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51화 (51/202)

51화 유럽에 도착한 조선 사절단(1)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상주성 반란군이 반란군 지도부 몰래 성문을 연 것이다.

성문이 열리자, 관군이 우르르 몰려 성안으로 들어갔고, 상주성 군졸들은 성 곳곳에 백기를 걸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다.

상주성이 관군에 떨어지자 반란 주동자 대부분이 자결했으나, 정여립 등 일부 세력은 맹렬히 저항하다 관군에 추포되었다.

이균을 변절자이자 폭군으로 낙인찍고 봉기를 일으킨 서인들과 유림들의 반란은 상주성이 떨어지며 모두 진압되었다.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의 목은 곧 도성에 효수되었고, 그 일족은 모두 노비가 되어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이로써 개혁을 추진하던 이균을 반대하며 이균의 최대 정적이었던 서인들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하지만 이균은 반란을 일으킨 서인 핵심 인사들은 과감하게 숙청했으나, 단순 가담한 유생들은 별다른 처벌 없이 그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교조주의적 성리학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들도 조선의 백성이고, 나름대로 똑똑한 젊은 인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하! 반란이 모두 진압되었습니다.”

류성룡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때 그도 이황의 문도로 성리학을 추종했기에 반란을 일으킨 인사 상당수가 그와 함께 동문수학했던 이들이기에,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역도들이 모두 진압되었다 하니 다행이구려!”

반면 이균은 속이 후련했다.

이제 조정에 그를 방해하는 세력이 없게 되어 그가 원하는 바를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신립은 야인들 잔당을 모두 토벌했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국경을 넘어 이번 역모에 가담한 야인들 마을을 모두 점령했사옵니다.”

신립이 월경해 반란에 가담한 야인들 부족 마을을 모두 점령했다고 하자, 이균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전하! 야인들을 모두 토벌했으니, 이제 신립 장군이 다시 6진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칫 명이 오해를 하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류성룡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모를 일으킨 잔당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국경을 넘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야인들 구역은 명나라 영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립의 군대는 반란군을 모두 토벌했음에도 수개월이 넘도록 조선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이 점령한 여진족 마을에서 계속 주둔하고 있었기에, 명나라로서는 충분히 조선이 따른 뜻을 품고 있다고 여길 만 했다.

“흐음. 걱정할 것이 없소. 역모에 가담한 야인의 숫자가 워낙 많으니 야인들을 더욱 철저히 살필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이오. 또 원래 야인들이 살던 땅은 우리 조선의 고토가 아니겠소.”

이균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눈치 빠른 류성룡은 이균이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흐음. 그나저나 우리 사신단이 이제 남만국에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제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이균은 갈레온선을 타고 조선 최초로 먼 바다를 돌아 유럽으로 떠난 사절단의 안부가 자못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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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 앞바다

1년 6개월이 넘는 긴 항해 끝에 마침내 강화도에서 출발한 조선 사절을 태운 갈레온 선단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앞바다에 도착했다.

갑판에 올라 점점 가까워지는 리스본을 바라보는 이순신은 감계 무량했다.

바다는 변화무쌍하고 무서웠다.

남아프리카를 도는 항로는 그야말로 죽음의 바다 같았다.

갈레온선을 삼켜 버릴 것 같은 집채만 한 파도가 쉼 없이 몰아쳐 거대한 크기의 태조대왕호를 바로 침몰시킬 것 같았다.

영원히 육지를 밟지 못하고 수장되어 고기밥이 될 거라 여겼는데,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리스본을 바라보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만호 무엇을 그리 보고 있는 것입니까?”

이항복과 이덕형도 선실이 답답한지 갑판에 올라왔다가 이순신이 있는 것을 보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닙니다. 영영 육지를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남만국에 오게 되는군요!”

이순신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내 아주 이제 배라면은 진절머리가 납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휘몰아 칠 때는 이대로 그냥 고향 땅에 돌아가 보지도 못하고 수장되는 줄 알았지 뭐요!”

이항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모험심이 강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강한 그였지만, 이토록 험난한 바다는 생전 처음이었기에,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시는 바다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하하하! 저도 먼 바다는 처음인지라, 이렇게 바다가 거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순신이 이항복의 하소연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빨리 남만국 땅을 밟아 보고 싶군요. 서반아도 가보고, 뭣이냐 천주교의 황제라나 뭐라나 그 사람도 만나보고······.”

이항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리스본이 가까워지자, 빨리 입항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직접 맛보고 싶어졌다.

조선이 최초로 유럽에 보낸 사절단은 이산해를 단장으로 해서 대부분 과거 초시에 합격한 후 왕립 서강대학에서 수학하던 젊은 학도들 중 대학 성적이 우수한 이들을 선발해 사절단 구성원으로 했다.

사절단에 선발된 이들은 과거 재시를 보지도 않고도 과거에 합격시켜주는 특혜를 주었기에, 사절단에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항복과 이덕형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동경하는 유럽을 여행할 수 있기에,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조선은 별일이 없는지 걱정이구려!”

이덕형이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서인과 유림들이 동태가 심상치 않았는데, 전하께서는 무탈하게 잘 계시는지.”

