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폐허가 된 경덕진(2)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천 명의 야수와 같은 이들이 들이닥쳐 평화롭던 경덕진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남루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칼과 창뿐만 아니라 조총 심지어 홍이포까지 갖추고 있어 경덕진을 향해 사정없이 포격했고, 궁수들은 불화살을 쏘며 경덕진을 불태웠다.
“모조리 불태워라! 도공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거라! 으하하하!”
그들은 살육과 약탈에 목마른 들짐승처럼 미쳐 날뛰며 경덕진의 수천 개에 이르는 가마를 사정없이 파괴하고, 경덕진의 화려한 건물들을 불태웠으며, 보이는 이들을 살육했다.
“사······. 살려줘!”
도자기를 만들던 도공들과 화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아귀와 같은 이들을 피해 달아났으나, 이내 사악한 악마와 같은 이들의 칼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모조리 죽여라! 마음껏 약탈해라!”
광기 어린 목소리로 모든 것을 파괴하라고 지시하는 이는 바로 리마홍이었다.
이균에게서 비밀리에 경덕진을 파괴하라는 지령을 받은 리마홍은 왕에게서 받은 은자를 가지고 배와 무기, 그리고 노략질을 할 해적선 선원들을 모집한 후 수천 명의 해적들과 함께 양자강을 따라 기습적으로 경덕진 일대까지 멈추지 않고 이동했다.
워낙 기습적으로 이동한 덕분인지 별다른 명나라군의 저항 없이 경덕진에 상륙한 이들은 살육과 파괴에 굶주린 악마와 같이 살육을 하고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경덕진을 파괴했다.
이들이 상륙하고 재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경덕진은 수천 명의 주검이 거리에 널브러져 있고, 검은 연기가 곳곳에 피어오르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
이내 피 냄새를 맡은 까마귀 떼가 하늘을 맴돌며 시체를 노리고 있었고, 역겨운 피 냄새에 흥분한 리마홍의 수하들은 온전한 청화백자를 배에 옮겨 실으며 껄껄거렸다.
피에 굶주렸던 리마홍은 살육과 약탈을 마음껏 즐겼는지 호탕을 웃음을 지으며 그가 파괴한 경덕진을 둘러보았다.
“하하하! 이제 명군이 오기 전에 모두 배에 올라타도록 해라!”
리마홍은 독한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철수를 명했고, 그의 수하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배에 올라타 유유히 사라졌다.
****
마카오
“도자기 주문한 지 언제인데 왜 도자기가 안 오는 것이오.”
“주문이 조금 밀려서 그러니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청화백자를 구하기 위해 마카오에 몰려든 상인들이 주문한 청화백자가 없자 아우성을 치며 명나라 상인을 나무랐고, 명나라 상인들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뺐다.
“아니. 도자기가 오긴 오는 것이요. 벌써 마카오에 며칠째 발이 묶여 있지 않소.”
“아 그럼이요. 며칠만 더 말미를 주십시오. 이번엔 정말 도자기가 옵니다.”
“이번에는 정말 도자기를 내놓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요.”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은 주문한 도자기가 도착하지 않아 마카오에 발이 묶인 처지가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포르투갈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상인들이 몰려 있는 시전에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왔다.
“큰일이오. 큰일!”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요.”
상인이 숨을 헐떡거리며 큰일이 났다고 하자 다른 상인들은 그의 주변에 몰려들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글쎄. 경덕진이 왜구들의 급습을 받고 깡그리 파괴되었다고 하오.”
“지······. 금. 그게 사실이오. 그럼 경덕진에서 청화백자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요?”
포르투갈 상인이 경덕진이 왜구들의 급습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리자, 도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설왕설래했다.
“가마가 완전히 부서지고 도공들도 모두 처참히 살육을 당했다고 하는데, 무슨 수로 도자기를 만들겠소.”
“이런. 완전 낭패로구먼. 도자기를 구하기 위해 먼 바다를 건너 마카오까지 온 것인데.”
목숨을 걸고 먼 바다를 건너 오로지 도자기를 구해 마카오까지 온 상인들은 경덕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제기랄 어서 조선으로 가야겠구만. 마카오에서는 더는 도자기를 구하기 힘들겠어.”
경덕진이 해적에게 공격당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카오는 큰 혼란에 빠졌다.
전 세계에서 도자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도자기 생산 기지인 경덕진이 파괴되어 도자기를 더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하자, 그들은 서둘러 청화백자를 구하기 위해 조선으로 향했다.
명이 도자기를 만들지 못하자, 유럽 귀족들이 열광하는 청화백자를 구하기 위해 강화도에는 수많은 갈레온선들이 몰려들어 도자기 쟁탈전이 벌어졌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가 판매 경쟁이 붙었던 청화백자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도자기 가격이 급등하자, 조선으로 엄청난 양의 은이 흘러들었고, 왕실의 재정은 더욱 풍족해졌다.
****
북경 자금성
“황상폐하! 큰일이옵니다!”
명나라 내탕금을 책임지고 있는 홍순후가 숨을 헐떡거리며 여인들의 안마를 받고 있는 만력제의 침소로 달려왔다.
“왜 그렇게 소란스러운 것이냐!”
여인들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고 있던 만력제는 홍순후가 오래 만의 평온을 깨트리자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나무랐다.
“폐하! 경······. 경덕진이!”
“경덕진이 무엇이 어찌 되었다는 것이냐!”
“경···. 경덕진이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홍순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사실이냐. 왜······. 왜구가 경덕진을”
아무리 아둔한 만력제라 하지만 그도 경덕진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경덕진이 왜구의 기습공격을 받고 폐허가 되었다는 홍순후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하옵니다. 갑자기 왜구 수천 명이 들이닥쳐 도공과 화원을 모두 죽이고, 경덕진을 모두 불태웠다고 하옵니다!”
