명과 기술자들과 배를 보호할 응양군, 용호군 갑사 1,000여 명이 함께 탑승했다.
그리고 배에는 유럽에 가져갈 도자기와 홍차가 가득 실렸다.
조선 땅에서 난 녹차를 발효시켜 만든 홍차가 유럽에 수출되는 것이다.
이들을 태운 배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스페인의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의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해 광산 기술자들과 응양군, 용호군 갑사 1,000여 명을 내려준 후 육로로 짐들을 싣고 대서양 연안의 베라크루즈까지 이동해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스페인이 마련한 갤리온선에 도자기, 홍차 등을 옮겨 실은 후 쿠바 아바나를 거쳐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까지 갈 것이다.
이번 항해가 성공하면 태평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착한 후 다시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게 되는 것이다.
선원 대다수는 유럽 사절단을 태워 유럽으로 간 경험이 있어 항해기술을 믿을 만했지만,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은 또 다른 모험이었기에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가득했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엄청난 돈이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오겠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기에 그들은 출항할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항해는 이순신의 수하로 있으면서 유럽 사절단과 함께했던 이시언이 책임지기로 했다.
그는 이순신과 함께 사절단을 잘 이끌고 돌아온 공로로 중좌로 승차하였다.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는 용장과 덕장의 모습을 함께 갖춘 인물이다.
그러나 그 또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기에 온몸을 조여 오는 긴장감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출항 준비를 모두 마쳤사옵니다!”
수하 장수가 출항 준비를 모두 끝냈다고 알려왔다.
“흐음. 그래 험난한 여정이 되겠구나!”
“그러하옵니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는지!”
“자 출항하도록 해라!”
마침내 거대한 갈레온선들이 돛을 활짝 펴고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태평양을 향해 나아갔다.
연은분리법을 가진 기술자들은 갑판에 올라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고국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나으리! 세금을 낼 은자가 없는데 어떻게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까!”
헐벗은 농민이 비단옷을 입은 관료를 붙잡고 통사정하고 있으나 관료는 짜증이 나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정하는 농민에게 발길질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세금을 바치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냐. 황제께서 은자를 받치라 하지 않느냐.”
“나리도 아시지 않습니까! 은자가 부족하다는 것을. 게다가 올해는 흉년이 들어 팔 곡식도 없는데…….”
농민은 울먹이며 사정을 했다.
“허허! 이놈이 그럼 어쩌란 것이냐! 황상 폐하께서 은자를 가지고 오라 독촉인데, 우리는 하고 싶어서 이 짓을 하는 줄 아느냐.”
“나으리! 흑흑!”
“일주일 말미를 줄 것이다. 그때까지 세금을 바치지 않으면 네놈의 땅을 모조리 팔아넘길 것이다.”
“어찌 일주일 안에 그 많은 은자를 마련하라는 것입니까요. 저희보고 죽으라는 것입니까요.”
농민은 처와 가족을 부여안고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명재상 장거정이 제거된 이후 명나라의 국운은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은의 주요 공급처였던 경덕진은 완전히 파괴되어 더는 도자기를 생산하지 못해 화폐 역할을 하는 은이 돌지 않았다.
게다가 만력제는 정무를 거부하고 계집질이나 하며 정신병자처럼 은자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명나라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고, 게다가 큰 흉년이 들이닥쳐 굶주려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만력제는 은자를 모으기 위해 조세 부담을 급격히 늘려 농민들과 상인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고, 이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지고 유랑민이 되어 떠도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유랑민 중 일부는 무능한 명 조정에 노골적인 반감을 보이며 산적이 되거나 조세선을 공격하는 등 반란의 기미까지 보이고 있었다.
***
요동총병부
“장군. 조선국이 국경을 넘어 야인 부족을 점령한 이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동총병 이성량의 휘하 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성량에게 보고했다.
“흐음. 이놈들이 미친 것이 아니냐. 감히…….”
이성량은 골치가 지끈거렸다.