이순신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1년 이상 조선을 떠나 먼 바다를 항해하던 그들이었기에, 조선에서 서인들이 역모를 일으킨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자 이제 남만국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배에서 내릴 준비들을 하시지요.”

마침내 긴 항해를 마치고 조선 사절단을 태운 갈레온 선단이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항에 입항했다.

리스본 항에는 포르투갈 제국의 관료와 시민들이 나와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서 온 사절단을 열렬히 환영했다.

유럽에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는 조선이었지만, 유럽에 있어서 조선은 동방에 있는 미지의 나라였는데, 조선에서 먼 바다를 건너 유럽에 사절단을 보낸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신기한 일이었기에 조선 사절단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나온 것이다.

리스본에 도착한 사절단은 포르투갈 왕실 친위대 500여 명이 사절단을 호위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사절단을 호위하기 위해 태조대왕호에 탑승한 응양군 300여명도 비단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의장복과 전립을 쓰고 환도를 차고 포르투갈 왕실 친위대와 합류해 사절단을 호위했다.

이국적인 복장을 한 응양군을 포르투갈 시민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사절단은 포르투갈 제국 왕실에서 마련해준 화려한 마차를 타고 포르투갈  친위대와 조선 최고의 정예군 응양군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왕궁을 향해 갔고, 그들을 환영해주기 위해 나온 시민들은 박수를 치거나 손을 흔들며 그들을 맞이했다.

“한음. 이곳이 남만국의 도성이라는 구만.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유럽땅을 처음 밟은 이항복은 모든 것이 신기한 듯 마차에서 타고나서도 창을 열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게 말이오. 제국의 도성답게 참 화려하구려!”

이덕형도 포르투갈 제국 수도 리스본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있었다.

사절단은 긴 행렬을 이루며 왕궁으로 향했고, 포르투갈 시민들은 행렬이 사라질 때까지 이들을 지켜보았다.

왕궁에 도착한 사절단은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 1세가 마련한 화려한 만찬에 참석하는 등 융성한 대접을 받았다.

사절단은 화려한 비단옷에, 고풍스러운 갓을 쓰고 만찬장에 나타났고, 포르투갈 귀족들은 이들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하하하.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우리 모두 먼 조선에서 제국에 온 사절단을 위해 건배합시다.”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 1세가 사절단을 향해 포도주가 가득 든 잔을 높이 쳐들고 건배를 외쳤다.

국왕이 잔을 들자 만찬회에 모인 귀족들도 일제히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이렇게 사절단을 열렬히 환대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이산해가 사절단을 대표해 포르투갈 국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하하. 멀리 조선에서 온 귀한 손님인데 당연히 환대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세바스티앙 1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조선은 동방 무역에 있어 포르투갈 제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 있기에 어느덧 포르투갈은 조선을 무시할 수 없었고, 세바스티앙 1세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조선 사절단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경영하는 포르투갈 제국답게 만찬회에는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온 산해진미가 가득했고, 그 음식은 대부분 조선과 명나라에서 온 귀한 청화백자에 담겨 있었다.

“국왕 폐하 저희 전하께서 친서와 함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이산해가 이균이 보낸 친서와 함께 비단으로 곱게 포장한 상자를 세바스티앙 1세에게 전했다.

조선왕의 친서와 선물을 받은 세바스티앙 1세는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곧바로 비단을 풀고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를 열자 조선 최고의 도공과 화원이 한땀 한땀 수놓아 만든 청화백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귀한 것을······.”

상자에 담겨 있는 청화백자를 조심스럽게 꺼내 든 세바스티앙 1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접시에 그려진 두 마리의 봉황이 마치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순백의 백자에 코발트 유약으로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 그려 넣은 봉황과 문양은 그야말로 천하제일이었다.

“와아아아!”

귀족들도 국왕의 손에 들려 있는 청화백자에 눈길을 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흐음. 조선의 국왕께서 이렇게 귀한 것을 주시니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청화백자보다도 완벽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사절단은 조선의 장인들이 공들여 만든 청화백자를 만찬회에 모인 귀족들에게도 나누어주었고, 청화백자를 받은 귀족들은 뜻밖의 횡재라도 한 듯 무척이나 기뻐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보게 한음. 양놈들은 왜 그렇게 도자기에 미쳐서 난리인건가?”

이항복은 만찬회에 모인 포르투갈 국왕과 귀족들이 왕이 선물한 도자기를 보고 환장하는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야 뭐. 남만국에서는 도자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하지 않소. 저놈들이 도자기에 미쳐 날뛰는 바람이 조선에 은자가 모여드는 것 아니겠소.”

이덕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미개한 놈들이구먼. 도자기도 하나 못 만들고. 그건 그렇고 한음. 여인들 좀 보구려. 모두 가슴을 드러내놓고 아주 난리도 아니구만······. 큭큭. 몸매도 어찌 그리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왔는지.”

이항복이 가슴이 드러나는 화려한 파티복을 입은 포르투갈 여인들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들이 남정네 앞에서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이항복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이고 필운.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이항복이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우적우적 먹으며, 넋이 나간 눈으로 여인들을 바라보자, 이덕형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백마가 최고요. 하하하. 자 잘 보시오 내 오늘 만찬회에 나온 여인 중 한 명과 뜨거운 밤을 보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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