“무엇이라! 도대체 우리 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경덕진이 그리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이냐!”
만력제는 노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홍순후를 바라보았다.
“그······. 그것이 워낙 갑자기 들이닥쳐서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 하옵니다.”
“이······. 런. 멍청한 자들 같으니라고.”
명나라 경제를 돌게 하는 피와 같은 은의 중요한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청화백자를 만들어내는 경덕진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은 만력제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구들은 잡아들였느냐?”
“저. 워낙 순식간에 들이닥쳐 노략질하고 사라져서······. 그 행방이 묘연하옵니다.”
“이런! 바보 같은 것들. 당장 어떤 놈의 소행인지 밝히도록 해!”
만력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내탕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경덕진은 언제 도자기를 다시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냐!”
만력제가 한숨을 내쉬며 홍순후를 바라보았다.
“저······. 도공들과 화공들이 모두 비명횡사하고 가마가 모두 불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사옵니다.”
홍순후가 만력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덕진에서 다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해!”
“그······. 그리하겠나이다.”
만력제는 경덕진을 복원해 다시 도자기를 만들라고 지시했지만, 리마홍의 해적단에게 철저히 파괴된 경덕진을 다시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데는 꽤 오랜 시일이 걸렸고, 그사이 조선은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찍어내며 도자기 패권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되었다.
****
포르투갈 리스본
갈레온선 10여 척이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에 정박하자 유럽 각국의 왕실 및 귀족들의 대리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항구는 번잡스러워졌다.
“이보게 어디서 온 배인가! 조선인가?”
“그렇소. 조선 강화도를 들렸다온 배요.”
“그······. 그럼 청화백자가 실려 있는가!”
“당연한 것 아니겠소. 조선땅에서 갓 구워낸 청화백자가 가득 실려 있소.”
“그래! 이보게 값의 두 배를 쳐주겠네. 모두 우리에게 넘기게.”
“아니 3배를 쳐주겠네!
방금 항해를 마치고 온 상단의 책임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청화백자가 가득 실려 있다고 말하자, 왕실의 대리인들이 청화백자 샘플을 보지도 않고 시중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부르며 자기들한테 넘기라고 아우성이었다.
경덕진이 해적의 급습을 받아 파괴되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유럽에 퍼졌고, 이미 청화백자의 매력에 빠져 있던 유럽 왕가와 귀족들은 청화백자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조선만이 청화백자를 생산하게 되어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유럽에서는 청화백자 품귀현상이 발생했고, 청화백자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였다.
청화백자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일부 재력가들은 마치 비트코인 같은 투자 수단으로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청화백자의 가격은 더욱 급등했다.
****
이균의 밀지를 받은 리마홍이 성공적으로 경덕진을 기습 공략하여 그의 예상대로 도자기 가격이 폭등하자, 그는 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경덕진에서 다시 청화백자가 나오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 청화백자의 가격 주도권은 조선이 갖게 되어 조선은 엄청난 이문을 남기게 될 것이다.
‘리마홍이라는 자가 일을 제대로 해주었구나!’
해적 따위의 손을 빌어 경덕진을 도모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균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희생양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전하! 응양군 별장 신립 입시이옵니다.”
“흐음. 들라하라!”
이균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내관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최정예 친위부대 응양군 별장으로 재직 중인 신립이 입조한 것을 알려왔다.
잠시 후 기골이 장대한 무장의 포스를 풍기는 신립이 씩씩한 걸음으로 들어와 이균을 향해 예를 갖춘 후 자리에 앉았다.
무장다운 기개를 뽐내는 신립을 보고 있자 하니,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균이 장차 조선군을 이끌 장수로 꼭 점찍은 신립은 쾌속 승차해 어느덧 정3품의 응양군 별장이 되어 기병을 지휘하고 있었다.
국왕의 총애를 입어 쾌속 승차하는 신립을 질시하는 이들이 많아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그를 탄핵하는 상소가 제법 올라왔지만, 이균은 상소를 신경 쓰지 않고 신립을 중용했고, 신립은 잠시 북방에 나가 있다가 다시 국왕 친위부대인 응양군 별장이 되어 왕을 모시게 되었다.
“그래! 북방이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도성 생활은 이제 적응이 되었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북방의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말을 달리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으나, 전하 곁에서 도성을 방어하는 중책을 맡았으니, 성심을 다해 전하를 보필할 것입니다.”
“하하하. 그대가 그런 말을 하니 든든하구나!”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흐음. 응양군 갑사들이 훈련 상태는 어떠한고?”
“응양군은 전하를 지키는 조선 최강의 부대이옵니다. 응양군 갑사들은 조선 최고의 용사라는 자부심이 가득하옵니다. 언제든지 전하께서 하명만 내려주신다면 전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신립이 충성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신립이 기꺼이 이균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하자, 이균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북방에 있었는데, 북방의 사정은 어떠한가?”
“야인들이 작은 소란은 일으키기는 하나 큰 준동은 없었사옵니다. 다만 야인들이 세력을 규합하고 있어 그것이 염려되옵니다.”
신립도 야인들이 큰 소동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을 경계했다.
“흐음. 그렇구만. 병조판서도 야인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이구나. 그래서 그러니 그대에게 한 가지 청을 하려 하는데······.”
이균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신립을 바라보았다.
“전하!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목숨을 다 바쳐 따르겠나이다!”
신립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대가 다시 북방으로 가야겠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야인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데, 믿을 만한 장수가 없으니 그대가 동북면을 맡아주게!”