역모를 도모한 니탕개의 잔당 등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국경을 넘어온 조선군들은 잔당을 모두 소탕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야인들 부족을 야금야금 점령하더니 만주 북단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명황제 만력제가 초유의 파업을 선언하며 정무를 돌보지 않고 있어 혼란한 틈을 타 야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조선군마저 국경을 넘어 소동을 일으키니 이성량은 답답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조선군에게 보낸 사자는 답이 없느냐?”
“역모를 도모한 니탕개의 잔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고얀 놈들 같으니라고! 대명국을 어찌 보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인지…….”
이성량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한때 명의 충실한 제후국으로 명을 고분고분 따르던 조선이 이제 명나라를 업신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조선이 저리 준동을 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군사적 조치 없이 기껏해야 사자를 보내 속히 조선으로 돌아가라 청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더욱 답답할 노릇이었다.
“총병! 조선군을 저리 놔두면 요동까지 넘어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되옵니다.”
“흐음. 군자금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군자금이 와야 무엇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답답한지고. 황상 폐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군자금이 돌아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데, 북방을 지키는 군부에서 여러 차례 군자금을 요청했음에도 명 조정은 은자를 보내주지 않으니 군을 움직이기 곤란했다.
“참으로 난감하구나! 누르하치와 그 부족이 건주여진을 대부분 통합했다 했는가?”
“그러하옵니다!”
“누르하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야인들을 다스리는 요동총병부의 힘이 약해지자, 누르하치의 부족은 건주여진을 빠르게 통합해갔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독자적으로 길을 걷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겼는지 명에 복종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성량이 주는 교역권을 바탕으로 힘을 더 키우려 하는 계산을 한 것일 것이다.
***
서인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유럽 사절단까지 무사히 돌아오며 도성은 안정을 되찾았고 왕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군부뿐만 아니라 조정까지 완전히 장악한 이균에게 도전할 자는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다.
서인들이 제거된 이후 이균은 박순을 영의정에 앉히고 정탁을 좌의정, 홍섬을 우의정, 이조판서를 이산해, 호조판서를 이원익, 예조판서를 정인홍, 병조 판사는 이이, 형조판서를 박호산을 앉히며 완벽한 친정체계를 구축했다.
오래간만에 경복궁 근정전에 대신들이 모여들어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골치를 썩이던 서인들이 제거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니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이었다.
“주상전하 납시오!”
마침내 이균이 곤룡포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고, 대신들은 왕이 등장하자 하나같이 머리를 조아렸다.
“대신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오래간만에 보니 반갑구려!”
옥좌에 앉은 이균이 대신들을 내려다보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대들 덕분에 서인들의 역모를 성공리에 제압하게 되었고 20만 대군을 두게 되었으니 이 나라가 반석 위에 설 수 있게 되었소!”
“전하! 모든 것이 전하의 은덕이옵니다. 하늘에서 성군을 내려주셨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나이까!”
“그러하옵니다. 전하!”
‘아부는 본능적으로 잘도 떠는구만!’
대신들이 전하의 은덕 때문이라 아부를 하자, 이균이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전하! 반란을 도모한 니탕개 잔당을 모두 토벌했다고는 하나 야인들이 또다시 소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북방의 경계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할 것이옵니다. 평안도의 8군단, 황해도의 9군단을 북방으로 이동시켜 신립 장군을 돕도록 하옵소서!”
병조판서 율곡이 고개를 들어 2개의 군단이 국경을 넘어 신립 장군의 휘하 군단과 합류할 것을 청했다.
“흐음. 경의 생각이 옳소. 북방이 안정화하지 못하면 니탕개 같은 야인이 또 나타나 북방을 어지럽힐 것이오. 즉각 8군단, 9군단을 이동시켜 신립 장군과 합류토록 하시오.”
“전하. 그리되오면 약 4만 명이라는 대군이 국경을 넘어 주둔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명이 더는 이를 두고 보지 않을 것이옵니다.”
노회한 재상 박순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